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2010년 7월 13일 작성한 글을 토대로 재작성한 글입니다.
실례지만 너 국적 어디야? 뭐? 프랑스? 말레이시아? 그럼 나가도 상관없어. 이건 오롯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야.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무조건 봐줘. 부탁할게.
벌써부터 머리 아프고 흥미 다 떨어졌어?
그럼 맨 마지막으로 스크롤 확 내려줘.
너희, 아무렇지도 않게 정신대- 위안부할머니- 라고 하잖아? 부탁하건대 함부로 내뱉지 마.
위안부의 뜻은 '군인의 성적인 욕구를 채워 주며 스스로를 위안함' 이야. 쉽게 말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거지.
정신대의 뜻은 '국가(천황)을 위해 몸을 바치는 부대' 야.
고작해야 열 두살, 채 피지도 못한 어린 소녀들이었어. 다리를 벌리라 하더니 벌리지 않자 팬티를 찢더래.
그런데 위안부라고? 정신대라고?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직접 겪으신 분들은 치를 떤다고 해.
감히 내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만, 차라리 여성강제징용피해자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혹자는 일본군 성 노예라는 표현이 가장 공식적으로 쓰일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해..
아무튼 나는 이 글에서이 분들을 할머니라는 단어로만 지칭하도록 할게. 이해해줘.
긴 글을 정독하기 쉽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어.
빨간 글씨만 읽어도 이해 충분히 가능하니까, 읽다가 뒤로가기 누를 것 같은 친구들은 빨간 글씨만 후딱 읽어줘!!
`99엔은 농락' 日 후생연금 수당에 분노 폭발
후생연금 99엔(1천300원)이 웬말이냐?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 동원한 한국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1인당 99엔(1천300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은 24일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땅을 치며 오열하는 모습. 2009.12.24 scoop@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f6464 |
근로정신대 피해자ㆍ시민단체 日대사관 앞서 강력 항의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한 한국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1인당 99엔(1천300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근로정신대 출신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78) 할머니와 김성주(81) 할머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시민단체 회원 등 20여 명은 2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99엔을 정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광주에서 상경한 양 할머니는 회견 도중 감정에 북받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일부는 일본대사관을 향해 동전을 던지며 항의했다.
양 할머니와 김 할머니는 또 "내 청춘을 돌려달라. 이 도둑놈아"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려 주위를 숙연케 했다.
1964년부터 1년 넘게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는 양 할머니는 "어릴 때 일본 애들한테 '더럽다'라는 얘기를 듣고 온갖 수모를 당하며 일했는데 99엔이 웬 말이냐. 일본은 사죄하고 연금을 돌려달라. 분해서 살 수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는 현장에서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둑이다. 일본 정부는 양심에 손을 얹고 사과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 역시 "일본에 가면 중, 고등학교도 가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는데 공장에서 잠도 못 자고 일했고 월급도 못 받았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 '네 나라 돌아가면 부쳐준다'고 했다. 그런데 64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종군위안부로 오인당해 남편으로부터 구박을 받으며 살았다. 이 한을 일본은 아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여운택(88)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일본제철에서 2년간 노예와 같은 학대를 받으며 일했다. 그 결과 후생연금으로 416원을 받았다. 이렇게 슬프고 억울한 데 대한민국은 한 게 뭐냐"고 한국 정부에도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이 자리에서 회견문을 통해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1인당 99엔을 지급한 것은 또 한 번 피해자들을 농락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이 자리를 빌려 이를 정면 거부하고 일본 정부는 즉각 사죄하라"고 밝혔다.
또 "99엔 산정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서 "한일협정에 의해 모든 문제가 끝났다면서 99엔을 뒤늦게 지급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은 한일협정 문서부터 공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일협정문서공개 소송을 맡았던 최봉태 변호사는 "99엔은 터무니없는 액수다. 일본 정부는 물가지수를 고려하고 현재가치로 환산해 현실적인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끈질긴 투쟁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낸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해당자는 수십만 명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12/24/0200000000AKR20091224094700004.HTML?did=1179m
저 기사, 몇일 자 인지 알아? 2009년 12월 24일자야.
우리가 한창 크리스마스다 뭐다 들떠서 캐롤을 부르고 놀 계획을 세울 때 우리 할머니들은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리셨어.
