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비밀유지 의무 때문에 지금부터 이야기할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이 일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평생 겪은 일들 중에서도 이보다 더 끔찍했던 사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2009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예약이 거의 없는 한산한 날이었다.
점심을 막 마치려던 참에 같은 건물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이자 동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는 종종 서로 여유가 있을 때 환자를 소개해 주곤 했다.
마침 장부를 보며 수입 때문에 걱정하고 있던 터라 그의 전화가 반가웠다.
"지금 바빠?"
"아니, 오후 일정은 텅 비었어. 무슨 환자인데?"
"예약 없이 찾아온 사람이야. 보기엔 섭식장애 같아. 어머니가 걱정돼서 데려왔더라고."
섭식장애라.
솔직히 썩 반가운 환자는 아니었다.
예전에 폭식증 환자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진료실에서 토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일이 필요했다.
"알겠어. 올려보내."
나는 기다리는 동안 책상을 정리하며 진료실을 조금 더 깔끔하게 꾸몄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환자는 오지 않았다.
직접 찾으러 복도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젠장.
'설마 그 환자가 안에 있는 건 아니겠지.'
"몇 층에서 멈췄죠?"
"10층이랑 11층 사이요."
역시.
동료의 병원은 10층 내 병원은 13층이었다.
경험상 이런 경우 한 시간 가까이는 걸릴 수도 있었다.
폐소공포증이라도 있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진료실로 돌아와 아래층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환자가 엘리베이터에 갇혔어."
그는 웃었다.
"진짜? 안됐네."
"이름이 뭐였지?"
"아멜리아. 성은 D... 뭐였는데."
"알겠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면서 첫인상 좀 말해 줘."
"그래. 난 사실..."
"아니, 말하지 마."
"왜?"
"내가 먼저 직접 판단해 보고 싶어."
"좋아."
예상대로 한 시간 열 분쯤 지나자 복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인 것이다.
'괜찮은지 확인해야겠다.'
복도로 나갔다.
아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문도 보이지 않았지만 '딩' 하는 도착음과 문이 열리는 기계음은 들렸다.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탄성이 터졌다.
"세상에..."
"미친..."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나는 반대로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냄새가 먼저 나를 덮쳤다.
몇 년이고 씻지 않은 채 은둔 생활을 하던 사람의 집 문을 연 것 같은 악취.
썩은 음식, 땀, 곰팡이, 오물이 한꺼번에 섞인 듯한 냄새가 파도처럼 복도를 휩쓸었다.
면접이라도 가는 듯 말끔한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그를 지나 엘리베이터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의 여자는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몸무게가 230~270kg쯤은 되어 보이는 초고도 비만.
얼굴은 퉁퉁 부어서 눈은 겨우 검은 점 두 개처럼 보였고 갈색 머리는 아직도 헤어롤을 꽂은 채 부스스했다.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 같다' 는 생각이 더욱 확신으로 바뀌었다.
입가에는 기름진 바비큐 소스 같은 붉은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입술 끝에는 고깃조각 같은 것도 끼어 있었고, 손과 셔츠 앞부분도 온통 그 붉은 얼룩투성이였다.
마치 무한리필 갈비집에서 막 나온 사람 같았다.
한 손에는 검은 대형 쓰레기봉투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안에는 액체 같은 것이 출렁이는지 봉투가 축 늘어졌고, 그 안에서 풍기는 냄새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여자는 엘리베이터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눈과 코에서는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뒤로 물러났지만 나는 앞으로 다가갔다.
"아멜리아?"
그녀는 작은 돼지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붉은 얼룩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입을 벌렸다.
순간 나는 그녀가 내 얼굴에 바비큐 한 상을 통째로 토할 것 같은 끔찍한 예감이 들었다.
"...배가... 고팠어요."
짙은 남부 억양이었다.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는 그녀의 입 냄새를 맡자 헛구역질을 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괜찮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제 진료실에서 이야기하시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검은 봉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안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점심 먹은 음식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거... 당신 거죠?"
"..."
"뺏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요정이나 도깨비가 우는 것 같은 기괴하고 높은 울음소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문을 잠그고 오늘은 진료가 끝났다고 외면하고 싶었다.
그 악취는 진료실 구석구석에 며칠은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이었다.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제 진료실은 바로 저쪽입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안 따라오면 됐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지. 바퀴벌레와 쓰레기, 오물이 가득한 집으로.'
하지만 그녀는 따라왔다.
땀바지를 한계까지 늘어뜨린 굵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으며.
나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굵은 소시지 같은 손가락으로 봉투 안을 계속 주무르고 있었다.
철퍽.
질퍽.
봉투에서는 역겨운 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진료실 한가운데 멈춰 선 그녀가 중얼거렸다.
"엘...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겠어요."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먹을 걸 가져오셔서 다행이네요."
그녀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봉투를 꽉 움켜쥐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휴지를 가져다 건넸다.
그녀는 봉투를 놓지 않은 채 휴지를 받으려 애썼다.
"제가 그 봉투 잠깐 들어드릴까요?"
속으로는 제발 거절하기를 빌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에 뭐가 들어 있죠?"
한참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녀는 훌쩍이며 콧물을 들이마셨다.
휴지로 눈과 입을 닦자 붉은 얼룩이 휴지 위에 번졌다.
"...남... 남은 음식..."
그 말이 끝나자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얼굴 전체가 눈물샘이라도 된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많이 충격이었나 보네요."
그녀의 울음은 더 커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흐느낌 사이로 그녀가 물었다.
"...저... 정말... 다시 만나 주실 거예요?"
"물론이죠."
나는 명함을 꺼내 건넸다.
"오늘은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지금은 이야기하기 어려워 보여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이번 주 안에 다시 예약하시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축축하고 끈적한 손이었다.
"...고마워요."
얼굴은 붉게 부어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로비까지 같이 가드릴까요?"
"혹시 또 엘리베이터가 멈출까 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진료실을 나갔다.
가끔 훌쩍거리며.
그리고 그 질척거리는 검은 봉투와 함께 썩은 냄새도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
일주일 뒤.
나는 아래층 동료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고맙더라."
"뭐가?"
"아멜리아 말이야."
"누구?"
"섭식장애 환자. 지난주에 나한테 보냈잖아."
"아."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애?"
"응.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어. 진정시키고 다음 예약 잡으라고 했는데 결국 연락 안 하더라."
"어머니랑은 이야기했어?"
"...아니."
"명함만 줬어."
"어땠는데?" 그가 물었다.
"전형적인 음식 의존증이야. 얼굴에도 온통..."
"아니."
그가 말을 끊었다.
"어머니 말고."
"...아멜리아."
"아멜리아를 어떻게 봤냐고."
"...무슨 말이야?"
"아멜리아는 마른 열두 살 여자아이였잖아."
"...뭐?"
그리고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어머니도 같이 왔었어?"
"응."
"...둘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어?"
그도 내 얼굴을 보며 천천히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둘 다 동시에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말할 것도 없이 아멜리아는 다시는 예약하지 않았다.
성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멜리아 D...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비만 여성.
죽음 같은 악취를 풍기고, 온몸에 핏빛 얼룩을 뒤집어쓴 채 질척거리는 '남은 음식'이 든 검은 쓰레기봉투를 끌어안고 있던 바로 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