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La mujer
ㅁㅂ
이전부터 계속 쓰고싶었던 글인데
글이 뭔가 완성이 안되어서(??) 이제야 올림 ㅠㅋㅋㅋ
5만원 후보였던 분 아시나yo
신사임당 ㄴㄴㄴㄴ
바로
이태영 박사님
여성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5만원권 후보 중 2위로도 뽑혔었던
이태영 박사
왜 이분이 ????????
한번 알아보자
이태영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에 막내딸로 태어남
아부지는 광산 사업을 했는데 사고로 일찍 돌아가심
그래서 홀어머니 + 두 친오빠들과 함께 컸다고 함
어려서부터_똑똑했던_이태영을 보고 큰오빠 이태윤은
"태영아, 커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약속하거라."
"변호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일하고, 억울한 사람 누명도 풀어주는 좋은 일을 해야한다"
라고 했다는데....

당시 이태영 5살 시절...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어른들이 "너 커서 뭐가 될거니?"라고 물어보면
"변호사요."라고 답했다고 함
근데 변호사가 뭔지 몰라서 "변호사가 뭔진 아니?"라고 물어보면

"아니요 모르는데요"라고 했다고 ㅋㅋㅋㅋㅋ
당시에 변호사 중 여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
바야흐로 1910년대....
소학교(초등학교격) 1학년 땐, 마을에 웅변대회가 열렸고
적극파 이태영은 꼭!!!! 나가고 싶어했음
근데 웅변대회에 참가도 안되는겨...
??????왜죠....
똑부러졌던 이태영은 참가하는 애들이 전부 "남자"라는 걸 알게 되고
선생님을 찾아감
"저도 참여하게 해주세요!!!!!!"
겁나게 떼를 써 겨우 참가했다고 함
웅변대회 단상에 올라간 이태영의 웅변 제목은
"나는 체니(처녀)입니다"였음
"나, 딸이에요. 어떡하지요?
아들 낳으면 우리 동네가 다 기쁘다고 해요.
딸을 낳으면 엄마들이 자꾸 울어요.
체니만 자꾸 낳아서 집안 망한다고 그래요.
딸은 그렇게 몹쓸 것인가요?
늘 이러면 난 어떡하지요?"
wow.....wow......
관객들은 놀라면서 이 어린 아이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함
당시가 1920년대였음.... ㅋㅋㅋㅋㅋㅋ
아쉽게도 웅변대회에서 상은 못 받았고
이후 동네에서는 "당찬 맹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함
....
맹꽁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아는 뜻이 옛날엔 달랐던가요....????
(아는여시 모집@@)
(위 사진은 관련없는 웅변대회 사진임)
암튼 중학교 때에도 또 웅변대회에 나가는데
이때도 "아들 딸 똑같이 공부시켜주세요."라는 주제로 웅변했음 ㅋㅋㅋㅋㅋㅋ
아니 ㅋㅋㅋㅋㅋ 이미 이쯤만 해도 여성운동의 대모님 아니신지....????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도 먹었다고 함 ㅋㅋㅋㅋ
근데 이 시기에 오빠가 두명이나 있었는데도
홀어머니가 딸을 공부를 시켰다니?? 그것부터 놀라운데??

일단 어머니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여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좀 더 깨어있기도 했다함
그래서 이태영이 학교 입학하던 때에 어머니는
"아들 딸 가리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끝까지
공부시킬 것이야."
"남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함
wow......
그라체 못난 아들한테 올인하면 쓰나
물론 뒤에서는 엄마가
"아니, 공부하라는 아들놈들은 초저녁부터 자고
안해도 되는 딸아이가 잠도 안자고 열심히 공부하네;;;"
라고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함

흠흠 ㅋㅋㅋ 어무니도 어쩔 수 없었던 것....
이때 이태영은 엄마한테 겁나게 서운했지만 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고 함 ㅋㅋㅋㅋ
그래서 작은오빠 노닥거릴때 이태영은 중고등학교 수석먹었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후에 이태영은 1년 정도 교사로 일한 뒤에
당시에 가정형편이 안 좋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이화여전 가사과에 특대생으로 입학하였고
❤️최종 수석❤️으로 졸업함
이화여전에선 가정대학 강사로도 일함
강사로 일하던 당시에 학교 교감이 바로
김활란
당시 보스턴다 철학과 학석사, 컬럼비아대 철학박사 받은 후
이화여전 교감으로 있었다함
그리고 이 당시 이태영이 존경하는 인물은???? 하면
바로 "마리 퀴리"였음
이후 계속 교사 생활을 하는데 이 때에
도산 안창호의 연으로 인해 만난
독립운동가 정일형과 결혼하게 됨
이 남자는 이 때 연희전문학교,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일하였음
이후 50년대부터는 국회의원이 됨
(70년대 후반까지 계속 국회의원 해먹음
7선인가 8선인가 그럼)
아니 이제 결혼했으니.... 이태영 커리어는 끝이었을까?
ㄴㄴ
마리퀴리가 결혼하고 일을 접지 않은 거와 똑같은 노선을 따라감
항일운동을 함께 하면서
서울대 법대에 33살의 나이로 입학함
이 때 "서울대 최초 여학생" "서울법대 최초 여학생"이었다함 ㅋㅋㅋ.....
37살 이태영의 서울법대 졸업식을 함께 축하하는 남편
ㅋㅋㅋㅋ정말 다행히도 남편이 그나마 성차별이 덜한 남자였나봄
계속 항일운동하며 고문도 받다가
해방 직후에는
"아!!! 나라도 해방을 했으니 이제 하고싶은 일을 해야겠다!!!!"해서 공부 스타트
얼마 안되어 38살 이태영은
사법고시(당시엔 사법과) 합격
"사법고시 여성 최초 합격자"였다고 함 ㅋㅋㅋㅋ
ㅠ아니 천재세요...?
당시에는 사법연수원이 없었음
그래서 15개월 간 판검사 실무수습을 따로 했는데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
그래서 여성 최초로 판사가 되려고 했으나
(원래 판사는 성적 좋아야 가능 ok)
but.... 낄낄빠빠 못하는 한남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대통령 이승만 :
"남편이 야당의원 정일형 아녀?? 판사안됨 ㅡㅡ 게다가 여자? 놉"
이라며 반대함
아니 시벌 ㅡㅡ 여자 가는 길에 이 새끼가 ㅡㅡ
그러자 당시 대법원장이자 대한민국 최초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 :
"대통령이 허락해주고 말고 하는 건 다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합니다!!!!!"
라고 컴플레인함
= 다 형식일 뿐인데 왜 대통령 니가 멋대로 판사 임용에 ㅇㅋ ㄴㄴ 하냐???
그러나 굴하지 않는 이승만새끼
"야당하는 정일형의 마누라를 판사 시킬 수는 없어!!!!!"
ㅡㅡ....
너무 여러가지로 빻아서 뭐부터 욕해야할지...^^
그래서..... 이태영은 하는 수 없었음
5살 때 큰 오빠와의 약속대로(???) ㅋㅋㅋㅋ
"여성 최초 변호사"가 되었다함
이 분이 걷는 모든 길이 다 여성 최초여...ㅋㅋㅋㅋㅋ
그리고 약 10년 동안은 유일한 여성 변호사였다함 ㅠ
이맘때 변호사가 되기 이전에 만난 이가 있었으니
.....
바로바로
기대하시라 바로
여성운동가 이희호였음
이태영과 이희호가 몇 여성지도자들과 함께 "여성문제연구원"을 만들어 연을 시작함