99엔은 당시 환율로 약 1300원이야.
이 기사에는 없는데, 같은 날 중국 강제징용 노동자에 관해서도 일본이 보상금을 지급했어.
2억 5천만 엔, 한화로 따지면 32억 원이지. 그런데 할머니들은 1300원이라니, 믿어져? 더 웃긴 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야.
MBC 후 플러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배상할 수 없다는 일본 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기업에서도 배상하지 않으려는 일본 기업을
철저히 중국 진출에 반대하고 제외시켰어.
또, 희생자 전시관이나 강제노역 일본 기업들, 유골을 반환받지 못한 희생자들의 기록까지도 보관했지.
반면,
우리 정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언론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어. 심지어 한국 징용 노동자의
유해 반환에 대한 예산까지도 삭감했어. 한국 기업은 또 뭘 했지? 아리랑 3호를 발사한다, 미츠비시 중공업과 계약한다
난리를 쳐댔어. 더구나 강제동원 피해 진상위원회가 해산될 위기에 처해 있어서,
오히려 일본의 열린 분들이 유지시키라 말할 정도야.
일본 육군성이 본격적으로 체계적으로 군위안소 설치한 것은 1937년 말부터이다.
중지나방면군, 육군성 병무국. 의무국 등에서는 위안소를 설치하는 목적이나 군위안소의 경영 감독과 군위안부 동원 및 모집인원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령지뿐 아니라 격전지마다 군위안소를 설치하려는 계획도 미리부터 세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군위안소는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기거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공간이다.
위안소는 일본군 문서상 '군위안소', '군인클럽', '군인오락소', 혹은 '위생적인 공중변소' 등으로 불렸다.
위안소의 크기나 형태는 일본군이 어느 시기, 어느 지역, 그리고 점령지이냐, 격전지이냐 등에 따라 달랐다.
군부대가 주둔지에 신축하기도 하고, 원주민 가옥을 고쳐 이용하기도 했다. 부대가 이동하거나 전쟁중일 때는 군인 막사나 초소, 참호, 군용트럭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위안소에는 위안부가 한 명이나 서너 명만이 있기도 했고, 많게는 수십 명이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군이 신축한 위안소의 경우에는 간이용, 임시용으로 널판지로 칸을 막아 방이 좁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며,
방문은 담요로만 둘러쳐 있기도 했다. 파라오 등 더운 지방에서는 야자수 잎으로 대충 위안소를 만들기도 하였다.
위안소에는 일본군'위안부'와 관리자와, 그곳을 출입하는 군인이 있었다. 붙박이 위안소의 문밖에는 ㅇㅇ위안소라는 문패가 있기도 했다. 2층도 있었는데, 아래쪽에는 홀이 있었고, 위층에 칸칸이 방이 들어 있어 홀에서 대기하던 여성이
군인을 만나 2층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방 문 밖에는 방 번호나 위안부의 일본식 이름이 쓰여있기도 했다. 방안에는 위안부의 일상용품 외 삿쿠가 있었다.
위안소 안에는 군인의 군표나 돈을 받는 접수처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삿쿠와 막휴지가 돈과 교환되기도 하였다.
또한 위안소 규정과, 위안부가 군인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표시할 수있는 그래프가 벽면에 붙어있는 곳도 있었다.
또 민간관리자들은 군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일본말로 '身も心も棒ぐ 大和撫子のサ-ウス(몸도 마음도 바치는 일본 패랭이꽃의 서비스란 뜻)'이라거나 '聖戰大勝の 勇士大歡迎(성전대승의 용사 대환영)' 등의 선전문구를 써 붙이기도 했다.
또 질 세척용 소독약(붉은 색)과 대야 등이 있는 별도의 세면장이 있는 곳도 있었고, 방에 단지 대야 정도가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군막사, 참호 등에는 아무런 물품 없이 오직 위안부와 군인만이 존재하기도 했다.
위안소는 크게 일본군의 군위안소 운영방식이나 이동 여부에 따라 그 형태를 나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군직영, 군지정 위안소 등으로 구분하는데, 군위안소 운영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것이 군직영 위안소이다.
군이 감독 통제한 것만이 아니라 운영과 관리를 직접한 것이다. 여기에는 군속이나 군고용인이 운영하는 것도 포함된다.
