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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역사타임] 조선왕조 왕들 가운데 사인이 의심스러운 왕들의 리스트 (2) 조선후기편!

작성자오기륭|작성시간11.12.21|조회수2,184 목록 댓글 7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1. (왕은 아니지만) 소현세자

 

소현세자의 공식적인 사인은 '학질' 이야. 이게 흔히 말하는 위장성 소화불량 설사병 뭐 이런거로 볼 수 있는데 고열을 동반해.

당시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의 볼모생활을 갓 끝낸 상태였고 다들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 조선이

많이 발전할거라고 기대를 한 상황이었어. 그런데 반정세력이었던 서인들을 비롯 아버지인 인조마저도 소현세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를 않았어. 특히 인조의 경우에는 아들이 청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을 내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극에 달해있었나봐.

그러던 와중에 소현세자가 병에 걸렸고 당시 어의였던 박군이 소현세자의 병을 학질이라고 진단한지 4일만에 소현세자는 죽어.

모두가 소현세자의 독살을 의심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아. 누구보다 어의를 죽이려고 했어야 정상이었을 아버지인 인조가 오히려

어의를 두둔하고 나섬. 그리고 인조의 계비였던 장렬왕후 조씨의 남동생의 부인(즉 올케)가 소현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소현

세자의 시신 상태를 발설을 했는데 대략 그 내용이 이래. 세자의 온 몸의 살들이 검게 변해있었고(독살의 가장 전형적인 징후)

염을 하기위해 시신을 옮기는데 살들이 물러져 손에 묻어나왔다. 그래서 모두가 소현세자는 독살을 당했다고 한것.

 

소현세자의 섹션이 좀 길어지는 경향이 크지만, 인조가 소현세자를 얼마나 싫어했냐면 소현세자가 죽은 후 얼마 되지않아 인조는

자신의 며느리이자 소현세자의 세자빈이었던 세자빈 강씨를 역모죄를 뒤집어 씌워서 서인으로 폐서인 시킨 후 감금해. 그리고 얼

마 지나지 않아서 강빈이 인조의 수랏상에 올려진 전복을 이용해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서 죽여버리지. 무려 끝까지

무고했던 강빈을 두둔한 시녀들 또한 강빈이 죽게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시키는대로 강빈이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고 말을

하게 돼. 더 심한건, 인조는 소현세자와 강빈 사이에 태어난 아들 3명 (석철, 석린, 석견) 을 모두 제주도로 유배보내. 무려 10살을

겨우 넘긴 아이들은 제주도에서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원손이었던 석철은 풍토병으로 죽고 석린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어.

막내인 석견만 겨우 살아남아서 대를 이어가게 되지.

 

 

 

2. 효종

 

소현세자의 자리를 채운 이가 바로 인조의 차남인 봉림대군 효종이야. 효종의 공식적인 사인은 종기로 인한 사망인데 외부 압력에

따른 독살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고 당시 효종의 담당 의관이었던 어의 신가귀가 침을 잘 놓는다고 해서 곁에 두었는데

알고보니 이 신가귀가 수전증이 있는(...) 의관이었데. 결국 신가귀는 효종의 혈맥을 잘못 건드려서 종기를 더욱 악화시켰고 그것

을 무마한다고 다시 침을 놓다가 결국 효종을 사망에 까지 이르게 하지. 뒤를 이은 아들 현종이 노발대발해서 즉위하자마자 신가

귀를 사형시켜버렸다고 해.

 

아, 그리고 효종의 경우에는 키와 덩치가 좀 큰편이라 죽어서도 수모를 겪은 경우인데 보통 왕이 죽을 즈음 되면 관을 맞추는데

효종의 경우에는 정말 '급사' 한 거라서 노멀 사이즈로 관을 가져왔더니 효종의 시신이 관에 들어가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관을

뜯어서 나무 판자로 대강때워서 시신을 안치했다고 해.

