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홍콩할매의 속삭임

[소설]살남마 (殺男魔) 1

작성시간17.09.10|조회수27,545 목록 댓글 211


출처 여성시대 익명





공포를 가장한 여혐 소설들이 너무너무 싫어서 내가 직접 씀

불펌 환영

비정기적 연재








  "고로 이 강의는 폐강입니다. 비는 학점은 학생처에 가서 변경하도록 하세요. 아마 금세 처리해 주실 겁니다."


  조교는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강의실 인원들 역시 웅성대며 자리를 떴다. 허나 동식은 좀처럼 엉덩이가 떼지질 않았다. 동기인 국훈이 동식에게 다가와 소름 돋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씨발, 대체 어떤 새끼야!"


  국훈의 욕설에 곁을 지나던 몇몇 학생들이 쳐다보았다. 지나치던 그들과 그남들의 얼굴 표정에는 분명 국훈의 허세를 업신여기는 듯한 기색이 있었다. 동식은 국훈의 말을 무시하며 가방을 챙겼다. 우리도 이러고 있지 말고 가자. 마음이 뒤숭숭해 강의실을 빠져나오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최민종 교수가 죽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학생처에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처리해 줬다. 동식은 국훈과 함께 법학 수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도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이미 학기 한 달이나 지났잖아. 국훈은 착잡해 보였다. 평소에도 어지간히 공부하길 싫어하는 꼴통이었다. 동식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뽑았다.


  최민종 교수가 살해당했다. 아침 뉴스에 모 대학 교수가 살남마(殺男魔)에게 당했다는 남앵커 멘트를 얼핏 들었긴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저를 가르치던 최민종 교수일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살남(殺男) 기사를 보긴 했지만, 솔직히 공감능력이 없는 동식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남자만 골라 죽이는 살남마?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여성 범죄는 많이 봤어도, 남성만 타겟으로 한 범죄는 통 본 기억이 없다. 우습게 여겼던 벌이었을까. 제 가까이에서 일어난 살남 사건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뭐야, 니들. 여섯 신데 있어도 돼?"


  학과 선배인 희랑이 동식과 국훈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 누나! 국훈이 반갑게 인사하였다. 동식도 함께 인사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 술 약속."

  "누구 와요?"

  "남자애들은 빼고 사람끼리만 모이기로 했어. 연쇄 살남 때문에 남자애들은 늦게 다니면 위험하잖아."


  머쓱한 듯한 표정을 지은 희랑이 목덜미를 긁으며 위로했다. 최민종 교수님 소식 들었어. 너희도 일찍 다녀, 집에. 그는 말을 마친 뒤 사라졌다. 희랑의 뒷모습을 보며 국훈이 동식의 소매를 당겼다. 야, 우리도 집에나 가자.



  대한민국은 현재 살남마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살남마란 무엇인가? 남자만 죽이는, 오로지 남자만을 타겟으로 하는 극악무도한 자식이었다. 동식은 살남마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를 상기해냈다. 제주도 모 PC방 사장이 죽었다고 했다. 현장에는 복부를 찔린 시체 한 구와 냉동 통장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나. 장어 때문에 기괴한 사건이라 불렸다. 경찰에선 면식범의 소행인 듯하다고 했다. 두 번째 사건이 불과 나흘 뒤, 서울에서 발생하지만 않았다면.


  서울 사망남의 나이는 스물이었고, 신분은 남고생이었다고 했다. 1년 꿇어 늦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현장에는 마찬가지로 장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휴대폰에는 인터넷 방송 BJ 철극의 화면이 떠 있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눈치채기 시작했다. 단발성으로 끝날 살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부산 사망남. 27세, 군 제대 후 취업 준비 중.

  군산 사망남. 61세, 헬스클럽에서 귀가하던 도중 살해.

  춘천 사망남. 33세, 전 여자 친구의 집 근처에서 발견.


  그리고 오늘 자 새로운 사망남은, 경기도권 모 대학 교수인 40대 후반의 최민종 교수.


  지금까지 총 여섯 건이다. 지역을 가리지도 않고, 수법은 단 하나의 칼자루뿐. 이 모든 것이 두 달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지역,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저 남자기만 하면 살해당한다니, 너무나 억울했다. 동식은 자신을 좀먹는 겁을 지우려 애쓰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러다 이내 현관문이 잠겼는지가 불안해 몸에 물기를 적신 채로 잠시 나왔지만.


  미온수에 적셔진 동식의 몸은 탄탄했다. 워터파크 아르바이트를 하며 까맣게 탄 피부와 탱탱한 엉덩이, 잔근육 등은 마치 한떨기의 꽃 같았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한숨을 쉬며 욕실로 돌아가는데, 울리는 휴대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야야, 누구야. 귀여운 신음을 뱉은 동식이 전화를 확인했다. 기진이었다.


