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amu.wiki/w/%EC%95%88%ED%8B%B0%ED%82%A4%ED%85%8C%EB%9D%BC%20%EA%B8%B0%EA%B3%84
1. 개요
안티키테라 기계 또는 안티키테라 장치(Antikythera Mechanism)는 고대 그리스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제 유물로,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컴퓨터이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 까지 과학자들이 내부를 조사한 결과 많은 수의 톱니바퀴와 원판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자동기계 구조가 발견되어 유명해졌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를 여러 가지 천문 현상을 계산하는 정교한 계산기였던 것으로 추정하며, 당대 지중해 지역의 뛰어난 과학기술 수준을 알려 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그리스의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청동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2. 역사
안티키테라 기계의 발명 주체와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학자들은 당대 기계공학과 천문학의 중심지였던 그리스 로도스에서 대략 기원전 200년에서 100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왔다.
기계의 다이얼에서 로도스의 수호신 헬리오스를 기념하는 할리에이아(Halieia) 축제가 판독되고, 히파르코스의 천문학 이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2008년 연구를 통해 기계에 새겨진 달력이 코린토스식임이 밝혀졌는데, 이 발견이 주목받은 이유는 코린토스의 식민 도시가 바로 당대 최고의 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는 시라쿠사에서 아르키메데스 혹은 그의 후계자들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 역시 매우 유력한 가설로 재조명받고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안티키테라 기계와 비슷하게 고안한 기계 두 개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허나 시라쿠사가 함락되고 이 기계 2대는 모두 고대 로마로 보내졌으므로, 안티키테라 기계와 동일한 기계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한 안티키테라 기계가 표현하는 해, 달, 행성의 운동은 후대 인물인 히파르코스가 계산한 업적을 따르므로 기록에 있는 그 기계와 동일 기계일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진다.
일단 현재 나온 가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은 로도스의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학파의 공방과 연계되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어쨌거나 해당 가설도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확정된 가설이 아니다.
어쨌든, 이 기계를 실은 배는 기원전 70년에서 60년경 로마 방향으로 가던 중에 침몰한 듯 한데, 그래서 포시도니우스 학파의 걸작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실제로 이와 관련되어 비슷한 장치가 있었음을 문헌적으로 증명하는 사람의 기록도 실제 있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 최고의 웅변가이자 석학,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기원전 79~78년경 로도스섬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포시도니우스 밑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저서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기원전 1세기 키케로가 남긴 기록은 이 기계가 당대 지성인들에게 실재했던 기술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는 이와 관련된 기계공학적 지식을 다른 곳에서도 자세히 기술했는데 그의 저서 《국가론(De re publica)》에서는 아르키메데스가 제작하여 로마로 가져온 천문 기계를 직접 목격한 소감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현대 공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다, 키케로는 이 기계의 경이로움이 "단 한 번의 회전(Single revolution)으로 어떻게 서로 다른 불규칙한 운동 속에서 각기 다른 진행을 유지하는지를 계산해낸 것" 에 있다고 적었다.
(이는 안티키테라 기계의 작동 원리인 사용자가 외부 크랭크를 돌리면 내부의 복잡한 톱니바퀴들이 수학적으로 계산된 각기 다른 속도로 맞물려 돌아가며 여러 천체의 위치를 동시에 맞추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청동 장치를 돌렸을 때 나타나는 회전 수는 실제 하늘의 일수와 정확히 일치했으며, 이를 통해 일식과 월식은 물론,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한다.
당시 로마인들은 단순히 별자리가 그려진 '정적인 천구의' 는 흔한 발명품으로 여겼으나, 아르키메데스와 포시도니우스가 만든 '동적으로 움직이는 계산기' 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성의 산물로 극찬했다.
결국 이러한 문헌적 증거들은 안티키테라 기계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미스터리한 물건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공학이 수백 년간 축적되어 만들어진 당대 하이테크 기술의 결정체였음을 시사한다.
