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평가단
간디는 가르치면서 베티 프리단의 업적은 안가르치는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말^^
깔 보는듯한 표정이 일품이신 머모님
*베티 프리단 (1921.2.4~2006.2.4) 85세로 심장마비로 타계
유대인 출신으로 일리노이의 보석상 출신 아버지와 신문기자를 하다 전업 주부가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리던은 스미스 칼리지를 거쳐 버클리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함
사실 별세 하신지 그렇게 많이 안되셨는데 바뀌지않는 현실에 기분 좆창 짜증나셨을듯 ..
참고로 영국 서프러제트가 여성 참정권을 쟁취해낸것은 1918년
이분은 역대급 페미책을 쓰셨는데 그 시대엔 어마무시한 센세이션이자ㅡ
가장 최초로 여성의 가부장제안에서의 착취에 대해 꼬집어주신 책이 아닐까 싶음
그 책은 바로 ‘여성의 신비’임
베티 프리단 머모님은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라는 책을 써서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유명하고 위대하신 여성운동가심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를거라 생각됨
아셨던 분 손?
나도 몰랐고 남자들은 여성위인들의 업적은 지워버리니깐
(롤모델 삭제와 동시에 여성의 역할은 아내와 어머니로 축소해서 보여주고 결혼시장에 올라오게하기위해)
머모님의 업적을 전파하고 얘기해주고자 글을 찌게됨
옛날 1920년대 미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힘, 그리고 삶의 만족감 등은 극히 열악했음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었고,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1920년이 처음이었고 일을 하는 여성도 드물었고, 전문직 학교에도 여성은 드물었음
일부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받는 돈은 늘 남성보다 적었고, (지금도 그런데?)
출산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음
(..?100년동안 바뀐게 없냐? ..아마 서프러제트 이후로 이렇다할 여성운동이 나오지않기 때문이겠지 그런 의미로 피흘려온 머모님들 대박수....)
베티 프리던 머모님은 1949년 둘째아이를 임신하며 출산휴가를 요구했다가 해고당해 전업주부가 되심 한국인줄;
전업주부로서 만족스럽지 않은 좆같은 경험(폭력)을 하며
(남편자댕이의 이름은 칼 프리단)
그 시대 전업 주부들이 우울증과 자살하는 일이 많자지자
스미스대학 (올 A 최우등 졸업생으로 졸업하심) 동창생을 인터뷰하고 여성잡지, 자료들을 분석해 《여성의 신비》를 내시고 일약스타가 되시며 300만부가 팔리게됨
이 위대한 책은 미국 여성운동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고
2차세계대전 뒤 미국의 여성들이 가정생활이라는 덫에 걸려 사회적 능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게 되고 아주 큰 센세이션ㅡ을 일으킴
베티 프리단 머모님은 이것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부르셨음. 그리고 여성을 어머니나 주부 혹은 성적 욕망 추구의 대상으로만 보는 남성 중심 사회의 시각을 규탄하심
이것은 선거권 쟁취 이후 수십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여성운동을 다시 깨우게됨
그 시절 1960년대는 모든 것이 넘쳐흘렀다고 봄 자본의 파이는 커져 갔고 냉전의 총칼은 날이 섰고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공황이 혼재했음
흑인 반전 평등…. 사회적 약자들은 더는 단역이기를 거부함 “그들은 삶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했다.”(사라 에번스)
여성 또한 그랬음 산업과 교육의 확대는 차별에 눈뜨게 했음
똑같이 일하는데 임금은 적게 받다니 2등 시민도, 노무 보조도 거부하게됨 ( 전세계가 아직도 그래요 머모님들 )
남녀 차별이라는 ‘역사상 가장 소홀하게 취급된 질병’에 메스를 대기 시작함
베트 프리단 머모님은 그 중심에서 여성들에게
“남편과 애들에게 목매달지 말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 고 외치셨고
여성의 신비란 책은 뉴 페미니스트 운동 즉 새로운 여성운동에 불을 지피게됨
여성학에 있어 역사적 사건의 하나가 됐으며 미국 여성들의 삶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음
많은 여성들이 집을 벗어나 일을 하기 시작했고 법률이라든가 공학, 의학 등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전유물 이다시피 한 전문직 교육기관에 여성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고
팔린 책은 300만부가 넘었고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어 여러 나라 말로도 번역 출판하게 됨ㅎㅎ
베티 프리던 머모님은 그야말로 60년대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심
“유능한 여성이 자기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여성의 신비에 의해 금지된 것들이다.”
