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연쇄적인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함
같은 시기에 연결고리가 없고 동기를 알 수 없는 연쇄 살인이 계속 일어나기 시작함
그런데 이게 같은 범인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보기엔 살인 방식이 판이하게 다름
하나는 주로 집안에서 사건이 벌어졌고 또 하나는 주로 길거리였음
한쪽은 둔기를 사용했고, 또 다른 한쪽은 칼을 사용함
게다가 범행 대상 또한 다름.
한쪽은 부유층을, 한쪽은 서민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름
부유층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유영철
또 다른 서민 '여성' 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정남규
유영철에 묻혀 정남규가 수면 위로 많이 오르지 못했음
서울판 '살인의 추억','2호선 연쇄살인마'
정남규의 사건 일지
2003년 초등학생 두 명이 집 앞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고 놀고 있었음 밤 9시였지만 바로 집앞에 있는 놀이터였지만 아버지들이 가끔 담배를 피우러 나오면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음
정남규가 아이들에게 접근했고 어떻게 아이들을 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단시간에 사라져버림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고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 헤멤
약 2주 뒤 집에서 3km 떨어진 춘덕산 정상 부근에서 두 아이가 사망을 한 채 발견이 됨
한 아이는 나체 다른 아이는 팬티만 입고 있었다고 알려짐
목에 난 자국을 봐서는 끈에 졸려서 사망을 했다고 보여짐
한 아이에게는 성추행의 흔적이 발견됨
처음엔 근처에 사는 남중학생인 줄 알고 붙잡았지만, 혐의가 없었음.
2004년 1월 14일 부천시 원미구에서 윤 모 양(13, 여)과 임 모 양(12, 여)을 성추행 후 살해
2004년 1월 30일 구로동 빌라에서 원 모 씨(44, 여)을 흉기로 찔러 살해
2004년 2월 6일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에서 전 모 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함. 피가 흐르는 채로 근처 중국집까지 겨우 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망함.
2004년 2월 10일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 손 모 씨(28,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함. 이 사람은 아프던 남편을 대신해서 아침에는 우유 배달, 저녁에는 마트에서 일을 함 전화로 구조요청을 했고, 경찰이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사망함.
묻지 마 살인 사건에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굉장히 어려워짐. 살인에는 이유가 항상 있었음. 돈, 치정, 원한같은 이유. 하지만 없을 때는 초동수사가 어려워진다고 함.
2004년 2월 13일 영등포구 신길 5동 골목길에서 서 모 씨(30,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2004년 2월 25일 다세대 주택에서 홍 모 씨(33, 여)를 흉기로 찔러 중상
2004년 2월 26일 신림동 골목길에서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18세 여자 고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힘. 이 학생은 다시는 학교에 나가지 못함
2004년 4월 8일 신길동 귀가 중이던 정 모 씨(25, 여) 살인미수
2004년 4월 22일 구로구 고척동에서 여자 대학생을 집현관 앞 계단에 숨어있다가 급습해서 흉기로 찔러 살해함 이 여자 대학생은 누군가가 본인을 따라오는 것을 느꼈을 테고, 집 현관문에 열쇠가 꽂힌 채 사망함.
2004년 5월 9일 동작구 고척동 보라매공원에서 여대생은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공원 남문 쪽 좁은 골목길로 귀가를 하던 도중 정남규의 흉기에 맞아 사망함. 이때 피해자가 병원에서 사망하기 직전, 의사에게 범인은 처음보는 남성이었고 40대 남자였다고 설명함. 그 이후에 사망.
2004년 5월 13일 대림동 중국집 여자 사장을 흉기로 찔러 살해함
환한 거리에서 어두운 골목으로 진입할 때 밝은 가로등 불빛을 끝나는 지점을 노림
고척동 사건에서 목격자가 있었고, 그때 40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함.
약 1년간에 냉각기를 가진 정남규는 다시 살인을 시작함
2005년 4월 18일 금천구 시흥 3동 빌라에서 잠자던 모자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2005년 5월 30일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 김 모 씨(41,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정남규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 살인 도구도 칼에서 둔기로 바꾸었고 집 밖이었던 살인 장소도 집 안으로 바꿔버림
2005년 6월 3일 광명시 철산동 주택에 침입하여 김 모 씨(36,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2005년 10월 9일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하여 자고 있던 홍 모 씨(39, 여) 등 2명 둔기로 내려쳐 중상
2006년 10월 19일 봉천 8동 단독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김 모 씨(25,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 중상
불을 지르고 달아남
정남규는 이때 바깥 살인을 집안 침입으로 바꾸고, 둔기를 내리쳐서 중상을 입히거나 살인을 한 뒤 불을 지르는 형태의 살인 수법으로 바꿈
2006년 1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주택에 침입하게 됨. 잠자고 있던 22살의 여성을 둔기로 때린 후 불을 지르게 되는데 이 불로 인해서 잠자고 있던 18살 여동생과 14살 남동생 3명이 사망을 하게 됨.
2006년 3월 27일 봉천동 대가족이 사는 단독주택에 침입. 이 집에 작은 방에는 세 자매가 함께 방을 쓰면서 잠들어 있었음. 이 자매의 아버지가 새벽에 일어나서 일터에 가기 위해 씻는 도중, 할아버지가 갑자기 거실에 불이 났다고 알렸고, 정신 없는 상황에서 불을 껐고, 자고 있는 자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열려고 하지만 잠겨있었고, 아버지가 다급한 마음에 잠긴 문을 억지로 여니, 아이들 세 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이 됨. 세 자매 중 첫째와 둘째는 그 자리에서 즉사, 막내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망을 함.
