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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뉴스데스크]"위안부는 어려야"…일본사료로 재구성한 '상하이 위안소' (feat. 씹빨쌔끼뜰)

작성자김지츄|작성시간18.10.04|조회수2,398 목록 댓글 10

출처 : http://naver.me/xc5uyE5i

(전략)

상하이는 일본군 성노예 범죄가 벌어진 '위안소'가 최초로 세워진 도시이자 가장 많은 수의 위안소가 존재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등에 따르면 일본 내무성은 중·일 전쟁을 전후로 각지의 경찰, 외무성, 육군성과 공모해 상하이에 위안소를 꾸리고 운영했다.

이는 상하이의 일본인 업자 나가노가 1937년 12월 이후 "육군 특무기관의 의뢰를 받았다. 육군 위안소에 작부(위안부) 3000명이 필요하다"라며 각지의 업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중략)

당시 사진을 보면 신체검사를 위해 줄을 선 사람들 가운데 흰색의 한복, 즉 한국의 전통 의복을 입은 여성의 뒷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군 군의관이었던 아소 데쓰오는 이곳에서 조선인 여성 80명, 일본인 여성 20명에 대한 성병검사를 벌인 뒤 "조선인들은 이 일에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기록했다. 또 위안소를 '위생적인 공동변소'라고 표현하며 "창부(위안부)의 질은 연령이 낮을수록 양호하다. 전쟁터로 보내는 창부는 연령이 낮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양지아자이뿐 아니라 우미노이에, 장완전 완안루, 푸동 동거우 푸상루 6호 등 상하이에는 일본군 위안소 상당수가 몰려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위안부 피해자 故김순덕 할머니는 17살이던 1938년 상하이의 한 위안소로 동원됐다. 그는 경남 의령에서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부산, 나가사키 등을 거쳐 상하이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김 할머니는 생전 "한 사람 누울 만한 크기의 조그만 방이 많이 있는 집에 우리가 가면서 일본인 여자 2명, 조선인 여자 50명쯤 되었다"며 "군인들이 와서 먹는 것, 집의 청결사항 등을 검사했다"고 말했다.

故하순녀 할머니는 스무살 무렵 광주에서 "일본 오사카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준다"던 한국인 남성 1명, 일본인 남성 1명을 따라갔다. 하지만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일본군 차를 타고 위안소로 끌려갔고, 이후 해방될 때까지 주로 육군들을 상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략)

전문 출처로
많은 여시들이 보고 관심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
요새 위안부 관련 글 너무 묻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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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앗! 느개비 신발보다 싼곳 | 작성시간 18.10.04 하 시발넘들진짜,..
  • 작성자치느치느77 | 작성시간 18.10.04 씨발놈들 고통스럽게 뒤져라
  • 작성자흰바닥 | 작성시간 18.10.04 ㅈㅍ 새끼들
  • 작성자Alisa | 작성시간 18.10.05 시발 진짜 끔찍한 족속들이다
  • 작성자SOULtree | 작성시간 18.10.05 시잘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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