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amu.wiki/w/%EC%8B%9C%EC%96%B4%EB%8F%84%EC%96%B4%20%EC%B9%B4%EC%A7%84%EC%8A%A4%ED%82%A4
개요
미국의 수학자, 반기술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
본명보다 FBI에서 붙여준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테러의 표적이 주로 대학(University), 공항(Airport) 또는 항공사라는 점에 착안해서 FBI 수사관들이 붙인 별명이다.)
16번의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총 3명을 살해했으며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흉악범이다.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 136의 높은 지능(상위 0.8%)과 냉철한 판단력, 복잡한 행동을 실행하는 추진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경찰의 수사를 교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때문에 자필 선언문을 대형 언론사에 투고하는 대범함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수사국은 17년간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범행 이전 생애
초기
1942년 미국 일리노이의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애칭은 테드(Ted)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심한 두드러기가 나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되고 병원에 격리되기 전까지는 테드가 행복한 아이였다고 동생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격리가 있은 후 그는 수개월 동안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 완다는 사진을 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테드가 의사와 함께 있었을 때, 테드는 우리에 갇혀있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무력한 동물들에게 동정심을 보여주었다" 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시카고의 셔먼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담당선생은 그가 "건강하고 잘 적응함" 이라고 평가했다.
4학년 때 일리노이주 에버그린 파크로 이사했고 에버그린 중앙학교에 전학했다.
전학 당시 측정된 그의 지능 지수는 167이었으며 6학년으로 월반하였다.
그는 나중에 이를 중추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월반 이전 그는 동료들과 비교적 사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월반 이후 나이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왕따당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
그는 시카고의 에버그린 파크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학문적으로 우수했다.
마칭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했으며 수학, 생물학, 동전 수집 및 분석, 독일어 동아리의 멤버로 들어갔지만 같은 동아리의 동급생들이 그를 경계하여 좋은 교우관계를 갖지 못했고 겉돌았다.
재학 기간 동안 그는 수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라플라스 변환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전반에 걸쳐 그는 동년배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학교는 더 복잡한 문제를 출제했고 카진스키는 곧 그것을 습득했다.
끝내 그는 11학년을 월반하였고 여름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 고등학생 상위 1%만이 수여받을 수 있는 내셔널 메릿 장학금에서 결선에 선발되었으며 하버드 대학교에 지원하도록 권장받았다.
그의 고등학교 동급생은 나중에 카진스키가 정서적으로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그를 하버드로 보냈다. 그는 운전 면허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교
16세에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할 때까지 하버드의 기숙사인 엘리엇 하우스에서 살았다. 당시 그를 본 주변인물들은 카진스키가 조용하지만 인격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와 같은 건물을 썼던 동기는 체포 이후 그의 성격을 묻는 인터뷰에 대해 "단지 개인의견이지만, 나는 그가 똑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고 말한 바 있다.
2학년 때부터 미국의 세뇌 프로그램인 MK 울트라 계획의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그는 MK 울트라를 주도하던 하버드의 심리학자 헨리 머리(Henry Murray)가 이끄는 "고의적으로 잔인한 심리 실험" 연구에 참가했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동료 학생과 개인 철학에 대해 토론할 것이라고 말하고 개인적인 신념과 열망을 자세히 기술한 에세이를 작성하게 했으며 해당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한 뒤 피실험자에게 에세이의 제목을 과소평가하며 에세이의 내용을 사용하여 조롱, 모욕, 멸시하도록 하고 피실험자에게 전극을 꽂은 후 생리적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촬영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었다.
이 실험은 궁극적으로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매주 누군가가 그를 언어로 학대하고 굴욕감을 갖게 하였다.
그는 "학문의 일환" 으로 이 실험을 200시간 동안 하였으며 이 사건이 그의 내면에서 악마적 증오와 분노,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추정된다.
