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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박정희 신화? 미화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작성자혹시국적이일본?|작성시간19.10.26|조회수1,532 목록 댓글 3

출처 :여성시대 혹시국적이일본?

박정희 재임 시절, 위안부 한일협정을 체결해,(피해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촉구할 길을 원천봉쇄 했습니다.


일본에 우호적인 그의 정책 이면에는 그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혈서로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일본군 장교로 부역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는 공업화 추진 뒤에도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대기업 육성 정책으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했고, 중산층이 붕괴되었죠. 또한 '재개발 정책'의 시행으로 전국에 투기 열풍이 불어, 용산과 서울 일대의 많은 집들이 철거되었고,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은 주택을 구매할 자본이 없어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은평을 비롯한 공단지역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박정희의 혼맥도를 보고 갑시다.

고흥문은 유신 후기에 3대 환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성장률은 높을수록 좋다', '수출 실적은 많을수록 좋다', '모든 가격은 억제할수록 좋다'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박정희 정권의 그와 같은 3대 환상 때문에 대재벌을 비호하고 중소기업은 외면하고 서민은 골병들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한 3대 현상에 더해 박정희 정권은 조세, 금융 정책 등을 통해 재벌들한테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 그것에 대해 고흥문 이 사람은 대기업에 의한, 대기업을 위한, 대기업의 정부가 바로 박정희 정권, 유신 정권입니다. 여기서 대기업은 재벌을 가리킵니다.


공업의 육성과 발전은 생계를 위해 공장의 부품이 되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먹고 자라난 불합리한 정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입니다. 주택 철거와 재개발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해결해야 할 난제입니다.


박정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유신헌법'이죠.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입니다. 현재 국정원의 전신이 되는 '중앙정보부'의 김기춘이 작성한 유신헌법 초안을 토대로 탄생했죠.

'유신헌법'은 박정희의 군사독재 체제를 강화시켰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습니다. 유신헌법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박정희 본인이었죠. 유신헌법의 탄생비화가 본인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 였으니까요.

그는 유신헌법을 통해 공권력을 남용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던 많은 청년들과 대학생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으로 사망하게 했죠. 그리고 많은 예술인들을 검열하고, 정권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적들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하여, 문화자본의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그가 휘두른 국가권력이 무고한 개인의 인권을 유린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사례가 '삼척간첩단' 사건입니다.

1968년 강원도 어느 산골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일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월북했던 혈육이 부상을 입은 채 일가를 찾아왔습니다. 반공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이었지만, 다친 혈육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던 가족은, 그를 치료해주고, 몇 일간 방을 내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계속 머물면 가족이 위험해질 것을 알기에 상처가 회복되자 서둘러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8년, 갑자기 형사들이 들이닥쳤고,
알고보니 누군가가 이들을 밀고한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간첩을 숨겨주었다는 혐의로 일가족을 재판에 회부했고, 가혹한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이들을 상대로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무기징역과 실형을 선고했고, 이들 중 2명은 1년만에 사형 당했습니다.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묵살했습니다.

이들 중 사건 당시 12살 아이였던 'A씨'는 외삼촌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고문을 받으며 7년형을 복역해야 했습니다.

불법구금과 고문을 통해 받아낸 허위자백과 허위진술서를 바탕으로 일가는 한 순간에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으며, 출소 후에도 이를 사실로 믿는 이웃들에게 멸시당하며 지옥같은 삶을 살아갔습니다. 더 이상 오명을 벗을 수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도 없었죠.





이들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을 받아낸 건 그 날로부터 37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수많은 항소와 재심 끝에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지만,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모진 세월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처는 누가 보상할까요.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박정희의 업적은 과대평가되고, 그의 치부는 축소되거나 은폐되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업적은 약한 사람들을 밟고 유린해서 얻은 성취이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 신화는 무너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신격화'는 그의 행적까지 '미화'시킵니다. 그렇기에 신화는 위험하며, 인간을 평가할 때는, 그의 빛과 그림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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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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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펭수(10세) | 작성시간 19.10.26 어휴..
  • 작성자쿠쿠밥솥 | 작성시간 19.10.26 이런데 박정희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됐다고 흐린눈 하는 새끼들은 다 뒤져야돼
  • 작성자소원은이뤄진다 | 작성시간 23.12.05 개쓰레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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