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Zㅏ... 사실 창덕궁에 대해서는 좀 길게 써 보고 싶었어. 그만큼 하고싶었던 말도 많은 궁인데다가 우리나라의 현재 궁들은
하나같이 만신창이의 상태야. 함께 가서 이것저것 짚어주고 싶지만 없어지고 소실 된 부분도 많고 아직 복원을 하지 않고 있고,
복원할 예정도 없는 전각들도 많아서 간다고 해도 자세한 설명이 힘들것 같아서.
어제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으로 여시들과 함께 궁투어를 다녀왔어. 사실 쩌리에 먼저 창덕궁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면
정모때 모이는 여시들이 재미 없을까봐 다녀온 이제서야 창덕궁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네. 1,2편이 될지도 아니면 그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고 가도록 해염.
조선은 1392년 개국해서 고종이 1897년 조선을 닫고 대한제국을 세우기까지 605년간 이 땅에 존재했던 왕조야. 어떻게 보면 이 기
록은 신라의 1천년 왕조의 다음을 잇는 기록이기도 하지. 조선이 개국되면서 바로 세워진 궁이 창덕궁은 아니지만 개국한지 10년
이 조금 더 된 시기에 지어졌고 조선이 문을 닫고 대한제국까지 문을 닫은 상황에서도 왕족들이 머물렀던 궁은 이 창덕궁 하나 뿐
이었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 1395년 지어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된 뒤 1868년경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우지만 정작 조
선의 왕들은 경복궁 보다는 창덕궁에 더 오랜기간 머물렀고 실질적으로는 창덕궁이 조선의 법궁노릇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
라고 볼 수도 있겠지. 왕들이 경복궁에 가는 이유는 즉위식과 같은 국가대례, 외국사신을 맞을때, 종친들에게 잔치를 베풀때, 과거
시험을 열때, 창덕궁에 병자가 생겨 왕이 피해야 할때 같은때를 제외하고는 왕들은 대부분 임란전에는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머물
렀고 임란 후에는 동궐(창덕궁과 창경궁)과 서궐(경희궁)을 번갈아가며 생활을 했어. 어느 한 궁에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은 왕의 신
변을 고려한 보안 때문이라고 보면 돼.
1. 돈화문(敦化門)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야. 백성에게 도탑게 대하며 함께 화합하라는 뜻을 지닌 문이라고 보면 돼. 원래 왕궁의 정문은 입구의
정 가운데 있기 마련인데 돈화문은 창덕궁의 입구벽 중에서도 가운데가 아닌 서쪽에 위치해. 그 이유는 창덕궁의 벽의 정 가운데
를 정문으로 사용하면 산을 타고 흘러 내려 종묘까지 닫는 기운이 중간에 끊긴다고 해서 돈화문의 위치를 정가운데가 아닌 서쪽
의 끝에다가 둔거야. 종묘>왕궁 이니까. 조선은 효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국가였고 현재 왕이 머무는 왕궁보다 조상들이 모셔진 종
묘를 더 우선시 했다고 보면 돼. 돈화문은 궁의 정문이니만큼 아무나 사용하지 못 했어. 왕이 행차할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굳게 닫
혀있었지. 돈화문의 사진을 보면서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

이게 돈화문의 모습이야. 혹시 이걸 보고 좀 의아하게 느낀 여시가 있을지 모르겠어. 분명히 5칸인데 왜 양 사이드는 문이 아니라
벽인거지? 원래 돈화문은 5칸의 문을 다 사용하는 문이었는데 문 5개를 사용하는건 황제이고 제후는 3개의 문을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양 사이드의 2개 문은 벽으로 막아버렸어. 돈화문은 2층 구조이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어. 2층에는 북과 종을
두어 밤12시와 낮12시 하루에 2번 북을 쳐 정오를 알렸고 종은 파루를 울릴때 사용하기도 했어. 하지만 돈화문에 달려있던 북과 종
은 이미 두개 다 소실되어 없어지고 말았찌. 돈화문을 봤으니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
2. 궐내각사(闕內各社)
생소한 이름일거야. 궐내각사는 지금 허허벌판으로 남아있어. 복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위의 돈화문 사진 사이로 보이는 허
허벌판이 바로 궐내각사가 있던 터야. 보통 대궐이라고 하면 왕족이 사는 거처만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궁 내에도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궐내각사에는 왕이 항상 볼 수 있도록 승정원이 위치하고 있었고, 왕에게 간언을 하는 홍문
관 또한 자리하고 있었지. 그리고 궁 안의 사무를 보는 내수사가 있었고 내시들을 관리하는 내사원 또한 자리하고 있었어. 그 뿐이
아니라 왕족들의 건강을 담당하는 내의원 또한 이 궐내각사 가운데 하나로 포함이 되었지. 지금 창덕궁의 돈화문을 거쳐 창덕궁
안 으로 입장하면 정말 허허벌판일 뿐이지만 예전 왕조가 있을 당시에는 입구부터 전각들로 빽빽했다고 해.
