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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다시, 꿈으로 돌아가도 되려나

작성자파인애플말린거|작성시간18.11.16|조회수2,102 목록 댓글 5

출처 : 대학내일 김신지에디터 https://univ20.com/92427

다시, 꿈으로 돌아가도 되려나
어떤 길로 가도 후회는 있을 거라면 적어도 좋아하는 것 옆에서 후회해야지 싶었다

2018 . 10 . 26

내 꿈은 큐레이터였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 그랬다. 엄마의 암 선고는 세상 모두가 우리 가족을 놀래키려 만든 몰래카메라 같았다. 그후 온가족이 엄마에게 매달렸다. 모든 것을 쏟아붓던 아버지와 그를 돕던 나, 그리고 동생. 1년의 투병 기간을 힘겹게 버티시던 엄마는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의 죽음은 많은 걸 바꿔 놓았다. 대부분 안 좋은 방향이었고, 나의 꿈도 그중 하나였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에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지만, 취업해서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내 꿈은 흐려져만 갔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취업을 위해 내 위에 자기소개서라는 소설을 덕지덕지 발랐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은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회사에 나의 인생을 걸고, 회사를 통해 나의 인생관을 실현하겠다 말해야 하는. 내가 이러려고 학교를 다녔던가, 모든 지원자들이 사실 돈 벌려고 회사에 가려는 건데 나만 이렇게 자괴감이 드는 것인가 싶었다.

나를 소개하는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동시에, 마지막 학기를 있는 듯 없는 듯 다녔다. 그래도 과제는 성의 있게 하자는 마음에 삼청동으로 조사를 나갔다. 예전엔 아무 일 없이도 자주 들르던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였다. 조사도 마쳤으니 얼른 집에 돌아가 과제를 하고 다시 소설도 써야 했는데,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볼까 하다 보니 이미 전시실 안이었다.

윤형근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갖가지 마음의 짐을 잠시 옆에 내려놓고, 전시실 안의 길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그림을 보고 그림을 보는 사람을 구경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역시 이거구나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를 보던 중 문득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하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 왔다고 한다.그가 느낀 에피파니(하루키는 에피파니를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고 설명한다)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림을 보다 보니 문득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겠느냐는 말이 떠오르고, 좋아하는 걸 좇다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떠올랐지만, 어떤 길로 가도 후회는 있을 거라면 적어도 좋아하는 것 옆에서 후회해야지 싶었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몰던 차의 핸들을 돌렸다. 조금 멀리 왔지만, 가고자 했던 곳에 다시 가보려 한다. 도착은 못 해도 근처라도 가보고 싶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꿈을 품고 걸어왔던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과 당장의 안정 사이에서 아주 많이 흔들렸다. 주변에 나의 힘듦을 단편적으로 얘기하기도 했지만, 남들에겐 말 못 할 여러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밀려온 현실에서 나의 고민을 누가 나만큼 이해하겠는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결정하는 게 맞다.

사실 나도 앞으로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 잘 모르겠다. 꿈꾸는 모습과 우려하는 모습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잘 되면 좋겠고 잘 안 되더라도 될 때까지 해보겠지만, 지금은 뭐가 되든 괜찮다. 어쨌든 조금만 더 가보자.

물론 이런 얘길 하는 게 다 같이 힘을 내서 열심히 가던 길의 방향을 틀자는 건 아니다. 잘 되면 좋겠는데 안 되면 그땐 어쩌지 하는 불안을 내가 무엇으로 안심시킬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안 될 것 같아서, 단지 그 이유로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내 옆 사람도, 그 옆의 사람도. 진짜 남의 일 같은 로또에도 희망을 거는 세상인데, 그보다는 꿈에 희망을 걸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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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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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주 속 랑데부 | 작성시간 18.11.16 글 너무너무너무 진짜 너무 좋다 ㅠㅠ 고마워.. 내상황이랑도비슷하네
  • 작성자코.옹 | 작성시간 18.11.16 여시야 고마워요 지금 내 상황에 와닿는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살면서 계속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을 품고 살았는데 솔직히 현실에 치인다고 제대로 도전해본 적이 없어 노력해본 적도 없고 사는게 너무 힘드니까 그냥 막 되는대로 최대한 힘들이지 않는 방법으로 살았는데 이러면 안 될 것 같더라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근처라도 가보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꿈을 좇고 싶어 옅게라도 내가 멋있는 사람이고 싶다
  • 작성자으으흠 | 작성시간 18.11.16 결국엔 저런 생각을 가졌다는게 부럽다 좋은 글 고마워!
  • 작성자the good side | 작성시간 18.11.16 흑 넘 좋다 글 잘봤어 여시야ㅠㅠㅠ
  • 작성자행운의 왕 | 작성시간 18.11.16 글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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