출처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22896
본 글은 소망대교의 패러디입니다.
소망대교와 ’맞서 싸우십시오‘를 먼저 읽어주십시오.
소망대교 톨게이트에서 1.5km쯤 되는 곳.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내가 아직 7살이었던 그 때에, 해서 어린이 대공원에 가자며 즐겁게 나섰던 여행길.
그날 소망대교가 무너졌다.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던 차 속에서 모두의 정신이 흐려질 때쯤, 나는 무엇에 씌이기라도 한 듯 카시트의 줄을 풀었다.
어떻게 나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차를 탈출해서, 무너진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부모님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위용위용.
내가 무서워하던,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던 그 소리.
나는 119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런 나를 봐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울며불며 나는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실종자 1명 시신 확인했습니다!"
"신원은 확인 가능합니까?"
"아, 가슴팍에 있는 명찰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나를 '통과해서' 지나갔다.
"사망자 신분은...소망유치원 7세 이지훈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망대교에 찾아오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수많은 구급차가 왔다 갔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 아저씨들이 건질 수 있는 건 시체밖에 없어.
차라리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저씨들이라도 무사하셔야 할 텐데.
그리고 지금.
나는 이제 그 아저씨들도 오지 않는, 텅 비어버린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었나.
엄청난 안개가 소망대교를 뒤덮었던 날.
그날 이후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봤던 귀신처럼.
톨게이트 아저씨는 그 안개를 '초혼의 안개'라고 부르는 듯했다.
그 안개가 생긴 이후부터, 소망대교에는 차들이 뜸해졌다.
바다에는 헤엄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그날 빠져 죽은 사람들이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다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한 2년 정도 지나서였나.
갑자기 강에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엄마.
아빠.
두분이 허우적대며 나를 부르고 계셨다.
부우웅.
때마침 지나가는 차가 있었다.
나는 그 차로 달려가 운전자 아저씨에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엄마랑...아빠가 빠졌어요."
그 아저씨는 나를 도와주러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또 어느 날이었나.
갑자기 해서 어린이 대공원이 가고 싶어졌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려던 곳이었는데.
지나가는 차를 붙잡아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놀이공원에 데려다 달라고.
더 이상 이 다리에 머물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차라리 놀이공원에서 사람들의 소리 속에 파묻히고 싶어.
그리고 나는 그날 '해서 어린이 대공원'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지 3년.
톨게이트 아저씨가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실적'이 부족하다고 나를 혼냈다.
앞으로도 실적이 없으면 이곳에서 쫓아내겠다고 했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바다에 빠져서, 영원히 저 사람들처럼 헤엄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지금도 허우적대는 엄마 아빠처럼, 바닥 속 소용돌이에 휘말려 영원히 고통받게 되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또 지나가는 차를 발견했다.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요."
아저씨는 나를 뒤에 타게 하고 출발하셨다.
아저씨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다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았구나.
하지만, 나는?
나는 이곳에서 머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데?
마음 속에서 억울하다는 감정이 솟구쳤다.
"...저 내릴래요."
나는 아저씨에게 갓길에 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갓길은 곧 무너져 내렸고, 아저씨는 차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톨게이트 아저씨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소망대교의 괴이가 되었다.
빠앙ㅡ!!!!
상념에 잠겨있을 무렵, 엄청난 경적이 나를 깨웠다.
창문이 다 깨져있는 승용차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어이, 지훈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한숨이 나왔다.
꼭 이런 사람 있더라.
센 척 하는 사람.
나는 저런 사람들이 싫었다.
결국 속으로는 다들 나를 무서워하고 있으면서.
"엄마랑 아빠가 빠졌어요."
나는 평소대로 아저씨에게 다가가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리고,
"그렇구나."
퍽ㅡ!!!
아저씨의 무릎이 명치에 틀어박히는 느낌과 함께, 내 정신이 끊어졌다.
"...헉!!!"
정신을 차려보니 목이 손에 붙들려 있다.
발이 닿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지?
눈앞을 보니 아까의 아저씨와 소망대교가 보인다.
"지훈아, 일어났어?"
"아저씨...이게 무슨..."
"아, 부모님이 빠졌다며? 그럼 부모님 곁으로 가야지."
