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김형민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암살을 보고온 사람들은 알다시피
이정재(염석진)은 친일파임
이역은 1명의 친일파를 담지않고 여러 실제 친일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1.
"물지 않으려거든 짖지도 말라"
라는 대사를 실제로 한 사람은
윤치호
염석진처럼
1897년 후반부터 독립협회에 참가해서 국민계몽운동을 했으며,
자강독립을 해야한다는 '대한자강회'를 조직함
(대한자강회는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자 이에 반대운동을 펴다 해산됨)
1912년에는
총독부가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날조한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검거되어 복역하다가 석방되기도 했음
하지만...
1920년대에는 일제의 통치정책에 이용된 친일단체와 모임에 깊이 관여했고
만주사변 직후 총독부 관료와 친일조선인 간의 친목단체인 토요회에 참여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해 일제가 전시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내선일체'의 실천기구인의
상무이사와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를 지내며 강연회에서 '반도민중의 협력'을 강조했음
1941년에는 황국신민으로서의 충성과 협력에 대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친일세력을 총망라한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으로 일제의 징병에 협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음.
1945년 일본 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에 선임되기도 했지
"따라서 물지 않으려거든 짖지도 마라"
"조선이 일본에 지배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을 남기는 친일을하심^^
2.
" 다 민족을 위해 그런거요"
라는 말을 남긴 사람은
춘원 이광수
유명한 일제시대때의 소설가임. 마찬가지로 염석진처럼 중간에 친일파로 변절함^^
자발적으로 창씨개명을 하라고 하고 ㅋㅋㅋ 대표적인 친일파로 행동하다가, 해방이후에는 백범일지와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지가 함 ;; 그러다가 염석진처럼 '반민특위'에 기소되었으나.. 뭐 다들 예상하다시피 석방됨
"다 민족을 위해 그런거요"라는 말은 반민특위에 끌려온 이광수가 내뱉은 변명이었음
3.
"해방이 안올 줄 알았지! 해방이 올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
라는 말을 남긴 사람은 .. 요즘에도 찬사를 받는
미당 서정주
서정주는 일제 말기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그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으며, 목숨을 걸고 일제와 항쟁하며 고난찬 가시밭길 속에서 산화했던 여러 의사들과 열사, 지사들과는 달리,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민족을 파는 친일, 매국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구사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있음 ㅋㅋㅋㅋㅋ후..
알다시피 일제잔당 세력들은 민족반역행위에 대한 처벌대신 면죄부를 받음과 동시에 일제강점시 쌓아올린 지위와 재력을 이용, 더 높은 직책과 더 큰 명예와 더 많은 부를 얻게 되었음은 역사적 사실이며 미당 서정주 또한 그러한 부류중 하나임.
4.
악질 친일 경찰.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풀려난 친일 경찰의 대명사
노덕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경찰로, 일제 강점기 당시 고등계 형사 겸 악질 친일 경찰로 널리 알려졌으며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친일파 경찰에서 수도경찰청 간부로 활약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반공 투사"라고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바가 있었으나 반민특위 해체로 풀려나 경찰직 복귀 이후에도 대한민국 경찰직에서 고위간부로 지내는 등의 호사를 누렸다.
아마 가장 잘알려진 염석진 모델일거임
지금 이사람 아들은 고위직하면서 잘살고있다고하네 ~
아무튼 암살덕에 친일파들을 다시한번 이름 되새기게 되서 다행이라생각함..
문제있으면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