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3년 차 형사 때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박형사
이 장소는 사건이 발생한 범죄현장임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농수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부산청 미제사건 1호, 일명 '농수로 살인사건'으로 불림
지난 2000년 7월 28일 오후 1시 20분경
점심식사를 마친 공장 직원들이 농수로 안에서 뭔가를 발견함
바로 한 여성의 시신
그곳에서 숨져있던 이는 누구일까
지문 검사 결과 25살의 이은정 씨로 확인됨
사건 당시 은정 씨는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미용실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었음
경찰이 확인한 고인의 마지막 행적은
그녀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날 밤 미용실 동료들과의 회식이었음
지난 2000년 7월 27일 목요일
은정 씨가 동료들에게 회식을 제안함
이들이 택시를 타고 이동한 장소는
10분 거리에 있는 덕천로터리.
총 4명이서 소주 3명을 한 시간 반 동안 나눠 마신 뒤,
동료 한 명은 먼저 가고 나머지 두 명과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김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무름
노래방에서 나와 동료들과 헤어진 시각은
다음날 00시 20분경
그로부터 은정 씨는 13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됨
은정 씨가 동료들과 헤어진 장소부터 집까지는
400m로 걸어서 5분이면 닿을 거리임
하지만 은정 씨는 이날 오후
낙동강 건너편 강서구 대저동 농수로에서 발견됨
차로 갈 경우 20분이 걸림
자정이 넘은 시각 집을 눈앞에 두고 강을 건넌 까닭은 무엇일까
마을에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장소
주변엔 사람도 거의 없고 간간히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리만 들리는 위치
부검 결과 은정 씨의 사인은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살해된 액사로 확인됨
그런데
발견 당시 검정색 치마와 반팔티를 입고 있었던 은정 씨
하지만 속옷과 신발은 벗겨진 채였음
그리고 몸에 오른쪽에만 눈에 띄는 상처들만 남았음
혈액감정 결과 피해자의 질 내에서 A형의 정액이 확인됨
혈액형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또 다른 신체기관에서도 정액 양성반응이 나타남
양쪽 사타구니에 남은 넙적한 형태의 상처
전문가는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고인이 겪었던 것으로 판단함
고문에 가까운 성폭행을 당하고
이후 목을 졸리면서도 크게 저항을 하지 않은 은정 씨
주로 손에서 확인되는 반항흔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음
반항흔 없는 건 오히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강하게 제압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함
이런 점들로 봐서 전문가들은
은정 씨가 2명 이상의 범인들에게 제압당했을 거라고 입을 모음
또한 당시 상황을 증명하듯
그녀의 시신은 온몸으로 공포를 말하고 있었음
발견 당시 은정 씨 팔은 젖힌 채로 굳어있는 모습임
사망 후 시신이 굳는 현상,
시강이 매우 빠르게 나타난 것
숨이 멎던 그 순간 함께 굳어버린 양손
즉시성 시강은 고인이 겪은 그날의 공포를 증언하고 있음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날
평소와 달리 치마와 구두를 신었는데
중요한 모임이 있었기 때문임
그날 저녁 한 미용실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었음
세미나에서 만날 옛 동료에게 선물할
남성용 반팔티도 미리 준비함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서였을까
은정 씨는 무슨 이유인지 예정된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고, 동료들과 자신의 집 근처인
덕천로터리에서 저녁식사 겸 술을 마심
그날의 은정 씨가 챙겼던 비둘기색 티셔츠 역시
농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될 당시 그녀 곁에 없었음
미용도구가 들어있던 가방과 동료에게 주려던 선물, 그리고 은정 씨의 하의 속옷과 신발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음
이 물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건 직후 수사팀은 전단지 4천여 장을 배포해가며
사라진 소지품부터 찾아 나섰음
농수로는 시신을 유기한 장소일 뿐
성폭행과 살인이 벌어진 장소는 따로 있다고
주장한 당시 수사팀
소지품이 남겨진 장소가 범행 장소 혹은
그 인근일 것으로 보고 방송을 통해 공개수배를 하기도 함
부산의 한 세차장에서 비슷한 구두가 발견됐지만
색상이 일치하지 않았고,
울산의 한 폐가에서 유사한 색상의 가방도 확인됐지만
내용물이 은정 씨의 것과 달랐음
하지만 발 빠른 수사 덕에 중요한 단서를 확보함
목격자가 있었던 것
은정 씨가 동료들과 헤어졌던 덕천로터리 부근에서
사건 당시 커피숍을 운영했던 목격자
자정을 넘긴 시각 손님의 담배 심부름을 가던 길이었음
어두운 색상의 승용차
이후 한 남자가 조수석에서 내렸고,
걸어오던 여성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함
짧은 대화 뒤 남성은 다시 조수석에 탔고,
여성은 운전석 뒷문을 열고 차량에 올랐다는 것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을 보면
차량에 탄 여성의 머리 길이가 어깨 정도이며,
단색의 옷을 위아래로 입고, 가방을 들고 있었다고 함
옷차림뿐 아니라 머리 길이 역시
목격자가 본 여성과 상당히 비슷함
은정 씨가 동료들과 헤어진 시점은 00:20경
목격자가 차량에 올라탔다는 여성을 목격한 시간은
그로부터 약 10분여 뒤.
