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홍콩할매의 속삭임

[스크랩] [기타][그것이 알고싶다] 단칸방의 유령들 - 단칸방, 그 밀실의 죽음 .jpg 끝

작성자겟백|작성시간21.04.20|조회수6,692 목록 댓글 16

옆 건물로도 가봤지만 대답이 없는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음







동욱 씨와 엄마가 세 들어 살고 있는 동네는
빌라가 밀집해있는 서초구 방배의 13구역








재건축으로 들어설 아파트 분양권의 고가가 23억 원을 넘어선 동네

하지만 싼 집을 찾아온 세입자들이 더 외각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곳은 죽음을 알아챌 이웃 자체가 없는 유령 도시이기도 함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음
엄마 장 씨가 긴 시간 연락이 되지 않았을 상황에서 집을 찾아온 이는 정말 없었던 걸까
동욱 씨가 엄마의 시신과 함께 보낸 한 계절의 삶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단서는 집안에 남아있을 것임

한참만에야 열린 녹슨 현관문 안의 시간은
엄마가 숨진 그 무렵에 멈춰있었음








보일러가 고장 난 탓에 싱크대에 담긴 물은 얼어버렸고
거름망에 가득한 라면 수프는 식사가 아닌 생존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음

그런데 현관 옆 신발장에는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음






단전 안내 스티커
확인 결과 장 씨 가구의 전기 요금은 2020년 3월, 
가스 요금은 4월부터 체납되어 있었음

그렇다면 위기가구를 관리해야 할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왜 모자에게 닥친 비극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의아한 얘기임
2019년 5개월간 동네 방역을 해서 받은 128만 원과
비정규직으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
수입의 전부였던 장 씨
하지만 당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일부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 감지 시스템에선 제외됐다는 것
게다가 장 씨가 받고 있었던 기초 생활 수급액은
주거급여 28만 원이 전부였음

생계와 의료급여까지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상황
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부양 의무가 있는 전 남편에게 연락이 간다는 말에
뇌경색 기저질환이 있었던 장 씨는 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끝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졌음







장 씨가 숨진 뒤인 지난해 7월
LH 주택조사원은 주거실태 파악을 위해 장 씨의 집에
두 차례 찾아온 것으로 확인됨
현관문에 스티커를 붙여놓고 돌아선 그들이 진짜 주거실태를
파악했더라면 모자의 비극은 좀 더 일찍 세상에 알려졌을까?

게다가 동욱 씨에겐 도움을 청할 또 다른 기회가 있었음







엄마가 돌아가신 뒤 복지사들의 도움으로 확인한
동욱 씨의 병명은 정신지체

창원 단칸방에서 숨진 김 씨와 마찬가지로 동욱 씨 역시
스스로의 상황을 증명하진 못했음







조두순 그는 출소 이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서를 제출했음
승인될 경우 그가 받게 될 복지 급여는 최대 119만 원







신청이라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고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방배동의 모자






그리고 이제 동욱 씨는 혼자 남았습니다.







도시 곳곳엔 1인 가구가 아니라서, 충분히 나이가 들지 않아서,
한 달에 5일꼴로 일해 버는 비정규적인 수입이 있어서,
가난과 질병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아서.
분명 존재했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죽음들이 있었습니다.
앞서본 창원은 모녀, 방배동 모자 두 집 모두 2인 가구로
근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지만
실상은 비정규적인 수입이 있을 뿐이었고 두 가구 모두
스스로의 상황을 증명하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야 했습니다.
창원 모녀의 죽음이 있은 뒤 창원시에서는 정신과 병력을 가진
취약계층을 찾아 도움을 주기 위해 전소 조사를 시작했고,
방배동 모자 사건이 알려진 뒤 서초구에서는 동욱 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고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돕는 한편 장애등록을 위한 심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동욱 씨의 경우처럼 빈곤에 시달리는데도
부양할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초 생활 보장에서
제외하는 부양 의무자 기준을 생계급여 심사에서 배제했고
의료급여 심사에서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로써 가난한 이들은 모두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행복을 맞을 수 있게 된 걸까요?
2014년 생활고로 숨진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은 뒤
정부는 공과금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가구를 찾는 등 관련 법을 개정했지만
또다시 빈틈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몹시도
선명한 것이었습니다.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을 다녀갔던 가난한 부부의 사연 역시
기사로 보기 전까진 이웃들은 미처 알지 못했음








