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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투브
통일 민주화 운동가, 故문익환 목사
그의 아들, 배우 문성근
늦봄 문익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아버지의 시를 낭송하며 연기력 폭발하는 문성근
<잠꼬대 아닌 잠꼬대>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 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 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그래. 그 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 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 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 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면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적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구.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1989년 첫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