실제 목격한 위치 역시 은정 씨가 동료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던 동선상에 위치함
그날 은정 씨는 집으로 가던 중
예상치 못한 누군가와 마주쳤고,
어떤 이유로 그들의 차량에 동승했던 걸까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는 것
목격자는 조수석에서 내린 남성 외에
운전석과 조수석 뒷자리까지 총 3명의 남자가
차에 타고 있었다고 함
CCTV가 있었다면 차량의 번호라도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그 시절 CCTV는 흔치 않은 물건이었음
목격자의 증언과 시신의 반항흔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경찰은 범인들 중 최소 한 명이
은정 씨와 면식 관계인 걸로 추정하고,
피해자 주변 인물들부터 수사를 시작함
그 과정에서 은정 씨의 친구가 한 남자에 대한 얘기를 들려줌
은정 씨가 사망하기 한 달여 전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다는 떡집 종업원
살인의 동기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치정임
그는 사건이 발생하던 날
암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부산이 아닌
전라남도 광주의 한 병원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확인됨
그런데 그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냄
당시 은정 씨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한 남자에 대한 얘기
수사 자료를 살펴보니
당시 은정 씨의 오빠 역시 그 남자를 의심했던 걸로 보임
사건 발생 두 달 전부터 연락을 하고
집 앞을 찾아왔다는 남자
그는 2년 전 소개로 은정 씨가 잠시 만났던
경태라는 인물임
짧은 기간 교제한 탓에 가족들 역시
그 남성에 대해 이름만 알 뿐이었음
그날 동료들과 헤어져 집으로 가던 중
은정 씨가 마주친 그 사람은 반갑지 않은
옛 인연이었던 걸까
공교롭게도 은정 씨가 경태라는 인물과
잠시 교제할 당시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한 장소가 있는데
은정 씨의 시신이 유기된 장소와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운동장이었음
곧바로 경찰은 그를 찾아 나섰지만 쉽지 않았음
경태라는 이름을 가진 2-30대 남성이
부산 지역에만 160명 넘게 거주 중이었음
20여 일의 노력 끝에 드디어 해당 인물이 특정됨
사건 발생 이후 그는 부산 지역을 떠나 있었음
김경태란 인물이 경찰에 체포되던 그날을
그의 친구가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음
체포 직후 또 다른 이유로 그는 유력 용의자로 급 부상됨
김경태 씨의 진녹색 차량에서 혈흔으로 보이는 얼룩이
조수석과 뒷좌석에서 발견된 것
경찰은 서둘러 이를 감정했지만
차량의 얼룩은 혈흔이 아닌 것으로 확인됨
하지만 수사팀은 이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고 함
다행히 은정 씨의 몸에서 범인이 남긴 DNA를 확보했던 것
범인은 혈액형이 A형인 인물임
대조를 위해 곧바로 김경태의 혈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했지만 감정 결과
DNA는 일치하지 않았음
그는 A형인 범인과 달리 B형이었음
주변인물 중 범인의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자
이후 수사는 전과자 등으로 확대됨
은정 씨가 동료들과 헤어졌던 덕천동부터
시신이 발견된 대저동까지 혈액형이 A형인 인물들을
수사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순 없었음
결국 미제사건이 된 농수로 살인사건
다행히 현재는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수사 중에 있음
그런데
15년 가까이 A형인 줄 알았던
범인의 혈액형이 O형으로 바뀐 것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과거 혈액형이 A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혐의를 벗어났던 인물들
그들 중 19년간 찾고 있던 범인의 존재가 숨어있던 건 아닐까?
2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