다만 카진스키 본인은 이 실험이 자신에게 아무런 심리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962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성적은 Math 210 클래스 B, Math 250 클래스 B이며, 3.12의 GPA였고 졸업 당시 20세였다.
시카고 대학교, UC 버클리 등의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지원금이나 조교의 제안은 어느 대학원에서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미시간 주에서 연 2,310달러의 지원금과 졸업 후 교수 채용을 제안해 미시간 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미시간 대학교
1964년 미시간 대학교 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7년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주요 연구과목은 복소해석학과 기하함수이론이었고 교수들에게 굉장히 뛰어난 학생으로 평가되었다.
수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듀런은 카진스키가 "다른 대학원생들과는 다른 특이한 사람이었다" 며 "그는 수학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 뛰어난 힘을 갖고 있다" 고 말했고 복소해석학 교수였던 조지 피래니언은 "그는 현명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고 평했다.
미시간에서 그는 총 18개의 과목에서 5개의 B와 12개의 A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시간 대학의 추억이 즐겁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물리학 과목을 제외하고 꽤 많은 A를 받았다는 것은 미시간에서의 '표준'이 얼마나 비참하게 낮은지를 보여준다..."
1967년, 그의 논문 "Boundary Function" 은 미시간 대학교 최고 수학상인 섬너 B. 마이어스상을 수상했다.
그의 박사 지도교수인 앨런 실드는 "내가 지도한 것 중에 가장 훌륭한 논문" 이라고 평가했다.
교수 입문
1967년 말 UC 버클리 대학교의 조교수로 선임되면서 UC 버클리 수학과 역사상 기하학 및 해석학 전공 교원들 중 가장 최연소(24세)에 임용된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학생들의 교수 평가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항상 불편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교육했고, 교과서대로만 가르쳤으며,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재임 후 불과 2년 뒤인 1969년 6월 30일에 조교수직을 사임했다.
당시 수학과의 학과장인 존 W. 애디슨은 이에 대해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직이라고 훗날 밝혔고, 그의 사직을 막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지만 실패했다.
1996년, 버클리의 부총장인 캘빈 무어는 카진스키의 '인상적인' 논문과 저서를 회고하며 카진스키는 정교수가 될 자격도 충분했고 오늘날 학과의 주요 교수진이 될 능력도 충분했다고 증언했다.
야생 생활
사직 후 가족들에게 얹혀살 거나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그는 동생인 데이비드가 관리직으로 있던 고무 공장에 들어가 일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여성에 대한 외설적인 글들을 공장 곳곳에 써붙여서 결국 동생에 의해 해고당했다.
동생에게서 해고 당한 후 31살이 된 1973년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에 가로 3.3m, 세로 3m의 이동식 오두막을 짓고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자연환경에서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는 야인 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도 형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 1984년 텍사스 주 치와와 사막에서 야인 생활을 하였다가, 1990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고향으로 돌아갔고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도 하는 등 사회에 완전히 복귀하였다.
몬태나에서 그의 목표는 기술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트래킹, 식용식물 식별, 유기농업, 활을 이용한 사냥, 작살과 기초적인 낚싯대를 이용한 고기잡이 낚시 등과 같은 기타 원시적인 생존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
감자와 파스닙을 재배했고 생선과 고기는 강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와 사냥한 들짐승을 직접 구워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전등 대신 촛불을 켰고, 시계와 달력도 없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근처 마을의 이웃이 알려줘야 했다.
전화 대신 우편을 썼는데 가족들이 우표 밑에 긴급/중요를 뜻하는 붉은 줄을 긋지 않으면 읽지 않을 때도 흔했다.
물은 개울에서 떠왔다.
연 400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했으며, 마을에 들어갈 때는 기어가 없고 오래된 자전거를 사용하고 고전 작품을 읽기 위해 지역 도서관에 자주 방문했다.
그는 야생생활 중 많은 양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으며 개중에는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된 원서도 있었다.