당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이러한 정밀 기계 기술은 천문 기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컨데 아우구스투스 시대 또는 하드리아누스 시대 물건으로 추정되는, 아테네 케라메이코스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청동 번호 자물쇠는 두 개의 다이얼을 특정 위치에 맞춰야만 열리는 '기계적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는 당시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 복잡한 톱니와 회전축을 이용한 기계 설계 문화가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다.
공학에서 어떤 기계가 처음 발명될 때는 구조가 투박하고 비효율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티키테라 기계는 차동 기어(Differential gear)나 에피사이클릭 기어(Epicyclic gear)처럼 현대 공학에서도 고등 기술로 분류되는 메커니즘을 매우 정교하고 소형화된 형태로 구현하고 있다.
이는 이 기계가 나오기 전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프로토타입 시제품들과 이전 모델들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 존재했음을 뜻한다.
즉, 안티키테라 기계는 그 기술적 진화의 최종 진화형 혹은 하이엔드 모델인 셈이다.
더군다나, 이 정도 수준의 기계를 만들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기어의 잇수를 계산할 정밀한 수치 설계자인 당대 최고의 수학자와 천문학자, 1mm 오차 없이 청동 판을 깎고 톱니를 만들 세공사, 기계 겉면에 미세한 글자를 새기고 눈금을 매길 기술자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즉 당시 그리스 세계에 이러한 전문가들이 모인 공방이나 학파라는 인프라가 조직적으로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아마도 그런 고도의 기술력이 모인 도시들이 바로 시라쿠사나 로도스 같은 곳이였을 것이다.
복원 전문가들은 기계에 새겨진 지침서와 다이얼의 형식을 보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거나 양도될 것을 전제로 제작된 '양산형 제품' 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만약 제작자 본인만 쓰려고 만든 유일한 물건이라면 그렇게 친절하고 정교한 설명서나 공용 달력을 넣을 필요가 적다.
이는 당시 로마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천문 계산 기기에 대한 일정한 수요가 있었고, 그에 따라 제작법이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까지 남은 고대의 문헌들은 고대의 기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묘사하며, 일부는 간단한 도면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르키메데스의 주행거리계(odometer)인데, 이 모델은 나중에 로마인들이 이정표를 세우는 데 정확히 사용되었고 비트루비우스, 헤론 등의 기록에 의해 묘사되었다.
후세인들이 나중에 문헌 속의 도면들을 복원해 봤는데 완전히 재현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림 속의 사각형 톱니를 안티키테라 기계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각진 삼각형 톱니로 교체하자 그 구동 장치 자체는 완벽하게 작동했다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각종 기계의 기록을 남긴 키케로 본인이나 동시기 로도스에 유학가거나 방문했던 로마인(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등) 들은 이와 비슷한 기계, 혹은 침몰하기 전 안티키테라 기계의 실물을 직접 봤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어쨌든 간에 확실한 것은 고대 이후 잦은 전쟁으로 고대 청동기 기물들은 자주 녹여져 다른 기물이나 무기로 전용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발견된 안티키테라 기계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동형의 수백, 수천대의 기계보다 바닷속에 일찍 가라앉아 그런 꼴은 당하지 않은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개체였을 수 있다.
하여튼, 다시 유물 발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900년 4월, 해면 채취어선의 선장 디미트리오스 콘도스(Δημήτριος Κοντός)가 폭풍우를 피해 크레타섬 북서쪽에 위치한 안디키테라(Αντικυθηρα)섬에 정박하여 대기하던 도중, 같은 배의 잠수부 엘리어스 스타디아티스가 섬 앞바다 해저 45미터 지점에서 난파선의 잔해를 발견하였다.
이는 곧 아테네시 당국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고, 당시 그리스 왕국은 왕립 해군까지 선박을 파견하여 해저 유물 인양을 지원했다.
1900년에서 1901년 사이에 잔해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인양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고대 그리스 신들의 거대한 대리석 조각상과 청동상, 청동제 리라, 유리 공예품과 여러 가지 기구들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당시 잠수부들과 고고학자들의 온 신경은 화려한 대리석 조각상과 청동상에 쏠려 있었기에, 부식되어 녹색 빛을 띠는 볼품없는 청동 덩어리에 불과했던 안티키테라 기계는 처음에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처음에는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 상태로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다른 화려한 유물들에 밀려 창고나 구석진 방에 몇 달 동안 방치되었다.
