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정릉이 누구 능이야~?? ->답 못한 여시들의 머리채를 잡는다.

작성자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작성시간15.08.07|조회수5,463 목록 댓글 35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여시들 안녕?

날도 더운데 그나마 오늘 갑자기 비가 와서 조금(아주 조금) 시원한 느낌이다~ㅎㅎ 

내가 얼마전에 흥미로운 검색을 좀 해봤거든! 

얄팍한 지식 함께 나눠보려고 왔어~ㅋㅋ 








건축학개론 이라는 영화 알지?

거기 나름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기억나려나~?




서연이가 강의실문을 박차고 들어옵니다.

승민의 시선! 







교수님은 수업중 자기집에서 학교 오는길을 지도에 표시하기로 합니다. 




자기는 집이 정릉이야~?

 네..

정릉이 누구 능이야?

 정조..? 정종..? 

(웃음)

(주눅..)정약용..?

(강의실 웃음)하하하하



아니 모를수도 있지 왜 우리 수지 기를 죽이고 그래욧!!!! 





헤헿 우리집도 정릉인데 ... 너랑나랑 같은동네bb 












이 장면 보면서 정릉이 과연 누구 능일까 궁금했던 여시 없나~?

나는 보면서 궁금했지만 금방 까먹었다고 한다 ㅋㅋㅋㅋ


우리 여시들도 누가 영화장면 빙의해서 

정릉이 누구 능인데~?

하면 당당하게 대답할줄 알아야 하잖아요?ㅋㅋㅋ

우리 같이 알아보자!!! 





백과사전 화질 ㅈㅅ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산87-16
















우선 성격 급한(와타시, 나같은) 여시들을 위해 답을 먼저 주자면,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입니다!! ㅎㅎ 






우선 태조 이성계에게는 당시 풍습에 따라 원비인 향처(고향에서 얻은 부인)와 계비인 경처(서울에서 얻은 부인)이 있었는데 

향처가 신의왕후 한씨, 경처가 바로 신덕왕후 강씨였어. 

태조와 신덕왕후 사이에는 방번, 방석, 경순공주를 두었고 금슬이 좋았다고 해. 



사이좋은 한때 












그런데



사랑하는 신덕왕후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ㅠ



태조는 눙물을 꾹 참고 궁에서 가까운 황화방(지금의 정동, 주한영국대사관자리로 추정)에 능을 조영하고 

밤낮으로 그리워했대 ㅠㅠ 정릉이라는 이름도 붙여줌 꺼이꺼이 ㅠㅠ 

또 능 동쪽에 흥천사라는 절도 세워 자주 왕래했고 

아침에는 흥천사의 아침종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아침 수라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이어질  조선 역사의 비극 알잖아?





왕자의 난으로 방번, 방석은 죽고 원비인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

안그래도 생전에 태종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신덕왕후의 묘를 태종이 가만둘리가 없었어 ㅠ




 


아버지가 멀쩡히 눈뜨고 계시는데도 정릉을 옮겨버림!!!! 

아주 막나감 



이렇게  유일하게 사대문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정릉 자리로 옮겨버렸어!! 

(ㅠㅠ 개인적인 감정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 모...)

이빨빠진 호랑이가 된 이성계는 그 모습을 지켜만 봐야했고ㅠㅠ




또 세도가가 정릉의 나무를 베어 집짓는것을 허락하고 

능의 병풍석을 청계천 광통교 복원에 사용하기도 해서 백성들이 밟고 다녔고 

그밖의 목재, 석재등은 태평관을 짓는데 쓰도록 하기까지... ㅠㅠ 


게다가 원래 이성계가 정릉을 만들때는 자신이 들어갈 자리까지 함께 마련해 뒀었는데

태종이 순순히 그곳에 묻어줄리 없어서 그냥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해(유언으로 남김) 

태종은 이 마저 거리상 이유로 들어주지 않고(제사지낼때 힘듦) 대신 봉분을 고향땅의 흙과 풀로 덮어주는걸로 타협함(고오얀놈!!) 

(어디선가 보니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고향 흙을 가져와 덮어드렷다는데 미화 쩔 bb)


결국 태조는 홀로 건원릉에 묻히는 쓸쓸한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연산군, 정종과 함께 조선왕조에 3대 단릉(홀로 묻힌 묘)의 주인공이 됩니다.ㅜ


또한 태조를 모실때 신덕왕후의 신주는 모시지 않고 신의왕후의 신주만 모셔서 

대외적으로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켜버림!! 











그 후 정릉은 일반릉이 되어 푸대접을 받다가 

260년이 지나 현종때에 송시열의 상소로 복권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재조성됩니다. 




어휴 죽어서도 가만두질 않는구나 

그놈의 명분밖에 모르는 조선왕조는... ㅠ 






영화에서 승민과 서연이 정릉을 답사하는 씬

위에 빨간 홍살문부터 정릉의 시작이야!







그리고 신덕왕후와 태조 이성계 사이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어!

이건 나도 이번에 검색해보면서 알았는데 ㅋㅋ

주된 내용이 아니니깐 접어둘게!

관심있는 여시들은 읽어봐도 좋을거야^^ 


버들잎 설화 알지??

지나가던 장군이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 한바가지를 요청했더니

아름다운 아낙이 급히 마시면 체한다고 버들잎 하나를 띄워줬다는 다소곳한 설화! 





이 이야기 듣고 아~~ 하는 여시들 많을거 같은데ㅋㅋ

나도 그랫거든! 근데 이상한게 이성계가 아니였던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드는거야!! 

