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루시아 Lucia
1914년 평안북도 운산의 한 가정
아들 둘만 있었던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딸
2살 때 부친상, 급격히 어려워진 집
친구들처럼 국민학교만 졸업하려 할 때 어머니의 한마디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
이 한마디에 소녀는 공부를 시작,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첫 여학생으로 입학한다.
그리고 1952년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
그녀는 유일한 여성 합격자가 된다. 그것도 판사로 임용될 만큼 우수한 실력으로 합격한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이승만)
"야당사람인 정일형의 아내를, 그것도 여자를 판사로 임용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변호사가 된 이 여성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성,
첩이라는 이유로 호적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여성,
그리고 지하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가.
상담을 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여성에 대한 차별.
그녀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를 개원,
"가족법 개선 운동"을 시작한다.
"유교 사회를 어지럽힌다"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
엄청난 비난 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이혼여성의 재혼분할 청구권 인정
모계•부계 혈족 모두 8촌까지 인정
그리고
그녀가 죽기전 꼭 바꾸고 싶어하는 법률
"호주제"
재혼도, 이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듯 나가야 했던 여성들.
이 법을 폐지하기 위해
그녀는 법률안을 만들어 입법을 시도한다.
그러나
1975년 1차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
1986년 2차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
1988년 3차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
모두 입법되지 못하고 폐기.
법률개정안 진정서를 들고 온 그녀에게
당시 대법원장이 했던 말
"천오백만 여성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다 잘 사는데
법률줄이나 배웠다고 네가 건방지게 법을 고치라고 해!"
그러자 그녀의 대답
"이것때문에 여자들은 평생 이사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고
무엇보다 공문서에서조차 남편, 아버지 밑에 있는 존재가 된다면
여성들은 평생 남성의 그림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가들의 변호까지 맡은 탓에
'종북 좌빨'이라는 오명을 얻은 그녀는
1994년 치매로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을 때까지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다가 눈을 감는다.
이 여성의 이름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설립자, 여성인권운동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변호사 이태영 李兌榮
1914.8.10 ~ 1998.12.17
"판사가 안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변호사가 된 건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많은 여성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7년 뒤,
호주제는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법적 장치이다.
신분관계 형성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것으로 남녀평등과 개인의 존엄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 2005.02.0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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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녀부세용? 작성시간 20.03.09 이글 읽고 비혼다짐한다 여성해방운동에 힘을다했던 여성들이 있는데 결혼이라는 남성위주의 좆같은 제도에 묶이고 싶지 않음 이태영변호사님의 노력이 헛되지않게 비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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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e relever 작성시간 20.03.09 이런게 영화로 나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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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weltschmerz 작성시간 20.03.09 어릴때 이분 위인전 있었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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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라의 왕에게 진심인 편 작성시간 20.03.09 당신..정말 멋있어 안녕히가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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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독신술사 작성시간 20.03.09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로 이분 일생이나 저 일화 다뤄졌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