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좋은일만 일어나길
영화 명당을 아주 재밌게 보고
너무 흥미돋아서 글 써봄
때는 조선 말, 22대왕 정조가 죽은 후 순조의 장인어른을 비롯한 '안동 김씨'가 세도 정치를 펼침
→세도정치란 조선후기 특히 19세기에
왕족이 아닌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
안동 김씨 일가는 헌종과 철종 등 허수아비 왕을 세워 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림
그런 과정에서 누구라도 자기들의 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 있다면 가차 없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면서
아주 지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름
먼저
흥선대원군 얘기를 해보자면
흥선대원군은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8대손으로
왕권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왕족임
그런데 그때 당시 24대 왕 헌종 이후로
정조의 직계자손의 대가 끊어진 상태였고
정조의 이복동생의 손자(철종)에게까지 왕권이 대물림돼서
쉽게 말하자면 사돈의 팔촌까지도 왕위를 노릴수 있었던 상황이였음
그래서 안동김씨 가문은 호시탐탐 왕권을 노리면서
혈통이 먼 왕족까지도 감시하고있었음
흥선대원군은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평소 행색을 깡패같이 하고다니고
어리숙한척하면서 안동김씨가문의 의심을 피했음
심지어는 그때 당시에 불렸던 별명이 '상갓집 개'
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큰 야심을 품고있었던 사람임
그래서 안동김씨가 완전히 패권을 장악하기전에
하루 빨리 왕권을 복귀시키고싶어했음
그러던 와중
그 당시 유명했던 지관인(풍수지리 보는사람) 정만인에게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옮길 명당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함
정만인은 전국의 명당자리 중에 두 군데를 꼽아줬는데
한 곳은 두명의 天子(국왕)가 나올 수 있는 자리라고 하고
다른 한 곳은 대대손손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라고 함
흥선대원군은 두명의 왕이 나올 자리를 선택했고
원래 경기도 연천군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1846년 충청남도 예산군 가야산으로 옮김
근데 원래 그 자리에는 고려시대 때 부터 있었던 아주 큰 '가야사지'라는 절이 있었음
그 절을 묘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폐사시키고 불태움
결국 남연군의 묘를 이장시키고 7년 후 차남 명복을 낳았는데
철종이 후사가 없어서 가까운 종손인 명복이 12세로 왕위에 오름
명복이 바로 고종.
정말 신기하게도
고종과 순종까지만 왕권이 유지되고
그 다음은 다들 알다시피 일제통치가 시작됨
정말 정만인이 말했던 대로 2대 천자가 탄생했지만
그 이후로 급격하게 국력이 쇠하면서 나라가 망함.
그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가야사지를
흥선대원군 개인의 욕심때문에 불태운게 큰 화가 된거같기도 함
그리고 1868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함.
도굴에는 실패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 흥선대원군은
서양과의 교류에 더욱 더 배타적인 입장을 갖게되고
당시 서양 문화의 상징이었던 천주교에 대해서도
강력한 탄압 정책을 벌이는 등
더욱 더 강경한 쇄국정책을 펼침
그러면서
명성황후와의 갈등도 점점 더 심화되고
안그래도 쇠락하고 있던 국력이 악화일로를 달리게 됨
정말 남연군 묘자리와 관련해서 뭔가가 있는것같기는 함...
마무리는 어떻게 지어야 될지 모르겠어서...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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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XiaoZhan 작성시간 20.04.04 대신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는 묫자리를 썼으면 역모죄로 처형당했을거라는 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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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Elizabeth Queen 작성시간 20.04.04 오 이것도 흥미돋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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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두맛 쿠키 작성시간 20.04.04 오페르트 도굴사건 복수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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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너마늘사랑 작성시간 20.08.14 대대손손 묘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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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살키 작성시간 22.09.22 와 나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흥선대원군 아버지 묘라는거 이번에 알게됐어 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