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urder_of_Cara_Knott
카라 에벌린 노트(Cara Evelyn Knott, 1966년 2월 11일 ~ 1986년 12월 27일)는 미국의 대학생으로, 샌디아고 주립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그녀는 1986년 12월 27일,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부모가 사는 엘카혼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실종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28일, 노트의 차량은 Interstate 15의 머시 로드(Mercy Road) 진출로에 있는 막다른 도로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그녀의 시신은 인근에 있는 약 20m 깊이의 협곡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노트를 살해한 범인은 크레이그 앨런 페이어(Craig Alan Peyer, 1950년 3월 16일 출생)였다.
그는 당시 경찰관이자 13년 경력의 California Highway Patrol(CHP) 소속 순찰대원이었다.
1988년 열린 재판에서는 페이어가 고속도로에서 여성 운전자들을 표적으로 삼아왔으며, 교통 단속 과정에서 여러 여성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접근과 추행성 행동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그는 카라 노트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살인
1986년 12월 27일 밤, 20세의 카라 노트는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부모가 사는 엘카혼으로 가기 위해 주간고속도로 1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당시 순찰 중이던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CHP) 소속 경찰관 크레이그 페이어는 그녀에게 차량을 세우라고 지시한 뒤, 외딴 곳에 위치한 미완성 진출로(off-ramp)로 유도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페이어가 같은 장소에서 다른 여성 운전자들을 여러 차례 불러 세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단속을 가장해 여성들에게 접근하며 데이트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 노트 사건에서는 노트가 그의 부적절한 행동을 신고하겠다고 위협하자 상황이 물리적 충돌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페이어가 그녀를 붙잡으려 하자 노트는 그의 얼굴을 할퀴고 긁으며 저항했다.
이에 페이어는 손전등으로 그녀를 구타한 뒤 밧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그는 시신을 로스 페냐스키토스 크리크 아치 브리지 아래로 던졌고, 시신은 아래의 수풀 속으로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이틀 뒤, 살인 사건을 취재하던 샌디에이고 지역 방송국 KCST-TV의 기자는 여성 운전자들의 자기방어 요령을 다루는 동승 취재(ride-along) 도중 페이어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당시 그의 얼굴에는 긁힌 상처가 있었는데, 사건의 세부 내용이 밝혀지면서 이는 카라 노트가 몸싸움 중 남긴 상처로 의심받게 되었다.
페이어는 그 상처가 CHP 주차장에서 울타리에 넘어지면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해당 울타리는 그런 상처를 낼 수 있을 만큼 낮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살인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으로부터 약 1시간 후, 한 주유소의 목격자들은 흐트러진 모습의 페이어가 차량을 몰고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수사
KCST 방송이 나간 직후, 수사 당국에는 거의 20여 통에 달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대부분 여성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신 역시 같은 고속도로 진출로에서 크레이그 페이어에게 정차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경우들에서 페이어는 폭력적이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성들은 그가 친절해 보이면서도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들은 페이어가 자신의 머리카락이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고 증언했으며, 이 때문에 상당한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살인 사건 이전에도 몇몇 여성들이 페이어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CHP) 내부에서 그의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이러한 신고는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 노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살해 현장에서 약 3.2km 떨어진 쉐브론 주유소였다.
주유소 직원은 노트가 떠난 직후, 표시가 있는 CHP 순찰차 한 대가 도로에서 유턴하는 모습을 봤다고 기억했다.
더욱이 페이어의 근무 기록부에는 살인 발생 시각과 관련된 허위 기재가 급하게 이루어진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그가 발부한 여러 교통위반 딱지의 시간도 나중에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운전자들은 실제 위반 딱지가 기록된 시간보다 늦은 시각에 발부되었다고 증언했다.
법의치학 전문가 노먼 스퍼버는 페이어의 순찰차에서 발견된 밧줄을 조사한 결과, 그것이 노트의 목에 남아 있던 결박 흔적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스퍼버는 이후 재판에서 이 감정 결과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또한 노트의 원피스에서는 독특한 금색 레이온 섬유가 발견되었는데, 이 섬유는 일반적인 염료가 아닌 노란색 안료를 사용해 제작된 매우 드문 종류였다.
조사 결과 이 섬유는 페이어가 CHP 제복에 부착하고 있던 어깨 패치의 섬유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리 위에 남겨진 타이어 자국 역시 중요한 증거였다.
자국은 차량이 급하게 출발하면서 남긴 검은 마찰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노트의 부츠 한 짝에서는 혈흔 한 방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페이어의 혈액형인 AB형 Rh-와 일치했으며 다른 유전적 특징들 또한 비슷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만 당시에는 결정적인 DNA 검사가 가능하지 않아 완전한 동일인 확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밖에도 현미경으로 분석한 보라색 섬유들이 페이어와 노트 살인 사건을 연결하는 추가 증거로 제시되었다.
한편 CHP 내부 조사 결과, 페이어가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한 사례들 가운데 상당수가 혼자 운전하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 이 여성들의 연령대와 외모적 특징이 카라 노트와 매우 유사한 경향을 보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재판
첫 번째 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이 유죄 7명, 무죄 5명으로 의견이 갈리면서 평결에 이르지 못해 재판이 무효로 끝났다.
이후 열린 재심에서는 제2의 용의자 가능성과 관련된 증언, 그리고 피고인의 몸에 있던 긁힌 상처에 대한 전해 들은 설명(전문증거)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페이어는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는 근무 중이던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순찰대(CHP) 경찰관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 관련해 내려진 두 번째 유죄 판결이었다.
1988년 8월 4일, 페이어는 징역 25년 이상 종신형(25년 복역 후 가석방 심사 가능) 을 선고받았다.
페이어는 DNA 검사를 위해 시료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17년을 복역한 뒤 2004년에 열린 첫 가석방 심사에서, 위원회가 왜 DNA 샘플 제출을 거부했는지 묻자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러한 태도와 자신의 범행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점 때문에, 가석방위원회는 그의 가석방 신청을 기각했다.
사건 이후
재판이 끝난 직후, 경찰의 정차 명령을 받은 여성 운전자들이 혼자 운전 중일 경우 차량을 세우기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었다고 전해진다.
2000년 11월 30일, 카라 노트의 아버지인 샘 노트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가족이 카라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 정원 근처, 즉 카라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쓰러졌다.
크레이그 페이어는 이후 두 차례 더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첫 번째는 2008년(복역 21년째), 두 번째는 2012년(복역 25년째)이었다.
그의 다음 가석방 심사는 2027년 1월로 예정되어 있으며, 그때 그는 거의 77세가 된다.
현재 페이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California Men's Colony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2008년 두 번째 가석방 심사 당시 그는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수감 생활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교도소에서 전기 기술자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었다.
2003년 기준으로 그는 해당 업무를 통해 월 52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그는 재판 전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시기에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CHP)에서 해고된 뒤, 잠시 견습 전기기사로 일한 경력도 있었다.
또한 사건 발생 약 18개월 전에 결혼했던 세 번째 아내 카렌은 정기적으로 그를 면회했지만, 2007년 무렵 결국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