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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의 속삭임

[스크랩] [사람]행복한 사형수 조 애리디 [Joe Arridy]

작성자흔들지마|작성시간21.01.30|조회수7,226 목록 댓글 7

출처 : blog.naver.com/hurucin/222098451767

 

조 애리디는 1915년 4월 29일 미국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헨리, 어머니는 메리였으며 부모님은 일자리를 찾아 시리아에서 막 이사온 참이었다.

가족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모국어로만 대화하였다.

헨리는 푸에블로에 있는 대형 제철소에 취직해 일하였다.

애리디는 말이 늦었고 몇마디 이상의 문장을 말로 해낼 수 없었다.

초등학교는 1학년 밖에 못 다녔는데 이유는 교장이 수업을 배우지도 못한다며 부모에게 집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몇년 뒤에 헨리는 실직하고만다.

애리디는 10살 때 콜로라도주 그랜드잭션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주립가정양성학교에 입학한다.

그 곳에서 반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애리디는 학교에서 도망쳐나와 화물열차를 타고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1936년 8월 와이오밍주 샤이안에 도착하였다.

8월 14일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집에서 자고있던 도로시 (15세 여성), 바버라 (12세 여성)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했고 두 사람은 강간을 당했다.

그 후에 손도끼로 공격을 당해 바버라는 살아남았으나 도로시는 사망했다.

8월 26일 애리디는 와잉밍주 샤이안에서 떠돌아다니다가 체포당했다.

이 때 그에게 물었던 죄는 도로시 살해가 아닌 떠돌아다니고 있어서 일단 체포한것이었다.

그리고 이 때 군 보안관 조지 캐럴은 도로시 살해사건 수사 진행 사실을 알게되었고 애리디가 콜로라도주 그랜드잭션을 나와 고향 푸에블로에 돌아간 사연을 전해듣고 위 사건을 물은 뒤 범행을 자백받았다.

그 후 이를 푸에블로 경찰에게 알렸지만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멕시코 노동자 프랭크 아기랄이 체포된 상황이었다.

아기랄은 이 집안의 가장 드레인의 밑에서 일하다가 사건 직전에 해고된 상태였다.

아기랄의 집에서 손도끼의 머리부분이 회수됐고 캐럴은

"애리디가 프랭크라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고 몇번인가 말했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기랄은 자신이 범행을 했다고 주장하며 애리디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경찰에 밝혔고 결국 아기랄이 도로시 살해 및 강간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1937년 아기랄이 사형이 집행됐다.

애리디는 푸에블로에서 자신의 범행을 다시 자백하지만 내용이 오락가락하고 진실과 거짓말을 섞어서 발언한다.

곤봉으로 죽였다고 했다가 경찰이 손도끼가 범행에 사용됐다고 말하자 손도끼로 범행을 했다고 말을 바꾼게 그 예다.

결국 애리디가 재판을 받게되긴 하지만 변호사들은 그의 정신이상을 주장한다.

애리디가 제정신이라고 판정을 받지만 정신과 의사 3명이 애리디의 IQ는 무려 46밖에 되지않는 6살 수준의 지능이며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도 없고 범죄를 목적으로 한 행동을 실행하기 어렵다 주장하였다.

거기다가 사건의 피해자까지 나서서 아기랄이 범인이고 애리디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렇지만 애리디는 이미 범인이 체포되어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자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만다.

(그 후 연구에서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심문을 당하는 도중에 강제적으로 허위 자백을 하는 빈도가 높다는 것이 드러났다. )

변호사의 필사적인 변호로 애리디의 사형을 연기하긴 했지만 유죄판결을 뒤집지는 못했다.

변호사는 애리디가 사형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하며 그가 가스실에서 처형당한다는 것은 콜로라도주 역사의 큰 오점이 될 것이라 대법원에 주장하였다.

변호사는 애리디는 대신하여 상소와 청원을 하며 사형집행 유예를 받아낸다.

상소진행 과정에서 애리디는 교도소장 로이 베스트가 준 장난감 열차를 가지고 놀았고 베스트는 애리디에 대해서 가장 행복한 사형수라고 이야기하였다.

애리디는 교도소 직원들과 동료 죄수들도 좋아했고 베스트는 애리디의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1939년 1월 6일 애리디는 사형집행을 위해 가스실로 이동한다.

사형을 집행당하기 전 베스트는 애리디 대해서

"애리디는 자신이 죽는 줄도 몰랐다.

애리디는 내가 준 장난감 열차에 앉아 즐겁게 놀았다."

라고 하였다.

애리디는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처형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때는 당황하며

"아냐, 아냐, 조는 죽지않을거야"

라고 베스트에게 말하였다.

가스실로 끌려간 애리디는 웃었고 베스트의 손을 잡자 긴장했던 표정이 안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조금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사형당했다.

그의 나이 23세

2011년 애리디는 콜로라도주 주지사에 의해 사면됐다.

콜로라도주에서 사형을 집행한 뒤에 죄인의 죄를 사면한 것은 애리디가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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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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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튜우우울립 | 작성시간 21.01.30 안타깝다
  • 작성자daninote | 작성시간 21.01.30 아 안타까워ㅠ 죽는순간까지 뭐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네...
  • 작성자나자신은속이지않길 | 작성시간 21.01.30 아니장난하나 진범도 잡혔고 저사람 모른다고 햇는데 왜지랄이야..어휴...
  • 작성자7942박달곰 | 작성시간 21.01.31 아니 뭔;;뭐 이런경우가 다 있노..
  • 작성자직거래살인마. | 작성시간 21.02.01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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