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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기타]개인적으로 영남권역 가장 미스테리한 미제사건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6.16|조회수3,408 목록 댓글 9

 

출처 : https://www.fmkorea.com/5604513995

 

 

(사건의 집중력을 위한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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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대구시 달서구 성서지구에는 300m밖에 안되는

산이 있습니다 가끔씩 멧돼지가 나오기도 하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고 높이가 낮아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활용되곤 했습니다 

 

가끔 와룡산에 위치한 제50보병사단 사격장에서

나는 총소리에 놀랄때도 있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와룡산의 91년도 여느때처럼 

흘러갈것처럼 보였습니다.

 

 

 



도룡뇽

 

1991년 3월 26일, 지방선거일이였던 이날은

임시공휴일이였습니다 당시 성서국민학교에 재학중이던 

6명의 아이들은 오전 8시부터 도룡뇽을 잡겠다며

와룡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중 김태룡군은 

"너무 멀리 나가놀지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생각나 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5명의 아이들은 현재 2023년

지나도록 끝내 부모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1991년 3월, 전국민의 가슴을 아프게했던 이사건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으로 불렸으며

 

대한민국 제3대 미제사건

 

일명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의 
시작이였습니다.

 



목격자

 

당시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던 조무연군은 자전거를

타고 와룡산 입구에서 5명의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도룡뇽알을 찾으러 간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김순남씨는 오전 9시경 투표를 마치고 가던길에 아이들을 목격했는데

아이들은 서로 "2시간안에 갔다올수있을까?"하고 

대화를 나누는걸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반에 다니던 김경열,이태석군은 와룡산입구에서

아이들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으며

 

한편, 11시30분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나서다가 와룡산에 갔다는 사실을 확인한후 집에 머물렀지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가 되어서도 아이들이

집에 오지않자 불안했습니다

 

와룡산 기슭에 거주하고있는 김이수씨는 14시에 와룡산으로
등산하는 아이들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밤이 다되도록 아이들이 집에 오지않자 18시에 부모님들은

와룡산 인근을 찾아나섰지만 소용없었고 19시 50분에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경찰들과 부모님들은 새벽3시가 되도록 와룡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던겁니다

 

 



수색

 

경찰은 단순 가출과 앵벌이로 판단하는 오류로

초기수사에 실패하였고 뒤늦게 수사에 나섰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못하였습니다

 

그렇게 5월이 되어서야 대통령 특별지시로 군과 경찰 수천명이

총동원되어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와룡산 전체를 탐침봉을 들고 뒤졌으나 아무런 흔적조차

찾지 못하였습니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96년 해제전까지

5년간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하여 48차례의 산악수색,

성서초 졸업생,공단 노동자,가정집등 수만명을 상대로

수소문했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미궁

 

포항제철을 비롯한 한진그룹에서도 수만장의 전단지가

뿌려지고 현상금을 기탁, CF,노래,방송,명세서,캠페인

만화,비디오테잎등등 당시 가능했던 모든 매체를

통해 아이들을 찾아나서는대에 온국민의 관심속에서

진행되었고 수많은 제보젼화와 허위전화가 빗발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아이들

 

그렇게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속에서 잊혀질무렵

2002년 9월 26일, 도토리를 주우러 와룡산에 올라갔던

주민에 의해 5명의 유골이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실종 11년만에 일이였습니다

 

부검결과 둔기로 맞거나 흉기에 찔려 타살된것이였고

유력한 흉기는 용접후 슬래그를 깨거나 긁어내는데

사용하는 용접망치 일명 깡깡이망치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외에 별다른 사망원인을 밝혀내지 못하였고

범인도 알아내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2006년 3월 26일, 공소시효가 만료가 되며

영구미제사건이 되었습니다

 



기원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사건이 대한민국 제3대 미제사건이

된이유는 밀폐되지않은 산속에서 5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살해한

잔혹한 범행수법 , 대대적인 수색이 이어졌음에도 윤곽조차 

잡지못한 범인,알려지지않은 살해동기, 사건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사의였기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더 미스테리한건 수년간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하였음에도 

시신이나 흔적조차 찾지못했다는점, 범인의 몽타주조차 

본사람 없이 일말에 증거조차 찾지 못했다는것은

참으로 미스테리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문에 영남권역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생각했고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이 사건을 떠올렸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발전하고 수사기법도 고도화되어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잊기힘든 이 사건을 통해 항상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는 이런일이 반복되지않도록 기원합니다

 

 열악한 시대속에서 죽어간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한을 미진한 수사환경속에서 달래지는 못하였지만

부디 좋은곳으로 갔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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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보랑 말 안 함 | 작성시간 26.06.17 왜 개구리소년이라고 이름붙은거지??
  • 답댓글 작성자단호하긔 | 작성시간 26.06.17 찾아보니까 처음엔 도롱뇽이 아니라 개구리 알 찾으러 갔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져서 개구리소년으로 이름 붙었나봐 ㅠ
  • 작성자민턴전도사 | 작성시간 26.06.18 이거 그 당시 주변 고등학생 양아치였나 성인 양아치 썰도 있었는데
  • 답댓글 작성자바람과함께살빠지다 | 작성시간 26.06.18 22 그 범행도구 연관지었을 때 주변 공고?였나 거기 애들이 본드하다가 저 애기들이 봐서 살해했다 이런 말도 있었음 ㅠㅠ
  • 작성자국산 브로커 | 작성시간 26.06.26 나는 그 근처 군인얘기가 더 흥미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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