그래서 또 검색해 봄 ㅎ


같은 설화가 두개더라구 

둘다 고려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왕건의 이야기였음 



우선 이성계의 버들잎 설화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던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마침 그 우물가에 한 여인이 있었다. 이성계가 그 여인에게 물 좀 떠 달라고 청하니,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뜨고나서 버들잎 한 줌을 물 위에 띄워주었다. 이에 이성계는 이 무슨 고약한 짓이냐며 나무랐다. 여인은 갈증으로 급히 달려온 바, 냉수를 마시면 탈이 날 것 같아 버들잎을 불며 천천히 마시라고 일부러 그리했다고 수줍게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내심 감탄한 이성계가 그 때서야 여인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여인의 미색이 아주 빼어났다. 여인의 지혜와 미모에 이성계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 바로 그 우물가의 여인이 강씨였다




이번엔 왕건의 버들잎 설화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을 찾다가, 나주 금성산(錦城山)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 구름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 곳으로 달려갔다.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태조가 이상히 여겨 버드나무 잎을 띄운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장군께서 급히 물을 마시다가 혹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하였나이다" 하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이에 감동한 태조가 그의 아버지를 찾아 가 청혼을 하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는데, 처녀는 왕건이 찾아 오기 며칠 전에 이미 황룡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 두 설화에서 보면 우선 공통점으로 버들잎이라는 매개체가 있지! 

버들잎은 지방의 유력 호족세력과의 결탁을 뜻해 

다른점은 왕건의 버들잎 설화는 장소가 구체적이고 결혼까지의 내용이 나와있지만 이성계의 것은 그렇지 않지 

이걸보면 왕건과 달리 이성계는 만남이 없이 정략결혼을 했다는걸 알 수 있어 

신덕왕후와 이성계의 나이차도 21살이나 났는데 저렇게 폴인럽하기는 어려웠을거 같... ㅋㅋㅋ


사실 왕건의 버들잎설화가 구전되어 오다가 나중에 둘다 계비이고 호족세력과의 결혼이라는 공통점에서

이성계의  버들잎설화를 후대에 만들어 냈다고 해



혹시나 나처럼 헷갈리는 여시들을 위해 첨부해봤어^^








사실 결론은 

서연, 승민이 살던 정릉은 신덕왕후 강씨의 묘다!!!

정약용의 묘가 아니다!!!

인데 하나하나 알아보다보니 이것도 공유하고 싶고, 저것도 공유하고 싶고 하는 마음에 글이 길어졌당 ㅎㅎ


덥지만 다음주부터는 조금 선선해진다고 하네?(said 기상청-반신반의할 것)

사실 내가 며칠 전에 선릉공원에 다녀왔거든~! 

정릉동 정릉에 관한 이야기도 여기가서 알게됨 ㅋㅋㅋ 

더운날이긴 했는데 그래도 푸른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걷다보니 

주변 푸른색도 시원하고 공원안에 풀냄새 맡으며 지나는 그늘도 참 시원해서 좋더라구!

그 시끄럽던 매미소리도 그 안에서는 조화롭게 들리더라 :)

개강전에 공기좋은 유적지에 가서 기분전환한번 하고 오는것도 좋을것같아 

남은 방학 잘 보내구~



그럼 이만 마칠게 안녕~^^/ 





추가로 삼성동에 있는 정릉, 선릉이 누구 묘인지도 궁금한 여시는 열어보기!! ㅎ 





주변에 살면서 선릉공원이 왜 가끔 선릉, 삼릉, 선정릉 으로 불리는지 궁금은 해도 딱히 찾아본적은 없었는데 

선릉 안내소(?)들어가서 읽어보니 알겠더라 ㅋㅋ 


우선 삼릉공원안에는 3인의 묘가 있어->그래서 삼릉

선릉은 성종과 계비인 정현왕후의 묘 이고

(왜 원비가 아닌 계비와 함께 있는지는.. 아마 원비인 공혜왕후가 후사 없이 승하하셔서 그랬을거라 추측...온리 내 생각...)


정릉은 중종의 묘야. 중종의 묘는 단릉, 즉 혼자 묻힌 묘야. 

이유인즉 원래 중종은 승하하고 인종의 생모인 장경왕후와 희릉에 묻혔었어. 

그런데 문정왕후(알지? 여인천하 전인화!!)가 지금의 장소로 이장하고(선정릉) 자신도 거기에 같이 들어갈랬다가 

한강범람등의 자연재해로 이장론이 대두되어 결국은 같이 묻히지 못하고 태릉에 묻혔어ㅠ 

그래서 미리 옮겨졌던 중종은 홀애비마냥 단릉에 묻히게 된거지;; ㅎㅎ 














나만 흥미돋일시 

오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iraL h@ CO. jappa jyeot Ne | 작성시간 15.08.07 이방원 진짜 나빴다ㅠㅠ
  • 작성자닉첸첸닉첸첸 | 작성시간 15.08.08 엄마가 정릉 지나다 갑자기 물어봐서 대답을 뙇..! 해드렸징..
  • 작성자해커스토익 | 작성시간 15.08.08 잘봤어 언니ㅎㅎ!! 근데 윗부분에 태조가 연산군 정종과 함께 조선왕조 3대 단릉의 주인이 된다고 써있는데 정종 묘도 단릉인거야?!
  • 답댓글 작성자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8.08 으아 ㅜㅜ 내가 오타냈어 ㅠ 정종이 아니라 중종이야 ㅠㅠ 태조, 연산군, 중종!! 정종 중종을 머리에 염두해두고 있다보니 헷갈렸오 ㅠㅠ 내일 수정할게 ^^;; 고마워!! ㅎㅎ
  • 작성자심장떨려 | 작성시간 15.08.08 와 완전 싱기해!!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