초기에 적절한 보존 처리를 받지 못한 이 덩어리는 건조되면서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는데, 발견된 지 약 1년이 지난 1902년 5월 17일, 고고학자 발레리오스 스타이스(Valerios Stais)가 이 유물 파편을 살펴보다가 갈라진 돌덩어리 단면 안쪽에 정교한 톱니바퀴가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 정교한 기계일 것으로 추측한 스타이스는 이것이 천문학적인 계산 장치일 것이라고 학계에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학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정교한 톱니바퀴 시계 기술은 14세기 유럽에서나 시작되었으며, 무엇보다 '아무리 발전된 고대 그리스인들이라고 해도 설마 이 정도까지 정밀한 기계공학 기술이 있었을까?' 하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이 기계는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수십 년간 신기한 청동 덩어리 취급을 받으며 외면당하던 이 기계의 비밀은 영국의 과학사학자 데릭 드 솔라 프라이스(Derek de Solla Price)가 1951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드러났다.
1971년, 프라이스는 그리스의 원자력 물리학자 카랄람보스 카라칼로스(Charalampos Karakalos)와 협력하여 감마선과 X선 촬영을 통해 내부의 정밀조사를 시행했다.
프라이스는 이 기계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천문 계산용 컴퓨터라고 선언했으나, 그때조차도 다수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너무 앞서간 주장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계의 완전한 진실은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밝혀졌다.
2005년 부터 아테네 대학교와 테살로니키 대학교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안티키테라 기계 연구 프로젝트(AMRP)' 에서 최첨단 3D X선 마이크로 CT 촬영 기술을 동원하여 내부를 투시한 것이다.
그 연구 결과, 내부의 30개가 넘는 정교한 톱니바퀴와 그 위에 새겨진 수천 개의 미세한 글자들이 판독되었으며, 이 기계가 달의 공전 주기(히파르코스의 이론 반영)와 일식과 월식 예측, 고대 올림피아 제전 주기 계산까지 수행하는 세계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임이 완벽히 증명되었다.
2006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 이 기계의 완벽한 복원도가 발표되자, 14세기 유럽의 시계 기술보다 1,500년이나 앞선 기술이 이미 자신들의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그리스 사회와 언론은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며 대서특필했다.
100년 넘게 박물관 구석에 잊혀 있던 이 녹슨 덩어리는 정체가 밝혀진 이후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보물 중 하나로 격상되었고, 현재는 전용 전시실이 마련되어 전 세계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국보급 성지로 대접받고 있다.
3. 구조
기계는 315×190×100 mm 크기로, 복잡한 톱니바퀴 32개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가 부족한 탓에 본래 이 기계를 부르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기계에 그리스 문자로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용 설명 같은 내용의 일부로 확인되었다.
발견 당시에는 시계의 일종이라 여겼으나, 발견되고 나서 50년 동안 조사되지 않고 방치되었다.
그러다 1950년에서 70년대에 걸쳐 학자들이 내부 구조를 분석하자 이 기계가 태양, 달,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아주 복잡한 계산기였음이 드러났다.
측면에 크랭크와 기어가 있어서 이걸 돌려 날짜를 맞추면 행성의 위치를 변경해 그날의 해, 달, 기타 별의 위치를 알린다.
윤년을 반영하여 4년에 하루 정도 날짜가 늦게 돌아가도록 제작하여 1년 365일을 정확하게 맞히는 기능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2008년에 영국·그리스·미국에서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들은 기존에 76년 칼리프스 주기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다이얼이 올림피아 제전의 4년 주기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안티키테라 기계가 행성의 위치와 달의 위상까지도 계산할 수 있고, 구조가 기존의 예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위 구조도 자체는 실제 매커니즘에 대한 추정 도식 중 하나지만, 유물에 새겨진 기호로 미루어보아 행성의 움직임도 계산해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계는 달의 위치와 위상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타원 궤도 때문에 달이 지구와 가까워질 때 빨라지고 멀어질 때 느려지는 속도 변화(이상 운동)까지 정밀하게 추적하고 모델링 했다.