내가 정남규를 최고의 여혐 범죄자로 꼽는 이유
2006년 4월 22일 그날도 평소와 같이 정남규가 주택가를 어슬렁 거리며 문이 열린 집을 찾으러 다님. 그러다가 한 집을 발견해 손쉽게 집에 들어갔고, 거기서 20대 '남자' 가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함. 여태까지 보통의 범행 대상자가 여자였기 때문에 절도만 저지르고 도망가려고 함. 그 집안을 뒤져서 찾은 게 만 원짜리 상품권 한 장. 열이 받은 정남규가 잠들어 있던 20대 남성을 둔기로 내려침. 하지만 건장한 20대 성인 남자였던 김 씨는 강하게 저항을 했고, 마침 옆방에서 자던 50대의 김 씨 아버지까지 합세를 해 진압을 함. 정남규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손쉽게 진압이 되었음.
만약 이날 들어갔던 집의 주인이 여성이었으면 정남규는 또 똑같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쳤을 것이 분명함.
처음에는 절도범으로 잡힘. 하지만 그의 집을 수색한 결과, 집에는 몇 년동안 꾸준히 보던 범죄 관련 잡지,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해당 범죄 기사가 빼곡하게 스크랩이 되어 있었음. 그 사이에는 정남규를 담당하던 수사관의 이름, 사건 사진들을 다 보관하고 있었고, 자신을 취재했던 기자의 사진과 이름까지 다 스크랩 되어 있었음. 그리고 노트에는 자신의 1순위부터 3순위까지의 범행 대상들 범행 장소에 대한 치밀한 사전 답사가 적혀 있었음. 단순 절도범이 아닌 거임. 이걸 눈치챈 경찰이 심문을 시작함. 심문이 시작되고 정남규는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 지난 세월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사건에 대해서 술술 자백을 함.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잡히지 않았는지까지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이야기하기 시작함. 각종 범죄에 관련한 서적, 그리고 미드, CSI 전편 시청, 범죄 수사에 관련해 공부, 도주를 더 빠르게 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10km에 달하는 마라톤 연습을 함. 담배를 끊고, 식단까지 조절함. 족적을 찾아낼 것 같아 자신의 발사이즈보다 더 큰 신발을 신기 시작함.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발의 밑창을 뜯어냄. 즉흥적인 범죄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계획적인 범죄.
왜 범행을 저질렀냐, 왜 죽었냐는 물음에 그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프로파일러잖아요. 내가 왜 그랬는지, 분석해서 알려 줘요."
심문 도중 했던 말.
살인은요 어느 날 내 가슴 속에 응어리 같은 것이 생겼고요, 무슨 짓을 해도 이게 풀리지가 않아. 그래서 사람을 해치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응어리가 풀리더라구요.
살인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우울감이 사라진다.
내가 1000명을 살해하는 게 목표였는데, 13명밖에 못 죽이고 잡혀서 억울하다.
피 냄새를 맡고 싶다. 피 냄새에서 향기가 난다.
현장 검증 당시 분노한 시민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달려들려고 하자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시민들을 노려보고 맞서 달려들려 했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연행차량 안에 탔을 때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기까지 하며 지켜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는 범행을 자백할 당시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서 CCTV가 없는 곳에서 했다" 는 말을 하였다. "그는 살인을 더 쉽게 하기 위하여 주로 방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서민층 및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대상으로 잡았으며" 침입 방법도 문을 따거나 창문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문을 열어놓고 있는 집을 대상으로 범행하는 등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는 살인 자체를 쾌락으로 여겨서 좀 더 쉽게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행동이다.
2007년 4월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사형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2009년 11월 21일, 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음 날 새벽에 사망했다. 당연히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없었고 빈소에도 그의 누나 외에는 오지 않았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으나 최근의 사형 여론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한 것으로 볼 때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의 말은 다른데,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보단 살해할 대상이 더는 없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빨리 사형을 집행시켜달라고 말한 것도 그렇고 실제로 자살하기 전까지 태연히 지낸 것을 볼 때 꽤나 신빙성이 있는 추측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의 사형 여론에 대한 언급 또한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사형을 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 것으로 보면 들어맞는다. 그를 프로파일링 하였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여 "정남규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신조차 살해하고 끝난 사람이다. 살인의 끝은 자기 자신이였다."라고 말하였다. 즉, 감옥에 들어와 더이상 살인 할 수 없고 살인의 대상이 사라지자 자신의 살인으로 그 끝을 완성한 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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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만두언니니 작성시간 19.09.04 평소 생활 ㅈ ㅎㅌㅊ였을듯 ㅈ만하니까 남자는못죽였겠지 저렇게 빈집들어가도 남자있엇으면 그냥나왔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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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P;ㅠ 작성시간 19.09.04 존나 ㅎㅌㅊ새끼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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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생은 존버와 먹버 작성시간 19.09.04 유영철한테 라이벌의식 있었잖아 ㅋㅋㅋㅋ 븅신.. 글고 결국 빵에서 자살한것도 존나 허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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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크롱 크롱 작성시간 19.09.18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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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우위쿤 작성시간 19.10.02 나 보라매공원 사건 기억함...... 저때 주변 초등학교? 다녀서 선생님이 주의시키고 그랬던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