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흥미돋]막장아침드라마돋는 고이즈미 집안;;;;.txt

작성자시크릿내가원하는대로|작성시간21.01.05|조회수9,539 목록 댓글 24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blog.daum.net/ydiana1234/18095745

 

 

 

 

 

 

 

 

 

 

고이즈미 준이치로 역시 이혼남이다.

 

 그는 1978년 1월 36세 때 에스에스 제약 창업자의 손녀인 21세의 미야모토 가요코와 결혼했다.

 

그들을 중매한 것은 후쿠다 전 총리 부부로, 결혼 당시 이미 임신 중이던 가요코는 고타로와 신지로 형제를 낳았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4년 만에 파경을 맞고 82년 9월 이혼, 가요코는 고이즈미 가에서 영영 쫓겨났다.


 


고이즈미 가의 '비밀 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전 가정부 중 한 명인 A씨는 몇년 간 같이 일한 동료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성 말고 이름조차 확실히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성씨만으로 불렀어요. 고이즈미 가를 돌보던 미치코 씨가 가정부들에게 서로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서로 가르쳐주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거든요. 가정부는 청소, 세탁, 요리, 육아 담당으로 나뉘었지만 분담 외의 일을 돕거나 참견하는 것도 금지였어요. 감시가 붙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는데, 고이즈미의 장남인 고타로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육아를 담당하던 가정부 C씨가 있었다.

 

둘째 신지로의 5살 생일 때 그녀는 이혼한 고이즈미의 전처 가요코에게 축하 파티가 열리는 시간과 장소를 가르쳐주었다.

 

이혼 이후 절대 고이즈미 가에 출입이 금지된 그녀에게 파티 장소를 가르쳐 준 것은 떨어져 살고 있어도 아이들을 보고 싶어할 거라 생각한 C씨의 배려였다.

 

가요코는 덕분에 멀리서나마 막내 아들과 함께 두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이즈미家 장남 고타로, 차남 신지로

(아빠유전자를 생각하면 기적이납시셨음.)

 

 

 

핏줄에 집착2

 


고이즈미에게 셋째 아들이 있다는 것은 총리가 될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이즈미의 이력서에는 아들 두 명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실은 셋으로 연예인이 된 장남 고타로, 정치인이 된 신지로, 그리고 이혼 후 태어난 요시나가가 그들이다.

 

고이즈미의 아내 가요코는 그 집안에서 반쯤은 자의로, 반쯤은 쫓겨나듯이 뛰쳐나왔다.

 

가요코가 남편에게 "선택해요. 누나들인가요, 아니면 나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고이즈미의 대답이 걸작인 것이

"가족들이다. 가족이 없으면 난 선거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아내에게는 "군자는 떠나는 사람을 쫓지 않고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내쫓았다. 가요코는 당시 임신 6개월이었다. 전 가정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가요코 씨는 그 집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어요. 이혼 후 준이치로 씨는 결코 가요코 씨에게 아이들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가요코는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까요. 당시 고타로는 4살, 신지로는 2살 젖먹이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납니다."

가요코가 떠날 당시 2살이었던 신지로는 울며 불며 엄마를 부르면서 쫓아나갔지만, 

 

 이를 본 고모 노부코는 당장 아이를 들어안고 집안으로 데려갔다. 4살인 고타로는 울지도 않고 그저 입술을 깨물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가요코는 다음 해 1월 아들인 미야모토 요시나가를 낳았다..



2001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이혼 케이스를 다루면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소개했다. 일본의 친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케이스로, 한번 이혼하고 남이 되었을 때, 친권을 얻지 못한 부모는 대부분 자식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항상 두 아들을 보고 싶어한 가요코지만, 그녀의 친정 어머니의 말에서도 이런 견해가 드러난다.

 

신지로가 26세로 어린 놈이 애비 빽 업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그 아이(신지로)가 2살 때 헤어지고 나서 쭉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세간에서는 친자식이다, 손자다 등으로 말하고 있지만 저쪽 집 아이로 자랐으니...

물론 잊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가가 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생각도 없습니다. 저 쪽은 정치가의 가계이기 때문에 친자식이라 해도 떨쳐낼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쪽도 인생을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요."



잊은 적은 없지만 사실상 '남의 집 아이'. 이런 경향은 고이즈미의 경우 더 심했다.

 

고이즈미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적도 없을 뿐더러,

 

셋째 아들이 태어난 것을 알면서도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런 냉정한 태도는 쭉 이어졌고, 아들 요시나가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여러번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비서관들에게 제지당했다.