그 외에는 몇 안 되는 이웃 및 친구들과 트럼프 카드 놀이를 하는 것이 주 오락거리였다.
이윽고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산업화와 산림 개발 등으로 인해 자신의 오두막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계를 위협받았고, 지속적으로 산림업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반드시 산업사회에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오두막에서 계속 칩거하며 무정부주의나 사보타주에 대한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계속 키워갔고, 1978년부터는 사제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가, 과학자들에게 우편물로 폭탄을 배달하면서 테러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범행
카진스키가 노린 주된 목표는 대학 교수나 박사 등 지식인 계층과 항공사였고 위력은 약한 편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부상자를 냈다.
사건을 접수한 미국 우편검열국에서 처음으로 조사를 시작하였고, 테러가 항공기 운항에까지 차질을 주게 되자 FBI와 ATF에서도 수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우편물의 발신인 확인이 되지 않던 상황이어서 해당 인물의 인적 사항도 알 수 없었고, FBI는 해당 테러리스트가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에 폭발물을 보낸다는 것에 착안해 University와 Airline의 첫머리에 Bomber를 결합해서 '유나바머(Unabomber)' 라고 불렀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와중에도 계속 미국 각지에서는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미확인 폭발물에 의한 사고가 잇따랐다.
게다가 폭발물의 위력도 점점 강해져 피해자들이 실명이나 수족 절단 등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고 1985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87년 솔트레이크시티 테러 이후 약 6년 동안은 유사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1993년부터 다시 폭탄 테러가 감행되기 시작했다.
카진스키는 폭탄 우편물만 보내지 않고 테러 대상에 오른 이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한층 대담한 테러 행각을 시작했고,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PR 업계의 중역과 캘리포니아 산림 연맹의 회장이 폭발물 우편으로 잇따라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총 스물두 명의 중경상자와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테러가 일단 마무리 되었다.
물론 정말 끝난 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테러 협박 편지의 대상에는 미국의 주요 정치권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의 협박 편지로 인해 시카고의 공항 전체가 1주일 이상 폐쇄되었으며 항공교통편이 붕괴되었다.
마지막 폭탄 테러 후인 1995년 9월, 그는 35,000글자와 232절로 이루어진 52페이지의 혁명 선언문 '산업 사회와 그 미래' 를 희생자의 가족들과 언론사에 익명으로 발송하였다.
카진스키는 이 선언문에서 무분별한 산업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세계 혁명을 주창하고 이 선언문을 뉴욕 타임스와 같은 일간지에 올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테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제안의 수용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는데, 테러범과의 타협은 FBI의 수사능력 부족을 만 천하에 인정하는 꼴이었고, 이와 동시에 테러범의 승리와 미국 정부의 패배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 법무장관 재닛 리노와 FBI 국장 루이 프리의 동의하에 선언문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였으며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와 범인의 추적이 목적' 이라고 설명하였다.
난항
유나바머의 범죄 행각은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의한 테러가 아니었고 미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던 터라 수사에 굉장한 어려움을 주었다.
게다가 웬만한 증거물도 남지 않은 폭발물 테러였고, 불발 사례도 16건 중 단 두 건뿐이었던 점에서 상당한 정확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폭발물 제조와 관련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아메리칸 항공 444편 폭탄 테러 당시에는 폭탄을 공중에서 폭파하기 위해 고도계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폭탄을 만들었으며 원시적인 용광로에 쇠를 녹이기도 했다.
폭탄의 가장 단단한 부품에는 FC라는 자신의 이니셜을 남겼다.
(Freedom Club의 약자였다.)
FBI는 최초 조사 때 용의자가 낮은 지능(IQ 90 정도)에 저학력이며 항공사에서 블루칼라(정비공 계열)로 일해 폭발물 관련 지식이 해박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해서 증오심을 가지고 테러를 한 남성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카진스키는 IQ 130 이상의 높은 지능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고학력자였고 실험과 독서를 통해 폭발물 관련 지식을 가졌으며 이념적인 이유로 테러를 저질렀고 연구실적이 충분했음에도 스스로 교수직을 박차고 나왔다.
