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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메갈) 갓치의 탄생

작성자잠오는 여시|작성시간18.03.16|조회수4,804 목록 댓글 17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megalian.com/lecture/164816


(젤 밑에 모배있름요!!)









모배)


8x년, 갓치가 조산소에서 태어났다. 아빠와 엄마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는데 갓치를 안고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아빠의 등짝을 할머니가 때렸다.
"어데서 머스마가 우노! 아 얼른 갖다놔라! 꼴뵈기 싫다! 꼬추도 없는 아 잡고 머하는 짓이고! "
19시간의 진통 끝에 겨우 아이를 낳은 엄마는 땀과 눈물 범벅이 된 채 그 장면을 보고 갓치를 안아들며 눈물을 삼킨다. 훌쩍이자 그 새를 안 놓치고 할머니가 한소리 한다.
"니는 우리 김해 김씨 명문가 둘째 며느리가 되갖고는, 어? 아들도 하나 못낳나? 까뜩이나 위에 아도 아들 못 낳아가 깝깝한데. 내는 갈란다! "
"면목 없네예, 사돈... 들어가이소. "
할머니의 말을 외할아버지가 받는다. 외할아버지는 죄인 마냥 굽신거리고 뜨거운 온돌 아랫목에 앉은 할아버지는 말 없이 담배를 태운다. 그 와중에 눈물을 삼키는 엄마의 이마를 외할머니가 닦아주며 나직하게 말한다.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니 섭치 마라. 니 잘못 아이다."
그게 갓치가 태어난 날의 모습이었다.


갓치의 첫기억은 6살이었다. 갓치는 부모님을 따라 먼 경상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급박한 경제 성장의 막바지 고층 아파트가 쉴새없이 올라가는 때, 유난히 유괴 사건과 인신매매 사건이 많았다. 무서운 뉴스와 눈뜨고 코밴다는 서울 생활에 갓치 엄마는 갓치를 혹여나 잃을까 목에 갓치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각인 된 작은 목걸이를 걸어주었고 유치원에서 보내준 통신문을 보고 갓치의 가방에 커다랗게 갓치 이름을 써주었다.
"갓치야, 혹시 무서운 아저씨가 갓치랑 동생이 놀이터에서 노는 데 엄마아빠가 부른다고 가자고 하면 안된다고 해야 해. "
갓치는 고개를 듬직하게 끄덕였다. 갓치에겐 어느새 4살 난 남동생이 있었고 갓치는 누나기 때문에 남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동생과 유치원에 갔다 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두꺼비집을 만들 때 한 남자가 갓치의 이름을 불렀다.
"갓치야! "
돌아보니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에 온 아빠 친구를 닮은 것도 같았다. 남자는 한 번 더 갓치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아는 걸 보니 아마도 아빠 친구가 맞나보다 했다. 남자의 앞으로 뛰어가자 남자는 아빠가 선물을 주라 했다며 자기차로 가자고 했다. 갓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라 갔고, 곧 갓치의 팬티 속으로 남자의 손이 뱀처럼 들어갔다. 남자는 씨익씨익 거칠게 담배냄새 나는 숨을 쉬었다. 무서움에 갓치가 울기 시작하자 남자는 갓치를 내버려두고 도망 갔다. 갓치는 엉엉 울다가 놀이터로 돌아왔는데 갓치가 사라져 우는 동생을 보고는 동생을 두고 가서 엄마가 혼내겠단 생각에 동생을 안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흙투성이가 된 갓치와 동생에게 간식을 주었고 뭐하며 놀았냐고 물었지만 갓치는 그냥 두꺼비집 지으며 놀았다고만 하고 말았다. 갓치는 그 후로 주차장엔 얼씬도 않았다.