3. 금천교(金川橋)
우리나라는 풍수지리설을 많이 신봉했고 그 풍수지리설을 가장 접목이 많이 된 곳이 바로 궁이야. 풍수지리 가운데 집을 짓는데
가장 1순위는 '배산임수' 라고 하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구도를 뜻하는데 궁 또한 그런 구도를 사용했어. 그래
서 인위적으로 창덕궁의 뒷편 백악산에 흐르는 물줄기를 끌어다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했고 이 이름을 도교에서 신선들이 사는
곳에 흐르는 이름인 '금천金川' 이라고 명명했어. 그리고 이 금천을 지나가는 다리는 금천교라고 붙였지.

금천교는 원래 지금의 위치보다 더 북쪽에 있었는데 옮긴거라고 해. 그 이유는 고종때부터 왕실에서도 자동차를 사용했고 자동차
가 좀 더 쉽사리 지날 수 있도록 다리의 위치를 지금의 위치로 옮긴거야. 지금은 메마른 물길이지만 한창 이 곳에서 궁녀들이 치맛
자락을 휘날리며 다닐때는 물이 흐르고 있었겠지? 그런데 이 금천교는 현존하는 궁의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거야. 창덕궁은
태종5년 완공되었는데 이 금천교만은 창덕궁이 불탈때도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보존 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 된 돌다
리라고.
4. 진선문(進善門)
진선문은 궐내각사와 정전(政殿) 구역을 구분하는 중문이야. 태종때에는 이 진선문에 신문고를 설치했다고도 해. 하지만 뭐 얼마
못 가서 없어졌지만. 진선문은 창덕궁의 완공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고 진선문의 뒷편에는 지금은 긴 복도식으로 복원해 놓았
지만 원래는 이 곳에는 궁 내의 호위를 담당하는 호위청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해. 그럼 이 호위청의 대장은 누가 맡았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임금의 장인인 '국구(=부원군)' 이 맡았어. 왕족에게 맡기게 되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고 그렇다고 아주
남남에게 임금의 보안을 맡기자니 영 찝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까운 왕비의 아버지에게 호위청의 대장을 맡긴거지. 그래서 임
금이 왕릉으로 행차한다거나 별궁으로 잠시 피접을 나가있는 기간 동안에는 국구가 궁 안에 들어와 숙직을 하며 궁의 호위를 맡곤
했어. 국구가 없는 경우에는 왕비의 오빠나 남동생이 맡았다고도 해.
어떻게 볼만했으려나 모르겠어. 아마도 지금같이 1편은 창덕궁의 입구와 궐내각사구역, 그리고 2편은 정전과 편전구역, 3편은 왕
족들의 거처구역, 4편은 없어진 전각들에 대한 이야기로 나눌까 하는데 재미 어... 없으면 걍 이걸로 짜지게뜸...
창덕궁은 솔직히 지금보다는 나중에 꽃피는 4월말쯤 가게되면 철쭉들이 여기저기 피어서 굉장히 예뻐! 남친이든 가족이든 손잡고
같이 투어 갈만한 아름다운 우리 궁이야!
그... 그러면 난 빠잇!
원래 내가 찍은 사진 올려주고 싶었는데 용량이 너무 커서(...) 패.. 팻흐?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미순이보고싶다 작성시간 12.03.12 [창덕궁] 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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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축덕냄새 작성시간 12.03.12 잘보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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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스펙토펙트로늄 작성시간 12.03.12 저번에 갑자기 폭설올때 갑자기 필받아서 갔었는데 지금보니 다 이해가가네~ 역시 설명을 듣고가야 재밌는거같아! 물론 그때도 재미는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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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연우(許煙雨) 작성시간 12.03.12 가고시ㅠ어 날 따숴지면 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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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밤단팥죽 작성시간 12.03.12 나 삼일절에 창덕궁 첨갔었는데!! 진짜 좋았음.ㅠㅠ 꼭 다시 가겠다고 맘먹음.. 후원은 낙엽다지고 눈 다녹고 그래서 가을에 꼭 다시 가리라고 맘먹었고.!! 진짜 경복궁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음!!!ㅠㅠㅠㅠ 사진 빨리 정리해서 올려야지.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