FBI가 범인을 저학력의 블루칼라 출신이라고 치부하고 잘못된 프로파일링을 고집한 것이 수사가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맨헌트 유나바머"에서도 저학력의 해고노동자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간부들과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을 주장하는 신참 프로파일러간의 갈등이 계속해서 그려진다.)
카진스키는 단순한 불만으로 범죄를 일삼는 평범한 범죄자와는 판이한 확신범이었다.
그는 폭탄에 어떠한 지문이나 DNA도 남기지 않았으며 일부러 추적이 어려운 오래된 우표를 사용했다.
수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가짜 증거들을 첨가하기도 했으며 이런 교란 작전은 매우 유효하게 먹혀들어서 FBI 내부에서도 수사방향이 천차만별이었다.
유나바머를 봤다는 제보전화는 2만 통에 달했으며 자신이 유나바머를 볼 수 있는 투시능력자라는 인물들까지 등장했다.
검거
유나바머의 테러 행위 후반기에 뭔가 결정적일 만한 단서를 제공한 인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동생인 데이비드 카진스키였다.
(형만큼 고학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형 못지않게 상당히 지적이며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거의 미국의 최상위권 엘리트 코스를 거친 형에 비해서라는 말이지, 데이비드 본인 역시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고학력자다.
사건 이후 사회운동가와 자선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1978년 이래로 가족들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었던 형이 유력한 용의자였는지는 몰랐는데, 1995년에 언론에 공개된 선언문 산업 사회와 그 미래에서 형의 문체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다.
그의 형은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 는 관용구를 항상 "eat your cake and have it too" 라고 반대로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선언문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망설이다가 FBI에 연락을 취해 형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들을 제공했다.
FBI도 그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진보한 수사 기법을 총동원해 주요 테러 지역이 시카고(일리노이)-솔트레이크 시티(유타)-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축선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들어 유나바머가 이 축선에 해당하는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 장기간 거주하고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FBI는 데이비드가 제공한 형의 과거 논문이나 이런저런 글과 선언문을 언어학자까지 불러 정밀 대조한 결과,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유나바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결론지었다.
카진스키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단정한 FBI는 약 두 달 동안 해당 축선 상에서 그의 거처를 수색했고, 1996년 4월 3일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에서 마침내 검거에 성공했다.
수사관들은 카진스키의 너저분한 이동식 오두막에서 폭발물 제작에 사용한 도구와 재료들, 사제 총기, 발송 채비를 마친 완제품 폭발물 외에 선언문의 타이프 원문과 40,000페이지에 달하는 자필 원고를 유력한 증거물로 압수했다.
유나바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는 FBI가 내건 현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지만 현상금 대부분은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 형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형만은 면해 줄 것을 청하며 대신 용서를 구했다.
심리 검사
체포 이후 1996년 5월 1일에 실행된 심리검사에서 53세인 테드 카진스키의 웩슬러 지능검사(WAIS-R) 결과는 표준편차 15 기준 136이었다.
카진스키의 언어성 지능은 138, 동작성 지능은 124를 기록했다.
(이렇게 큰 차이로 낮은 동작성 지능 수치는 해당 피험자가 장기적인 정신질환으로 인해 지능 저하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정신증 및 우울장애 환자는 동작성 지능이 정상 상태보다 크게 낮아지므로 언어성 지능이 동작성 지능보다 큰 차이로 높게 나타난다.
다만 보통 15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14인 카진스키는 애매한 경계선에 있어서 정밀한 판단이 필요하고 실제로 검사를 진행한 샐리 존슨 박사는 그의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이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인정하지만 수행능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억지능 검사인 WMS-R에서는 Visual Paired Associates Test가 평균정도 수치로 비교적 낮았고 나머지는 매우 우수했다.