갓치는 어느샌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너는 남자, 나는 여자. 얼핏 보면 유치원생과 다를 바 없이 자그마한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은 속은 어엿한 어린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분홍색 가방과 옷,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가방과 옷을 입고 짝을 지어 앉았다. 갓치는 이모로부터 헬로키티가 그려진 빨간색 가방을 작년 초등학교 입학식 때 선물 받았다. 그리고 아침이면 조는 갓치를 앉혀두고 엄마는 정성스레 분홍색 리본이 달린 머리끈으로 머릴 묶어주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갓치는 초록색 바지를 입고 로보트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로보트 운동화는 할머니가 동생에게 주겠답시고 샀던 건데 너무 큰 걸 사는 바람에 아직 어린 동생이 못 신던 운동화였다. 갓치는 로보트 만화를 좋아해 매일 오후 6시 15분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곤 해서 내심 그 운동화가 신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갓치에겐 사주질 않았다. 그런데 마침 갓치가 발이 크는 바람에 전에 신던 빨간 구두가 발에 안 맞았고, 엄마에게 구두가 안 맞으니 동생의 운동화를 신어도 되냐 묻자 동생이 옆에서 흔쾌히 누나에게 줘! 라고 답한 적에 신을 수 있게 있었다. 갓치는 즐거운 맘으로 학교엘 가서 남자아이들에게 신발을 내보였다. 흰색 바탕에 남색의 벨크로가 있고 로보트가 멋지게 나는 모습이 옆에 그려진 신발이었다. 걸으면 불빛까지 났다. 멋진 신발이었다. 그런데 부러워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 남자아이가 외쳤다.
"너 남자야? 파란색 곤색은 남자색이라고 우리 엄마가 말했는데! "
"맞아. 여자색은 분홍색인데! "
한명이 말한 것 때문에 교실이 삽시간에 참새들 아침에 지저귀듯 시끄러워졌다. 잠깐 아이들이 노란색은 그럼 남자색이냐 여자색이냐 의아해 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처음 말한 남자아이의 말이 답이 되었다.
"갓치 너는 이제 남자다! 남자야! 너는 남자색 옷 입었고 신발도 로보트야! "
"갓치는 여자니까 구두 신거나 네티 신발 신어야 해. "
"로보트는 남자만 하는 거야! "
아이들 모두 남자아이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그 속엔 여자아이들도 섞여있었다. 갓치는 화가 참을 수 없이 나 와락 남자아이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마구 때리고 발로 찼다. 남자아이도 질 새라 마구 주먹으로 갓치를 때렸고 갓치는 구석에 몰렸다. 순식간에 큰 소동이 일었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담임 선생을 찾아 불러와 소동은 곧 가라앉았다. 갓치는 벌로 한 시간이나 교실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야 했다.
"여자아이가 말야, 응? 남자애도 아니고 남자앨 때려? 응? 응? 갓치 너는 여자애가 왜 그리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니? 지난 번 지혜는 일섭이를 괴롭혔어도 손톱으로 꼬집은 게 단 데, 너 태권도 하니? 무슨 여자애가 그래? "
중년의 여자 담임은 끝이 가늘어지는 굵은 지휘봉으로 꿇어 앉은 갓치의 무릎을 큭쿡 찔러댔다. 갓치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화를 나게 한 남자아이는 머리가 다 엉클어진 채로 자기 자리에 앉아서는 메롱 하고 혀를 내보였다. 왜 나만 혼나지?
"너는 여자애가 되어서, 응? 싸움이나 일으키고 말이야. 친구들끼린 사이좋게 지내야 돼, 안 지내야 돼? 응? 갓치 니가 처음부터 잘못 한 거니까, 응? 손 똑바로 들어! "
남자아이를 화가 나 마구 때린 것은 갓치여서, 갓치는 그래서 내가 혼나는 구나 했다. 하지만 역시 이유를 모르게 억울해서 닭똥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로보트 신발을 다시 동생에게 주었다. 당장 신을 신발이 없어져 갓치는 며칠 동안 빨간 구두에 발가락을 오므려 신고 다녔다. 다음날 빨간 구두를 신은 걸 본 남자아이는 이제 여자냐며 빈정거렸다.



