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근우 인스타그램 (@plusratioquamvis99)
100분토론 보고 빡침 게이지 100이었는데 졈 화 풀림
맞는 말만 하는 아워근우^^7
문제 시 폭염패러감
+ 모바일 배려
스스로를 학대하고 싶지 않아서 본방은 거르고 기사랑 본 사람들 트윗만 조금 찾아보고 있는데, 정영진은 예상대로 너무 낮은 수준에서 대화를 이어가 논의 자체가 공회전했던 방송이었나보다.
정영진의 쌉소리야 놀라울 일은 아니다. 해당 방송에서 유독 잘못된 비유를 많이 쓴 모양인데, 말빨만 되고 논거가 부족한 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논증을 비유로 대체하는 것이다. 가령 이미 그는 과거 '까칠남녀'에서 데이트에 대한 경제적 보답을 바라는 여성에 대해 "매춘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어제의 비유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미러링에 대해 '여우와 두루미' 우화로 비유하며 여우와 두루미 둘 다 잘못인 것처럼 미러링도 잘못 아니냐고 주장했지만, 정확히 말해 이 사회는 수백 수천 년 동안 두루미(여성)이 먹을 수 없는 접시만 생산해오다가 두루미가 여우에게 호리병으로 대접하자 드디어 '백분토론-접시와 호리병, 위험한 이분법' 방송이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하지만 정영진의 쌉소리들에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그보단 그에게 공적 발화의 자격을 묻고 그 같은 수준 미달의 토론자들을 공론장에서 몰아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지난해 경향신문 칼럼에서 '까칠남녀'에서의 정영진을 비판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 입장이 다뤄지는 만큼 남성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실제로 이 쇼에서 벌어지는 대립각의 근본 문제를 은폐한다. 정영진의 발화가 만들어내는 것은 여성 대 남성의 대립이 아니라, 페미니즘 대 여성혐오의 대립이다. 이것이 과연 동등하게 다뤄질 수 있는 대립각일까. 여성혐오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과 불의 위에서 사회적으로 그동안 묵인돼오던 성별 간 불평등의 문제를 바로잡고 진정한 균형을 만들려는 노력이 페미니즘이다. 진화론과 창조과학 사이의 균형이 기만이고, 역사학과 환단고기 사이의 균형이 기만이며, 정치적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균형이 기만인 것처럼 페미니즘 대 여성혐오 사이의 균형 역시 기만이다. 아무리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 패널이 매섭게 반박한다 해도 이미 그 대결 구도가 이 둘이 동등하게 다뤄져도 되는 관계인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어제의 '백분토론' 역시 남혐 대 여혐의 구도로 논쟁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의 문제를 반복했다. 정말로 남혐 대 여혐이 사회적 분열을 만드는 게 걱정된다면, 왜 남혐 대 여혐의 구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백분토론'에서 여혐 문제를 다룬 적이 없는지부터 반성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런 전제(그동안 여혐에 무관심했던 공기 같은 여혐의 문제) 정도는 공유한 토론자들끼리 뭘 논쟁해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어제 최악이었던 건 정영진이 아닌 '백분토론' 제작진과 mbc다.
물론 페미니스트 중에도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이 있다. 가령 손아람 작가는 내가 정영진에 이어 황현희까지 비판하며 그들에게 마이크 자체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들을 배제하기보단 그들과의 압도적인 논쟁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의견은 존중하지만 난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압도적 논쟁'과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던 정영진과 황현희는 각각 타 팟캐스트에 나가 '까칠남녀' 제작진과 여성 패널을 비판하거나, 동영상 플랫폼에서 미투 운동을 폄하했다. 그들의 변화를 기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지어 지상파로 송출하는 게 과연 유의미할까? 쌉소리엔 딱 그만큼의 대우만 해주는 것이 공론장을 비합리성의 카오스로부터 지켜내는 방식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만약 워마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페미니즘의 당위를 전제하는 토론자끼리도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다(실제로 여성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격렬한 논쟁이라 해도 서로 공유하는 합리적 세계 인식과 공통의 경험세계의 재구성 안에서 벌어져야 하며, 안티 페미니스트는 여기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실재했는지 허구인지에 대해 논쟁할 이유가 없고, 지구가 평평한지 구체인지에 대해 논쟁할 이유가 없으며, 인류가 초월적 존재를 통해 설계됐는지(박진영) 아닌지 논쟁할 이유가 없듯, 안티 페미니즘에도 귀 기울일만한 이야기가 있을지 논쟁할 이유가 없다. 그런 가짜 논쟁을 청소하는 것 역시 공론장에 속한 언론과 지식인의 커다란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