카진스키의 심리평가를 주관한 샐리 존슨(Sally Johnson)은 카진스키가 극도로 내향적이고 DSM-IV에 정의된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으며 타인이 주는 수치나 조롱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밝혔다.
존슨의 진단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망상장애도 있는데 충분한 근거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착취하거나 속이고 있다고 의심하며 사회적 억제, 현대 산업 발달에 대한 심각한 과민반응이 있었다.
이성과 연애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나 인생 내내 성적 친밀관계를 이루지 못했고 그에 따른 실망감과 자기혐오가 이성과 타인에 대한 증오로 변해 이는 살인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정신병적 문제는 카진스키의 업무, 대인, 자기관리에서 문제를 만들었다.
그의 반사회적 성격 특성은 타인을 상처입히고 권리를 빼앗는 것에 매우 무관심하며 이는 범법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카진스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방어기제를 통해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검사결과를 기각했다.
설령 카진스키에게 이러한 정신병리적 문제가 있어도 재판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이해와 변론에 대한 취합적 선택 및 의사결정 능력이 충분히 있으며 재판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갈런드 버렐 판사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재판
카진스키는 자신의 오두막을 수색할 때 발부된 수색영장의 법리적 근거 부족을 바탕으로 증거를 무효화하기 위한 공격논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변호사들은 가족들에게 대중들 앞에서 그의 정신이 비정상임을 어필시키도록 지시하고, 그를 심각한 조현병 환자로 포장해 사형 대신 종신형으로 감형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거래까지도 시도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카진스키는 몹시 불쾌해했다.
'범죄에 대한 사리구분이 불가능한 정신분열증 환자' 라는 판정이 유나바머로서의 자신의 업적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신분열증으로 어필한 변호인단을 스스로 해고하려고 했다.
그는 두번째 변호사를 고용해서 사법거래를 취소하려고 했지만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고, 이에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의료진의 치료로 사망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 이상자로 판정받는 대신 유죄를 인정하는 사법거래를 선택해 사형이 아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검거 이후 ~ 사망
사건 이후 결국 체포되어 수퍼맥스급 교도소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2021년 12월까지 집필 활동을 하며 복역하였다.
그가 말기 암을 진단받았다는 편지가 레딧에 올라왔다.
2021년 12월 건강상의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버트너(Butner)에 있는 연방 의료 센터(FMC Butner)로 이감되었다.
2023년 6월 10일 밤 12시경, 수감 중이던 감방 안의 변기 옆 손잡이에 신발끈을 묶어 목을 맨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교도소 측은 맥박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 등 응급 조치를 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사망했다.
평가
미시간 대학교 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는 노자, 플라톤, 장자크 루소, 새뮤얼 버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조지 오웰, 그리고 자크 엘륄과 같은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이 이미 카진스키에 앞서 비슷한 주장을 한 바가 있음을 지적했으며 카진스키 외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카진스키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진스키의 사상과 관련한 몇 가지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시대를 위한 혁명가' 이다.
2000년대 초반에 카진스키와 200통 가량의 편지를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에 대해 논했으며, 이를 엮어 '기술의 노예(Technological Slavery)' 를 카진스키와 함께 공동출판하였다.
잡지 애틀랜틱(The Atlantic)에서 앨스턴 체이스(Alston Chase)는 "산업 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1995년도의 많은 지식인들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으며 체이스 자신은 이 글이 "천재도 미치광이도 아닌 사람의 글"이라고 주장했다.