머모님은 한마디로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대로 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하셨던 것
여성을 가정에 속박시키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수많은 주부가 불행하다고 진단하시고
미국 중산층 ‘가정’ 을 ‘여성의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고발하셨음
근데 난 모든 결혼제도와 한국 가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프리단 머모님은 ‘행복한 현모양처’란 없으며 여성들은 남편과 육아에서 해방돼 실질적 성(性)평등과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 사회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심
특히 여성이 남편과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은
이기적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하심
이렇듯 남편과 애들에게만 목매달지 말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고 여성들 가슴에 불을 질렀고
최대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 전미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의 창립자가 돼 낙태, 출산 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의 남녀 평등을 위한 운동을 펴셨음
1966년에는 “미국 최대 여성운동단체인 전미여성기구 저미여성협회(NOW)”를 공동창설하고 초대회장을 지냈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는 등 정치적 활동에도 나섬
1969년 낙태법 폐지 운동을 위해 국가협회(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
1970년 8월 26일에 열린 평등쟁취를 위한 여성 파업 시위(Women's Strike for Equality) 기획에 참여
1971년 전국여성정치회의(National Women's Political Caucus:NWPC)를 조직하고
1973년에는 최초의 여성은행 설립을 도우심
2번째 저서 <그것으로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1960, 1970년대초의 연설, 에세이, 인터뷰를 통해
머모님이 하신 활동을 기록한 것임
또한 페미니즘 논의와 여성운동의 지형을 다양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함으로써 ‘프리단 이후’란 말까지 생겨나게 됨
프리단머모님은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단체 전미 여성기구(NOW), 전미 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 여성정치회의(NWP)를 발족시켜 60∼70년대 활발히 여성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ㅎㅎㅎㅎ
“내가 한 일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라는 프리던 머모님의 말씀대로 임금과 승진에서의 남녀평등, 낙태 허용과 보육 확대를 요구한 머모님의 투쟁은 고스란히 여성학 역사로 기록됐음
크으ㅡ
그러나 ‘남성은 여성의 적’이라는 식의 분열적, 투쟁적 페미니즘은 결국 남성의 반발을 부르고 (한남같아 ㅋㅋ 여남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욥!!!!!!!)
여성에겐 ‘계급적 분노’를 일으키며 안티페미니즘을 부르게 됨.........
아니 그럼 님들도 운동을 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여성들 사이에서 분열도 페미니즘의 불을 꺼트림.................
흑인 여성주의자인 벨 훅스는 ㅡ여성의 신비ㅡ 안에 백인 중산층 여성만 있지 노동계급 여성이나 유색인종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함................
전미여성기구(NOW)도 분명 백인 중산층 여성운동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음 ....
하지만 누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몫이 있기 마련이니까... 베티 프리던 머모님에게는 자신만의 과제가 있었던거임
그리고 프리던머모님은 진지하고 용감하게 그 과업을 떠안았던거고.
이렇듯 머모님께선 그 시절엔 급진적인 ㅡ임신 중절과 평등 임금, 임신 휴가, 공정한 승진 ㅡ등을 요구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 개혁과 여성 운동에 당당히 앞장서오셨음
근데 아직도 한국은 임신중절 합법화 운동을 하고있음 아직까지도ㅋㅋㅋㅋㅋ2018년인데ㅋㅋㅋㅋㅋㅋ화력은 당연 재기했구요 살려주세요 머모님 ......공정한 승진도 없고 평등임금도 당연히 없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네요
아무튼 우리 모두 우리를 이자리까지 끌어올려준 대모님들 이름은 잘 기억해뒀음 좋겠어
남자 김구 정약용 그런애들 이름은 알면서 우리들의 인권을 만드신 머모님들 이름은 모르는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음 우리를 지켜주고 이끌어준건 항상 머모님들 ‘여성’들이었음 잊지말자
“민주주의”조차 우리를 위한게 아닌 “남성”들을 위한것이었음을
“여성” 에게 평등한 참정권을 준것은 머모님들로 구성된 여성인권단체 “서프러제트” 였음을 기억해줘
그 서프러제트를 못생겼다 모욕하고 잡아가서 고문하던것도 ‘남성’들이었단것도
서프러제트머모님들의 구호는 '말이 아닌 행동'(Deed not Words)이었음
개인적으로 나는 여성에겐 국가도 가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세계 여성들은 하나야
베지터 프리더라고 외워도 되니까 꼭좀 외웠으면 좋겠음
지금까지 위대한 ‘베티 프리단’ 머모님이셨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