대학생이 된 요시나가는 마침내 아버지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친을 만나고 싶으니 연락을 취해달라는 부탁에, 비서관인 이이지마 이사오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핏줄은 같지만 부자지간이라고는 할 수 없네."



이 때 요시나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도 아니라니... 아들도 아니라니..."라고 통곡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 한 것은 이이지마가 아니었다.  지인에 따르면, 고이즈미의 누나인 노부코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농담하지 마. 이제 와서 새삼 만나고 싶다니, 감히 어딜 넘봐? 수상이 되니까 만나고 싶다느니 어쩌니 하는 거 아냐. 웃기지 말라고 해요. 핏줄은 같을지 몰라도 아버지와 자식은 아니지."



사실 여기에는 과거의 앙금이 숨어있다.

 

핏줄에 집착하는 고이즈미 가는 가요코와 이혼 후, 아이들의 친권을 둘러싸고 가요코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고이즈미 가는 위의 두 아들의 친권을 확보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가요코의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빼앗아 가려했다.

 

요시나가가 태어났을 때 고이즈미 측은 친권을 주장하면서 아이를 데려오려고 했고, 가정재판소 조정까지 거친 끝에 가요코는 간신히 셋째 아이를 자기가 키울 수 있었다. 대신 아이는 고이즈미가 아닌 미야모토가 되었고, 가요코와 일절 관계를 끊어버린 고이즈미 일족은 자신들의 손에서 떠난 요시나가마저 '타인'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노부코에게, 고이즈미 일가에 있어 이제 요시나가는 '고이즈미'가 아니었고 핏줄만 부자지간이긴 해도 타인일 뿐이며, 타인은 철저히 배제한다. 고이즈미에게 상처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신한 아내를 내쫓고 아들을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알려져 그 비정함 때문에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니 말이다.


아버지 곁에서 고이즈미 일족으로 자랐지만 고타로와 신지로 또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친어머니와 강제 절연당한 두 아이는 고모인 미치코의 손에 맡겨졌고 심지어 고모를 '엄마'라고 부르도록 강요당했다.

 하지 않으면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고모들이 자신과 아버지의 옷, 양말, 넥타이 색깔까지 골라주는 등 어머니의 역할, 아버지의 아내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자라야 했던 두 아이.

장남 고타로는 좀처럼 미치코를 따르지 않고 응석 부리는 일도 없었다. 가정부는 고타로가 중학생 때 딱 한번 반항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치코에게 "갈색 도시락은 가져가기 싫다!"고 한 것이 최초의 반항이었다. 아이들의 도시락은 미치코가 준비했는데 매일 밥 위에 불고기를 얹었을 뿐인 성의없는 도시락을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미치코 씨를 '마마'라고 부르라고 강요당해도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은 아닙니다. 고타로는 '갈색 도시락'을 구실로 친어머니가 없는 것, 고모에 불과한 여자를 '마마'라고 불러야하는 것을 항의하고 싶어했어요. 그것이 안타까워서......"



차남 신지로도 신경질적이고 어딘가 파리한 분위기를 가진, 사랑에 굶주린 아이였다..

 신지로는 어머니가 떠난 이후 밤에 잘 때면 작은 수건을 입에 넣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 수건은 신지로의 '아기 젖꼭지'같은 것으로, 꽉 잡고 놓지 않아서 아침이면 침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신지로는 그 수건을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수건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고이즈미 가는 솔직히 말하면,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해 버리는 순혈주의에 얽힌 여계 가족이었습니다. 피와 피로 얽혀 준이치로 씨라는 꽃을 피우는데 집착했습니다.

준이치로 씨에게 있어 부친 대에서부터 비서를 맡은 베테랑으로 고이즈미 가의 금고 담당이던 노부코 씨의 존재는 불가결했습니다. 가요코 씨는 준이치로 씨보다 14세나 젊고  무엇 하나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건 용납되지 않았어요.

준이치로 씨는 '자민당을 바꿀 자는 고이즈미 밖에 없다'고 위세 좋게 나팔을 불어대지만 당시로선 터무니 없는 나팔이었습니다. 누나들에게조차 무엇 하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었어요. 나쁘게 말하자면 로봇 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의 준이치로 씨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아들을 출세시키려는 시어머니와 눌러 죽치고 사는 시누이 셋, 분가했으면서도 매일 들락거리는 시동생 부부, 남편을 후원해주라고 강요받는 가요코와 시댁의 알력은 점차 커져갔다.