또한 현재 시간을 나타내는 '평균 태양' 뿐만 아니라, 황도 상에서 관측되는 태양의 겉보기 위치인 '진태양'의 위치까지 분리하여 표시했다.
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5개 행성의 회합 주기를 계산하여, 밤하늘에 행성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기, 겉보기 위치, 그리고 행성이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역행 운동(retrograde motion)까지 시뮬레이션 했다.
즉 이 기계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지식으로 가지고 있던 고대 천문 이론과 역법의 기계적 구현을 이룬 기계로, 행성 운동 이론과 고대 바빌로니아 시기부터 누적된 대수학, 천문학적 주기(예컨데 금성 462일, 토성 442일 등)를 청동 톱니바퀴의 비율을 통해 물리적으로 계산해 내는 아날로그 컴퓨터로 쓰였다.
또한 달력 기능이 톱니바퀴에 연결되어 있어 특정 날짜를 맞추면 그날의 하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전면 다이얼에는 금, 은, 보석 등으로 각 행성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지침들이 돌아다녔다.
이 기계는 당대 엘리트나 학자들이 "우주를 지배하는 조화롭고 수학적인 원리" 를 눈앞에서 시연하고 과시하기 위해 만든 철학적 상징적 우주 모델기에 가깝게 쓰였을 것으로 분석되는데, 키케로가 눈 앞에서 보고 감탄했을 포시도니우스의 기계는 바로 이런 종류였을 것이다.
2010년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 명이 여가시간을 이용해서 레고로 레플리카를 만든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허나, 오파츠 문단의 상단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새로 밝혀진 구조는 저것보다도 더욱 복잡해졌다.
행성의 운동을 나타내는 부분이 얹어졌기 때문.
2012년 추가적인 연구로 더욱 복잡한 구조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2021년에도 Nature지에 새로운 연구가 나왔다.
4. 오파츠·로스트 테크놀로지 오해
안티키테라 기계는 흔히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파에스토스 원반과 함께 유명한 오파츠나 로스트 테크놀로지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다른 두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미스터리한 물건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현명했던 고대인의 지혜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제작 당시에 존재할 수 없었던 과학 기술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것도 아니며, 획득이나 합성이 불가능한 원료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므로 오파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안티키테라 기계가 과학적으로 설계된 계산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실존 유물인 것은 사실이며, 13세기 중동에서 비슷한 기계가 등장할 때까지 필적할 만한 복잡한 기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로스트 테크놀로지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들' 자체는 동시대 혹은 더 이른 시기의 다른 문명에서도 충분히 고안되고 제작되었다.
예컨대 기계의 핵심에 있는 기어 장치의 원리는 이 유물보다 몇백 년이나 앞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그렇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이 기계공학 기술은 계보가 단절되어 영영 사라진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기계장치 제작 기술력은 동로마 제국을 거쳐 당시 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이슬람 제국으로 건너가 꾸준히 이어졌다.
일례로 6세기 동로마 해시계에는 4개의 기어가 남아 있으며, 하늘에서 태양과 달의 위치를 모형화하기 위해 적어도 8개의 기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시기 동로마에선 아스트롤라베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작성되기도 했다.
이런 문명적 진전을 이어받은 이슬람 문명의 발전에 따라 8세기와 9세기에 많은 그리스 문헌들이 아랍어로 번역되며 중동의 기계공학 전통으로 이어졌다.
11세기(서기 1000년경) 페르시아 학자 알비루니는 6세기 장치와 매우 유사한 '달의 상자' 를 묘사했으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의 과학사 박물관에 보관된 1221~1222년경의 아랍어 명문이 새겨진 기어식 아스트롤라베 계산기는 태양과 달의 운동을 모형화하기 위해 7개의 기어를 사용했다.