카진스키가 가진 기술 문명의 방향에 대한 비관주의와 현대 세계에 대한 거부는 여느 미국 고등 교육 계층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커비나 교수는 이런 류의 평가들이 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카진스키의 논지가 대단히 견고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논점일탈을 통해 논의를 흐리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선언문에서 언급된 UCLA의 제임스 윌슨 교수는 더 뉴요커 지에서 "산업 사회와 그 미래"는 신중한 추론과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그것을 미친 사람의 작품으로 치부한다면, 장자크 루소, 토머스 페인, 카를 마르크스 같은 정치철학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콜로지스트(The Ecologist)지의 부국장 폴 킹즈노스(Paul Kingsnorth)는 오리온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카진스키의 주장을 "걱정스러울 정도로 설득력 있다"며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준만이 펴냈던 비정기 시사인문지 <인물과 사상>에서도 카진스키에 관한 컬럼이 투고된 바 있다.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심히 갈리는데, 그를 추종하는 일부 아나코 원시주의자들은 그가 위대한 혁명가였다고 평가하지만, 그렇지 않은 테드 카진스키가 설명한 좌파적 아나키스트들은 그가 자신들처럼 사회화되어 있지 않고 편안함보단 자유를 추구한다고 싫어한다.
그 외
그는 무려 17년이나 미국 정부의 수사망을 회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협박 편지나 선언문 등의 글로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피력하는 등의 행각이 덜미를 잡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자기 동생의 제보로 검거당했다.
유나바머의 수사와 체포 과정에서 FBI가 투입한 자금은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최고액의 수사비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검거 과정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그의 인생 역정과 테러 사이의 상관관계였는데, 한때 천재 수학자로 불리던 중산층 출신의 인재가 어떻게 해서 악질 테러범이 되었느냐에 대한 심리학 논문도 검거 전후로 엄청나게 발표되었다.
작가 존 저전(John Zerzan)은 에세이 Whose Unabomber?에서 카진스키의 우편폭발물은 민간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으므로 그에 대해선 비판했지만, 그의 테러 동기 자체는 정의로웠다고 평가했다.
그의 테러 행각은 '강력범죄자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정 폭력이 빈번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발생한다' 는 통념을 깬 사례가 되었다.
동시에 유아나 청소년 교육은 지식의 기계적인 전달보다 인성이나 심리학을 통한 접근을 통해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교육계의 책임도 제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도 자체가 바로 카진스키가 대단히 경계했던 현상이다. 그는 현대의 심리학, 교육학이 사실상 인간을 체제순응적으로 만들려는 일종의 세뇌작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뉴욕 타임스의 기자 스티븐 더브너(Stephen J. Dubner)가 함께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은 에필로그에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은 백인으로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 하버드에 조기 입학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흑인으로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10대 때 폭력조직에 소속되기도 하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았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에 가면 두 사람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전자는 바로 카진스키이고, 후자는 롤런드 프라이어(Roland G. Fryer Jr.)이다.
프라이어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흑인 사회의 빈곤과 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 존 클라크 메달 수상자이고, 괴짜경제학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다.
그는 교도소 복역 중에도 저술 활동을 해 왔으며 심지어 책이 옥중 출판되었다.
다만 전공이었던 수학 관련 서적은 없고, 대부분 선언문에서 쓴 내용을 보충하거나 동어 반복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여 세상에 밝힌 정도다.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외부에서 반입해서 읽고 정리해서 다시 책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원한다면 그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었고, 카진스키가 직접 쓴 답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긴 하지만 편지가 교정당국으로부터 검열당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편지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반송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그의 검거 과정을 다룬 드라마 '맨헌트: 유나바머'에 대한 감상평을 당사자로부터 받아낸 사람도 있다.
(참고로 수신인 이름이 앤드루 카진스키이다.
앤드루는 CNN 소속의 저명한 언론인으로, 테드 카진스키와는 혈연 관계가 없는 남이다.