갓치가 육학년이 되었을 때 갓치는 또래에 비해 성장이 조금 느렸던 탓에 남들은 모두 브레지어를 하고 있었지만 브레지어를 하지 않았다. 아직 가슴은 몽우리만 진 듯 했다. 키도 남보다 조금 작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큰 걱정은 않는 듯 했지만 간혹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끝내고 과일을 먹는 중이면 이런 대화가 오고가곤 했다.
"갓치 친구 영미는 벌써 키가 160이라데. 갓치는 아직도 이렇게 작아서 어쩐대? "
"됐어. 원래 여자앤 좀 작아야 맛이지. 우리딸 그렇지? "
"아빠, 누나랑 나랑 키가 거의 똑같다. "
"그래, 우리 아들 멋있다. "
갓치의 아빠는 딸을 사랑하는 아빠였다. 갓치가 앞에 서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 예쁘다 우리딸 하고 안아주는 그런 멋진 아빠였다. 갓치가 잠결에 아빠 엄마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빠는 갓치가 초경을 하면 파티를 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갓치는 아빠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 당연히 들어줄 줄 알았다. 아빠는 나 갓치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꽃팔찌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풀피리 부는 법이나 낚시 하는 법도 가르쳐준 아빠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평소 자기가 태권도 검은띠에 삼단이나 된다며 뻐기던 키가 크고 뚱뚱한 겨둘레햄(원래는 배둘레햄이라 불렸는데 겨드랑이에 털이 난 걸 누군가 보곤 겨들레햄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은근히 그것을 뻐겼다)와 그 곁에서 항상 촐삭거리며 여자아이들의 브래지어를 뒤에서 잡아당겼다 놓는 장난(?)을 쳐대는 촉새란 남자아이가 심한 장난을 쳐서 갓치가 운 일이 있었다. 말 하면 혼내 줄 거야.
"아빠 나 학교에서 겨둘레햄이랑 촉새가 있잖아. "
"우리딸 참외 깎아서 아빠 좀 줘라. "
갓치는 아빠를 사랑했다. 갓치는 말을 멈추고 작은 손으로 커다란 참외를 들고 과육 반 껍데기 반 엉성히 깎아서 내밀었다. 아빠는 "이거 껍데기에 붙은 살이 더 많잖아? 우리딸 그래도 참외도 깎고 참 잘한다! " 웃으며 갓치를 끌어와 엉덩이를 툭툭툭 치고는 꼬집었다. 갓치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아빠의 손을 치우곤 다시 말을 이었다.
"촉새가 내 등을 막 꼬집었단 말이야. 그리고는.. 그리고는... "
생각하자 눈물이 왈칵 나려 했다.
"겨둘레햄이 막 촉새한테 들었다면서 내 가슴.. 가슴을 복도에서 마구 움켜.."
"이야, 저 배우 참 이뻐. "
"아빠 내 말 듣는 거야? 막 내 가슴을 막 때리고 움켜쥐었단 말이야!! "
갓치가 소릴 빼액 지르자 그제서야 아빠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돌려 갓치를 보았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냐? 원래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그래. 여자가 원래 좀 참아주고 하는 거야. 남자들은 철이 늦게 들어. "
분명히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보건 시간에 누가 내 몸을 만지는 게 불쾌할 땐 어른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갓치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려 하며 참외를 집어먹으려 하자 엄마가 말했다.
"동생도 줘야지, 갓치야. 그담에 먹어야지. "
동생은 곁에서 이미 참외를 집어먹고 있었다. 갓치는 포크로 참외를 찍어 동생에게 주고 엄마에게도 주었다. 그러자 남는 참외가 없었다. 참외를 하나 더 가져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가 그릇과 칼을 정리하더니 갓치에게 주었다.
"씽크대 담가놓으렴. "
별 일 아니었나 보다. 갓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건 동생뿐이었다.



