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49372
1.
한정우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체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경찰 공무원 채용 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했다.
체력 검정은 물론이고, 필기에서도 전 과목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심지어 중앙경찰학교 교육 성적도 동기 236명 중 1등이었다.
면접 당시 면접관이 물었다.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한정우는 말했다.
시민을 지키고 싶습니다.
면접관 세 명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임용 후 그는 서울 ■■경찰서 지구대에 배치 받았다.
순경 한정우는 거기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실적도 좋았고, 민원 응대도 깔끔했고, 보고서 작성은 흠잡을 데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겁이 없었다.
새벽 골목에서 칼을 든 남자와 마주쳤을 때도 침착했고, 투신 소동 현장에서 난간 위의 여자를 설득할 때도 목소리 한번 떨리지 않고 설득해냈다.
그렇게 서장이 한정우의 인사 기록 카드에 '발탁 추천'이라는 메모를 붙인 것은 임용 4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6개월 차에 서울경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생활안전부 특수상황대응계'
한정우는 경찰 조직 내부에 그런 부서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경찰청 조직도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인사 담당자에게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가시면 알게 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한정우는 자신의 미래가 밝다고 믿었다.
2.
한정우가 처음으로 특수상황대응계 사무실에 출근한 것은 8월의 어느 월요일이었다.
그가 출근한 곳은 서울경찰청 본청 건물이 아니었다.
을지로 뒷골목에 있는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5층짜리 오피스 빌딩이었다.
간판도 없는 건물의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나머지 층은 커튼이 쳐진 채로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3층 복도 끝의 철문 앞에 서자 카드 리더기가 있었고, 그가 미리 받은 출입증을 대자 띠리링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사무실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낡은 사무용 책상 여덟 개, 구식 모니터, 벽면 가득 꽂힌 서류 바인더가 전부인 사무실은 그가 이전에 근무했던 곳보다도 훨씬 허름한 환경이었다.
사무실 안에는 네 명이 앉아 있었고, 이제 한정우를 포함해 다섯이 되었다.
"한정우 순경이지?"
맨 안쪽 자리에서 중년의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명패에 적힌 직위는 계장이었다.
"네, 오늘부로 배속되었습니다."
"응. 류태성 경감이야. 앉아."
한정우가 빈자리를 찾아 앉자 류 경감이 조용히 다가와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오늘 안으로 다 읽어.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지 말고 한 번 더 읽어."
봉투 겉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고, 안에는 A4 용지 약 70장 분량의 문서가 들어 있었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 특수상황대응계>
- 신규 배속 인력 대상 업무 개요서 (을종) -
처음 세 페이지까지는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부서의 설치 근거, 지휘 체계, 보안 등급.
'을종'이라는 것은 열람 등급이 가장 낮은 문서라는 의미였다.
그 위로 갑종, 특종이 있다고 했다.
네 번째 페이지부터 내용이 달라졌다.
"본 계는 서울특별시 관할 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비정규 상황의 현장 통제, 민간인 보호, 증거 관리 및 후속 조치를 담당한다."
'비정규 상황'이라는 단어에 밑줄이 쳐져 있었고, 각주가 달려 있었다.
"비정규 상황: 현행 형법, 민법, 자연과학적 인과율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중 서울특별시 관할 기관에 의해 등록·관리되고 있는 현상. 이하 '현상'으로 통칭."
한정우는 이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자연과학적 인과율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장난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한정우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모니터를 보거나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한정우는 결국 다시 서류로 시선을 고정한 채 읽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페이지에는 서울시 관할 기관 간의 업무 분장 도표가 있었다.
관할 구청 야간 민원 전담팀 - 신고 접수, 초동 대응 지시, 민간인 안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야간 순찰팀 - 등록 개체 관리, 회수, 시설 유지
환경미화과 야간 특수구역 정비반 - 현장 정리, 잔여물 처리
서울경찰청 특수상황대응계 - 현장 통제, 민간인 대피 및 기억 관리, 위험 개체 격리 지원, 인력 적격 관리
......
한정우의 시선이 어떤 항목에서 멈췄다.
'인력 적격 관리.'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여기엔 각주도 없었다.
한정우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열두 번째 페이지에 현상 유형 분류표가 있었다.
가형, 나형, 다형, 라형, 마형으로 된 각 유형에는 간략한 설명과 대응 등급이 적혀 있었다.
