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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씹빨쌔끼뜰]독립투사 고문법의 한 70%는 내가 만들었어 ㅎㅎ 권선징악? 그게 맞는 말이라면 내가 선인 거지? ㅎㅎ

작성자R=VD2021년정규직전환과연봉1800상승|작성시간21.01.24|조회수1,993 목록 댓글 14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박애경

 

 

 

 

 

 

 

 

 

안녕? ㅎㅎ 나는 노덕술이야 ㅎㅎ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마쓰우라 히로로 잠시 이름을 바꿨었지 ㅎㅎ

 

 

제목에 써있다시피 나는 고문 천재였어 ^~^

많은 독립투사들이 내 손에 죽어갔단다 ㅎㅎ

일제강점기의 고문 방법에 대한 책을 보면 한 70%는 내가 만든 고문법이 실려 있어 ㅎㅎ

 

혀를 뽑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고 그런 건 기본이고 상자 안에 넣고 못을 하나씩 박는 등

내 고문 방법은 참으로 기발하고 다양했단다 ^_^

 

 

 

 

설마 나를 생각하면서 일반 순사 나부랭이를 떠올리는 건 아니지? ^^

나는 그런 순사들과 달라.

 

일본인들조차 내가 미친듯이 고문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ㅎㅎ

나야 말로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색출왕, 그리고 색출한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히는 고문왕이었지.

 

 

 

 

감히 건방지게 조선의 부흥을 꾀했던 신간회의 간부로 활동하던 박일형도 내가 고문했어 ^*^

(사진은 3.1운동 당시임)

 

건방지게 학생 운동을 하던 것들도 내가 고문했지 ^_^

동맹휴교라니 웃기지도 않아 ㅋㅋㅋㅋㅋ

 

어린 것들이라 그런지 겁이 없더라고.

글쎄 동맹휴교의 배후에 '혁조회'라는 반일단체가 있지 않겠어?

나는 혁조회 관련자인 김규직, 유진흥 등 학생들을 잡아다가 고문했어.

 

그중 김규직은 고문 후유증으로 29년 옥사했다더라.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ㅎㅎ

 

 

이 사진은 광주학생운동 당시 잡혀가는 조선 학생들이야 ㅎㅎ

조선인 여학생을 괴롭히는 일본인들을 보고 분노한 조선 남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을 때린 것이 발단이 되어

광주 전체로 퍼진 사건이지.

 

 

 

 

희롱당한 여학생과 일본인 학생을 때린 박준채 학생이야.

여학생 하나 희롱했다고 감히 일본인을 때리다니 말도 안되지?

 

그리고 또 이런 일에 도시 전체가 들먹였다니 어이가 없지 않아?

남의 일인데 말이야 ㅋ

 

 

그래서 이 운동에 참가한 학생들도

 

 

 

 

내가 고문했어.

 

사실 내가 고문한 사람들을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해.

한 두명 고문한 것이어야 말이지ㅋㅋㅋ

 

그래서 독립이 되었을 때 사실 나도 좀 긴장했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반민특위란 녀석들이 나를 잡으러 왔지.

휴 저 사진은 정말 굴욕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나를 도와줬어!!

그는 반민특위 활동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어 ㅎㅎ

 

 

그래서 나를 비롯한 친일파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수 있었지 ㅎㅎ

이틀만에 풀려났다니까? ㅎㅎ

 

물론 끈질기게 항의하는 녀석들도 있었어.

 

 

 

그래서 국회 프락치 사건을 일으켰지 ㅎㅎㅎ

 

국회프락치사건은 1949년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를 적발하고 체포 활동하는 국회의원이 남로당과 접촉하고 공산당에 협조한 사실로 구속한 사건이다. 이것때문에 반민특위를 해체하게되는 명분을 주게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한마디로 나를 비롯한 친일파를 자꾸 위협하는 반민특위를 전부 빨갱이로 몰아버린 사건이야 ㅎㅎ

 

 

사실 그냥 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암살범으로 보낸 백민태가 자수를 해버려서 실패했지 뭐야?

알고보니 이 백민태란 사람이 독립운동가였었더라고? 그래서 막바지에 변심을 한 거지.

 

나는 무척 화가 났지만

 

 

어쨌든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반민특위는 사라지게 되어서 괜찮았어 ㅎㅎ

 

 

 

 

광복 이후에 그럼 난 뭘 하고 살았냐고?

 

나는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 기용되어 경찰 내부의 '반이승만 세력' 숙청, '좌익분자' 검거 등을 주도했어.

 

 

古박종철 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라고 알려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는 말로 유명한 사건이지.

 

사실 이것보다 내 "저놈 잡아라~" 가 더 유명해야 하는데 말이야 ㅎㅎ

 

 

장택상.jpg

 

경찰청장 장택상을 저격 용의자인 25세 청년 박성근을 고문 와중 죽이게 됐거든...

사실 내가 죽인 건 아니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 부하들이 죽였어.

나는 곤봉으로 난타만 좀 했는데.....

