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한독립만세🇰🇷🇰🇷
3.1만세운동 100주년, 삼일절을 맞아서 독립운동가가 세운 대학들을 한 번 찾아봤어!
생각보다 많이 적더라고ㅠㅠ
처음에는 학교에서 설립자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설명하는 학교들을 찾아봤는데 보다보니까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온 명백한 친일파들도 학교에선 웬만하면 거의 민족독립에 헌신 이런식으로 써놨더라고?ㅋㅋ
그래서 하나하나 다 확인하기에는 조금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거같아서 어쩔까하다가 서훈을 받은 분들로 한정해서 찾았어!
고로 정확히 말하면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독립유공자(서훈을 받은 국가공인 독립운동가)
물론 서훈작업은 지금 완료된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 공적이 있는데도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도 계신만큼 현재 서훈되지 않은 분이여도 독립운동가일 수 있지만, 문제는 학교에서는 친일파도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만큼 확인이 어려워서 일단 확실히 확인된 분들 한정으로 적었다고 생각해줘😀
[경남대 & 국민대]
설립년도 : 1946
설립자 : 신익희(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두 학교를 같이 쓴 이유는 경남대와 국민대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신익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으로 광복이후 귀국하신 뒤 대학을 세울 생각을 가지고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발족했는데, 이 기성회에는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 등의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도 참여했어.
기성회가 세운 대학은 당시 미군정의 국립대학 설립에 맞서 국립 서울대학교 개교와 동시에 국민대학관으로 개교해서 해방 이후 최초의 사립대학이라는 별명을 얻었어. 다만 국민대학교가 아니라 국민대학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정식으로 인가받은 대학은 아니었어.
그런데 이렇게 세워진 국민대는 재정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최범술이라는 사람이 재산을 출연하겠다고 하면서 이사장으로 선출돼.
하지만 최범술의 재산출연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최범술이 신익희 학장을 해임하기까지 하면서 최범술은 학생들에게 불신임당했어. 결국 최범술은 기존 교사와 다르게 마포에 국민대학관이란 이름을 걸고 재개교하면서 같은 역사를 가진 국민대학관은 둘로 나뉘었어.
사실 여기까지 적으면서 경남대를 같이 적는게 맞는지 살짝 고민했는데 경남대에서도 1946년 국민대학관을 공식적으로 모태로 삼고 있고 신익희 선생을 초대 학장으로 적은 만큼 그냥 넣었어.
아무튼 원래의 국민대학관은 나중에 정식대학으로 인가받으면서 지금 서울에 있는 국민대학교로 발전했고, 마포의 국민대학관은 6.25 전쟁으로 인해 해인사 경내로 이전하면서 해인대학, 그 이후 마산대학의 교명을 거쳐 지금의 경남대학교로 발전했어.
<신익희 선생 공적 개요>
학생시대부터 열렬히 애국운동에 힘써오다가 기미년독립운동시에 국내동지들의 특파로서 상해에 건너가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내무차관, 내무총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총장, 외무, 문교, 내무부장을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단국대]
설립년도 : 1947
설립자 : 장형(건국훈장 독립장) , 조희재
단국대학교는 혜당 조희재와 박정숙 모녀의 기부로 범정 장형 선생에 의해 설립되었어. 참고로 두 분은 관계가 없는 남이었다고 해.
사실 이 두 분은 원래 위의 국민대학설립기성회에 참여해서 같이 국민대 설립에 기여할... 뻔 했으나, 기성회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갈라져 신익희 선생은 국민대학관, 혜당과 범정 선생은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보면 돼.
<장형 선생 공적 개요>
1. 1910경 양기탁, 유동열, 김구, 이시영 등에게 독립운동자금 제공
2. 1919 이극, 안창하, 이진산 등의 동지를 남북만에서 활약케 하고 국내에서 무기 및 군자금을 조달하다 투옥
3. 1945. 8. 15 이후 독립지사 유자녀에게 생계비 및 학비조달
(상훈심의회 독립유공자대표 인정)
[덕성여대]
설립년도 : 1920
설립자 : 차미리사(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덕성여대는 1920년 세워진 조선여자교육회를 모태로 해서 근화여학교를 거쳐 현재의 대학으로 발전한 학교야. 근화가 무궁화를 뜻한다는 이유로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교장직에서 쫓겨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지.
차미리사 선생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중시해서 최초의 여성 사진과 등을 개설하는 등 실용적인 교육을 시도했다고 해. 이 목록에서 유일하게 여성독립운동가에 의해 설립된 학교기도 해.
<차미리사 선생 공적 개요>
미국으로 건너가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대동교육회와 대동보국회를 발기하고 『대동』신문의 발간에 기여하였으며, 1910년부터 1920년까지 배화학교의 사감으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20년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하여 학교교육『강연』기고 등을 통하여 여성의 각성을 통한 민족의 실력양성을 도모하였으며, 1927년 근우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됨
[부천대]
설립년도 : 1979년
설립자 : 한항길(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부천대는 몽당 한항길 선생이 소사공과기술학교와 고등기술학교를 전신으로 해서 부천공업전문대학으로 처음 설립한 학교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
<한항길(한흥리) 선생 공적 개요>
1919.3.1 서울 파고다공원의 3.1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특히 3.5학생 대시위가 남대문 역전에서 일어났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활동하다 피체되어 징역 6월을 받았으며 미결기간을 합산하여 11월 1일간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사진 출처 - 부천대 블로그)
[유한대]
설립년도 : 1978년
설립자 : 유일한(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유한대는 이번 졸업식의 대통령 방문으로 화제가 되어서 많이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한양행의 설립자이자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로도 유명한 유일한 선생은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하고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어.