가형 - 이동성 시설물 (예: 가로등, 벤치, 도로 표지판)
나형 - 공간 변형 (예: 미등록 호수, 미등록 층, 복도 연장)
다형 - 잔여물 발생 (예: 비식별 분말, 점성 액체, 변온 고형물)
라형 - 인지 교란 (예: 집단 동일몽, 기억 소실, 시간 왜곡)
마형 - 기타 (상기 분류 불가)
한정우는 '가형'의 예시에서 '가로등'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가로등이 이동성 시설물이라는 말이 읽히기는 했지만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한정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
70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시계는 오후 1시를 넘기고 있었다.
류 경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 읽었어?"
"네."
"이해했어?"
한정우는 잠깐 멈칫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류 경감은 처음으로 한정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게 정상이야. 오늘 밤에 현장 나가면 이해 될 거고. 뭐...이해하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고."
류 경감은 그렇게 말한 뒤,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한정우는 빈 사무실에 앉아 개요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거기에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본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은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된다."
이 문장이 경고였다는 것을 한정우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3.
첫 현장은 그날 밤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동대문구 모 공원.
류 경감과 한정우 둘이 파견되었고, 차 안에서 류 경감이 간단히 설명했다.
"구청 야간 민원팀에서 넘어온 건이야. 나형, 공간 변형. 공원 화장실에 없던 문이 생겼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자가 그 안으로 들어갔대. 20분째 안 나오고 있고."
"들어갔다고요?"
"그래, 원래 모르면 더 용감한 법이지."
류 경감은 한정우를 슬쩍 봤다.
"너처럼."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공원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공중 화장실이 보였다.
류 경감이 먼저 들어갔고, 한정우가 그 뒤를 따랐다.
남자 화장실 안쪽, 가장 끝 칸 옆으로 원래라면 벽이어야 할 자리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문 표면은 타일이 아니라 나무였고,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한정우는 그 문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문이 무섭다기보다 거기에 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체적인 거부감을 일으켰다.
류 경감은 무전기를 들었다.
"특수상황대응계, 현장 도착. 나형 확인. 개구 상태 유지 중, 민간인 1명 미귀환. 시설관리공단 회수팀 요청."
무전 너머로 짧은 응답이 들려왔다.
류 경감이 한정우를 돌아봤다.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야. 안에 들어가는 건 공단 쪽 소관이고, 우리는 밖에서 일반인 통제하고 기다리는 거야."
"저 안에 사람이 있는데요?"
"공단에서 온다니까."
"공단이 오기 전에 들어가면 안 됩니까?"
류 경감은 잠깐 한정우를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한 순경. 너 아까 개요서 마지막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
한정우는 질문을 듣자마자 답을 떠올렸지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이해하면 된다고 했지. 저 문 안에 들어가는 건 네 일이 아니야."
한정우는 그날 밤 공원 화장실 앞에서 1시간 40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설관리공단 차량이 도착했고, 방호복을 입은 두 명이 들어갔다.
그들은 의식을 잃은 남자를 들것에 실은 채 27분 만에 나왔다.
남자의 얼굴은 아무 상처도 없었으나 머리카락이 완전히 하얗게 세어 있었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에 찍힌 CCTV 속 남자의 머리는 검은색이었다.
공단 직원이 들것을 차에 싣고 가면서, 류 경감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기억 정리 필요할 것 같아요. 의뢰서 넣어주세요."
류 경감이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정우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내일 아침에 근처 벤치에서 잠들어 있는 채로 발견될 거야. 술에 취해서 공원에서 잤다고 생각하겠지. 우리가 할 일은 그 시나리오를 만드는 거야."
"머리카락은요?"
"병원에서 처리해. 의료진 중에 우리 쪽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문 안에서 본 건 뭔데요?"
류 경감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한정우는 그날 밤 새벽 4시에 귀가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전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샘솟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날 본 것은 문 하나 뿐이었다.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을 수 없는 문 하나.
그것만으로 한정우의 세계가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정우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은.
4.
첫 달은 견딜 만했다.
나형 현장이 두 번 더 있었고, 가형 현장도 한 번 나갔다.
가형은 가로등이었다.
새벽 2시, 성북구의 한 주택가 골목.