이 연을 통해 이희호와 이태영은 평생 함께하는 여성지도자들이 되었고
후에 이태영 남편이 김대중의 정치적 스승이 되었음
ㅋㅋㅋㅋ 참고로 이희호 역시 이화여전 - 서울대를 나와
이태영의 후배라고 함
매달 이태영은 이 연구원에서 법률 강좌를 열어 여성의 권리를 알리고
여성들에게 무료 상담을 했다함
이 법률 강좌와 무료 상담이 후에 여성법률상담소로 진화했고
현재의 가정법률상담소가 되었음
그 뿐 만 아니라
남녀평등 실현, 가족제도의 문제 개선 통해
여성의 법적 위치와 조건을 개선하고자 엄!!!!!청!!!! 노력함
여자들한테 불리한 조항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법을 고쳐보려고 함
대표적으로 가정법 개정 bbb
1989년 가정법이 개정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있는 이희호, 이태영
이 때 한 말
"500년 묵은 인간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여성이 새롭게 얻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제자리를 찾았을 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노릇 하게 됐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캠페인 운동, 저서로 열일함
그나저나 책 제목 "차라리 민비를 변호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의민지 알거같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중에 공부를 멈추지 않고
서울대 대학원 법대에서 석박사를 모두 땄음
그리고 법조인 시절
사법고시 합격하는 여성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매번 여성 사법고시 합격 축하회를 열어줬다고 함 ㅋㅋㅋ
저기에 추미애도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증말 여성들의 발자취 산증인
또한, 여성들의 인권이 상승되려면
민주화운동도 해야함을 알았기에
민주화운동도 열일함
남들 다 김대중을 위해 증인이 되길 꺼려할 때
법정 나서서 "김대중은 용공(빨갱이)이 아니다!!!"
라고 검찰관에게 소리치기도 했음 ㅋㅋㅋ
그러면서 이태영 부부는 김대중의 정치생활을 계속 도와줌
세계는 이 이태영을 알아보고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주기도 하고
유네스코의 인권교육상, 브레넌인권상 역시 받음
이화여대 교수 및 법대학장, 서울대 명예교수 등 역임하였고
국제법률가 위원회 위원장도 지냈고...
알츠하이머로 2년 간 요양하다가 98년 별세함
사망 이후 2017년 여성의 날에
구글에서 "세계 여성 13인"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함
워낙 평생을 여성들을 위해, 항일운동, 민주화운동을 위해
산 위인이기에 매년 많은 정치인과 법조인들이
추모식을 함께 하는데
얼마 전 추모식에서 추미애, 조배숙, 강금실, 김숙자 등
여성 후배들의 추모사가 이어지기도 함

ㅠ.....
추모식에 왔었던 이희호 선생님 ㅠ
오른쪽 남자가 국회의원이자 장손자임
참고로 장남과 장손은 전부 국회의원이 되어
3대째 정치인 집안이 되었음
누군지 쓰는건 귀찮으니 pass
이태영 박사님 사진 올리며 끝내겠음
하신 업적이 너무 많아서 다 못 쓴 제 잘못을 용서하시기를 (??) 바라며...
끝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17차남양꺼 작성시간 20.04.12 넘멋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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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보더콜리 너마저 작성시간 20.04.12 저런 분이 계셔서 참 감사하고 나도 열심히 돕고 소리내야겠다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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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절미가루 작성시간 20.04.12 헉 이렇게 대단하신분인데 난 여태껏 몰랐네.... 존경스럽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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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브레이킹던 작성시간 20.04.13 진짜 한국현대사에 남을정도의 위인인데 여자라서 더 경계당하고 묻히고 이승만은 진짜 시작부터 섞어버림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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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용할수있는닉네임을알려주는건어때 작성시간 20.04.14 와...... 저런 분 덕에 내가 이렇게 살 수있는 거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