카진스키(카친스키)라는 성씨는 본국인 폴란드의 레흐/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형제도 있고, 저명한 폴란드계 미국인 인사 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연방 정부에서는 이러한 출판물 간행이 범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출판 금지와 봉인을 전제로 한 국유화를 시도했지만 2009년 연방 법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부터 굉장히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나라라 다른 나라라면 민주 국가라도 처벌할 만한 발언(정도를 넘어선 증오 발언 등)들이 처벌되지 않는다. 심지어 히틀러 찬양 등의 증오 발언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며 벌금형이나 징역을 선고받지는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지 민사적으로는 피해자가 확정된다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형벌 못지않은 사회적 보복이 이뤄진다. 카진스키는 순수하게 자신이 저술한 이론서를 다시 출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대신 법원은 동생이 현상금 받은 돈을 유가족들에게 합의금으로 지불하면서 감형을 청했을 만큼 카진스키가 피해자 배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필요 경비를 제외한 저작물 판매 수익은 전액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무기수라서 돈을 모아봤자 그다지 쓸 데가 없는지라 이 결정에는 이의가 없는지 2010년에 '기술의 노예'라는 신간 서적을 간행하는 등 글을 쓰면서 자신의 범죄에 대한 피해 배상도 겸해 왔다.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와 교도소에서 사형당하기 전에 교류를 가졌는데 맥베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썼다.
카친스키는 멕베이에 대하여 다른 문화와 인종을 존중할 줄 아는, 인종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티모시 맥베이는 미군에서 복무하던 시절부터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화이트 파워"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유색인종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인종 차별 표현을 사용했다가 징계를 받는 등 인종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카진스키는 자신과 같이 망상적인 음모론에 기반하여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맥베이에 대해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껴 그의 인종주의 사상을 쉴드쳐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텍사스 오스틴 연쇄 테러, 오바마, 클린턴, CNN에 파이프 폭탄을 배달한 테러미수 범죄 등 소포를 이용한 테러가 속출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카진스키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쓴 편지, 에세이들의 대부분은 웹사이트 The Anarchist Library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MCN 사업을 못마땅하게 본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나 기술을 혐오하던 그 역시 체포되기 직전까지 기술의 혜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도서관에서 읽었다던 수많은 책들이나 '유나바머' 로써 제작한 폭탄을 위한 재료들도 결국 현대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재활용한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와 같은 대규모 조직에 의존하는 첨단 기술을 거부했지만, 결국 그도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점은 그의 사상이 지닌 근본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반기술주의는 단순히 모든 현대의 기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해 인류가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종국엔 생물학적으로 말살당할 것이라는 거시적인 주장으로 따라서 인류의 존엄성을 박탈하지 않는 정도의 기술은 허용된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같은 인류이고, 그가 혐오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인류의 수를 생각하면 근본적인 모순점과 그럼에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다르게는 그가 테러리스트가 된 것도 기술의 문제점에 대한 반감 때문이고, 그가 테러를 저지르고 상해를 입힐 수 있게 한 것 또한 기술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기술의 문제점을 본인이 직접 증명한 것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는 현대기술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대기술을 오히려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 사건의 용의자인 루이지 맨지오니는 그의 선언문 산업 사회와 그 미래를 읽고 Goodreads라는 책 평가 사이트에서 4점을 주며 "폭력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겁쟁이들과 포식자들의 논리이다."라는 서평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위 구절은 레딧의 r/climate서브레딧에 그의 책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올라와 있었고 그 글에 한 사용자가 댓글로 작성한 서평을 인용한 것 중 일부분이다.
(원 작성자도 CEO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자신의 글을 인용한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공교롭게도 유나바머와 마찬가지로 '강력범죄자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정 폭력이 빈번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발생한다'라는 통념을 다시 깬 사례가 되었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생활고를 겪는 저소득층에서 범인이 나올 거란 추측이 우세했다.
물론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는 아버지 조 바이든이 7선 상원의원에 당시 부통령이었고, 자신은 주 법무장관이었던 보 바이든조차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생계가 곤란해질 뻔할 정도로 심각하다.