 

 

 

3. 현종

 

효종의 아들인 현종도 독살설을 피해가지 못했어. 현종시대 하면 보통 이렇다할 치세에 대한 기록보다는 남인과 서인이 상복문

제를 두고 15년간을 싸운 예송논쟁 시대의 임금이라는 것 밖에 딱히 큰 임팩트가 없는데 현종의 사인 또한 그저 흔한 복통이지만

그간의 현종이 대부분 건강했다는 기록을 봐서는 예송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송시열이 현종의 갑작스런 죽음에 아주 관계가 없지

않다는게 그저 추측으로 도나봐. 그러고보면 아버지인 효종과 아들인 현종의 죽음이 모두 송시열과 관계가 좀.. 있음.

 

 

 

4. 경종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이야. 경종은 이복동생인 영조에 의해 독살을 당했다는 독살설이 가장 크게 먹히고 있는데 경종이 허

약하긴 허약한 편이었다고 해. 그래서 숙종이 노론의 당수였던 이이명과 독대(임금과 신하가 모두를 물리치고 단 둘이서만 이야기

를 나눔, 평소에는 사관이 동행) 를 하면서 경종이 허약하니 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해.

뭐 여하튼 이것은 다 사족이고 경종이 병석에 드러누웠을때 당시 연잉군 이었던 영조가 음식 궁합 가운데 가장 상극인 게장과 생

감을 올리도록 했다는 부분과 어의에게 본인이 직접 인삼과 부자를 같이 넣어 탕약을 올리라고 한 부분을 꼽을 수 있는데 인삼과

부자는 둘 다 열이 많은 약재야. 특히 부자의 경우에는 많이 먹을 시 독약으로 쓰임. (보통 말하는 사약이 부자탕이라고 보면 됨.)

그래서 어의들이 그 둘을 같이 쓰면 왕의 몸에 해로울수 있다고 하자 영조가 부득불 우겨서 탕약을 올렸다고. 어의들이 그런 처방

을 어디서 봤냐고 했더니 책은 기억 안 나고 그렇게 쓰면 좋다고 어디서 봤다고 대강 둘러댔다고 해.

 

 

 

5. 정조

 

여시들이 가장 많이 기다렸을 대목이겠구나. 정조의 공식적인 사인은 종기에 의한 등창 악화로 인한 사망인데 정조가 가장 많이

독살설에 휩싸이는 경우는 정순왕후(대왕대비)때문일거야 아마. 소론과 시파를 지지하면서 두루 탕평책을 고수했던 정조와 정조

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이고 정조와 상극을 달리던 정순왕후, 노론 벽파는 정조의 화성천도 계획으로 인해 그 서로간의 대립각

이 극에 달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정조가 갑자기 죽어버린거지. 사실 갑자기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랬던게 정조는 그 전부터

종기에 시달리고 있었고 쉽사리 낫지 않아서 정조의 후궁이자 다음 왕인 순조의 모후였던 수빈박씨가 민간에서 알던 의원을 데려

와 정조에게 수은 증기를 쐬게 하는 듯 극처방까지 받고있었다고 해. 여하튼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독살설이 더욱 유력하게 떠도

는 이유는 정조가 그러면서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던 와중에 갑자기 승하.

게다가 죽으면서 정조는 손가락으로 정순왕후의 처소였던 수정전 방향을 가르키며 '수정전...' 이라 읊조리며 숨을 거두었다고 해

서 더더욱 정순왕후에 의한 독살설이 강해지는 설도 있고 항간에는 정순왕후가 정조가 누워있는 방으로 탕약을 본인이 가져가겠

다며 주위를 물리라고 해 탕약을 올린 후 정조가 갑자기 승하했다는 설도 있어.

여하튼 이유가 어쨌든 정조의 죽음에 정순왕후가 가장 크게 개입해 있는건 웬지 사실인 듯한 스멜이 마구마구 나.

