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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씹빨쌔끼뜰]한반도의 토종 텃새, 밥국새와 군무새

작성자카이만|작성시간17.06.05|조회수1,766 목록 댓글 3

 



밥국새[bap guk sae]


학명: jot jagaricus

멸종위기등급 : 심각한 위기종(CR)

크기: 6.8cm

식성: 잡식성

분포정보: 한반도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대표적인 토종 텃새이다.

밥국새의 이름은 수컷의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순우리말로서 '밥국~밥국~' 울어서 밥국새라 부르게 되었다.

수컷 단독으로는 먹이활동을 하지 못하고, 암컷이 먹이를 둥지로 가져올 때까지 계속 '밥국~' 운다.


밥국새는 일반적으로 수컷을 지칭하며, 암컷은 흉자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암컷보다 수컷의 깃털이 화려한 다른 종에 비해 수컷의 깃털이 볼품없다.

번식시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교배시간이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지는 암수가 같이 짓는 경우가 많은데, 수컷 혼자 지은 것처럼 으스댄다.

수컷의 성격은 포악하나 겁이 많아 덩치가 큰 다른 수컷을 만나면 날개 사이로 머리를 숨긴다. 

수컷은 변등의 분비물로 영역을 표시하는데, 꽁지 깃털에 변을 묻히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새끼는 오로지 암컷의 양육으로만 자란다.

수컷은 성체가 되어도 어미를 떠나 독립하지 않고, 다른 암컷을 만나 짝을 이룰 때까지 같이 지낸다.

외래종들과 달리 특별한 구애행동을 하진 않으나, 암컷이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한 조류로서, 밥국새의 습성은 한남의 이상을 상징하여 왔다.

따라서 그림이나 시의 소재, 구비전승에 자주 등장하였으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밥국새 타령' 이 있다.


-밥국새 타령-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이 산으로 가면 밥국~밥국~

저 산으로 가면 밥밥국~밥국~

어허~어히~어허~




군무새 [gun mu sae]


학명 : jeon jaeng na myun domang garicus

크기 : 6.8cm



밥국새의 아종으로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 사는 토종 텃새이다.

울음은 단조로우나,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극성스러운 소리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끼치는 새이다.


밥국새와 마찬가지로 겁이 많은 새이다.

평소엔 한껏 가슴을 부풀리며 세를 과시하지만, 실제 영역 다툼이 벌어지면 쉽사리 물러난다.   


한반도 북부에 사는 토종 새와는 비교적 비등하게 영역다툼을 벌이지만, 외래종에겐 맥을 못 추는 습성이 있다.

조류 연구가들은 외진 극동에 사는 군무새 특성상 외래종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없고, 둥지 안에서 방어만 했기에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영역을 침범한 외래종에게 암컷을 내어주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경우가 여러 번 학계에 보고되었다.


6.25때 군조(軍)로 활약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중공군을 만나면 도망가는 습성을 보여 전선의 구멍으로 인식되었다.



1950년 초겨울, 군무새와 처음 조우한 중공군은 군무새들이 자신들을 보고 겁을 먹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중공군은 유엔군과 군무새가 나란히 있는 전선에서 주력은 유엔군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일단 군무새쪽을 먼저 공격했다.

겁을 먹은 채로 싸우다 정신없이 후퇴하는 군무새를 따라서 중공군이 밀려내려 온다.

그 바람에 전선이 무너지고 유엔군은 중공군에게 앞뒤로 포위된다.

군무새들보다 숫자가 적은 유엔군은 죽을 힘을 다해 사수하고, 피해가 막심해진 중공군은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난다.


반년 넘게 이어진 중공군의 공세동안 내내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특히, 현리전투에선 한국군 3군단 전체, 군무새 수만 마리가 그냥 도망가는 바람에 동부전선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주력부대는 유엔군쪽으로 가고, 곁다리 중공군이 군무새쪽을 먼저 공격했다.

군무새들이 지키는 전선쪽으로 온 곁다리 중공군 중 한 부대가 얼떨결에 언덕 하나를 차지했다.

언덕 위의 수십 명 중공군을 본, 수만 명의 군무새들은 자신들이 포위되었다고 착각하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포는 군단 전체로 퍼졌고, 군단 전체가 후퇴 명령도 없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중화기들은 다 내던지고, 장교 군무새들은 계급장까지 떼고 도망갔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은 유재홍 장군에게 물었다.

"당신의 군무새들은 다 어디로 날라갔소?"

"몰르겠는데용~"


참고로 밴 플리트 사령관의 외아들은 6.25때 전투기를 몰고 북한지역으로 공습을 나갔다가 격추된 것으로 추정, 실종 후 전사처리되었다.



"중공군을 만난 국군 2군단이 뽕하고 사라졌어요!" 

"국군 6사단이 와장창 무너졌어요~숫자가 훨씬 더 적은 영연방 27여단이 대신 중공군을 막아겠는데요!" 등등....

비슷한 상황은 이미 여러 번 겪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군으로 구성된 영연방군은 원래 주둔지인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아...군무새형들...

열받은 영연방 27여단은 다섯 배가 넘는 중공군을 후드려팼다.

동시에 중공군 주력 부대가 향한 파주에선 영국 29여단이 막아냈다.

위치를 사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개고생을 한 영국 글로스터 대대는 결국 포탄이 떨어지자, 자력으로 탈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물론 앞뒤옆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다.