미국 사회의 엘리트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버리고 개인적 신념을 위해 엘리트를 살해했다는 점과 고의로 증거를 남겨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 범행 방식은 시어도어 카진스키와 유사하며, 실제로 카진스키의 선언문은 그의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동생인 데이비드 카진스키는 자신의 형이 맨지오니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에 우려를 표하였으며 무고한 이를 죽이도록 유도한 것에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매체에서
1995년 이후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천재 테러리스트 캐릭터는 이 남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Brainless: 에미넴의 곡이다.
이 곡의 주제는 '자신이 공부를 할 만한 뇌가 없기에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는 천재성이 드러났다' 이다.
'이런 멘탈의 내가 만약 X나게 똑똑했으면 흉악범이 되었을 거야'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 '흉악범' 부분에서도 유나바머가 언급된다.
Unabomber: The True Story: 유나바머의 범행과 체포 과정을 다룬 TV 영화가 1996년 방영되었다.
유나바머 역은 토빈 벨.
1999년 3월 14일 MBC 일요심야극장에서 '죽음의 발송자 유나바머' 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
경찰특공대: SBS 드라마로 4화에서 1990년대 테러경향에 대해 설명하며 데오도르 칸딘스키라는 정체불명의 독음으로 언급된다.
굿 윌 헌팅: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심리학자 맥과이어 교수가 수학자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 분)에게 제자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을 가르치는 방향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된다.
램보 교수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제대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면 스위스의 특허 공무원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얘기하자 맥과이어 교수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며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천재였지만 폭탄 테러범으로 전락한 카진스키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램보 교수의 의견을 반박한다.
즉, 재능이 특출나다고 해서 이끌어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주장.
듀크 뉴켐 3D: 에피소드 4에서는 그의 상상도가 그려진 포스터가 저화질로 붙어 있으며 우체국 레벨에서는 아예 대놓고 시어도어 카진스키 관련으로 패러디한 공간이 있다.
포르노 영화 제작소 레벨에는 포르노 제작소 인근 민가 아파트에 그가 사는 곳을 묘사한 것이 숨겨진 장소로 있다.
카진스키의 거주지 안에는 가스통이 잔뜩 흩어져 있다.
맨헌트: 유나바머(Manhunt: Unabomber): 유나바머와 언어학 기법을 이용한 FBI 수사관의 두뇌게임과 체포 뒤의 심리전을 2017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하였다.
주경찰 출신 FBI 프로파일러인 제임스 피츠제럴드 역에는 샘 워딩턴이, 유나바머 역에는 폴 베타니가 출연했다.
2023년 기준으로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정작 테드 카진스키 본인은 이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해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고 하며, 드라마 대부분의 내용이 허구이며 특히 머레이 교수와 MK 울트라 실험에 대해 "그중에 정말로 불편했던 실험은 단 한 차례 밖에 없었으며 30분짜리 실험이었다, 대부분은 그저 인터뷰나 설문조사로 진행되었다"고 평했다.
유나바머: 테드 K: 그의 실화와 체포까지의 얘기를 담은 영화로 샬토 코플리가 카진스키 역으로 출연하였다.
잔향의 테러: 주인공 테러범을 언급하는 단어가 됐다.
카우보이 비밥: 범죄자 테드 보어의 모티브가 되었다.
데드풀 2: 작중 데드풀이 후드티를 뒤집어 쓴 러셀에게 왜 유나바머처럼 입었냐는 드립을 친다.
실제로 몽타주와 의상이 꽤 비슷하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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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사싫어 작성시간 26.06.30 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유나바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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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시모프 작성시간 26.07.02 유나바머 알쓸범잡이었나? 거기서 다룬 거 본적 있었는데 글로 보니까 더 상세하다
몰입해서 완독함 -
작성자그러게왜그따구로사셧는지 작성시간 26.07.02 정신나간 실험 안당햇으면 또 달랏을까? 저게 찝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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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부사용중이래 작성시간 26.07.02 신기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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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승밭에굴러도개똥이좋다 작성시간 26.07.04 애초에 왜 잘 살고있는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 하냐 그것도 비윤리적인 실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