물론 수천 년 전에 이러한 기계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현대인들이 놀라움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티키테라 장치는 결코 오파츠가 아니며 초고대문명의 증거도 아니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유물이자 일반 대중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현명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료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고대의 여러 지식을 종합하여 만들어낸 산물이다.
특히 이 기계를 설계한 사람은 천문학과 기계공학 양쪽 모두에 능통했을 것이다.
천문학과 관련하여 당시 알려진 이론들과 관측 기록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수학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지식 또한 갖추고 있었다.
(당시는 율리우스력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오로지 이집트와 그리스 역법만으로 가장 오차가 적은 메톤 주기를 골라내는 선구안을 가지려면 천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이론을 실제 기계로 구현하기 위해 톱니바퀴의 크기, 위치, 계산 결과를 표시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일일이 설계해야 했을 것이다.
(톱니바퀴에 관한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복잡하게 구현할 경우 마찰력이 누적되어 생각보다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다.
내구도를 고려해서 크기와 위치를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윤활유도 칠해야 한다.
특히 가운데 큰 바퀴는 십자 뼈대만 남겨놓았는데, 이것도 바퀴 무게를 경감시키는 기술 중 하나다.)
비록 기계 실물만 남았을 뿐 제작자, 제작 목적, 세부 원리 등을 명확히 밝힌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훗날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된다면 관련 연구가 획기적으로 진척될 것이다.
4.1. 중세 서유럽 폄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일각에서는 안티키테라 기계를 근거로 들어, 기계식 시계가 14세기에야 등장한 중세 서유럽 사회가 미개한 암흑시대였다고 무턱대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과거 서유럽 문화 애호가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서유럽은 천문학을 중시했지만 이런 정교한 기계를 굳이 만들 이유가 없었다" 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고대 시대의 천문학은 농사(파종 및 수확 시기)와 일식이나 월식 같은 이상 현상 예측 등 실용적, 경제적 목적과 직결되어 있었는데, 고대 이집트 문명을 거쳐 2세기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등장하면서 실용적인 수준의 천문학 연구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논리다.
이 시기가 되면 이집트력을 기반으로 한 율리우스력이 약간의 오차에도 불구하고 16세기 그레고리력이 정립되기까지 천 년 넘게 실용적으로 쓰였고, 천체의 운행도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한 천동설의 주전원 개념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티키테라 기계 같은 것을 더 이상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1960~70년대 유인 달 탐사 이후 유인 달 기지 건설을 위한 아르테미스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굳이 반세기 가까이 유인 달 탐사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역시 돈 낭비이자 사치품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일견 분명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되, 결국 서방 문명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에서 비롯된 방어 논리이자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정밀한 기계공학이 필요 없어져서 만드는 기술이 도태되었다' 는 논리는 역으로 안티키테라 기계가 서로마 제국이나 동고트 왕국이 멸망하고 로마 문명이 퇴조한 서유럽에서는 로스트 테크놀로지였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성과를 이어받은 동로마, 이슬람 문명, 동아시아 등에서는 기계장치의 개념이 중세 내내 꾸준히 이어지며 실물 기계로 꾸준히 제작되었다.
따라서 서유럽만 "필요가 없어서 안 만들었다" 는 것은 억지에 가깝고, 엄밀히 말해 당시 서유럽에는 해당 기계공학 기술이 전수되지 않아 만들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서유럽 전역에 안티키테라 기계의 정교함에 비견될 만한 기계식 시계장치가 등장한 것은 14세기 무렵이다.
초기의 예로는 1330년경 리처드 월링포드가 만든 성 알반스 시계와 그로부터 얼마 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조반니 데돈디가 만든 시계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중세 서유럽과 고전 그리스의 기술적 유사성을 두고 서로 다른 '별개의 발견(독립 발명)' 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학자들은 "이러한 고도의 기술이 문헌 기록 없이 서유럽 내에서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안일한 생각" 이라고 지적한다.