가로등 하나가 원래 위치에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바닥에 원형 압착 흔적이 찍혀 있었고, 가로등은 부드러운 흰색 빛을 내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설관리공단 직원이 유도봉을 들고 나타나 가로등을 트레일러에 실어 갔다.
한정우와 류 경감은 주변 CCTV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영상을 삭제하고, 아스팔트 압착 흔적을 기록한 뒤 현장 정리를 의뢰하는 것이 전부였다.
류 경감은 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늘 같은 말을 했다.
"별거 아니지?"
한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별거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날 밤, 한정우는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의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은 그냥 가로등이었다.
그저 주황색 불빛을 내며 서 있을 뿐이었다.
한정우는 가로등 밑을 지나치면서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 '아무것도 아니다'를 속으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두 번째 달에 한정우는 처음으로 다류 잔여물을 보았다.
마포구의 한 이면도로.
환경미화과 야특반에서 B액을 살포했는데도 잔여물이 제거되지 않아 공단과 경찰이 함께 출동한 건이었다.
도로 한가운데에 고형물이 있었다.
크기는 양손에 올릴 수 있는 정도였고, 색은 검붉은색과 회색이 섞여 있었다.
한정우는 그것의 형태를 식별하지 말라는 매뉴얼의 지침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눈이 먼저 그것을 인식했다.
그것은 사람의 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의 일부인지는 뇌가 거부했다.
이미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려 했지만 뇌가 이해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한정우는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류 경감은 한정우가 토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끝나자 조용히 물티슈를 건네며 말했다.
"첫 번째는 다 그래."
귀가 후 한정우는 욕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예전과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거울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그냥 반사되는 자기 얼굴이 진짜 자기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정우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부터 한정우는 욕실 거울을 수건으로 덮어두기 시작했다.
5.
세 번째 달부터 잠이 줄었다.
정확히는 잠이 드는 순간이 두려워졌다.
눈을 감으면 현장에서 본 것들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문.
가로등.
잔여물.
하얗게 센 머리카락.
그것들이 정확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뭔가 형태를 갖추기 직전의 상태로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매일 새벽에 현장을 나갔고, 오전에 복귀해서 보고서를 쓰고, 오후에 잠을 자야 했지만 잠이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한정우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 잔, 다섯 잔 정도.
이는 카페인을 통해서라도 의식을 유지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었다.
라형 현장을 처음 경험한 것은 10월 초였다.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7층 입주민 네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일한 꿈을 꿨다는 신고였다.
신고 자체는 구청 야간 민원팀이 접수했고, 대응계에는 인지 교란 유형으로 넘어왔다.
한정우와 류 경감, 그리고 선임인 오 경위가 출동했다.
오 경위는 대응계에서 경력이 가장 오래된 사람이었다.
심지어 7년 차인 류 경감보다 근속 연수가 길었다.
비록 계급은 낮았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오 경위가 판단을 주도했다.
오 경위가 설명했다.
"라형은 건드리는 거 없어. 우리가 할 일은 증언 채록하고, 수면제 처방 연계하고, 필요하면 기억 관리 의뢰서 넣는 거야."
"저... '기억 관리'라는 게 정확히 뭘 하는 겁니까?"
오 경위는 한정우를 잠깐 보더니 말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 우리 쪽 협력 의료진이 있어. 거기서 약물이랑 상담을 조합해서, 특정 기억의 선명도를 떨어뜨리는 거야. 지우는 건 아니고, 꿈처럼 흐릿하게 만드는 거지."
"그게... 합법입니까?"
"합법이 아니면 매뉴얼에 있겠어?"
한정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오피스텔에서 네 명의 입주민을 면담했고, 모두 같은 내용을 말했다.
흰 복도.
끝이 없는 복도.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복도가 더 길어져 있다.
네 번째 입주민을 면담할 때 그 사람이 묘사하는 복도의 조명 색이 정확히 한정우가 요즘 잠들기 직전에 보는 어둠의 색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정우는 면담 기록지를 쥔 손이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류 경감이 보았는지 차로 돌아온 뒤 류 경감이 물었다.
"한 순경, 요즘 잠은 잘 자?"
"......네, 잘 잡니다."
류 경감은 더 묻지 않았다.
한정우는 그 질문이 안부가 아니라 확인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네 번째 달에 한정우는 자취방의 모든 거울을 치웠다.
다섯 번째 달에 한정우는 가로등이 많은 길을 피해서 귀가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달에 한정우는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잠을 자는 날보다 많아졌다.