동네 슈퍼마켓에선 늘 라면을 사 갔다는 아내
2007년 남편 이 씨를 만나 결혼한 뒤 줄곧 단칸방에서
살았다는 그녀는 필리핀에서 온 마리아였음






2013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의 거동이 어려워지자
다른 일을 하지 않은 채 수년간 간병에만 전념했다는 아내

그런 마리아와 남편이 지난해 1월 6일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음

그런데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현장 상황은 다소 의아했다고 함







이불과 베개는 물론 각종 잡동사니들에 둘러싸인 채
바닥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부부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경찰에서는 즉시 부검을 의뢰했음







두 사람의 시신이 들려주는 얘기는 몹시도 아픈 것이었음
아내 마리아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바닥에 쓰러지자
한쪽 손만을 간신히 쓸 수 있었던 남편이 어떻게든
그녀를 깨우려다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던 것
하지만 끝내 아내를 구할 수 없었던 남편의 사인은
울혈성심부전

안타까운 얘기는 이뿐만이 아니었음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
난방조차 되지 않았던 방 안에서 숨졌던 부부
안타까운 두 사람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응급관리요원의 방문 덕분이었음

그런데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활동 감지기.
센서의 움직임이 포착되진 않았지만 응급관리요원이
일주일 만에야 부부의 집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린 그 사정을 직접 만나 물어봤음








활동감지기에서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일요일이었던 12월 29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이은 휴가와 휴일이 있었던 탓에
확인이 늦어진 것으로 보임

그렇다면 다른 직원들은 없었던 걸까







혼자서 관리해야 하는 응급장비가 200명의 것이 넘는다고 함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혼자서 처리하느라 얘기 나눌 틈이 없는 담당자







사회보장 정보원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 응급 관리 요원은 586명, 관리요원 한 명당 156.2명의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다고 함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병원 이송 등의 조치를 해야 하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복지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이 말하는 고충은 더 있음







생사가 오가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고려해야 할 상황은
무수하고 책임은 오직 담당자의 몫이라는 것








단칸방에서 함께 죽음을 맞은 창원 모녀 사건과
방배 모자의 비극이 알려진 뒤 지자체에서 내놓은 대안은
또다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발굴하겠다는 것이었음

하지만








2013년 서울형 기초보장 제도를 만든 서울시의 경우
2018년까지 수급자를 19만 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시행 이후 결과는
수급자 6천여 명이 늘어나는데 그쳤음
급여 기간을 제안하고 중복급여를 막으며 진입장벽을 높인 탓임
법도, 제도도, 시스템도 있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죽음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걸까











숨지기 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필리핀에 갈 거라고 했다는 마리아 씨
하지만 이제 그녀는 두 번 다시 고향의 가족을 만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가난한 삶이 얼마나 고독했을지 미처 돌아보지 못해서
차디찬 단칸방에서 맞이해야 했던 쓸쓸한 죽음을
빨리 발견하지 못해서
이제 와 해줄 수 있는 게 애도뿐이라서

정말 미안 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 말을 전한 이들은 더 있었습니다.








창원은 단칸방에서 숨진 수정 씨의 죽음을
이제야 알아 정말 미안하다는 친구들








어머니의 시신과 한 계절을 보내고 노숙을 하고 있었던
방배동 동욱 씨의 사연을 뒤늦게 접한 이들 중에는 

우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동욱 씨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시린 단칸방 안
20cm 두께의 문 너머에 존재했지만 이제 죽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살아생전에도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해 애도 되지 못한 이름 모를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비공개카페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내새끼들떡상 | 작성시간 21.04.24 눈물난다..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파..
  • 작성자기적이일어나는강쥐 | 작성시간 21.04.26 아진짜 마음이 아프다..정말..우리나라 진짜 돈있는 사람들만 잘살아..
  • 작성자쌉분노강쥐 | 작성시간 21.05.28 아 진짜 눈물 난다 ...... 아 속상해
  • 작성자주문하신아이스라따 | 작성시간 22.08.30 진짜 너무 마음아픈 편이다... 그리고 계약직, 최저임금만 주면서 200명을 관리해라 관리안되면 네탓이다 라는 현실도 너무 추악하고 진짜..
  • 작성자갸웃 | 작성시간 23.04.02 저런 분들을 돕는 분들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니…1명당 200명이 뭐야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