즉, 서방의 기계식 시계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기술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13세기 바그다드가 몽골에 함락된 이후 칼리프국의 지식이 서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서양에 기계식 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본다.
독일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과학사학자 프랑수아 샤레트는 "대부분의 고문헌은 중요한 기술적 세부 사항을 생략하기 때문에 완벽한 복원을 위해서는 기록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기술의 직접적인 전수가 필요하다" 고 지적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서유럽이 기술을 수용한 이후 보여준 혁신이다.
기술을 전수해 준 동로마 제국이나 이슬람 문명은 고도의 기계공학을 천문학 지식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데 만족하여 오히려 기술 수준이 천 년간 고대 그리스 시절에 정체되어 있었다.
동지중해와 중동 지역에서는 서방과 같은 기술적 도약이 일어나지 않았고, 안티키테라 기계에서 다소 퇴보된 수준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반면 서유럽은 다른 동력원(진자나 태엽)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여, 13세기 말엽 폴리옷(foliot)과 굴대 탈진기(verge escapement)를 사용하는 기계식 시계를 고안했다.
이어 1500년경 강철로 된 태엽을 고안했고, 곧이어 매우 정밀한 진자 시계를 만들어내는 등 천 년간 정체되어 있던 기계공학을 비약적으로 진보시켰다.
따라서 서유럽이 기계 기술을 뒤늦게 전수받았다고 해서 타 문명에 비해 미개했다거나, 반대로 '필요가 없어서 안 만들었다' 고 방어할 필요는 없다.
서구 문명은 기술 수용 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역동적인 기술 문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볼 때 안티키테라 기계는 과거에 단절 및 유실되어 현대 문명과 전혀 상관없는 기술이라기보다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기계공학 발전의 상위 계보에 위치한 기술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4.2. 근세 기계와 비견될 수 있는가?
일부 미스터리 애호가들은 안티키테라 장치의 부품 수와 정밀도만 보고 이 기계의 복잡성이 18세기 수준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대의 기계장치와 14~15세기 이후 등장한 근세 기계장치 간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단순히 부품의 수가 아니라, 태엽(mainspring) 등 기계 내부 탑재 동력원의 활용 및 완전 자동화 여부에 있다.
탄성력을 활용하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스프링의 원리 자체는 고대에도 알려져 기계장치에 제한적으로 활용되었지만, 근세 서유럽에서 고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태엽 장치가 발명되고 이를 기계 내부에 탑재하면서 비로소 자동화 기기의 소형화라는 길이 열렸다.
거대한 외부 동력원(흐르는 물, 바람 등) 없이 내부의 소형 동력원만으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지자,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의 범용성이 크게 증가했다.
대표적인 예가 시계다.
기계의 소형화가 이루어지면서 같은 공간 내에 더 많은 부품과 기능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고, 회중시계나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기계식 자명종을 비롯해 더욱 작고 정밀한 시계의 발전을 낳았으며, 이는 더 작고 정밀한 기계 부품 연구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
결국 단순히 구조가 복잡하고 부품 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안티키테라 장치가 18세기 수준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되었다.
아무리 복잡하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근세적 동력원을 탑재하지 못한 고대의 수동식 기계장치일 뿐이다.
기계장치 설계의 근간을 이루는 수학적 계산식만 정립되어 있다면, 고대에도 수동식 기계 제작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근세적 장비 없이 일일이 손으로 부품을 깎아 만들어야 하는 현저히 느린 작업 속도와 부족한 연금술로 인한 재질의 한계만 감수한다면 말이다.
다만 근세 수준의 부품보다 내구성과 신뢰성이 전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관리를 잘하면 오늘날까지도 쌩쌩하게 작동하는 수백 년 된 근세 기계들에 비해서는 수명이 훨씬 짧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구가 더 진행되면서, 현존하는 안티키테라 기계 구조 자체도 당대의 한계가 있음이 알음알음 밝혀지고 있다.
2020년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론 현존 안티키테라 기계가 잔해만 남은 상태인 걸 감안해도, 화성 지침은 어떤 경우에는 최대 38°까지 틀렸다.
