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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진정한 국모였던 마지막 황후 - 순정효황후

작성자제가 겁쟁이였어요 공주님.|작성시간15.12.22|조회수5,780 목록 댓글 2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여성시대 오페라의 유령의 개






1탄 꿈을 사서 왕비가 된 여인 - 문명왕후


2탄 버들잎 곁에 두고 언제나 나를 생각해주오 -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


3탄 잠수이별은 조선시대여도 다 뒈져버려야 해ㅗㅗ - 전등사 나부상


4탄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비운의 여인 - 의빈 성씨


5탄 장마 때문에 집이 떠내려가서 후궁 됨;;; - 수빈 박씨


6탄  될 놈은 멧돼지를 때려잡아도 됨... - 산상왕과 후녀


7탄 불꽃처럼 살다가 나비처럼 사라진 여인 - 기생 장연홍


8탄 눈이 내리는 날 흰 당나귀를 타고 그대에게 가겠소. - 시인 백석과 연인 자야


9탄  솔로의 아픔을 노래한 최초의 서정시 - 유리왕의 황조가







역사상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본명은 윤증순임




 순종이 동궁이었을 때 태자비 민씨가 죽자



열세살의 나이로 무려 스무살 연상인 순종에게 시집을 감.






태자비로 간택된 뒷얘기에는



아버지 윤택영이 황실에 거액의 뇌물을 바쳐서 됐다고는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순정효황후와 순종>






순종은 아버지 고종처럼 커피를 즐겨마셨는데



어느 날 역관 김홍륙이 황제와 태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타 넣음 개씨발



그걸 몰랐던 순종이 먼저 커피를 마심



"아바마마, 오늘 커피가 유난히 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종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이미 삼킨 뒤였음 ㅠㅠ



해서 순종은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ㅠㅠ



아이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던 어린 부인에게 평생 미안해했음...







새 태자비의 집안은 엄청난 친일파 집안이었음



특히 아비 윤택영과 큰아버지 윤덕영이 대표적인 친일파개새끼 였음










하지만 황후와 오라비 윤홍섭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음



윤홍섭은 독립운동가였는데



황후는 오빠를 돕기 위해 자신의 내탕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기도 하고,



 유학생들의 학자금으로도 몰래 주었음







순종이 즉위하고 황후가 되자



만백성이 기뻐했음.




백성들은 황후를 보고 '백옥으로 만든 관음보살'이라고 칭송함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순종과의 결혼 생활은 매우 순조로웠음.



둘은 서로를 아끼며 매우 존중해주었음



하지만 순종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외세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갔음



게다가 황후의 아비랑 백부랑 매일 같이 찾아와 합방을 종용함씨부럴








그러던 어느 날 황후가 된지 3년후인 1910년, 황후가 17살일 때 일이었음




한일합방의 조약을 맺는 어전회의가 열리는 날이었음



"폐하! 제국을 위해서라도 합방 조약을 맺으셔야 하옵니다!"




대신들은 순종을 계속 압박해왔음






황후는 모든 걸 병풍 뒤에서 듣고 있었음



합방을 체결할 때 반드시 옥새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황후는



몰래 빠져 나와 덕수궁에 갇혀 있던 고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일본 군인들이 전화선을 끊은 뒤였음








그 때 명을 받든 내시가 옥새를 가지고 지나갔음



황후는 옥새를 빼앗아 치마폭에 꽁꽁 감췄음




그러나 황후가 옥새를 빼돌렸다는 걸 대신들이 아는건 시간문제였음 ㅠㅠ



백부 윤덕영이 황후에게서 옥새를 강제로 빼앗았고,



이후 국권은 피탈되고 대한제국은 몰락하였음...






<순종의 장례 행렬>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황후는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김



이후 광복 때까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음





마침내 광복이 찾아오자



황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음



그러나 기쁨도 잠시,



 5년 후 한국전쟁이 터짐



<서울을 침공한 인민군 5사단>




인민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황후가 있던 창덕궁에 들이닥침



상궁들은 혼비백산하여 황후에게 피신할 것을 요청함



"마마! 저 해괴한 놈들이 언제 옥체를 해할 지 모릅니다



속히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황후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매섭게 뜬 채 꼼짝도 하지 않았음



마침내 인민군이 낙선재에 들이닥침




황후는 꼿꼿하게 앉은 채 인민군들에게 소리쳤음






"이 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다. 물러들 가지 못할까!"





인민군들은 황후의 위엄에 놀라 깨갱 하고 물러감






아직 정부보단 황실에 대한 인식과 존경이 강한 시대였기에 



군말 없이 물러선 것이 아닐까 싶음




어찌됐든 진짜 멋있음....bbbbbbb






하지만 이듬해부터 전세가 심해지자



황후도 피난길을 피할 순 없었음



그러나 어느 시골 농민 가족의 덕분에 무탈없이 지낼 수 있었음





마침내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황후는 다시 낙선재로 돌아가려 했음







하지만 이승만은 황후를 두려워했음



애초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아왔고



인민군을 쫓아냈다는 일화가 퍼진 이후로



황후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은 하늘을 찔렀음



게다가 전국적으로 황실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퍼져있었음




결국 이승만의 방해로 황후는 정릉 수인제에서 머물게 됨 ㅠㅠ







그러던 1960년, 전 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의 도움으로 다시 낙선재로 돌아올 수 있었음



1962년에는 정신병으로 오랫동안 일본 병원에 갇혀있던 덕혜옹주가 귀국함




덕혜옹주는 이미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아 사람을 못알아 볼 정도였는데



황후가 버선발로 뛰어나오자



황실의 예법대로 협배를 올리고 황후의 눈을 올려다보지 않았다고 함...






<1960년 내빈을 접견 중인 순정효황후>





황후는 이후 죽을 때까지 낙선재에서 지내며



소일거리로 피아노 연주를 즐겨했으며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함




그 실력이 타임지를 읽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함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장례 행렬>




그리고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에서 73세에 노환에 의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남




그리고 경기도 남양주시 유릉에 순종과 순명효황후(순종의 태자비 였으나 후에 황후로 추존 됨)와 함께 합장됨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남은 황실의 식솔들을 이끌었던 순정효황후.





격동의 현대사에 지친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기둥이고 절대적인 나라의 상징이었는지 상상이 됨



이런 순정효황후의 일대기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순정효황후

 ]

(1894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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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까미꼬미 | 작성시간 15.12.22 와 글 다읽으면서 노래도 같이끝났는데 소름이 쫙 돋았어..
  • 작성자찾았다내사랑_주녈이 | 작성시간 15.12.23 멋있다ㅜㅜㅜ
  • 작성자아이들술안주용및아빠간식용 | 작성시간 15.12.23 이런 이야기가 영화가 되어야해.. 크으
  • 작성자아나킨 | 작성시간 15.12.23 와..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아
  • 작성자H O S H I | 작성시간 15.12.23 와 노래랑 같이 끝나는데 소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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