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널리 친숙한 형벌 부관참시.
흔히들 죽은 사람의 시체를 꺼내 다시 한 번 형벌을 내리는 행위는 조선에만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부관참시는 다른 나라 역사에도 심심찮게 일어나고는 했음.
오늘은 그 부관참시 사례들 중에서도 전무후무한 사건 하나를 소개해볼까 함,
이 사건의 명칭은 카데바 시노드.
시체 공의회나, 시체 재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음.
때는 896년, 중세의 로마.
교황이 되기 전 포르모소는 지방 주교에 지나지 않았음.
귀도(귀두 아님) 스폴레토는 포르모소 코인에 올인했다!! 과연 그 결과는?
떡상!
귀도 죽음!
귀도의 죽자 그 아들 람베트르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함.
뭐 어떤 책에서는 람베르트가 오만하고 싸가지 없는 자댕이라서 싫어했다고도 하지만 국내에는 정보가 워낙 없어서 팩트인지 확인하기 힘들었음.
근데 자댕이들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싸가지가 없으니까 대충 맞다고 하자.
하여튼 포르모소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를 갈아치우기로 마음먹고 동프랑크 왕 아르눌프를 끌어들임.
아르눌프는 기다렸다는 듯 로마로 진격하여 단 하루만에 도시를 점령하고 람베르트를 쫓아냄.
그리고 교황은 아르눌프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함.
람베르토 사태에 로마 귀족들은 경악했음.
다시 한 번 코인 투자에 성공한 람베르트는 복수를 다짐함.
사건이 벌어진 그낭, 스테파노 6세는 포르모소의 시체를 파내 생전같이 교황의 옷과 관을 입혀 재판장으로 끌고오도록 함.
무려 3일이나 이어진 이 재판에서 포르모소는 생전의 교황, 주교, 사제직을 모두 박탈당함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음.
스테파노 6세는 포르모소가 교황에 오를 때 선서를 했던 오른 손의 손가락 세 개를 자르도록 판결을 내렸고, 손가락이 잘린 시신은 옷을 모두 벗겨서 티베르 강에 내버리도록 지시했음.
모두 람베르트의 만족을 위해서였겠지만 고객 만족 정신이 끔찍하게 투철하네요,,,ㅎ
그러나 고객밖에 모르는 바보 스테파노 6세가 놓친 부분이 두 가지 있었으니..
그 중 하나는 자신에게 사제 서품을 내린 사람이 포르모소였다는 사실이었음.
이게 왜 실수였냐 하면 포르모소가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면서 그남이 했던 모든 사제 서품도 무효화가 되었기 때문임.
본인이 본인의 사제직을 셀프 박탈하게 된 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로마 시민들의 민심이었음.
아무리 종교가 썩었다고 한들, 진짜 썩어가는 시체를 붙잡고 역전재판을 할 줄은 몰랐던 로마 시민들의 마음이 스테파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임.
그러던 와중 로마에 지진이 일어남.
당시는 과학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때라, 자연 재해=신의 분노인 것이 당연한 시대였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안 봐도 뻔함.
하사장도 이 꼬라지에 빡쳣다!!!!!!!!!!!!!! 당장 저 자격도 없는 교황을 끌어내자!!!!!!!!!!!!!!!!!!!!
결국 스테파노 6세는 평민들의 반란으로 인해 퇴위당해 곧 감옥에서 교살을 당했고 람베르트 역시 1년만에 사망하면서 시체 재판 사건은 일단락이 됨.
그러나 교회가 자정되는 일은 이후로도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600여년 후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