그 사이에도 현장은 계속되었고, 한정우는 단 한 번도 출동을 거부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체대 수석, 경찰 시험 수석까지 한 한정우는 스스로가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강한 사람은 견딘다.
견디면 된다.
견디다 보면 적응할 수 있다.
한정우는 그렇게 믿으며 매일 밤 을지로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무도 한정우에게 "괜찮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 경위도 류 경감도 그 밖의 다른 계원들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정우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6.
결정적인 밤은 7개월째에 찾아왔다.
이번엔 마형이었다.
새벽 1시, 관악구 봉천동.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었고, 구청 야간 민원팀에서 넘어온 건은 단순한 소음 신고로 시작되었다.
"3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가구 끄는 소리 같은데 몇 시간째 안 멈춰요."
그런데 그 다세대 주택에는 3층이 없었다.
건축물대장상 원래는 2층 건물이었다.
하지만 구청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했을 때, 건물 외관에 확실히 3층으로 보이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고, 커튼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청은 나형으로 분류해 시설관리공단과 경찰 대응계에 동시 요청을 넣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한정우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2층짜리 다세대 주택.
그 위에 있을 수 없는 3층이 있었다.
외벽의 질감이 1층, 2층과 미묘하게 달랐다.
같은 페인트 색이었지만 뭔가 방금 칠한 것 같은 혹은 방금 생겨난 것 같은 표면이었다.
3층 창문의 불빛은 일반적인 형광등 빛이 아니었다.
따뜻한 노란빛이었는데 규칙적으로 밝기가 변했다.
시설관리공단 차량이 뒤늦게 도착했다.
최태현 대리라는 사람이었는데 방호복을 입고 내려서 건물을 올려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마형이네요. 이건 우리 소관 아닙니다."
"그럼... 누구 소관입니까?"
"모릅니다. 다만 들어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요."
류 경감이 무전을 넣었고 본부에서 돌아온 지시는 짧았다.
"대기."
한정우와 류 경감, 오 경위, 그리고 공단 직원 두 명이 건물 앞에서 대기했다.
3층의 불빛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 2시 47분이 되자 3층 창문이 열렸다.
창문을 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안쪽에서 무언가가 밀어서 열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창문이 그냥 열려 있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열린 창문 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와 매우 유사한 그러나 사람이 아닌 것이 내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얼핏 자장가 같기도 하고, 기도를 외는 것 같기도 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어떤 언어도 아니었기에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다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한정우의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무릎이 꺾이려 했다.
그것이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소리 자체가 신체에 작용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 경위가 즉시 소리쳤다.
"귀 막아!"
한정우는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리가 들렸다.
귀를 통해서가 아니라 뼈를 통해서 울리는 것 같았다.
류 경감이 한정우의 팔을 잡고 건물에서 30미터 뒤로 끌었다.
한정우의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3층은 새벽 4시 12분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오 경위는 기록지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마형 / 공간 임시 생성 / 음향 발생 / 오전 04시 12분 자연 소멸 / 잔여물 없음]
류 경감이 한정우에게 물었다.
"코피 멈췄어?"
"네."
"병원 갈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류 경감은 아무 말 없이 차에 탔다.
한정우는 그날 밤 귀가한 뒤 침대에 앉아 새벽 내내 벽을 보았다.
자취방의 벽.
평범한 벽지.
그런데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로 옆방이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벽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두드려서 울림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두드렸을 때 울림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아니, 두드렸을 때 안쪽에서도 두드려 오면 어쩔 것인가.
한정우는 주먹을 쥔 채 벽 앞에 앉아 있다가 날이 밝아서야 힘이 풀려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리고 4시간 뒤,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7.
여덟 번째 달.
한정우의 체중은 7kg이나 빠져 있었다.
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음식을 삼키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졌다.
무언가를 입에 넣을 때마다 다류 잔여물의 형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했고, 낮에 잠을 자면 반드시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매번 같았다.
흰 복도.
끝이 없는 복도.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
라형 현장에서 입주민들이 묘사했던 그 꿈을 한정우가 꾸고 있었다.
한정우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석이었던 사람이 전과목 만점이었던 사람이 겁이 없었던 사람이 이 정도에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버티기로 했다.
늘 그래왔듯 현장에 나갔고, 기록지를 작성했고, CCTV를 삭제했고, 기억 관리 의뢰서를 제출했다.