이는 톱니바퀴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천문학의 행성 운동 이론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한계를 비웃으면 안 되는 것이 이 오차는 서기 16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훨씬 후인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가 등장해서야 개선되었다.
요약하자면, 안티키테라 기계는 당대의 정교한 천문학 이론에 따라 천문 현상을 예측하도록 설계된 기계이자 찬란한 공학의 유일한 증거이며 위대한 불가사의가 맞지만 실제로는 당대 천문학의 구조를 잘 재현한 것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적 한계 외에 기계적 정확성 문제도 있었는데, 2020년대 현재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수작업으로 깎은 삼각형 톱니바퀴들 사이의 헐거움과 마찰로 인해 톱니바퀴가 돌아갈수록 오차가 누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고대 그리스인들의 천재적인 수학적 설계가 당대의 조악한 기계 제조 기술을 너무 앞서갔던 것이다.
물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기계는 경의로운 물건임은 분명하다.
비록 수제 톱니바퀴로 인해 오차와 씨름했을지언정, 핀과 슬롯 방식의 기계장치를 이용해 행성의 타원 궤도와 달과 화성의 역행 운동을 구현해낸 기술은 중세 유럽의 첫 시계보다 10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특히 물리학자들에게 놀라운 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 궤도의 타원형을 몰랐음에도 약간 어긋난 축을 가진 톱니바퀴 열을 이용해 달이 지구를 돌 때 속도가 변하는 현상을 이 기계로 모델링 하는데 성공 해냈다는 점이다.
4.3. 고대 그리스인들의 융합적 지혜
당연하게도 당대 그리스에는 이 기계를 구현할 지식과 기술력이 충분히 존재했다.
당시 로도스 섬은 고대 그리스 기계공학의 중심지였으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다른 지역에서도 아르키메데스의 여러 기계장치, 필론의 공압식 로봇, 헤론의 자동문, 톱니바퀴 장난감 등 정교한 장치를 제작하는 기술이 있었다.
또한 기계가 만들어지기 직전 로도스 섬에서는 히파르코스라는 위대한 천문학자가 태양과 달, 행성의 운동을 예측하고 세차운동을 발견해 내는 등 천체 운동을 계산할 수준 높은 수학 및 천문학 지식을 확립했다.
오늘날 히파르코스는 안티키테라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정교한 제작 기술과 수학적 설계 지식이 모두 존재했고, 고대 세계에서 천문학이 지니는 경제적, 종교적 중요성이 발명의 동기를 부여했다면, 이 지식들을 융합하여 계산기를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다.
결국 안티키테라 기계의 어떠한 요소도 당대 수준에서 돌연변이처럼 등장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탓에 소수의 학자와 부유층을 위해 극소량만 제작되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유물 자체도 매우 드물게 출토되다 보니 현대인들이 "고대에 어떻게 이런 기술력이!" 라며 막연한 환상을 품을 뿐이다.
이는 피라미드와도 같다.
피라미드에 쓰인 축조술 자체는 당대 기술 수준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지만, 이를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집대성하고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냈기에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안티키테라 기계는 시대를 뛰어넘은 오파츠나 현생 인류와 무관한 미스터리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유물이자, 고대 그리스인들의 뛰어난 융합적 지혜를 보여주는 결정체인 동시에, 현대까지 이어지는 기계공학 발전의 계보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역사적 사료다.
5. 미디어
앞선 문단들에서 구구절절 설명했듯 학술적으로는 오파츠나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시대를 초월한 듯한 정교한 기믹과 로망과 낭만을 자극하는 고대의 정밀 기계 컴퓨터라는 매력적인 비주얼 덕분에 대중 매체에서는 가장 유명한 오파츠 및 로스트 테크놀로지 중 하나로 알차게 써먹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아래의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듯, 온갖 신비로운 고대 유물이나 초월적인 힘이 깃든 장치, 혹은 타임머신 같은 어마어마한 설정이 팍팍 들어가는 단골 소재다.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1기 1화에서 타카나시 릿카가 위의 출토품을 손에 들어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일개 고등학생이 저런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다는 건...
