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 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최승호, 눈사람 자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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