민간인들의 기억을 흐리게 만드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 한정우는 자기 자신의 기억도 흐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아홉 번째 달의 어느 날, 류 경감이 한정우를 불렀다.
"한 순경, 분기 심리상담 기간이야. 일정 잡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한정우는 심리상담센터에 예약을 넣었다.
그리고 상담사 앞에 앉았을 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야간 근무가 좀 피곤합니다."
"수면 상태는 어떠세요?"
"나쁘지 않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요?"
"없습니다."
상담은 20분 만에 끝났고, 상담사는 기록지에 결과를 적었다.
'양호.'
한정우는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자기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손을 빠르게 주머니에 넣어 감추었다.
열 번째 달, 한정우는 한밤중에 자취방 현관문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문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세 번.
멈춤.
두 번.
규칙적인 형태의 노크였다.
한정우는 외시경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한정우는 그제서야 자기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복도가 평소보다 길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진짜인지 자기 인지가 교란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것이 한정우를 가장 무너뜨린 지점이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상은 견딜 수 있었다.
거기에는 매뉴얼이 있었고, 동료가 있었고,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자기 집 현관문 앞에서 그것도 혼자서 그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매뉴얼 밖의 일이었다.
한정우는 그날 밤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복도는 정상이었다.
그 '정상'이라는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8.
열한 번째 달.
한정우는 현장에서 전에 없던 실수를 했다.
강서구의 가형 현장.
탈주한 가로등 회수 지원이었다.
배고픈 상태의 가로등이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불빛은 주황색이었다.
매뉴얼상 주황색 가로등에는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지 않고, 공단 회수팀의 도착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왜인지 그 날 한정우는 접근했다.
가로등을 향해 걸어갔고, 걸어가면서 손전등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왜 이것이 살아 있는지 왜 이것이 움직이는지 왜 이것이 사람을 쫓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어떤 감정이 한정우의 다리를 움직였다.
오 경위가 뒤에서 소리쳤다.
"한 순경! 멈춰!"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한정우를 향해 기울었고 기둥이 소리 없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곧바로 뒤따라온 류 경감이 한정우의 등 뒤에서 팔을 잡아끌었다.
한정우는 끌려 나오면서도 가로등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은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불빛을 점멸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방향을 바꿔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차로 돌아온 뒤, 류 경감이 한정우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야, 씨발 뭐 하는 짓이야."
한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 다가간 거야. 매뉴얼에 뭐라고 돼 있어."
"......알고 싶었습니다."
"......뭘?"
"왜 움직이는지. 왜 저런 게 존재하는지."
류 경감은 한동안 한정우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걸 알면 네가 편해질 것 같아?"
한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 순경, 아니 정우야. 여기 사람들이 왜 너한테 아무것도 안 알려주는지 알아? 설명할 수 없어서가 아니야. 알면 더 무너지니까 그런 거야."
류 경감은 시동을 걸었다.
"오늘 건은 기록에 안 남길게. 대신 내일부터 현장 안 나가도 돼. 내근해."
한정우는 그 다음 날부터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만 했다.
기억 관리 의뢰서를 분류하고, 현장 기록지를 철하고, CCTV 삭제 확인서를 작성했다.
서류 하나하나가 사건이었다.
서류 하나하나에 민간인의 이름이 있었고, 그들에게서 지워진 기억의 목록이 있었다.
한정우는 그 서류를 넘기면서 자기 이름이 적힌 서류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없었다.
하지만 곧.
9.
열두 번째 달의 마지막 주.
한정우는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손에서 냄비를 놓쳤다.
뜨거운 국물이 바닥에 쏟아졌지만 한정우는 그것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바닥에 퍼지는 국물을 보며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한 순경?"
오 경위가 다가왔다.
한정우는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나류인지 확인해야 합니까."
오 경위는 한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건 라면 국물이야."
"알고 있습니다."
"알면 왜 그래."
"......알고 있는데, 확신이 안 섭니다."
오 경위는 류 경감을 불렀다.
류 경감은 한정우의 상태를 보고, 오 경위와 복도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오후, 류 경감이 한정우를 따로 불렀다.
"한 순경, 솔직하게 물어볼게."
"네."
"지금 네 집 벽, 네 눈에는 그냥 벽으로 보여?"
한정우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류 경감은 눈을 감았다.