갓치는 중학교를 여학교로 진학했다. 유치한 남자아이들이 꼴보기 싫기도 했고 여중 교복이 유난히 예뻤다. 초등학교 때 분홍색 치마의 여중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지나가면 두근두근 했다. 지금은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사립이라 동네에선 나름 명문중으로 통하기도 했다.
여중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여자아이들끼리만 있어서인지 오히려 왈가닥이 되어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다니며 술레잡기 하고 말뚝박기를 하고 재미있었다. 사춘기가 온 갓치는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새끼손톱에만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하고 서로 틴트를 발라주기도 하는 등 얼굴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갓치는 절친해진 친구를 따라 학교 배구부 연습에 구경 가게 되었다. 친구가 배구부의 어떤 언니가 멋지다며 호들갑을 떨어댄 탓이었다. 배구부 언니들이 무섭고 멋있단 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하교길에 배구부 연습을 구경가는 건 학교에선 왠지 누구나 한두번은 해보는 것이었다.
"저 언니야! "
친구가 가리키는 곳에는 8번 등번호가 새겨진 한 고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눈에 띄게 175cm는 될 듯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하고 약간 긴 커트머리를 한 흰 얼굴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딱 그 아이만 보일 정도로 유난히 잘 생겼었다.
"와.. "
"그치? 멋있지? 저 언니 3학년 9반이래. 진짜 멋있어! 나 저 언니 팬할 거야. "
"예쁘다. "
뛰어오른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순간 귓볼에 까만 피어싱이 보였다. 그날로 갓치는 매일 종례시간에 교실에서 체육관을 내다보며 배구부 연습이 있나 없나 보고선 연습이 있으면 한걸음에 내달려 가 연습을 구경했다. 운좋게 연습이 일찍 끝나면 갓치는 그 여자아이가 갓치가 앉아있는 스탠드 앞을 지나쳐 샤워실로 가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도 있었다. 말 한마디 못 해봤지만, 어느 순간 갓치의 눈길을 따라 그 여자아이도 갓치의 시선을 눈치채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점차 늘었다. 가끔 운동 하는 중 눈이 마주치면 여자아이는 갓치를 향해 미소짓기도 했다. 갓치는 두근거렸다.
"성교육 시간이라, 강사님이 오셨으니까 4반 망신 시키지 말고 수업 잘 듣고. 알았지? "
성교육 시간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다들 이구동성으로 좋은 건지 쑥스러운 건지 모를 야유를 내질렀다. 성교육 강사라는 사람은 갓 서른 초중반의 젊은 여자였다. 강사는 칠판에 자궁과 난소, 고환과 남성기 등을 그리며 이러저러한 설명을 했다. 뻔한 이야기에 다들 조는 분위기가 되고, 곧 영상이 텔레비전에 나오기 시작했다. 낙태 영상이었다. 태아가 낙태 기구를 피해 움직이다 조각이 나고, 차가운 철제 의료기구 위에 조각난 태아 몸이 맞추어지는 무서운 영상이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급기야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갓치는 눈을 질끈 감고 보다 결국엔 업드려버렸다. 아기가 너무 불쌍했고 저 아기를 낙태하는 엄마가 미워졌다.
"봤죠? 아기가 집게 피해서 막 도망가는 거. 그런데 여기서 생리 안 하는 사람 있어요? 열다섯이니까... 아직 안 해도 괜찮아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생리한다는 건 뭐죠? 생리를 한다는 건 아기를 임신할 수 있단 거에요. 그래요. 여러분은 임신을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몸가짐을 조심해야 해요. "
강사는 사탕이 붙은 종이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이건 순결서약서에요.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여자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그 전에 만약 몸을 함부로 했다가 저렇게 아기를 낙태하면 어떻겠어요? 아기가 엄마 등에 붙을 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서약서는 결혼할 때까지 순결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거에요. 쓴 사람들은 사탕을 먹어도 돼요. "
갓치는 얼른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서약서에 이름을 써넣었다. 그리고 사탕을 입에 넣었다. [나 _______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부정한 관계를 절대로 맺지 않을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 사랑하는 남자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가끔 동네에서 마주치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너무 유치하고 어린데. 그 언니만큼만 멋지면 당장 사랑에 빠질텐데. 오늘은 배구부 연습이 없나보다. 갓치는 창밖 체육관을 멀리서 보며 사탕을 오물거렸다.