중일전쟁 초기나 전선지역에 많이 설치되었다.
군지정위안소는 군이 설립한 위안소나 민간 매춘시설을 지정하여 경영은 민간에게 맡기고 군은 감독과 통제만 하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선 곳에 따라 현지 일본인에 의해 조직된 사업통제회, 기업연합, 실업단을 내세워 이 시설의 책임자로 삼았다.
어떠한 군위안소라도 이를 관리 감독, 통제한 것은 일본군이었다.
또 일본 육군과 해군은 각각 위안소를 둔 경우가 많았는데 위안소 운영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육군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군위안소 사용을 시간대로만 구분할 뿐 장교와 사병간의 구분이 없었다.
이에 비해 해군은 되도록 신분과 계급에 따라 장교, 사병, 군속, 인부, 관리 등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 군위안소를 이동하는지 여부에 따라 붙박이식. 이동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붙박이식 위안소는 일본이나 식민지, 그리고 일본군이 오래 주둔한 점령도시등 전투가 거의 일어나지않는 곳에 설치되었다.
-출처: 한국정신대연구소 http://www.truetruth.org/
2010년 11월 25일
日 우익단체, 서명전달 위안부 피해자에 폭언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을 들고 일본에 건너간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로부터 폭언을 당했다.
25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한.일 시민단체에 따르면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5명은 이날 낮 12시께부터 도쿄 중의원(하원) 제1의원회관 지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 서명 전달식'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회관에 들어가던 중 회관 입구에 모인 우익단체 회원들과 마주쳤다. 이들이 어느 단체에 속해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인 남성 30여명으로 이뤄진 우익단체 회원들은 길 할머니 등에게 "뭐하러 일본에 왔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 갖가지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Poplez.ne
언론기사에서 비속어나 험한 말이 그대로 나가지 않고 순화된다는 건 알고 있지?
30여 명이 작정하고 달려든 상황에서, 짐작하건대 저 정도 말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한 때 미국 하원 의원들 145명이 일본군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에 서명을 했네 어쩌네 해서 희망을 걸었지?
하지만 아직까지도 변한 건 없어. 극단적으로, 나 살기도 바쁜데 남을 나같이 보살피는 건 무리야.
내 말은, 다른 국가나 기관을 의지하려 하지 말고 너희가 먼저 생각해 보라는 거야.
일본의 만행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척 하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아니라고? 항상 저런 기사만 보면 화가 나고, 일본에 대한 반감이 솟아오른다고?
핫이슈에서만 하더라도,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글과 다른 글의 관심도를 비교해 봐.
썸남이 어떻게 해 줄 때 설레냐는 질문글에는 몇 백개 댓글도 우습지?
그런데 일본 침략을 규탄하는 글에는 고작해야 스물 네 개더라. 스물 넷.
더 힘빠지는 건, 구태여 위안부라는 주제를 감추고 이런 자극적인 제목으로 포장해야만
사람들의 눈길을 그나마 더 끌 수 있다는 사실이야..
착잡하더라.
겪지 않아서 와닿지 않는다면 너희, 나ㅇ이 사건 기억나?
그때 우리가 얼마나 한마음으로 안타깝게 발 동동 굴렀는지도 기억나?
나ㅇ이보다 조금 자란 여자 아이가 네 명 이상의 성인 남성에게 매일같이 시달린 거야.
(비유가 적절치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의 취지는 나ㅇ이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게 아니라,
그 심정을 헤아림을 바람에 비롯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주십시오.
행여 위험하다면 이 부분은 추후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현재 한국정신대연구소에 기록되신 할머니는 아흔 네 분이셔. 그 중 사망하신 분들도 많고, 대부분 70대 중반이셔.
현재 우리는 900회가 넘는 할머니들의 한맺힌 부르짖음을 무시해-방치해-왔어.
자그마치 900회가 넘어! 말이 쉽지, 900회라니,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는 피멍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처를 모른 척 해왔을까?
천안함 사건을 볼게.
나라를 위해 고결히 희생된 용사들을 위해 추모제를 공식적으로 치르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지. 심지어 대통령께서는 연설을 하다가 울기까지 하셨어.
그런데 왜 할머니들에 관해서만큼은 무관심과 미온적인 반응을 일관되게 보이고 있는 걸까?