 

 

 

6. 효명세자

 

순조의 아들이자 명성황후에 나오는 고종의 양아버지. 대왕대비(신정왕후) 조씨의 남편이야. 그리고 헌종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효명세자의 사인은 급사로 나오는데 무엇에 인한 급사인지는 기록이 안 되어있어. 말 그대로 급하게 죽었다는 건데 효명세자 또한

독살설에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효명세자는 문과 무에 뛰어난 인물이었고 누구나 효명세자가 왕위에 오를 인재라고 판단을 하

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죽어. 그 이유중의 하나가 효명세자의 외할아버지인 김조순에 의한 독살이라고 보는데,

효명세자는 세도정치를 몹시 싫어했어. 그래서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실학사상을

공부하곤 했는데 그러면서 종종 세도정치 혁파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봐. 그 이야기가 안동김씨들의 귀에 들렸고 결국 안동김씨들

이 효명세자를 독살했다는 추측들인데 좀 많이 현실성이 있는 내용들인지라. 어찌보면 망해가는 조선의 마지막 항암제라고 할 수

있었던 효명세자인데 너무 안타깝게 죽어서 좀 아쉬움. 그리고 아들인 헌종이 그렇게 잘생긴 미남자였던 이유가 효명세자 또한

엄청 잘 생긴 인물이었다고 하더라. (소근소근)

 

 

 

7. 고종

 

다들 알다시피 고종은 친일파와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가장 유력해. 그리고 그 근거를 뒷받침 하는 이유로 그 당시 고종을 곁에서

모시고 고종이 승하 할 당시에 고종이 머무르던 함원전을 지키던 궁녀들이 없어졌다는 기록을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는지 생

각이 안 난다 쏴리. 여하튼 한상학과 윤덕영이 고종에게 올린 식혜로 인한 독살이 가장 큰 이유로 남더라고. 그리고 고종 또한 독

살 설을 뒷받침 하듯이 시신의 색이 검푸르스름하게 변하고(원래 시신의 색이 변하기는 하지만 급하게 변하지는 않음) 독살에 맞

는 시신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해.

 

 

 

 

조선후기까지 다 쪘네요잉 '-')/

다른 시대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인들이 있는 왕들이 있긴한데.... 헤헿... 요번편도 재밌다면 다른 시대도 가져오겠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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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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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오기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21 아... 어... 음... 그랬구나. 당시에는 소현세자도 거기 있을수밖에 없으니까 포로들을 아무리 환속해서 풀어줬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조선으로 돌아오기는 힘드니까 오히려 심양관 내에서 농사짓는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거던 ㅎㅎ 근데 과거는 진짜... 그건 나도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긴 함 ㅎㅎ 뭐 청나라에서 그래도 배워온건 많던데 그래서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호구잡히진 않았을텐데 생각도 많이 했공 ㅎㅎ 그나저나 강빈도 참... 대단한 여자인건 맞는거 같더라 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오기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21 그러게 진짜 이해 안 되는건 적의는 대체 만들어서 왜깝치고 다닌거야? 그거만 아니었어도 덜 미움받았을텐데.... 뭐 인조 심경이 아주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 자식이랑 며느리 손자까지 죽인건 개새끼는 맞는듯...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돈집까지 박살을 내냐;;;;
  • 답댓글 작성자자기야멍청한새나보고 | 작성시간 11.12.22 원글 언니가 쓴 글보고 놀랐는데 언니말도 일리가 있네, 소현세자가 과거주최한거나 왕비옷 미리 만들어놓은건 몰랐거든.. 큰 사냥을 위해서 발자국 소리를 줄이는 법을 몰랐던게 화근이 되었구나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 작성자Arthur Pendragon | 작성시간 11.12.21 석견이 추노에서 나온 그 귀여운 애기 아니었어 ??
  • 작성자벚꽃나무아래에서기다려볼까... | 작성시간 11.12.21 어ㅜㅠㅜㅠ 나 소현세자 팬임ㅠㅠㅠㅠㅠㅠ이거 알고서 인조 굉장히 미워했음ㅠㅠㅠㅠ시대를 잘못 탔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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