"잠은?"
"못 잡니다."
"꿈은?"
"......흰 복도."
류 경감은 모든 대답을 듣고나서는 서랍에서 서류를 하나 꺼냈다.
한정우가 처음 보는 양식이었다.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 특수상황대응계>
- 인력 적격심사 개시 보고서 -
한정우는 그 제목을 읽고 바로 떠올렸다.
첫날 개요서에서 보았던 업무 분장 도표의 마지막 항목.
'인력 적격 관리.'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그 단어의 의미가 지금 자기 앞에 서류의 형태로 놓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너한테 적용되는 절차야."
"적격심사라는 게... 뭡니까."
류 경감은 한정우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진 인원에 대해 안전하게 전환시키는 절차야."
"전환이요?"
"일반 사회로 복귀시키는 거야. 기억 관리 포함해서."
한정우는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저한테... 기억 관리를 한다고요?"
"네가 여기서 본 것, 들은 것, 알게 된 것 전부. 흐리게 만들어야 돼. 그래야 네가 밖에서 살 수 있어."
한정우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일했던 것도 모르게 되는 겁니까?"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꿈처럼 흐릿해지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네가 무슨 부서에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질 거고, 나중에는 그냥 '경찰 일이 안 맞아서 그만뒀다' 정도로 정리될 거야."
한정우는 서류를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류 경감님."
"응."
"저는... 잘하고 싶었습니다."
류 경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석이었거든요. 뭐든 수석이었어요. 저는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정우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왜... 왜 이건 안 되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하고 있잖아요. 경감님도 오 경위님도 다들 괜찮잖아요. 왜 저만..."
류 경감이 조용히 말했다.
"한 순경. 이 자리에서 10년 버틴 사람이 여기 몇 명인 줄 알아?"
"......"
"오 경위 하나야. 나머지는 다 바뀌었어. 다 같은 절차를 밟았고."
"...오 경위님은요? 오 경위님은 왜 괜찮은 겁니까?"
류 경감은 잠깐 멈칫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괜찮은 게 아니야. 그 사람은 괜찮은 척하는 게 진짜가 된 거지. 그것도 일종의 적응이고."
류 경감은 서류를 한정우 쪽으로 밀었다.
"서명해."
하지만 한정우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을지로 골목의 밤공기가 차가웠다.
한정우는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은 채 그냥 걸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었고, 한정우는 그것들을 보며 걸었다.
하나, 둘, 셋.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깜빡였다.
인사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었다.
한정우는 걸음을 멈추고 가로등 하나를 올려다보았다.
주황색.
한정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 때문인지 무기력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로등은 깜빡이다가 다시 조용히 빛을 유지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가로등이었다.
한정우는 그게 보통인지 아닌지 더 이상 판단할 수 없었다.
한정우는 그날 밤 자취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류 경감이 한정우를 발견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사무실 건물 편의점 앞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하룻밤 동안 잠도 자지 못한 눈이었다.
류 경감은 말없이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한정우 옆에 앉으며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한정우는 커피를 받지 않았다.
"류 경감님."
"응."
"저기... 저 가로등 보이죠?"
편의점 앞 도로에 가로등 하나가 아침 햇살에 불이 꺼진 채 서 있었다.
"보여."
"저거, 그냥 가로등 맞죠?"
류 경감은 가로등을 보다가 한정우를 보았다.
한정우의 눈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공포도 의지도 자존심도.
"......맞아. 그냥 가로등이야."
"확실합니까?"
"확실해."
한정우가 작게 웃었다.
"저도 이제 기억 관리, 받아야 합니까?"
류 경감은 대답 대신 한정우의 어깨를 잡았다.
한정우는 그날 적격심사 개시 보고서에 서명했다.
10.
한정우의 적격심사는 일주일 만에 종료되었다.
결과는 '부적격.'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력 적격심사 결과 통보서]
대상: 한정우 순경 (배속 12개월)
심사 결과: 부적격
사유: 인지 경계 붕괴, 현실 판별 기능 저하, 자발적 위험 접근 행동, 수면 장애, 식이 장애, 업무 지속 불가 판정
후속 조치:
1단계 - 기억 관리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협력 의료진)
2단계 - 신분 전환 (경찰청 인사과 협조)
3단계 - 이력 정리
한정우는 '이력 정리'라는 항목을 보았다.