갓치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은 남녀공학으로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봤던 유치하고 키작은 남자아이들은 어느샌가 훌쩍 큰 키에 턱에 거뭇한 수염자국을 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들도 예전처럼 마냥 유치한 장난질을 쳐대지 않았다. 개중에는 큰 키에 제법 잘생기고 매너 좋은 아이들도 있어서 갓치의 눈길을 끄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도 못하는 계집아일 왜 고등학교씩이나 가냐며, 남동생 뒷바라지 하러 공장에나 보내라던 할머니의 구박을 생각하면 남자아이들이 아니라 책에 눈을 갖다박아야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친하게 지내게 된 남자아이가 생겼다. 여드름이 난 얼굴에 말 많고 까불거리는 아이였는데 짝으로 잠깐 있었던 게 같은 핸드폰 게임을 한단 것이 계기가 되어 친해졌다. 둘은 점심을 먹고는 머릴 맞대고 핸드폰 게임을 하곤 했다.
"갓치, 너 그거 들어봤냐? 아니지, 7반 김이슬 알아? "
"알지. 키 큰 애 아냐? 걔 좋아해? "
"아니. 걔.. 아니다. 너 여자애니까. "
말의 의미는 곧 알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김이슬이라는 아이가 같은 학교의 다른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하며 성기를 빠는 동영상이 돌고 있었다. 얼굴이 환하게 다 나오고 몸 전체와 은밀한 부분까지 찍은 영상이었다. 남자아이들끼리 돌려보던 게 어느샌가 여자아이들한테까지 돌고, 결국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김이슬이란 아이는 자기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악질적인 아이들 몇이서 동영상 정지화면을 출력해와서는 들이댔다. 김이슬은 며칠 손가락질과 수근거림 속에서 이를 악물고 등교해 하루종일 책상에 업드려있다 집에 갔지만 결국 징계위에 열리고 거기에 소환 되고서는 정학을 맞았다. 이유는 학교의 명예실추였다. 징계위가 열리는 동안 김이슬의 엄마와 아빠가 와서 왜 남자아이는 안 부르냐고 소리를 지르고 그 엄마가 무릎까지 꿇고 빌다가 동영상 본 것들은 전부 고소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댄 것이 크게 회자 되었다.
"야! 나랑도 함 하자! "
"존나 잘 빨아, 미친! "
남자아이들은 김이슬의 등 뒤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미쳤나봐. 완전 걸레야. 막 좋다고 막 그러잖아. "
"맞아. 그런 동영상이 도는 데도 비비에 아이라인까지 그리고 학교 오고. 진짜 독하더라. 하긴 걔네 엄마 봐. "
"남자애들도 너무해. 그런데 상대가 누구래? "
"박영준이라던데? "
여자아이들은 끼리 모여 삼삼오오 수군거렸다. 상대방이라고 기정사실로 판명난 박영준이란 아이는 학교에서 쓰레기영웅으로 불렸다. 남자아이들은 그가 지날 때마다 쓰영이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김이슬은 정학 일주일 만에 조용히 전학을 갔다. 갓치는 다들 너무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김이슬을 옹호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있었다. 열일곱살에 섹스라니, 잘못은 잘못이..겠지?



