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47974&memberNo=10785525&prevVolumeNo=9521217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왼쪽) 넌 참 잘 먹는 친구야.”
“(오른쪽) 넌 참 잘 누워있는 친구야.”
“(왼쪽) 이렇게 바쁘고 각박한 세상에서도 마음껏 먹고 드러누울 수 있는 사이예요.”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여자) 행복한 때가 따로 있나요? 저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어쩔 때는 행복한데 어쩔 때는 그렇지 않기도 하던데요. 늘 불현듯 찾아오는 것 같던데, 행복은...”
“왜 불현듯 찾아오는 걸까요?”
“(여자) 그게 인생의 미스테리죠.”
“(남자) 가끔 이유 모를 우울이 찾아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때 내가 왜 우울할까 하고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꼭 여자친구나 가족이 떠올라요. 잊고 있다가도 떠올리게 되죠. ‘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지.’하고요. 그래서 저는 우울에 빠지고 나면 행복해 지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요.”
“나는 단색을 좋아해. 한 벌짜리로 하얀 옷도 있고 노란 옷, 파란 것도 있어.”
“오늘은 왜 빨간색을 고르셨어요?”
“겨울엔 빨간색을 입어야 보는 사람들이 덜 춥지. 봄 되면 노란 개나리 같은 옷을 아래 위, 모자까지 다 해서 입어. 보는 사람을 생각해서 입는 거야.”
“절에 가서 도 닦는 것만 도가 아니야. 사람과 부대끼면서 도를 닦으라 그래 나는. 왜냐면 그래야 좋은 거 나쁜 거 보면서 깨달음을 얻거든. 나쁜 사람을 만나고 ‘저 사람은 원래 나쁜사람이구나’ 인정하면 내 마음이 편해져. 그런데 ‘에이 저놈 보기도 싫어’이러면 내 속이 나빠져. 병 걸린다고. 나쁜 사람에 대한 미움을 왜 내 마음에 두고 살아. 왜 내가 내 속을 썩여. 좋은 것만 자꾸 받아들여야 해. 좋은 것이 쌓이면 금이 되어버려. 그리고 마음이 금이 되면 꽃이 펴. 그 꽃은 건 지지 않는 꽃이야. 내가 마음에 심어두면 항상 펴 있어. 사람이 왜 좋은 줄 알아? 수시로 꽃이 필 수 있잖아.”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나요?”
“‘엄마가 엄마라서 좋아요.’ 이렇게 얘기해줄 때요.”
“서울은 사람이 많으니까 혼자서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 안 해요. 그냥 우주의 먼지가 돼서 떠돌아다녀요.”
“대학교 때쯤 아이가 그런 말을 했어요. 엄마는 어릴 때 맨날 뭐 하지 말라고만 했다고. 그러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디 여행을 갔는데 무슨 기념품 같은 걸 산다고 하면 사지 말라고 하곤 했죠. 분명 쓰레기가 될 테니까. 꼭 필요한 것만 사라고 얘기했던 게 후회 되더라고요. 또 오로지 학원 보내는 데 모든 걸 투입했다 보니 다 해줄 수 없었고, 너무 해주다보면 애들이 경제개념도 없어질 것 같기도 해서, 괜히 불안했던 거예요. 애들이 잘못될까봐요. 근데 해준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었을텐데, 애들을 더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았을 걸.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 하지 말라고 안 했으면 훨씬 그 순간을 더 즐겁게 지냈을 것 같아서…”
“제가 올해 77세인데, 아주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어요. 남산에서 노숙 생활도 했고, 새벽마다 뛰어다니며 했던 신문 배달로 겨우 입에 풀칠 할 돈을 벌었죠.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불순분자로 몰려 집단 폭행을 당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이마랑 발목에는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지요. 그래도 이래저래 힘든 날들을 꾸역꾸역 이겨내고 나니 해뜰 날이 찾아오긴 하더라고요. 검정고시 출신이고 대학도 못 나왔지만, 이 악물고 시작한 사업이 성공해서 자수성가 사업가라는 이름도 달게 되었죠. 그래서 제게 아내가 생기고, 아들을 낳고, 며느리가 생기고 하는 일들이 하나같이 감격스러웠어요. 우리 큰 아들이 며느리를 처음 데리고 온 날도 기억나요. 며느리가 부모님도 안 계시고 대학도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했어요. 어떻게 사돈도 없이 결혼을 하냐는 말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게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았어요. 저도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떳떳하게 성공했으니까요. 결국 집사람도 제 고집을 꺽지 못 했죠. 손주가 생겼을 때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출생 기념으로 경북 청송에 어려운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지었답니다. 이 모자랑 목도리도 우리 맏 며느리가 사준 거지요.”
“2018년은 어떤 한 해가 되길 바라시나요?”
“(왼쪽) 확실해졌으면 좋겠어요. 작년에는 갈팡질팡하다가 아무것도 못 이룬 것 같은데, 올해는 원하던 곳에서 일도 하고, 조금이라도 확실해져서 그만 힘들고 싶어요.”
“(오른쪽) 저는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힘들어도 소소한 재미도 찾으면서 나름대로 재밌게 또 1년을 버텼으면 좋겠어요.”
“(왼쪽) 버틴다는 말이 너무 슬프지 않아?”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세계 일주를 했어요. 제가 꿈꿨던 교사 생활과는 달라서 첫 해 부터 좌절을 많이 했거든요. 이대로는 오래 못 버티겠다 싶어서 반쯤 핑계 삼아 떠났죠.”
“다녀오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일단 다시 교직으로 돌아왔어요. 교사가 사실 제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보니까 그런 게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선생님이 됐어요. 이제 공부가 싫다는 아이들에게 무작정 가르치지 않아요. 공부가 어떻게해도 싫다면 학교를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진지하게 조언해요. 경험 상, 뛰는 가슴을 따르는 건 실수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