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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국가] 나우루

작성자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작성시간20.11.23|조회수5,652 목록 댓글 9

 출처 : 여성시대 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섬에 있는 공화국. 섬 면적 21km2로 서울 용산구 내지 도봉구 정도 크기인, 매우 작은 나라다. 적도의 바로 아래, 남위 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기가 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노란 선이 적도, 별이 나우루. 별이 12갈래로 빛나는 것은 나우루 토착 12부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인구는 경상북도 울릉군과 거의 비슷하다.

나우루에 관심이 있다면 이 나라의 역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써낸 책,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도 참고해 보자. 그러나,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의 Craig R. Glenn 교수에 의하면 나우루의 구아노는 해양 조류의 똥이 아니라고 한다.

나우루는 대략 기원전 1000여년 경에 미크로네시아인들이 들어왔고, 이후로 멜라네시아인, 폴리네시아인들이 들어왔고, 이들은 혼혈화 되어 나우루인이 되었으며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12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나우루의 존재는 1798년 유럽인에게 드러났다. 그전까지는 그저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오세아니아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섬에 처음 나타난 유럽인인 존 피언(John Fearn)은 섬의 모든 것이 사람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 이름을 기쁜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지었다.

그 후 30~40년 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왕래했고, 이들이 가져온 무기와 술의 전래로 섬의 평화는 파괴되고 10년 동안 씨족 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섬에 있던 독일 무역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일 정부에 무기를 요청해 많은 무기들이 원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거래되었다. 그후 전쟁과 질병으로 40년 간 인구가 1/3로 감소했고, 독일에 점령당한 1888년 당시에는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보다 30%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1914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해 나우루 섬은 자원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가장 먼저 배 한 척을 몰고와 독일로부터 나우루를 빼앗는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다고. 이후 나우루 지역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서 198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국이었다. 당시에는 미국은 물론, 최고의 경제 호황기였다던 버블경제 시절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나 룩셈부르크급의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했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 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 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량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했던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하게 나누어져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오일머니 저리 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 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간선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 그것도 길이 18㎞, 제한속도 40㎞/h 짜리만 있어 고속도로가 없는 국가인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 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 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나 게임기도 있을 정도였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 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었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도 유학 경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빨래나 청소도 메이드가 다 해주었다.

어찌 됐든 이들은 이렇게 생각 없이 돈을 탕진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광산이 감소하면서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였다. 이때부터 몰락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농사나 낚시, 빨래, 요리 같은 것을 해온 경험이 있던 장노년층이나 소일거리 삼아하는 이들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이들이 같은 인간적인 삶을 위한 필수 능력도 완전히 잊어버려서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 옆 나라에 가서 배워야 될 정도가 되었다. 당장 경작지도 닥치는 대로 채굴했기 때문에 국토의 80%가 바위 덩어리만 있는 황무지였다. 현재도 식료품은 수입된 가공식품만을 구할 수가 있으며 생산되는 작물 자체가 없다. 엄밀하게는 열대과일이나 채소가 나우루에 재배되고 있고,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텃밭에서 채소 기르는 수준이어서 산업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사실상 농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한 상태이다.

사태를 인식한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하였으며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 힘을 썼으나 국내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다.

정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부실한 사업성 검토로 인해 줄줄이 말아먹었다. 게다가 부동산 구입도 바가지 쓰면서 적정 가격의 몇 배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국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냥 넘어갔다. 

정부 관리들이 국가예산을 개인자금과 동일시한 건 너무 흔한 일이었고, 호주 멜버른에 있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빌딩 꼭대기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으며, 경제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경제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투자한 게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인광석이 거의 바닥날 때쯤에는 투자해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세계의 여러 은행에서 자금을 융통하였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세 피난처 노릇을 하면서 먹고 살았고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었어도 몇 년간은 전성기 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도 오세아니아에서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부유한 나라에 속하기는 했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또 크게 바뀌었다. 나우루는 검은 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나우루 은행에서 예금이 대량으로 인출되고 국제적으로 제재조치를 먹는 바람에 나우루의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며 순식간에 최빈국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고, 2004년에 나우루 은행이 모든 해외 금융기관들 간의 송금 통로가 꽉 막혀버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실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도 계좌 정보가 기록된 통장 장부상 가진 돈으로는 부자라고 한다. 하지만 나우루 은행은 지금 한 달에 딱 한번, 임금 지급 때만 업무를 보기 때문에 예금된 돈은 당연히 마음대로 찾을 수도 없고, 허공에 떠 버린 상태라서 거지신세인 것이다. 

결국 자국 내의 곳간이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보트피플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호주에게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이윽고 2003년 12월 경 난민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져 관광비자 발급이 갑자기 중지되고, 항공,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1월에야 호주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왔을 때는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 등 개막장 상태였다. 