근육맨
근육맨/오메가 센타우리의 육창객 편에 등장한 악역 기어마스터가 자신들 오메가 민족 번영의 증거로 이것을 언급한다.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기어가 안티키테라 기계와 같은 것이며 이는 오메가 민족이 지구를 떠나기 전 번영했던 증거였다고 한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아르키메데스가 제작한 것으로 나오며, 시간의 틈을 계산하는 장치.
장치 자체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으며, 이것으로 방향과 목적지를 설정 후 발견된 시간의 틈에 뛰어들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묘사된 기계는 실제 안티키테라 기계 유물의 남아있는 조각보다도 더 얇고 간단한 원판 형태의 물건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이걸 만든 후 두 개로 쪼개버렸고, 그 중 절반을 로마인들이 들고 나머지 부분을 찾으러 가다가 침몰했었다.
세월이 흘러 한 어부가 건져낸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점에 나치에게로 흘러 들어갔고 이걸 인디아나 존스와 바질 쇼가 입수.
기계를 연구한 끝에 이것이 타임머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바질은 이를 파괴하려 했으나 인디가 그를 강하게 만류했고, 다이얼을 자기가 부수겠다며 약속을 해서 바질로부터 가져왔다.
이후 바질과의 약속을 씹은 채 수장고에 보관해 두었지만 헬레나가 존스를 구워삶아 이걸 찾아냈고, 헬레나가 이걸 들고 도주하고 그녀를 추적한 위르겐 폴러까지 말려들며 본편의 모험이 시작됐다.
후반부에서 존스와 쇼가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발견하는데, 아르키메데스의 유골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와 관에 새겨진 프로펠러 달린 불사조 문양를 본 후 아르키메데스가 실제로 시간여행을 성공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기계식 시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아르키메데스 시대로부터 천 년이 더 지나야하고 손목시계는 더 걸린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리고 악당들은 이를 이용해 시간여행으로 미래를 바꾸려고 한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고대종족 미네르바가 미래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기계로 언급된다.
최강의 군단
아이템 '오파츠 부속' 의 아이콘은 안티키테라 기계에서 모티프를 따온 듯 하다.
스토리상 관련은 없고 여러 개를 모아 장비 등과 교환하는 파밍템.
유희왕 오피셜 카드게임
나오는 카드인 후코의 마포석의 디자인 모티프이다.
페이데이 2
박물관 배경의 더 다이아몬드 하이스트의 부수적인 약탈물로 비슷한 물건이 등장한다.
전희절창 심포기어 AXZ
적 세력인 파바리아 광명결사가 전희절창 심포기어 XD UNLIMITED에서 이것을 훔치는데, AXZ 3화에서 이 기계가 오토 스코어러 티키의 심장이라고 밝혀졌다.
티키의 이름이 안티키타라에서 온 것이라는 설정인데, 안티키타라는 섬의 이름일 뿐, 이 기계의 원래 이름에 안티키타라가 들어갈 리는 없다.
도미네이션즈
안티키테라 매커니즘 전설 유물로 등장한다.
블루 아카이브
학생 성장용 오파츠로 등장한다.
다른 오파츠에 비하면 추정되는 완전체 기계와 제일 비슷한 형태이다.
벚꽃의 구름*스칼렛의 사랑
작품 초반 박물관의 도난용품 대체품으로 소개된다.
붕괴: 스타레일
작중 등장하는 기계 생명체 리고스의 종족인 안티키테라인의 유래가 안티키테라 기계로 추정된다.
리고스의 상체에도 안티키테라 기계를 연상시키는 원이 새겨져있다.
어느 재단에서는 완전품을 보유했다고 한다.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메타그로스의 모델로 추측된다.
특히 전두부의 십자 무쇠가 매우 닮았다.
리듬 게임 곡
SUPERBEAT : XONiC의 수록곡: ANTIKYTHERA
Dynamix의 수록곡: Mechanismós ton Antikythíron
DEEMO II의 수록곡: Antikyth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