 

아, 장택상은 나를 이 자리에 앉혀준 장본인이야 ^^

 

경찰청장을 지내면서 악질고문경관 노덕술 등을 총애하고 의열단을 이끈 무장투쟁독립운동가 김원봉을 붙잡아 고문해서 끝내 월북시키고 발췌개헌이 통과하는 데에 공헌하는 등 근현대사의 막장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인 걸 생각하면 결코 호의적으로 볼 수 없는 인물이라는데, 저건 그나마 양호한것이다. 김원봉은 죽지않고 고문만 당했으니... 장택상의 진면목은 극우 테러를 묵인,방조한것이다(...) 미군정의 협조도 있고.

 

 

젊었을 땐 독립운동도 하고 그랬다던데, 심지어 여운형과 친한 사이였다니까?

젊었을 때 만났으면 내 손에 고문 당했으려나?

 

아무튼 박성근을 고문 중 죽여버렸으니 문제가 될 게 분명했어..

하지만 나는 임기응변을 발휘할 줄 아는 남자였지 ^^

 

나는 취조실 고문실 창문을 열고 "저놈 잡아라!" 하고 외치면서 임화가 도망간 것처럼 꾸몄어.

 

그리고 경찰서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박성근의 시체를 얼어붙은 한강 구멍에 넣어 유기했지 ㅎㅎ

 

 

내 상사 장택상에게 이걸 보고하자 직물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면서 보너스까지 줬어 ㅎㅎ

 

Yaksan03.jpg

약산 김원봉

 

 

아, 나는 이 사람도 고문했어.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원봉 말이야.

 

아 일제강점기 때 고문했냐고????

 

아니???

 

광복 후에 고문했는데????

 

 

내가 그를 빨갱이로 몰았거든 ㅎㅎ

실제로 그의 성향이 좀 사회주의적이기도 했고 ㅎㅎㅎ

 

나는 그를 중부경찰서에 구금한 후 잔혹하게 고문했어.

 

집에 돌아온 김원봉은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수가 있소" 라고 말하며 꼬박 3일간을 울었다고 해.

 

그 이후로 나는 육군 범죄 수사 단장, 서울 15 범죄수사대 대장 등 고위직을 계속 맡았어.

그러다가 뇌물 수수가 재수없게 걸려서 파면당했지. 

 

그 이후로 60년에 국회의원 선거에 한번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68년에 사망했어.

 

 

 

그러니 나는 한 번도 내가 한 일에 대해 벌을 받은 적 없어.

나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는걸?

 

권선징악, 선이 권력을 얻고 악이 벌을 받는다는 뜻이야.

이게 맞는 말이라면 나는 선인 거지??

 

 

 

 

 

 

 

+안녕 엿이들... 내가 쓴 글은 얼마 안되지만 이렇게 쓰기 힘든 글은 처음이었어.....

 1인칭 시점으로 쓴 게 섬뜩하게 느껴진 여시들이 있다면 미안해...

 하지만 이 시점이 제일 이 사람의 역겨운 삶의 궤적을 잘 보여줄 것 같더라고...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충격을 받았던 건 있잖아, 내가 저 위에 썼던 독립운동가들 신간회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정말 없어.....정말로 잊혀진 거야.....진짜 너무 가슴이 아팠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 다

 저분들이 희생해주셨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분들을 기억도 못하고 있다는게 너무 슬프더라... 저분들은 노덕술 같은

 인간 쓰레기들한테 모진 핍박 당하면서도 우리를 생각하고 참으셨을텐데..... 여시들 우리 진짜 잊지말자... 저분들이

 계셨다는 걸 잊지는 말자....

 

+이 글은 엔하위키를 참조해서 썼어...

 

+스크랩은 환영이야, 부족한 글이지만 다른 카페로도 많이 퍼가줬으면 좋겠어...ㅎㅎ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1900~1991)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6.25 전쟁때 피난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다가 부역죄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구타를 당했는데 자기를 구타한 사람이 일제 때 자기를 구속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고 한다.

1943년 합천독서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던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1926~2006)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9월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1958년 7월 남파공작을 위해 남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접선에 실패하고 그해 9월 부산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이때 그를 체포한 형사 역시 일제시대 그를 고문했던 형사였다.


 

 

이건 엔하에서 본 자료인데 넣을 부분이 애매해서 맨 밑에 넣어...

나도 몰랐어, 이 분들이 계셨다는 것도 몰랐어... 우리 기억하자 여시들......

 

 

 

+문제시 수정할게! 아 그리고 이번엔 말머리 씹빨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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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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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냐우유 | 작성시간 21.01.31 진짜..욕나온다 시팔 ..좆같다 ..
  • 작성자슈슈버거악개 | 작성시간 21.02.04 친일파 다 죽어야됨 지금이라도 친일파 조상 덕으로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 재산 뺏어서 독립운동가 자손 분들한테 넘겨드려야된다고ㅠ생각해
  • 작성자무뇌스코 | 작성시간 21.02.24 다읽는데 한참걸림 진짜 개욕나와 화나서 미치겠다
  • 작성자밤을 물리치게 해 | 작성시간 21.04.08 너무나 화나고 빡친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단어는 없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아야하고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해 원통하고 분하다 정말로...
  • 작성자펭현숙 귄가 | 작성시간 21.04.09 치가떨린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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