이후로 나우루는 난민들의 입국을 한동안 기피하게 되나 하나 이후로 난민 수용을 안 하면 현실적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별수 없이 난민 수용을 재개했으며 난민 수용 재개 이후로 나우루인들 상당수가 난민 캠프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고 난민들도 처음에는 나우루의 환경에 좌절했다가 나중에가면 난민들이 적응하면서 현지인들과 빨래일이나 낚시일, 농사를 같이 하다 보니 나우루 정부도 주민도 난민들도 그럭저럭 현실과 타협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된 것은 국토자원을 국가가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우루도 사치를 부릴 게 아니라 정부에서 구아노를 통제해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게 했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경제부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같은 산유국이라 하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를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사정은 열악해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나우루 전국에 전기는 하루에 4시간도 들어오지 않으며 이전에 굴러다니던 자동차들은 죄다 기름이 없어서 내동댕이쳐져 있고, 심지어 식수조차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온갖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조미료 범벅의 음식 말고는 아예 없다는 게 현실이다. 나우루는 전통적으로 바다나 호수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나무에서 나는 코코넛, 빵나무 열매, 후식으로 망고 같은 열대과일을 주로 먹어왔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가끔씩 먹던 수준이지만, 한창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면서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맛의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들이 나우루 인들의 주 식단이 되었는데 현재도 그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업과 어업을 주로 했고, 간헐적으로 수공업이 이루어졌지만 나우루가 한창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광석이나 생선, 망고, 코코넛, 빵나무 열매 같은 약간의 작물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인광석이 바닥난 현재도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 원조다. 상술한 대로 난민을 받으면서 호주에게 지원을 받고 있다. 거의 호주의 식민지, 아니 거의 얹혀사는 수준이다.

그 밖에 자국 영해 근처에서 참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참치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서 못 한다. 

그 외에 나우루의 주 산물인 인광석이 남아있는데 고갈되었다고는 하나 아래 지층에 2030년까지 캘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남아있다고 한다. 채굴 비용도 비싸졌고, 인광석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래가 완전히 보장된 건 아니지만 일단 그런 대로 먹고살 정도의 양은 있는 셈이다.

100여년간 인광석 채굴을 해왔기 때문에 고도가 낮아져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로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나우루 주민 모두 호주가 지정해준 곳으로 단체 이주하고 나우루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인광석이 고갈된 이후로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전성기에 다섯 대에 달하던 보잉기도 하나 둘 팔아치우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보잉기마저도 2005년 채권자에게 압류되어 외부와의 항공교통이 두절되는 등 곡절을 겪다가 현재는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름을 바꾸고 보잉 737-300 4대로 근근히 운항하고 있다.

적도 바로 밑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열대몬순기후대에 속하며 연중 무덥고 습하며 대략 연중 기온분포는 최저기온 24도~26도, 최고기온 32도~34도로 형성된다. 11월부터 1월까지가 우기에 속한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실제 기온보다는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형상 사이클론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이나 가끔 태풍 피해를 겪기도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나우루에 갈 때에는 방문비자를 받아서 가야한다. 그런데 정작 나우루 국민은 대한민국에 무비자로 30일간 체류할 수 있다는 게 함정.

나우루에는 한국교민들이 2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2010년대에 어떤 사기범이 나우루로 도피하다가 송환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우루와 호주의 경우 오랫동안 유대 관계를 펼쳐 왔지만 인광석 소유권을 뉴질랜드, 영국과 함께 나우루에 이양시켰던 후 나우루는 훗날 호주와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밀접해있는데 잘나가던 시절의 나우루가 호주 부동산에 상당량의 자금을 투자했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밀접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우루가 한창 잘나갔을 시절에 나우루인들이 호주로 관광을 수시로 떠나서 물건을 사오고 그랬으니 걸끄러운 일이 있던 뭐건 우호관계였지만, 나우루의 돈세탁이 막히면서 한동안 나라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적지 않은 나우루인들이 호주로 이민가려고 하여 호주 측에서 심기불편해했다. 호주와 나우루의 불편한 관계는 그것만이 아니다. 어린이를 노예로 팔아 넘긴다든가, 인권을 유린하는 불행도 지속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나우루에 호주 고등판무관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호주에서 배를 타고 오는 난민들을 수용하고 제한하기 위해서 나우루에 상당한 액수의 금액을 지불하고 난민 캠프를 설치했으나, 나우루 측에서 이를 돈만 받아놓고는 엉망으로 관리하고 수용자들에 대한 강간과 성폭행 문제까지 계속 일어나 논란이 되면서 결국 호주가 이를 책임지게 되었다. 다른 나라 난민 캠프는 성범죄 가해자가 주로 다른 난민이었는데 반해 나우루의 경우 가해자가 주로 난민 시설 직원을 비롯한 나우루 원주민이었다. 때문에 논란이 더 심각했던 것.

나우루에는 현재 2개의 호텔과 1개의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다. 방문자들에 의하면 음식 맛도 괜찮았고 직원도 친절했다고 한다.

나우루 섬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딱히 없다. 섬이 너무 작은데다 섬 내부의 자연도 황량하기 그지없고, 망가진 경제 때문에 관광시설도 별로 없고 바다의 풍광이 좋다고는 하지만 해변도 쓰레기 천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원의 저주로 버려진 차들과 고급 주택들, 방치된 인광석 폐광이 관광자원이 되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섬이 너무 작아 헌법에 수도를 따로 지정해두지 않았지만 정부와 번화가가 야렌에 위치해 실질적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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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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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별무리 | 작성시간 20.11.23 헐랭.... 어카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도 우오오오 하며 보다가 감상을 쓰려 했는데 헐... 소리밖에 안 나왔다고ㅋ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3 나도 스크랩 하다가 이게 뭔 나란가 싶어서 때려칠 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프렌치토스트 | 작성시간 20.11.23 우와 엄청 흥미로워!! 조금만더 미래를 생각했더라면... 난민 강간은 뭐냐 미친거 아니야 !!!
  • 작성자몽상 | 작성시간 22.06.01 미크로네시아로 연어왔는데 글 너무재밌다 여시야ㅠ
  • 답댓글 작성자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02 고마워~ 회사에서 월루할 때 했는데ㅠㅠ컴퓨터 윈도우7이라 바이러스 먹었어서 겁나서 못하고 있어ㅠ.ㅠ 댓글 보니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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