중요한 게 바로 이거야. 우리의 의지가 필요해.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야 해.
아무리 독재정치를 펼치려는 MB라도, 침묵하는 여.야당이라도!
발광(여기서는 빛을 발하다의 의미)하는 국민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래서 바라는 게 있는데, 우리 쭉녀들이 가끔 친구들에게 이 원통한 주제를 꺼내들어 환기시켜 주었으면 해.
뭐 하나 반짝 할 때는 온 반도가 들썩이게 난리치다가도, 삼 일이면 까마득히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이번만큼은 제발 예외였으면 해.
한국정신대연구소 http://www.truetruth.org/ 에서 할머니들에 사연과 배경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e역사관이 공식 기관이라고 하니 참고해줘. http://www.hermuseum.go.kr/main.asp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e역사관에 등록된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http://www.womenandwar.net/japan_lawsign.php 이 곳에서 지금 일본에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50만명 서명 캠페인이 진행중이야. 놀랍게도 12월 7일 현재 5만 7천여 명밖에 서명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상태지... 한참 전에 시작된 운동인데 어떻게 뜨질 못하네... 참가신청서를 내거나 수요일 12시에 그 앞으로 가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역사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냐.
어쩌면 이런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문제, 이젠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지겹다면 왜 너희 눈을 가리고 있어?
별다른 거 아니야.
너희가 좋아하는 가수들 생각하는만큼만, 오늘 점심시간에 반찬 뭐나올까 생각하는만큼만 생각하자,
하다못해 애들 싸움에도 쌍방과실 따지기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용산참사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7명만이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지만,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쉬는 날이 너무 많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큰 이슈 한 번 못 되고 있다지만,
올해가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조약)를 당한지 100년이 된 해라는 것이 8월 29일 당일에도 외면당했다지만
나는 정의가 아직까지 이 사회에 건재한다는 걸 믿고 싶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봐. 칼총 든 정부 앞에 맨손으로 싸워서 민주의식을 이룩한 우리야.
이 문제도 멋지게 해결해 내리라 믿어.
+)))
Erina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http://www.womenandwar.net/1mil/intro.php에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 기금을 모으고 있다네요.
한 사람당 10만 원씩 1만 명 모금하기 운동인데, 현재 161명이 참여했군요..
나눠서 낼 수도 있다고 해요.
내가 입을 옷 한 번 사지 않는 대신 우리 할머니들께 따뜻한 마음의 외투를 한 벌 드리는 건 어떠세요?
여러분, 변한 게 없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60년을 침묵 앞에서 기다려온 분들도 계시잖아요.
콩나물 비유 아시죠?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글을 읽지 않은 친구들에게
우선, 최소한 뒤로가기 누르지 않고 귀찮아도 스크롤을 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게.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http://www.womenandwar.net/japan_lawsign.php
에서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를 촉구하는 50만 명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야.
내 친구 꽃님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말 안통하는 나라에서 몇 년동안이나 집단 강간과 폭행을 매일같이 당하다가
간신히 빠져나왔어. 그런데 우리 나라에 돌아왔더니 화냥년이래. 아무 것도 잘못 한 게 없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어.
나라 힘이 세진 이후로는 이제 신고하고 법대로 하고도 싶은데 아무도 안 알아줘.
60여 년이 넘도록 그렇게 쉰 목소리로 부르짖는 동안 주도자에게 변변한 사과조차 받지 못했고
더 황당한 건 드디어 관심을 가지나 했더니 선심쓰듯이 1,300원을 보상해 주겠대.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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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키티키티 작성시간 10.12.10 서명했다...진짜 일본은 답이없는거같아 휴.....할머니들 어떡하면좋아 마음의상처는 누가 치유해드릴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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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암내도엣지있게 작성시간 10.12.10 서명하려고 했는데 전에 서명했구나.. 우리가족이름으로 다 서명하구 왔어 ㅠㅠ 맘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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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두유두준 작성시간 10.12.10 이미 서명했구나...아무튼 저 할머님들께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클지...그걸 또 홀로 지고 여지껏 계셨다는 게 가슴아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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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시어택 작성시간 10.12.11 ..... 시간가기만을 기다리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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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메나시카즈야 작성시간 12.09.21 눈물난다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