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4&contents_id=106647
새로운 학문 경향으로서의 실학은 조선 후기 지식 풍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실학자들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고 여성의 지적 활동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지지했다. 기본적으로 실학자들도 유학자라는 태생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작은 변화가 서서히 일고 있었다. 남편을 따라 죽는 여성에 대해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여성들도 ‘다른’ 생각과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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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가장 추앙받는 여성상
이수광은 이 책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사람보다 뛰어난 점 네 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로 부인의 절개를 꼽았다.「열녀」라는 글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나섰다가 물에 빠져 자결한 여성을 소개했다. 이 부인은 뱃사공이 손을 끌어당겨 배에 태우자 손이 더럽혀졌다고 비관해서 죽었다. 이수광은 이 일을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전쟁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여성들이 왜적과 명 군사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바람에 정절을 잘 지켜온 풍속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고 탄식했다.
성호 이익(1681∼1763)은 실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인물이다. ‘성호학파’를 형성할 만큼 후대 학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대단히 컸다. 천주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각종 사회 개혁안을 내놓은 이익은 “여자는 안에 위치해야 올바르고 남자는 밖에 위치해야 올바르다.”고 보았다. 또 “부인은 아침저녁으로 춥고 더움에 따라 가족을 공양하고 제사와 손님을 받드는 일이 있으니, 어느 겨를에 책을 읽겠는가?” 하면서 여성의 책 읽기를 경계했다.
이익은 이수광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아름다운 풍속으로 신분이 미천한 여자도 절개를 지켜 재가하지 않는 일을 소개했다. 또 권씨라는 여성이 혼례를 올리기도 전에 신랑이 죽자 그 신랑을 따라 굶어죽은 일에 감동을 받아 국가에 정려를 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익은 이 글에서 권씨의 결심과 행위가 어질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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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움직임, 자결에 대한 비판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1737~1805)은 <열녀 함양 박씨전>이라는 글을 지었다. 이 글에서 박지원은 왜 과부가 된 여성들이 기꺼이 남편을 따라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뛰어들어 죽거나, 아니면 독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는지를 묻는다. 친정 부모가 과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재가하라고 핍박하는 것도 아니요, 자손이 관직에 임용되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도 왜 그런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정치적으로 실세한 남인에 속했으며 학문적으로는 이익의 학맥을 잇는 성호학파에 속했다. 정약용은 <열부론>에서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연로한 시부모와 어린 자녀를 위해 “마땅히 그 슬픔을 견디며 그 삶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귀중한 목숨을 의로운 상황이 아닌데도 버린다면 쓸데없는 죽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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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해서 더 읽어볼 수 있어욥 문제시 수정..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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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게뭔일이야 작성시간 16.01.12 지금 한국사 배우는데 조선진짜 부들부들...반만년 역사중에 겨우 500년때문에...유교.....씨빨...물론 어른공경이런건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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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친박근혜 작성시간 16.01.12 씨발ㅋㅋㅋㅋ역시 열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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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헐야시방 작성시간 16.01.12 유교심은데서 한남난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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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래된연루 작성시간 16.01.12 역시 뛰어난 사람은 학문적 정신적 틀도 알아서 뛰어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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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잠들어라얍 작성시간 16.01.12 성리학 유교의 수용부터가 잘못된거지
고려시대는 재산의 균분상속
여자도 제사지낼수있고
호적도 남자만 올라가는게아니리 태어난순이고
자유로운 재가도할수있었지만
성리학 관념론 쉬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