아저씨의 순수한 미소에서 나는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미쳤다. 이 사람은 미쳤어.
"...해서!!!"
"응?"
"놀이공원...가고 싶어요..!!!"
살아야 해.
이렇게 바다에 빠질 순 없어.
나는 사력을 다해 아저씨에게 빌었다.
"놀이공원...데려가 주세요..."
"흐음...놀이공원?"
그리고,
"뒤에 타."
그제야 아저씨는 나를 다리에 내려주었다.
나는 헐레벌떡 뒷자리에 탔다.
트렁크에는 톨게이트 아저씨, 네비게이션 귀신 누나, 1차선의 장난꾸러기 형, 잠꾸러기 트럭 아저씨가 전부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 50미터 전방에서 좌회전입니다.
아저씨는 능숙하게 우회전을 했다.
이런 아저씨랑 같이 다리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자유를 얻게 되는 걸까?
아니면...
"아저씨, 이쪽으로 가면 안 돼요."
이대로 갔다간 저 바다 속으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저 아저씨라면 절대로 나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거야.
"왜 안되는데?"
"그러니까 이쪽은 놀이동산이..."
"130만원."
"네?"
"2km 왔잖아. 130만원 내라고."
아저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봤더니 택시에 있는 기계가 보였다.
15미터당 10000원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원래 택시비가 다 이런가?
그보다 나는 돈이 없는데.
살면서 만져본 유일한 지폐는 천원짜리 지폐가 전부였는데.
"아...그러니까..."
"돈 없으면 닥치고 있어."
"..."
"꼬우면 내리던가."
내린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차를 타고 조용히 아저씨를 따라가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달렸을까?
차가 멈추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내려."
눈을 떴을 땐,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놀이동산의 입구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망했다는 놀이공원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랑 아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 큰 다리가 갑자기 쾅 하고 무너지는게 이상하잖아.
모든 게 다 꿈이었던 거야.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을 만큼, 지독하고 끔찍한 꿈.
나는 눈물을 닦고 아저씨를 향해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 자리에 없었다.
"...역시 이런 건 기분이 좀 찝찝하네."
나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지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내가 차에서 내렸을 때 자고 있길래 바다에 던져버렸더니 저러고 있다.
자식, 꿈이라도 꾸나.
입이 아주 헤벌쭉해져 있네.
그 웃음을 보니 어딘가 찝찝했던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트렁크를 열어 놈들을 들쳐매고 쇠사슬로 가로막힌 다리를 건넜다.
불금에 이런 짓거리까지 했더니 정신이 피곤했다.
집에 가면 치맥이나 조져야겠군.
나는 내 오래된 쏘나타와 지훈이를 뒤로 하고, 괴이와 장비들을 챙기고서 다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건 부산광역시립 초자연재난관리 본부장...뭐가 이렇게 길어?
암튼 그 새끼를 만나서 이놈들을 넘기는 것이다.
값은 두둑히 쳐준다고 했으니 오늘은 플렉스 좀 해야지.
값 후려치려 하면 걔들도 강물에 던져주면 되니까, 뭐.
051-4489.
전화를 걸었더니 곧 차가 왔다.
"문동석씨 되십니까? 아이고, 무거우실 텐데. 수고하셨습니다. 아, 이것들은 이쪽으로 넘기시고...여기 탑승하시면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특이한 밧줄로 괴이들을 묶고 천으로 몇 번이나 감싸더니 차에 싣고, 나는 웬 리무진 뒷자석에 타라고 한다.
그 구두쇠 양반들이 이런 것까지 준비하다니, 오늘은 느낌이 좋은걸.
"공간 왜곡을 벗어나 부산광역시립 초자연재난관리본부에 도착하려면 8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잠시 주무시고 계시면 저희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허튼 짓하면 알지?"
"아하하...저희가 아무리 윗분들 콩고물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라도 괴이현상 5개를 처리하신 문동석 님을 건드릴 만큼 머저리는 아닙니다. 편히 쉬고 계십시오. 본부장님 앞까지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수고해."
나는 그제야 차 시트에 기대고 찾아오는 졸음을 받아들였다.
왠지 오늘은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