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gloos.zum.com/jaroo/v/799145
꽤 오래전에 일하면서 라디오사연을 들었었는데, 직접 사연을 읽어주던 DJ님들 목소리랑 찰떡인데다 북한사투리도 잘 소화해주셔서
업무중에 찡한 감정을 느껴서 잊지 못하던 사연이야. 텍스트이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여시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지금보다 내가 좀 더 어렸기 때문에 북한군인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걸 상상도 못 했었기에 좀 찡했었어.
사연을 잘 읽어낸 DJ님들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읽어보기에 나름 괜찮은 게시물이 됐으면..ㅎ
개인적으론 다시 듣고 싶은 사연중의 하나야. 혹시 문제되는게 있다면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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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안녕하십니까~~장용형님. 그리고 희은누님 승환형님.
먼저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장용의 단필충 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군인들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지 어느새 2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그날 입대한분이 있다면 이제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죠.
10년 아니.. 20년이 지나도 계속 했으면 좋겠습니다.
2년 동안 수많은 청춘들의 눈물과 웃음이 깃든 추억들을 들으면서 너무나 좋은 시간들이었기에
축하선물을 드려야하는데 뭐 특별히 드릴것은없고..2주년기념으로 저두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재미없다고 사양하시는건 아니죠?
제 주특기는 1512입니다. 즉 심리전 병과입니다.
심리전병으로 전방 철책사단으로 파견되어 방송병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심리전 부대란 아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심리적으로 적군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였는데 주로 휴전선 지역에서 대북방송과 대북 선전물 살포 등의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지금은 확성기를 철거하고 중지했지만
예전엔 하루 14시간 이상 대북방송을 하면서 근무를 섰습니다.
혹자들은 (특히 승환형님) "에이~심리전병이면 방위보다도 더 편하다는데..." 이러실텐데 아닙니다.
그런 말씀 하시면 지금 육군심리전단 소속 병사들이 확성기를 남쪽으로 돌려 다시 방송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심리전단 소속으로 경기도 연천 모 사단으로 파견되어 첫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있던 GP는 북한의 GP와 약 600M 떨어진 지척에 있었습니다.
처음 GP에 들어갔을대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이 같이 혼합되어 너무나 귀가 아팠고 북한방송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3~4m짜리 초대형 확성기가 웅웅거렸고 밤에는 천여개의 소형 전구로 구성된 대형 전광판이 번쩍거려 더욱더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처음 근무서는날. 그날은 제가 일병을 막 달은 날이였습니다.
일단 심리전병은 방송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북쪽 방송도 잘 듣고 적어서 그날그날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대남방송을 잘 들어야만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억센 억양으로 우리 체제 비판하고 자기네 쪽으로 넘어오라는 되도않은 방송이었기에 그냥 대충대충 듣고있었는데 어라? 한참 북한민요같은데 나오더니만 북한 아나운서같은 사람이
"고저 우리 김일병 동지 일병 진급을 축하합네다. 앞으로 조국통일 그 번영의 그날까지 군생활 열심히 하기 바랍네다" 이러는 겁니다.
세상에나! 아니 내가 일병진급된걸 어떻게 알았지? 전 북한군에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너무나 무서워 얼른 사수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박병장님 저기 너무 무섭습니다. 어떻게 제가 오늘 일병단것을 쟤네들이 아는겁니까? 우리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는거아닙니까?"
"어휴.. 야야. 무식한놈아. 너 재네들 심리전 방송에 속고있는거야. 우리나라 성씨중에 뭐가 제일 많냐? 김, 이, 박 이잖아. 그건 북한도 똑같잖어..
아마 조금후면 이일병 진급축하 나올테고 박일병 진급축하 나올꺼야. 오늘이 1일이잖어. 일병진급한다는거 재네들 다 안단 말이야. 그냥 넘겨짚으면서 방송하는거야. 나도 처음에 박일병 진급축하 방송에 나 축하하는줄 알고 얼마나 떨었는지몰라..."
그렇게 전 두려움에 대북방송임무에 들어갔습니다.
예전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제가 있을때 우리나라 최신 유행곡을 많이 틀어주었습니다. 고향소식도 들려주고 우리체제 우월성 같은것도 들려주었지만 주로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먼저 일단 선제공격으로 신나는 트로트곡을 틀어주죠. 그런다음 오전 10시쯤 상부에서 내려온 절차에 따라 대북심리방송한 다음에
다시 신나는 최신댄스곡을 틀어주고 밤에는 잔잔한 발라드를 틀어주었습니다.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나 부모님께서 보낸편지를 읽어주면서 북한군의 감성에 호소할 때도 있고 병사들이 직접지은 시를 읊어줄 때도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동기는 대면병였습니다.
대면병이란 마이크를 잡고 원고를 직접쓰고 읽어주는 병사였는데 방송하는걸 가만히 들어보면 간혹 반말로 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친근함을 가장하기 위해서였죠.
"안녕? 내 목소리 기억나지? 오늘은 우리 남쪽에서 유행하는 노래 들려줄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 잘들어봐.. 그리고
내일은 경주에 있는 불국사에 대해서 알려줄께."
이러면서 A4용지 3~4장 분량을 1주일에 2~3회 바꾸는데 내용을 전부 외워서 합니다.
