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스타팅!
어메이징스토리 140회
글쓰기전에 미리 적는데 김홍도=샤라쿠 썰은 아니라는 주장이 더많음, 검색해보니까 아니라고 결론 난 정도??
(난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은 못함😀)
그냥 이 썰의 주장들이 흥미돋인거 같아서 캡쳐해봄
(물론 문제시 삭제...)
가부키의 주연배우들도 큰 인기를 누렸다고함
이 시기 일본의 화가들은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팔았다고 함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배우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는데
배우들의 초상화를 소장하려는 팬들에게도 외면받음
그 당시 일본의 화가들은 배우들을 미화시킨데 반해
샤라쿠는 배우들의 특징을 잡고 그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것
하지만 세계적인 화가들로부터 샤라쿠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추앙받게됨
(그냥 나래이션 받아적는거임 나 그림 잘 모름😅나 일빠아님)
그는 결국 일본의 국보급 화가로 등극하게되는데
그런데 샤라쿠=김홍도 라는 주장은 어떻게 나온것일까??
그 시작은 1998년 일본에서 출간된 한 책에서 비롯되었다
1794년 봄
정조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20대때부터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용화사로 활동했던 김홍도
산수화와 인물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에 능하지만 특히 풍속화에 뛰어난 작품들을 남겨 조선의 천재화가로 불린 단원 김홍도
사진이 없던 시절 그림은 사진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런면에서 김홍도가 적임자였던것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들의 사적을 정리한 근역서화사를 보면
김홍도가 홀로 대마도에 들어가 지도를 그려 바쳤다는 내용이 있고
일본의 고서 초등산수습방첩에도 김홍도가 일본에 들어왔다는 것이 우회적으로 표현되어있다고함
그렇게 김홍도는 부산. 대마도를 거쳐 다카마쓰로 왔을거란 주장인데
김홍도는 정조의 밀명대로 매일 산에 올라 일본의 무기정비상태를 상세히 관찰했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여비를 비롯한 활동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샤라쿠라는 가명을쓰며 가부키 배우들을 그렸다는주장
실제 샤라쿠는 1794년 5월부터 10개월간 144점의 작품을 남기고 돌연 종적을 감췄다
이는 공교롭게도 김홍도가 일본 밀탐 후 조선으로 돌아간 시기와 일치한다
샤라쿠의 작품들을 보면 '동주재 사락' 즉 도슈사이 샤라쿠 라는 낙관이있다
이는 조선인인 김홍도가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지어낸거란 주장..
그렇다면 동주재 사락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먼저 동주재의 뜻을 풀이해보면
동쪽에 있는 집 이라는 의미로 조선의 동쪽 즉 일본에 있다는 뜻이고
사 는 사능이라는 또다른 김홍도의 이름을 뜻하는것
락 은 자신이 근무하는 현풍현의 현판인 풍락헌에서 락이란 글자을 따온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조선의 동쪽섬에서 풍락헌의 현감 김홍도가 그림을 그려 즐겁다 라는 의미라는것...(ㅎㅎ)
여기서 의문점 하나
일본화가 샤라쿠가 어떻게 먼나라 고흐에게까지 영향을 끼칠수있었을까??
일본에서 당시 인기가 없었던 샤라쿠의 그림들은 도자기 포장지가 되어서 프랑스로 해외진출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브라크 몽이 발견하게 된것
그 후 샤라쿠의 작품은 세계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게됨
한낱 포장지에 불과했던 샤라쿠의 작품들이 일본에서 외면당한뒤 100여년 만에 지구 반대편에서 인정을 받게된것
샤라쿠가 김홍도라는 주장의 또다른 근거에는 그만의 독특한 손과발의 묘사방식에 있음
최근에 밝혀진 학설에 의하면 김홍도는 손발 구분 장애를 갖고있었다고 함
대신 자신의 인체묘사 단점을 풍자와해학으로 극복해 뛰어난 풍속화를 그렸음
뭐 샤라쿠도 비슷한 증상이 있는거 같다고 함
이러한 이유로 김홍도와 샤라쿠가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나온것
현재 일본에서 샤라쿠로 추정되는 사람만 30여명
김홍도=샤라쿠 썰도 샤라쿠로 추정되는 수많은 주장 중 하나로 나왔던 거...
+추가
쩌리에 샤라쿠 검색하면 글 나오는데 자세한거 보고싶은 여시는 참고될거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