"이력 정리가 뭡니까?"
오 경위가 대답했다.
오 경위는 이런 절차를 여러 번 집행한 사람이었다.
"네가 특수상황대응계에 있었다는 기록이 경찰청 인사 시스템에서 삭제돼. 대신 일반 지구대 근무 기록으로 대체되고. 의원면직 형태로 처리되니까, 밖에서 보면 그냥 경찰 그만둔 사람이야."
"저를... 없애는 겁니까."
"없애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려놓는 거야. 너를 여기 오기 전의 너로."
한정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기 오기 전의 저는 가로등이 움직인다는 걸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 경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 관리 시술은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정우는 서울대병원의 특수 병동에서 사흘을 보냈다.
일반 병동과 분리된 곳이었고, 간호사들도 민간인이 아니었다.
시술의 내용은 한정우에게 설명되지 않았다.
다만 약물 투여와 상담이 반복되었고, 매 회차가 끝날 때마다 한정우는 며칠간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 뭐 했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상입니다."
한정우는 그 '정상'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류 경감이 마지막으로 병원에 찾아온 것은 시술 마지막 날이었다.
한정우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눈이 조금 흐릿했고, 얼굴에 표정이 많지 않았다.
류 경감이 물었다.
"나 누군지 알아?"
한정우는 류 경감을 보더니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직장 상사였던 것 같은데."
"어디 직장?"
"......글쎄요. 기억이 잘..."
류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류 경감은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한 순경, 너 잘못한 거 없어."
한정우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류 경감은 문을 닫고 나갔다.
복도에서 오 경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요?"
"됐어. 거의 다 흐려진 것 같고."
"그럼 내일 퇴원이네요."
류 경감은 복도를 걸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아깝다."
오 경위가 물었다.
"뭐가요?"
"그 친구, 진짜 좋은 재원이었거든. 수석이래, 전부 다."
오 경위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다 그래요. 다들 좋은 인재라고 와요. 수석이고, 체력 좋고, 겁 없고."
"......"
"근데 겁이 없는 사람이 제일 먼저 무너져요. 겁이 없으니까 벽을 세우는 법을 모르는 거거든요. 이 일에서 버티는 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적당히 겁먹는 사람이에요."
류 경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두 사람이 올라탔다.
류 경감이 1층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그래서 다음 신규 인력은 언제 오는 거야?"
"다음 달이요."
"이번엔 좀 오래 갔으면 좋겠는데."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며 병원 로비가 하얗게 펼쳐졌다.
류 경감은 잠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위에 있던 형광등은 딱히 깜빡이지 않았다.
그냥 형광등이었다.
류 경감은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출구를 향해 걸었다.
오 경위가 뒤따르며 무전기를 확인했다.
오늘 밤 출동 건이 두 개 대기 중이었다.
한정우의 자리는 다음 날부터 비어 있었고, 다음 달에 다른 이름이 앉았다.
한정우의 이력은 '■■경찰서 지구대 근무 후 의원면직'으로 정리되었다.
특수상황대응계의 인력 기록부에는 딱 한 줄만 남았다.
한정우 / 순경 / 배속 12개월 / 부적격 / 처리 완료
류 경감은 그 기록부를 서랍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열세 번째."
그리고 다음 서류를 꺼냈다.
'신규 배속 인력 대상 업무 개요서 (을종)'
표지가 새것이었다.
누군가가 또 올 것이고, 그 사람도 수석이거나 영재이거나 눈이 맑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똑같이 끝날 것이다.
서류에 적힌 문장은 여전히 같았다.
"본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은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된다."
누군가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매뉴얼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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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행복하고 돈 많이 벌 한여시 작성시간 26.08.27 이래서 업무 존잘이 되면 안댐 일을 더준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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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양이가귀해고양이는범색기갓지! 작성시간 26.08.28 아니 ㅈㄴ열심히 살아서 수석까지 했는데 왜 의원면직을 ㅠㅠ 물경력 ㅅㅂ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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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x밤티 작성시간 26.08.29 하 존잼인데 나는 겁이 너무많아서 출동자체가 안될듯; ㅜ 근데 저런 인재를 면직하기엔 너무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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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리발바닥 작성시간 26.08.30 처음부터 적당히 적응할 사람으로 배치하면 안 되나... ㅠㅠ 인력 낭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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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hocol 작성시간 26.09.04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