그러면 북쪽에서도 답변식으로 방송을 하고는 했죠. 물론 그쪽도 반말로 대꾸합니다.
"내레 많이들었네. 우리 노래가 더 좋으니 들어보게나 "오색 꽃봉우리"
우리 개성에 나는 유명한 인삼맛 알고있나? 몸에 정말 좋다네. 먹고싶으면 당장 월북하게. 배터지게 먹을수있다네"
대남방송은 늘 이런식이였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넘어오면 무기에 따라 상금을 지급합네다."
"남조선 동포 여러분. 오늘은 시월 아흐레. 바로 내 생일인데. 우리 수령님께서 직접 내 생일선물을 사오셨다네. 부럽지않소? 부러우면 어서 오기요~~"
가만히 들어보면 양쪽 다 유치한 면도 많았습니다. 우리측에서
"우리 오늘 점심에 갈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이러면 북쪽에서는 그날 저녁에
"우리는 갈비 질려서 안먹습네다. 세끼 갈비만 먹다보니 이가 아파 먹지를 못합네다" 이러는 방송만 나옵니다.
대북방송할 때 외래어는 사용할 수가 없어서(순전히 북한군이 못알아 들을까봐)
키스라는 제목은 입맞춤으로 바꾸어서 방송했고 분홍립스틱은 분홍 입술물감으로 바꿔 틀었구
그때 한참 인기가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란 노래의 랩을 이해못할까봐.. 친절하게 가사 하나하나 읽어주고 노래를 틀어주었습니다. 부대장님이 이선희씨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이선희 노래를 많이 틀었었는데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도 "북한군에게" 라고 바꿔서 방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이 노래 틀때 사방이 조용한데 애절한 피아노의 전주가 귀에 들릴때 괜시리 눈물도 나곤했습니다. 나중에는 북한군도 이노래 좋다면서 가사다 외웠다면서 계속 틀어달라는 부탁이 많았습니다. 북한 GOP군인들이 우리들보다 더 우리나라 유행가를 잘 안다는 것도 결코 헛소문이 아닙니다.
예전 고참들은 북한군과 방송으로 장기를 뒀다고 하대요.
장기판에 번호를 적어놓고 서로서로 말을 놓아주며 국가대항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대남방송을 듣고있는데 전 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친애하는 김형백 일병동지 애인과의 만남 3주년을 축하드립네다. 내레~ 무척이나 부럽습네다."
이런~ 맨처음 일병진급 축하방송때보다 더 놀랐습니다.
그때는 걔네들이 넘겨짚었다지만.. 이번엔 내 실명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전 순간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 여자친구가 간첩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네들이 알어."
너무나 섬찟해서 밥도 못먹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너무 무서워 후방으로 내려보내달라구 할려는데 대면병 동기가
"사실은 내가 오늘 방송원고를 썼어야하는데 잠자느라 못썼거든. 왜 고향소식 들려주는 시간이잖아. 그래서 니가 여자친구한테 보낼려던 편지 그게 옆에 있길래. 그거 그냥 읽어줬어. 그랬더니 쟤네들이 저러나봐"
그러면서 하는말이
"있잖아. 나 휴가갈지몰라... 재네들이 부럽다는 말을썼잖아. 그래서 나 방송잘했다구 휴가보내준대.."
저희는 대남방송중에 그들이 우리체제나 우리사회가 부럽다거나 그립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이런 표현이 한번이라도 나오게끔 만들면 포상을 받거든요.
그렇게 군생활하고 제대를 얼마 안남기고 GP에서 철수하는 날.
대면병 동기가 마지막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음그날따라 슬픈음악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동기가 북쪽 대면병에게
"나 이제 철수한다. 그 동안 즐거웠다. 건강해라"
"어이~~ 이제 제대해서 고향에 가는기야~~ "
"어..그래. 잘 있어. 시간이 금방 흘러가네. 넌 군생활 얼마나 남았냐?"
"아직 7년이나 더 남았스라우~~"(그때 북한 애들은 13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몸건강히 잘지내거라. 그동안 대면 잘 했다"
동기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는데 북한군 목소리는 더 떨리고 있었습니다.
"너두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살고 고향 가서 부모님잘 모시고 살그레이. 나 잊지 말라우."
순간 동기는 북한애가 말하는게 그동안 있었던 형식적인 대면이 아님을 간파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해주는 말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빨리 통일 됐으면 좋겠네. 그럼 우리 여기서 만났던거 잊지 말구. 다시 만나면 그땐. 정말 얼굴을 대면하고 긴 이야기 나누자."
저쪽에서는 한동안 말이없다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래 통일 어서 되면... 통일이 되면... 제대 정말 축하하고 잘 가라우”
저는 직접 얘기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이 안들었지만 대면병 동기는 정이 많이 들었던지 그날 저녁 펑펑 울었습니다.
지금은 들을수 없는 대남, 대북방송이지만 그때 GP나 GOP에 있던 우리 병사들 그 소리가 아마도 그리울 때도 있을겁니다. 그나저나 그 북한병사는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제대하면 농사짓는다고 했는데 얼굴은 모르지만 보고싶네요.
충성~~~~~~~~!
2005/10/23(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