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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조지 6세의 왕비이자 현 영국의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로 인도의 마지막 황후였던 인물,
흔히 왕대비(퀸마더, Queen mother)라는 호칭으로 흔히 알려져있어.
스코틀랜드 귀족 출신으로 헨리 8세의 왕비들 이후 400년만에 나온 왕족 출신이 아닌 왕비야
남편 조지 6세는 세자가 아니여서 왕이 될 운명이 아니였지만, 형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과 사랑에 빠져 양위하며 본의 아니게 왕이 되버린 경우였어.
조지 6세는 매우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이였는데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왕좌를 버리고 본인이 왕이 될 상황에 처하자 어머니 메리 왕대비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일화는 유명.
성격이 당찼던 보우스 라이언은 이런 남편을 달래서 훌룡한 왕이 될수 있을꺼라고 달랬다고 전해져.
남편이 죽고 장녀인 엘리자베스가 즉위하자 권력지향형 성격이 강했던 퀸마더는 딸의 즉위 초기에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퀸마더와 사이 안 좋은 사람
(1) 사위 - 필립 마운튼배튼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대비와 여왕의 남편인 필립 마운튼배튼은 장모와 사위지간임에도 둘사이는 별로였어..
필립공은 독일계였는데 1차대전 당시 보우스 라이언의 오빠들중 몆명이 전사, 전쟁후유증으로 평생 정신병을 앓다가 죽었고 이로인해 독일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
심지어 결혼 초반엔 필립을 독일 야만인이라는 뜻의 훈족(?)이였나 아무튼 그런식으로 모욕감줬을정도...
그리고 퀸마더는 고집 세고 보수적인 사람이라 과거 방식대로 왕실을 유지해가자했고 필립은 시대에 맞게 왕실도 변화해야한다고 주장해서 둘 사이 가치관 갈등도 컸어
또한 퀸마더는 남편 조지 6세가 죽자 둘째딸 마가렛 공주와 함께 2인가구가 됨..근데 남편이 남긴 유산들을 단기간만에 사치,도박으로 탕진해버림.
그때부터는 엘리자베스한테 돈 타서 썼는데, 퀸마더랑 마가렛 딸랑 두사람 생활비가 버킹엄궁(엘여왕) 생활비랑 맞먹을 정도라 필립공이 불만 많았다고 전해져.
그리고 퀸마더는 필립의 어머니 앨리스도 안 좋아했는데 망한 그리스 왕실의 왕자비라고 무시했다고 해
(근데 혈통으로 치자면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왕족이고 퀸마더는 스코틀랜드 백작가문의 딸인 귀족)
(2) 시아주버니 에드워드 8세 - 큰동서 심프슨 부인
시아주버니(남편의 형)인 에드워드 8세와 손윗동서이자 큰동서인 심프슨 부인 역시 매우 싫어했어.
남편 조지 6세의 이른 죽음(사망당시 57세)의 원인이 폐암이였고 흡연 이유가 2차대전 이후 국정스트레스 때문이였음.
이로인해 무책임하게 왕좌를 동생에게 넘긴 에드워드 8세를 진짜 싫어했고 그의 부인이던 심프슨 부인 역시 매우 싫어했어.
말년에 손자인 찰스 왕세자가 카말라랑 결혼하려고 할때 매우 큰 반대에 부딫혔는데 외조모인 퀸마더가 이혼녀에 대한 반감이 너무 심해서임.
다행히 죽을때까지 원수지간이였던건 아니고 1972년 에드워드 8세가 죽자 슬픔에 잠긴 심프슨 부인을 보고 20년전 남편 조지 6세가 죽었을때 자기자신을 떠올린건지 심프슨 부인을 위로해줬다고 해.
(3) 손자며느리 - 다이애나 왕세자비
손자며느리였던 다이애나의 경우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한 이후로는 그녀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
처음에는 손자와 결혼하고 아들도 둘이나 낳은 다이애나를 매우 아꼈고 자신의 펜던트와 보석들도 물려줄정도로 신임했지만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한 이후 그녀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했어.
1997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왕실관례대로 어린 두 증손자 윌리엄과 해리가 어머니인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게 하게끔 큰딸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요구했고 다이애나 사망 당시 모친의 사망소식을 아들들이 모르게끔 조치해서 영국 전역에서는 왕실에 대한 큰 반발이 일어났어.
이러한 국민적 반발때문에 의례적으로 퀸마더는 생각을 바꿔서 전 손자며느리의 장례식에 참석함.
(4) 손아래동서 - 마리나 켄트 공작부인
손아래동서이자 그리스의 공주였던 마리나 공작부인과 사이도 좋지 않았음.
왕실법도대로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공주의 옷들을 물려주었는데 일부로 질이 안좋은 옷들만 물려줬다고 해.
둘이 기싸움도 심했고 마리나는 왕족 출신이라 퀸마더를 스코틀랜드 촌뜨기라고 생각했대
그리고 한 사치했던걸로 유명해
평소 나들이할 때마다 운전사, 하인 1명, 하녀 2명, 경호원 1명을 대동했던 퀸마더는 왕실은행에서 400만파운드 이상을 초과인출할 정도로 씀씀이가 컸다고 함
근데 여왕은 모친의 큰 씀씀이를 위해 보조금을 더 줬다고 함
런던시내 리츠호텔에서 식사를 했고 그녀가 주최하는 오찬 및 만찬은 사치스러움으로 유명했고 거처였던 클래런스 하우스는 모네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으로 장식했으며 한때 마리 앙트와네트가 가졌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포함해 많은 보석도 소장했다고 함
2차대전때도 폐허가 되어 피해입은 피난민들 위로하러 갈때도 맞춤복에 보석을 두르고 가자 자제하라고 주변에서 조언했으나 “나보러 오는 백성들도 있으니 차려 입는게 예의”라고 발언했대.
근데 사이 안 좋은 사람들만 있는거 아님
눈에 넣어도 안아플 두딸 엘리자베스와 마가렛은 평생 예뻐했고 두딸은 진짜 많이 아꼈다고 전해져.
특히 두딸 모두 제왕절개로 낳았고 그 후 임신을 할수 없게 된터라, 과잉보호 수준으로 키웠다고 해.
둘째딸 마가렛이 잦은 흡연과 음주때문에 건강이 그닥 좋지 않아 먼저 세상을 떠나고 퀸마더는 충격으로 시름시름 않다가 7주 뒤에 10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여기까지 보면 파이터 기질이 넘치는거 같지만, 실제 평가도 두가지로 나눠지고 있음
(1) 지나치게 꽉막히고 보수적이여서 시대상에 맞지 않던 왕실의 어른
(2) 2차대전 당시 조지 6세를 보좌하고 담대한 성격으로 아돌프 히틀러도 질리게 한 (실제 히틀러는 그녀를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라고 말함) 인물
주로 요즘은 영국에서 (2)를 많이 생각한다고 함.
이러한 어머니의 장수 dna를 받아서인지 현 여왕은 95세 나이에도 승마를 즐길정도로 건강하고, 동나이대의 생전 모친보다 더 건강한 신체를 유지중이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