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32.1도까지 치솟은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느티나무 그늘과 원두막 아래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명선(73·서울 노량진1동) 할아버지는 "연이틀 열대야로 잠을 거의 못 자 더위를 식히려 공원으로 나왔다"며 "여기저기가 아픈데 올 여름 불볕 더위를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7호 태풍 '카눈(KHANUN)'이 한반도를 통과한 19일 이후 전국에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4일에도 경주 36.3도, 대구 36도, 전주 35.3도 등 전국 대부분 지역의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아 평년보다 2~3도 높았다. 강릉 34.9도, 속초 34도 등 동해안 지방의 수은주도 평년보다 4~7도 치솟았다. 특히 광주·전주는 18일부터 일주일째, 서울도 21일부터 나흘째 낮기온이 30도를 웃돌았다. 열대야(야간 최저기온 25도 이상)도 이어져 서울·수원·대구는 23일부터 이틀째, 제주는 22일부터 사흘 연속 열대야가 나타났다. 기상청은 이날 서울·제주·강원산간 등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폭염경보를 확대 발효했다. 기상청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에 비해 한반도로 크게 세력을 확장한 영향"이라며 "무더위는 8월 초순까지 보름 정도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기상청 장현식 통보관은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들어오면서 찜통처럼 수증기가 많은 상태"라며 "주변에 찬 공기가 없어 비구름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무더위에 전력수요도 연일 여름철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날 오후 2~3시 평균 전력수요가 7291만kW로 전날 소비량을 넘어섰다. 예비전력은 441만kW로 예비율이 6%로 떨어졌다. 전력예비율은 통상 10%를 넘어야 안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더위가 닥쳤던 1994년 여름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에 버텼던 94년 7월 서울의 하루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4도 높은 32.6도를 기록했다. 가마솥더위에 94년 7~8월 노인을 중심으로 서울에서만 800~900명이 폭염으로 초과사망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들어 전국에서 17명이 폭염과 관련해 병원을 찾았고, 고혈압 환자인 70세 여성이 밭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지난주 5467명이 열사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13명이 사망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도 살인적인 폭염이 지속되면서 사망자가 30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심장·뇌질환이 악화되고 땀으로 체온을 낮추는 기능이 떨어져 노인들의 폭염 피해가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홍기정 교수는 "무더위가 지속되면 말초혈관이 이완되고 심박수가 증가해 심장에 부하가 많이 걸린다"며 "뇌혈관 역시 고온에 민감한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폭염이 발생하면 야외 활동을 줄이고,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다. 열사병이 의심되면 얼음 등으로 환자의 체온을 낮춘 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박태균·강찬수 전문기자, 서경호 기자 envirepo@joongang.co.kr
☞폭염주의보ㆍ폭염경보=하루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되면 폭염주의보,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가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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