당시 일주일간 총공세를 펼칠 예정이었던 중공군은 500명 남짓한 글로스터부대에게 발목이 잡혀 또 계획이 무산됐다.

순순히 항복한 포로보다 끝까지 저항하다 잡힌 포로가 더 보복을 당하는 법이다.

글로스터 대대 출신 포로들은 장진호에서 포로가 된 미군들과 더불어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고난의 으뜸을 차지한다.

나중엔 공산주의 체제 선전용으로 대우가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그 이전에는 겁먹고 싸우다 후퇴하긴 해도 싸우긴 했다.

군단 전체가 별다른 전투도 없이 도망간 현리 전투 상황은 심각했다.

결국 참고 참던 유엔군측에선 현리전투 후, 더 이상은 군무새를 신뢰할 수 없고,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미 8군 사령관은 한국군 제 1군단을 제외한 모든 군단을 해체한다.

작전 지휘권도 한국군에게서 박탈한다.

전시 작전통제권은 50년 7월에 이승만이 유엔군에게 넘겨주긴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묵인하에 한국군이 어느 정도 독자적인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평상시 작전 통제권은 1994년에 환수되었으나, 전시 작전통제권은 아직 유엔군에게 있다.

6.25때 군무새들이 도망가서 그리되었다.



반년 정도 이어진 중공군의 공세시기 때, 겁먹은 군무새들로 인해 프랑스군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프랑스군은 2차 대전 때 삽질로 오합지졸 이미지를 획득했으나, 군무새에 비한다면야 인간 병기였다.

2차 대전 때 프랑스군들이 얻은 불명예는 매서운 독일 세퍼드와 싸웠기에 비교될 수밖에 없던 모습으로 보인다.


또 누구때문에 전선이 무너지고, 미군과 프랑스군은 중공에게 포위되었다.

미군과 프랑스은 4일동안 분전했으나 결국 숫자가 적은 프랑스군 쪽으로 중공군이 밀려들어왔다.

프랑스 총을 쏠 수 없을 정도로 코 앞까지 밀려오는 중공을 밤새 단검으로 찍어서 막아냈다.

이 전투로 중공의 투입 후, 밀리기만 하던 전세는 역전되어 서울 재수복의 계기가 되었다.


"부리는 호두껍질 까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쪼라고 있는 것이다"

(원문:단검은 깡통 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찌르라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엔군 사령관은 이렇게 말하며 프랑스의 용맹함을 칭찬했다.

물론 한국 군무새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사실 중공은 정예 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합지졸의 대명사 당나라 군대를 조상으로 둔 나라다.

역사적으로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점하고도 자주 지는 3대장으로 러시아, 중국, 오스만투르크가 있다.



당시 그럭저럭 겨우 준정규군 수준이었던 중공에게 군무새들은 이상하리만큼 겁을 먹었다.

중일전쟁 때 20세기에 보기 힘든 무능한 군대로 활약한 경험을 가진 병사들이 그나마 좀 나아진 상태로 6.25때 왔으나, 물론 환골탈태 수준일 리는 없었다.

 

그 꼬라지를 내내 지켜본 유엔군측 한 장군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한국은 중국에게 경외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비꼬는 거고, 우리 역사를 정확히 알고 썼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제대로 파악했다.

한남들은 역사의 거의 대부분을 중국에 굽신거리면서 살았다.

나중에 군신관계도 모자라, 부자관계로 진화시켜 모셨다.



굳이 변명하자면, 한국군 상당수는 전쟁 후에 징집되어 경험이 별로 없었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사들이 신병 위주라는 건 유엔군쪽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2차 대전 산전수전 다 겪은 병사들은 이미 퇴역했고, 그들 나이로 십대 후반의 병사들이 가장 큰 축이었다.

2차 대전으로 잔뼈가 굵은 지휘관들이 있었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군무새들은 그 와중에도 위안 둥지를 운영했다.

공을 세운 군무새에겐 위안 부대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주었다.



1951년 상반기까지 공세를 펼쳤던 중공군은 결국 유엔군을 상대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다.

실질적인 한국전쟁은 거기서 끝나고, 양쪽은 38선 근처에서 대치하며 2년동안 지루한 휴전 회담이 이어졌다.




휴전을 코 앞에 둔 시기가 되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치열해졌다.

선글라스 매니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으로 진격할 때처럼 정신차린 국군은 열심히 싸웠다.



나이를 지극하게 잡순 일부 군무새들은 휴전선의 동부전선보다 서부전선이 아래로 내려온 이유에 대해 울어댄다.

휴전을 앞두고 서부전선을 맡았던 유엔군은 열심히 싸우지 않고, 동부전선의 국군은 열심히 싸워서라고 운다.


아무리 새대가리라도 생각이란 걸 해보자~

서울과 가까운 서부전선과 산밖에 없는 동부전선.

어느 쪽에 중공군과 북한군 주력부대가 있고, 어느 쪽에 막판 총공격을 퍼부었을까?

중요한 서부 전선에 중공군만 보면 겁을 집어먹었던 국군을 과연 믿고 배치할 수 있었을까?





6.25 당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분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란 걸 아시지라?

그런 분들이 계신 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이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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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웥아원투두 | 작성시간 17.06.05 와 댄마 길다
  • 작성자퐁월량 | 작성시간 17.06.0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쟁나면도망ㅋㅋㅋ
  • 작성자대깨술 | 작성시간 17.06.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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