고등학교 삼학년을 앞두고 갓치는 설날 할아버지댁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가봤자 할아버지는 한마디도 안 하고 할머니는 기집애가 어쩌고 하며 구박만 했다. 하지만 아빠는 이미 기차를 예약 했다며 호통을 쳤고 갓치는 끌려가게 되었다.
"가시나가 책은 뭔놈의 책이가? 빨리 전이나 부치라! "
"아 고삼이라고요! "
"저저 가시나가 눈 팩 하고 눈 까디집은 거 좀 봐라! 하이거야, 지애미랑 똑같은 기 무섭다! "
영단어장을 들고 앉은 갓치를 두고 할머니는 튀김젓가락으로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 괴물같은 할망구에게 안 지겠노라 다짐한 갓치는 꿋꿋이 큰 사촌언니의 방에 앉아 책을 봤다. 사촌언니는 카톡으로 [방문 경첩 고장 났으니까 안쪽에서 잘 잠그면 할머니 못 들어온다. 니도 하다 안되면 나온나ㅋㅋ]라고 보내왔다. 하지만 그걸 귀신같이 아는 할머니는 튀김 기름 냄새니 뭐니 하며 한겨울인데 굳이 갓치가 있는 방의 창문을 죄다 열곤 방문도 활짝 열었다. 반대쪽 주방에선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굽은 큰엄마와 엄마가 전을 굽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앞에서 진두지휘를 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어쩜 저리 말이 많은가 싶다. 거실에서는 할아버지와 큰아빠, 아빠, 동생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 때문에 텔레비전 음량은 콘서트장 마냥 소리가 컸다. 동생은 이따금 주방을 흘깃거리긴 했지만 도우러 가진 않았다. 어릴 때 요리를 유독 좋아했던 남동생이었지만, 초등학교 언제쯤 엄마가 화장실 간 사이 전을 뒤집다가 바로 할머니에게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러고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돌라온 엄마에게 "소중한 김해김씨 아들을 니 내 서울에 없다고 막 부엌에 들이나? " 소릴 지르며 국자를 냅다 집어던졌다. 던져진 국자는 하필 어찌된 노릇인지 귀를 때려 엄마의 귓바퀴가 찢어져 피가 줄줄 났다. 할머니가 응급실도 안 보내줘서 엄마는 아직도 귓바퀴에 흉터가 길게 나있다. 그 후 동생은 주방에 얼씬도 안 했다. 갓치는 눈을 흘기며 패딩 모자를 뒤집어 썼다.
"밥무시소! "
상다리 휘어지게 커다란 상을 큰엄마와 엄마가 들고 거실로 나르고, 다시 작은 상을 거실로 내왔다. 큰 상에는 갓 튀긴 전들과 상어고기, 수육, 조기 등이 나물밥들과 가득가득 올라 있었다. 작은 상에도 큰 상에 오른 것들이 같이 있었지만 양은 조금 달랐고 밥도 굳은 밥이 올라간 밥그릇이 두개나 있었다. 엄마와 큰 엄마는 당연하게 작은 상에 앉았고 할아버지와 큰아빠, 아빠, 동생은 큰 상에 앉았다. 갓치는 패딩을 벗고 작은 상을 지나쳐 큰 상에 앉으려 했지만 바로 머리채를 할머니에게 잡혔다.
"니 밥 여 있다! 백정노무 자슥도 아니고 어데 남자랑 겸상을 할라 카노!"
"지금이 21세긴데 무슨 백정이에요! 족보도 쌔하얗게 새 거고, 양반은 얼어죽을... 산 거 아니에요? 할머니 쫌 고만해요! "
갓치는 소릴 빽 질렀다. 젓가락질 소리가 멈춘 그 순간 할아버지가,
"김갓치 니 뭐라캣노?"
소릴 버럭 질렀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갓치의 뺨을 그대로 날렸다. 갓치는 그대로 픽 쓰러졌다.
"니가 우리 김해 김가 집안을 망칠라고 작정을 했나! 일도 안 하는 가시나한테 밥주는 것도 할무이한테 감사합니다 해야지 어데서 바락바락 대들고 우리 집안에 먹칠하는 소릴 해쌌노? 니 나가라! "
"내가 무슨 틀린 말 했는데요? "
"갓치야 그만해라. 아버지 죄송합니다. 빨리 빌어라. "
갓치는 어느샌가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어 벌건 뺨을 쥐었다. 아빠가 일어나 할아버지를 뒤로 당기며 고갤 숙였다. 갓치는 작년에 싸이월드에 찍어 올린 족보 사진 밑에 달렸던 댓글을 떠올렸다. [김아영 : 어 이거 우리집 족보랑 똑같이 생겼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랑 나랑 친척? ] 할아버지가 함경도에서 피난 왔다는 아영이가 내 친척이에요? 하지만 말은 못 하고 말을 삼킬 뿐이었다.




"갓치는 그래서 어디어디 썼대요? "
"ㅁㅁ대 기계과, ㅇㅇ대 공학계열, ㅂㅂ대 간호계열 이렇게 썼죠. ㅂㅂ대가 간호대기도 하고, 장학금 나오지 싶어요. "
"그런데 ㅁㅁ대나 ㅇㅇ대가 더 좋은데 그쪽으로 가면 좋지 않겠어요? "
"그런데 밑에 동생이 또 곧 대학 가고.. 여자애는 아무래도 간호과가 최고 아니겠어요. 사실 제가 처녀때 간호사가 꿈이었고... 해서 쓰라고 설득하느라 애 먹었어요. "
"그렇죠. 여자는 간호사가 최고지. 갓치 성격에 순순하진 않았을텐데. "
"그래서 원서 넣고는 아는 척도 안 하고 지 방 안에만 쳐박혀 있는데, 어쩌겠어요. 엄마맘을 어찌 알겠어. 곧 다~ 알게 될 날이 올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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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ce inmast | 작성시간 18.03.16 시팔 빡쳐서 못읽겠어
  • 작성자느개비 여유증보고 발기 | 작성시간 18.03.16 아 빡쳐 하이퍼리얼리즘이라 더 빡친다
  • 작성자100000 | 작성시간 18.03.16 읽는데 속이답답하고 서럽다 일부당해본것도있어서 메스꺼워
  • 작성자ㅑ구으타재배ㅣ미키크느ㅡㄴ | 작성시간 18.08.06 서럽다 진찌
  • 작성자난 그렇게 말할수있는 사람이니깐 | 작성시간 23.04.13 2023년에 연어옴…2018년보다 더 한숨나오는 세상에서 살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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