  "어. 진아."

  [뭐 하냐?]

  "씻는 중."

  [씻으면서 전화를 받아?]

  "잠깐…… 현관 잠갔나 보려고 나왔어."


  동식의 말에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무거운 공기를 없애려는 듯 기진이 떠들기 시작했다.


  [나 오늘 너희 집 갈까?]

  "뭐?"


  동식이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열 시로 아주 위험하고 늦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기진은 취해 보였다.


  "무슨 소리야, 새꺄. 오는 길에 살남마 만나서 불알 떨어지게 뛰고 싶은 거 아님 조용히 해."

  [속상해서 그래, 내가.]

  "뭐야. 무슨 일 있어?"

  [나 알바 그만뒀거든.]


  기진이 직장처럼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단 말에 동식은 꽤나 놀랐다. 벌써 1년 반 넘게 근무하던 곳이었다. 그만두다니? 의연한 척 묻자 기진이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야간이었잖아. 점장님이 그러더라고. 살남마 문제 때문에, 밤에 남자 안 쓰기로 했대. 그러다 피해라도 보면 자기 가게 어떡하냐고.]

  "그 새끼 완전 웃기는 놈 아니야? 지도 남자면서!"

  [그러니까 말이다. 근데 원래 남초 직장이 좀 그렇잖아. 너도 알지?]


  자적자. 한 단어가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동식도 물론 알고 있었다. 이게 모두 살남마 때문이었다. 동식의 머리칼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뜨뜻한 그 온도가 마치 금방 터진 피 흐르는 느낌이었다. 동식은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다. 올 때 조심해서 오고, 근처 오면 연락해. 데리러 나갈게."

  [역시 김동식! 곧 갈게.]

  "야, 아바사자 알지? 너 택시 타면 번호판 꼭 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하여간 이 자식, 남자라서 그런지 성질 너무 급해. 동식이 살풋 웃으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뜨거운 김이 모두 식어 버린 욕실은 북극보다도 싸해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무언가를 예고하듯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찍혀 있었다.


  010586.9**** (1)

  임기진 (2)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에 왠지 모를 불길함이 들었다. 동식이 젖은 수건을 입에 문 채로 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의 신호가 가고, 기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임기진, 너 어디야?"

  [김동식 씨입니까?]


  전화를 받은 것은 기진이 아니었다. 웬 사람이었다.


  "누구시죠?"

  [여기 남구경찰서입니다. 저는 이지연 형사고요. 지금 어디십니까?]


  임기진 이 새끼 웬 장난질이야! 동식은 기분이 나빠져 전화를 확 끊어 버렸다. 그리곤 곧장 카톡을 보냈다. 야, 임기진. 너 죽을래? 장난하지 마. 그러자 조금 전 봤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져 왔다. 조금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김동식 씨! 저는 곽은태 형사입니다!]


  싹싹하고 발랄한 목소리였다. 뒤편으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씹새끼, 왜 그렇게 까칠하대? 이 형사 목소리였다. 남형사는 당황한 듯 약간 머뭇대더니, 동식에게 기진과의 사이를 물었다. 친구입니다. 가벼운 동식의 대답에 무거운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서로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네요. 주소 불러 주시면 차 보내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나 압시다, 형사님. 기진이 무슨 일 있나요?"

  [저기……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임기진 씨,

  조금 전에,

  살해당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살남마 소행 같아요.


  동식의 눈앞이 아득해진다. 마지막 통화와 발신이 모두 동식이라 제일 먼저 연락했다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현기증이 일어 비틀거리다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형사가 동식의 이름을 서너 번 불렀다. 김동식 씨? 김동식 씨! 집에 꼼짝 말고 있으셔야 해요! 저희 갈 때까지 말예요. 부재중 두 통 떠 있었죠? 마지막 발신, 살남마가 한 거예요. 사망 시간이랑 맞지가 않아요! 그거 임기진 씨가 건 전화가 아녜요.


  "혀, 형사님……."


  동식의 눈에서 툭, 액체 한 방울이 떨어졌다. 동식은 지금. 살남마의 여덟 번째 목표물이 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말많다고흉봐도좋아할말많이있어 | 작성시간 21.01.28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개웃겨 흥미진진ㅋ
  • 작성자귀여운내거북 | 작성시간 21.04.18 오 ㅋㅋㅋㅋㅋ재밋어
    살남마 실존했으면^^
  • 작성자서리거리쨩 | 작성시간 22.07.19 bb
  • 작성자눈알이 | 작성시간 23.04.18 동식 자갓시... 어떻게 되나요
  • 작성자알린이귀가막혀 | 작성시간 23.07.22 역대급 명작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