유한대는 기술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유일한 선생에 의해, 유일한 선생의 이름을 따와서 설립된 학교라고 알려져있어.
<유일한 선생 공적 개요>
1908년 박용만이 미국 네브라스카주에 설립한 소년병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자유한인대회’에 참석하여 결의안 작성 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1920년경 ‘한국의 친구들(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의 보스톤지부 서기로 미국인들이 가입과 기부금 제공 및 지원을 유도하였고, 1928년에는 보스턴에서 『한국에서의 소년시절』, 1943. 11월 『한국과 태평양전쟁』등의 문헌을 영문으로 간행하여 한국의 진상을 알리는데 기여하였으며, 1942년. 8월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맹호군 결성에 참가하고 현기식에서 조소앙, 이승만등의 축사를 대독하였고, 1943. 12월 재미한국연합회의 기획연구부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국내진입을 위한 특수임무를 수행할 NAPKO계획에 참여하여 훈련을 받았으며, 수시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는 등 광복시까지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성균관대]
설립년도 : 1398
설립자 : 김창숙(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사실 성균관대는 넣을까말까 조금 고민했어. 왜냐하면 개교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성균관대에서는 성균관을 계승해서 1398년을 공식적으로 설립년도로 삼고 있거든. 이렇게 되면 김창숙 선생이 설립자가 될 수가 없지. 하지만 빼기에는 안그래도 목록이 너무 적기도 하고, 한 분의 독립유공자라도 더 소개하기 위해서 성균관`대학'의 설립자 심산 김창숙 선생을 같이 소개할게.
<김창숙 선생 공적 개요>
1. 1905년(을사)에 청토오흉칠적소를 올렸다가 일경에게 잡혀 악형을 받음.
2.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경상도 유림 백여의 연서를 받아 파리평화회의에 조선독립청원서를 만들어가지고 상해로 건너가서 김규식에 위탁하여 파리로 송치하고 또 한통을 우편으로 우송함.
3.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을 조직하여 초대 대의원이 됨.
4. 만주 황무지를 개척하여 둔전식 양병을 계획하고 광동에 가서 손문과 대면한 후 군사자금 20만원을 받았음.
5. 1921년에 북경에서 “천고”라는 독립선언 유지를 발간함.
6. 1923년에 정수기를 고국에 보내서 군자금을 모집케 하고
7. 서로군정서를 세워 선전위원장이 되고
8. 1924년에 주만독립군 군사고문이 되었으며
9. 1925년 8월에 군자금모집 사명으로 귀국하여 익년 3월에 상해로 돌아감.
10. 1926년 6월 김원봉의 추천하는 나석주를 국내에 기송하여 동척과 식은 폭파사건을 일으키다.
11. 국내유림단 제1차, 제2차 사건이 모두 김창숙의 의거에 발단된 것이다.
12. 1927년 4월에 김창간의 밀고로 상해 공동조계에서 체포되어 일본 장기 경유 대구로 압송되어 징역 14년 언도를 받음.
+ 추가
[대구대]
설립자 이영식 목사
> 대구대학교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가져왔는데 여기에 명시된 출생년도와 공훈전사사료관에 명시된 출생년도가 달라서 동일인물인지는 확신을 못하겠어. 동일인물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들은 알려줘...!
(사진 출처 - 대구대학교 홈페이지)
이상은 좀 애매한 성균관대를 제외하고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설립자로 인정해서 기리고 있는 경우+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독립운동가(독립유공자)인 경우이고, 번외로 독립유공자에 의해 세워진 학교의 후신이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두 학교를 더 소개할게.
[경희대]의 옛 이름은 신흥대학인데 이 신흥대학은 무려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신흥전문학교에서 설립됐어. 하지만 신흥대학이 현재의 재단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었고 신흥무관학교의 흔적이 많이 지워져서 찾아보기 힘들지.
[영남대]는 대구대(현재의 대구대와는 다른 학교)와 청구대가 합쳐져서 세워진 학교인데, 대구대는 경주 최부잣집의 종손으로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던 최준 선생에 의해 설립된 학교야. 하지만 이 두 학교는 5.16 쿠데타 이후 대학정비사업을 통해 박정희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고, 이 두 학교가 합쳐져서 영남대가 되었어.
독립운동가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 역사가 묻혀있는 학교들도 어서 학교의 역사를 회복해서 같이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에서 설립자들의 공적 개요는 모두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가져왔어. 공적을 극히 요약해서 적은 개요이기 때문에 더 알고 싶다면 공훈록을 봐 줬으면 해!
((사진 출처는 따로 적지 않은 경우 네이버 지식백과야.))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와 공훈록은 모두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어.
http://e-gonghun.mpva.go.kr
혹시 서훈된 독립유공자에 의해 세워진 학교인데 빠진 학교가 있다면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