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구(水營區)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동래군에 소속되었고, 1942년에는 동래군의 수영과 해운대의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수영출장소(수영동․광안동․민락동)가 설치되었다.
-1953년에는 해운대출장소(우동․중동․좌동)가 수영출장소에서 분리되었다.
-1957년에는 구제의 실시로 부산진구 대연출장소와 동래구 수영출장소로 개편되었고, 1973년에는 시직할 대연출장소로 승격되었다.
-1975년에 남구로 승격되었고, 1995년 3월 1일 남구에서 수영구로 분구되었다.
광안동(廣安洞)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1903년에는 동래부 남상면 광안리라 기록하고 있다.
-해안과 모래벌을 가진 곳이라 넓은 해안이란 뜻의 광안(廣岸)이라 이름 짓는 것이 옳으나 풍수상으로 보아 광안(廣安)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한다. (같은 岸(언덕 안)이지만 낭떠러지라는 뜻도 있어서 安(편안 안)으로 지은듯)
-이곳은 경상좌도의 수군들이 바다를 방어하던 곳으로 바다가 널리 평안하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있다.
남천동(南川洞)
-금련산에서 발원하여 수영만으로 유입되는 내(川)인 남천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남천동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400년 전이었다고 한다.
망미동(望美洞)
-수영동과 망미동 사이에 있는 산을 망산(望山)이라 하는데 망미동은 망산의 망(望)과 배미산의 미(美)자가 합쳐서 된 동명으로 보인다.
-또 다른 썰로는 망미동은 동래부의 고읍성(古邑城)이 있던 자리로 좌수영성의 북문 밖에 위치하며, 좌수영의 수사(水使)가
초하루와 보름에 망배(望拜)를 올렸는데서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의 망미인(望美人)에서 유래되었다.
민락동(民樂洞)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기 구획정리로 수영동이 수영성을 중심으로 구획되자, 이때 덕명(德名)으로 붙여진 지명이다.
-수영의 진산(鎭山, 지금은 백산이라는 산으로 추측된다) 앞의 동리이며 수영강의 어귀를 점한 유상처였던 까닭에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경치라는 데서 붙여진 동명으로 풀이된다.
수영동(水營洞)
-수영이란 이름은 수군절도사영의 약칭으로 관아명(官衙名)이 동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된 것이다.
-수영에는 주위 1193보, 높이 13척의 수영성이 쌓여져 이 성의 내부만을 수영동이라고 하였다가 점차 확대되었다.
지금의 수영동에는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다. 그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을 줄여서 "좌수영" 또는 "수영"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수군진영을 줄여서 말할 때는 "좌수영"이라 했고, 지명을 말할 때는 "수영"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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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