 한번은 가요코가 고타로를 어르고 신지로를 업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다른 가족 전원이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나가버린 적도 있었다.

보다못한 사람들이 부인을 위해 고이즈미에게 '요코스카에서 나와 누나들에게서 떨어져 지내면서 가정을 만들어라. 가요코 씨가 불쌍하다'고 몇번이나 얘기했지만 고이즈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나는 대가족 주의다."



대부분은 결혼을 하면 우선 순위로 아내와 아이를 감싸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감각에서는 혈족=가족이었다. 즉 어머니와 누이들을 배제하고서는 가족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이 아닌 아내와 아이는 타인이었던 것이다.



고이즈미 가의 '냉혈'에 대한 증언은 계속 나왔다. 고이즈미의 어머니 요시에에게 치매가 왔을 때 고이즈미 남매들이 모친을 대하는 모습은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준이치로 씨가 이혼하고 몇년 안 됐을 때 요시에 씨가 치매 증상을 나타냈습니다. 두 손자가 요시에 씨를 잘 돌볼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미치코 씨를 비롯한 어른들이 집에 없으면 고타로와 신지로가 돌볼 수 밖에 없지요. 요시에 씨는 우울증상도 보였지만 손자밖에 없기 때문에 정신적 의지가 없었어요. 우리 가정부도 밤에는 퇴근하니까요.

준이치로 씨는 도와주지도 않는 주제에 돌아오면 그저 멍하게 2층의 어머니 방에 들어와 '병원에 가는 것은 싫다'라는 말만..."

 

요시에를 돌보기 힘들어진 가족들은 입원을 시켰지만 가족들 중 병원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입원과 퇴원이 되풀이된 15년 동안 그런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2001년 10월 요시에가 사망했을 때 가요코는 요시나가를 데리고 예고없이 고이즈미 가에 나타났다.



19년 전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고이즈미 가에서 쫓겨났던 가요코는 뱃속에 있던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분향하겠다고 찾아왔지만 비서들에게 강경히 가로막혔다.



"어째서 여기 온 겁니까. 분향은 안 됩니다. 돌아가 주세요."

"어째서라니, 무슨 말입니까?"

"오셔서는 곤란합니다."

"난 시어머니께 신세를 졌습니다. 분향에 오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비서겠지. 무슨 권한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결국 대기실에 갇혀 장시간 설득을 당했지만 모자는 끝내 분향을 고집했다.

 

 19년 전 아들의 출세를 위해 이혼을 강요했던 시어머니의 영전에 향불을 피우는 동안, 전 남편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던 아들들과 말 한 마디 못해본 채 가요코와 요시나가는 끝나자마자 당장 붙들려 택시에 밀어넣어지다시피 돌아와야 했다.



정치가 '집안'을 존속시킨다는 목적 아래 모두가 달려들어 한 사람을 위해 똘똘 뭉쳐 타인을 쳐내고 그 한 사람을 보호하는 기분나쁜 유대감. 그러나 화목과는 거리가 먼 가정 분위기. 목적을 위해 필요로 하는 가족 관계와 힘이 없어지면 '가족'에서 떨궈지고 마는 고이즈미 가 특유의 '가족 사랑'. 그 섬뜩하기까지 한 분위기에서 '집안'에 지배당하는 듯한 기괴한 느낌을 주는 그런 가족 관계에서 고이즈미는 총리까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총리에 오르기 전의 과정을 보면 정말 가족이 아니었다면 인류를 위해 사라져줘야할 대상 중 하나로까지 볼 수 있었던 로이즈미 준이치로. 그의 사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

 

고이즈미 아들 게시물에 누가 고이즈미똥차라길래 인터넷좀 뒤져봤음......

이정도면 집안이 아주 난집안인듯;;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둥지를틀어봐 | 작성시간 21.01.06 개판이네
  • 작성자이수만투르크 | 작성시간 21.01.06 와 시바 전형적인 일본이노; 펀쿨섹 유쾌한 새낀줄 알았는데 아니네
  • 작성자BITTER PEACH | 작성시간 21.01.06 펀쿨섹 도라이 된 이유가 있네... 저 집안에선 계속 소시오패스만 태어날득
  • 작성자wtqdakzp | 작성시간 21.01.06 저정도면 정병이다 ..
  • 작성자올해는 크리스마스 트리살거야 | 작성시간 21.10.16 정병집단이노....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