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돋][여성들을 위한 야망 에세이] 우리에겐 '야망'과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뿐 인류를 구하러 온게 아니라고>
작성자Maximus작성시간21.02.01조회수3,169 목록 댓글 5출처 :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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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통해 사회생활의 조력자를 얻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결혼과 함께 조력 노동까지 추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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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가 아무리 평등하다 해도 사회적 가장의 자리를 남자에게 넘겨주는 가부장제 자체가 이미 여성이 이등 시민임을 전제하는 제도다. 똑같이 나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데도 고스란히 여자에게 쏠리는 가사 노동만큼이나 이 굴욕감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식은땀이 나는 건, 그 와중에 더 나이 들기 전에 출산을 해야 할 것 같아 병원까지 다녔다는 사실이다. '결혼했으니 아이 하나쯤 낳는 게 좋지 않을까?' 딱 이 정도 무른 생각이었다. '내 유전자를 남기고 싶다.'는 욕구조차 느껴본 적 없는 나 같은 여성도 움직이게 만들다니. 관습의 관성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집 밖에서 하면 최저시급이라도 받지 집 안에서는 같은 일도 철저하게 무급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의 뒤축은 한국 여성의 무급 노동이 떠받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남자의 얼굴을 한 국가는 여자들이 닥치고 그들의 그림자가 되어 그림자 노동을 제공하길 바란다. 결혼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다. 이성애, 모성애, 가족애 등 각종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그럴듯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여자들을 가부장제 속에 몰아넣고 갈아 넣은 결과가 2018년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저개발국가도 아니고 1인당 GDP가 3만 3천 달러에 이르는 개발국가의 사상 최저 출산율이 말해주는 건 뭘까? 그 국가의 개발은 여성 착취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 국가의 여성 인권은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은 다 알고 있다. 여자의 무급 노동을 착취해서 이룰 수 있는 개발과 성장은 끝났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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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직접 만든 음료를 내왔다"는 대목에서 실소가 터졌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소로의 밥과 빨래를 엄마가 해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허탈함이었다. 최근엔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누가 박사학위를 받았다거나 작품을 완성했다거나 수상을 했다거나 하면 그 남자가 대단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남자 주변의 여자들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소로의 엄마 같은 엄마일까? 고독사를 꿈꾼다는 교수의 아내일까? 아님 여자친구? 남자가 자기 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식단 짜고 장 보고 요리하고 씻고 쓸고 닦고 빨고 종일 주변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그 여자는 누굴까? 가사 노동 외 비서 노동을 한 여자도 많겠지? 지금껏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업적과 성취들 또한 그렇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손'의 돌봄을 받고? 뛰어난 인물들뿐이랴. 일터에서 나와 경쟁하는 평범한 기혼남들, 결혼 후 멀끔해진 그들에게도 하나씩 배당된 마법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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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개인 사업자 비율은 40.6%다. 신규 창업자 중 여성의 비율은 48.3%에 이른다. "여자 사장이 이렇게나 많다고? 역시 여성 상위 시대!" 같은 말은 넣어두자. 이 숫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처럼 착시에 가깝다. 여성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고 해도 고용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각종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취업률을 견인하는 건 5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이는 소득이 낮아 남성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여자들이 몰려 있다는 의미다.
... 여기서도 남녀 성비 차이는 두드러진다. 원두, 머신 등 카페에 필요한 제품의 수급, 공급,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건 남자, 바리스타나 로스터로서 권위를 갖는 것도 남자다. 한마디로 돈 되는 건 남자들의 몫이다. 어떤 업종이든 모양새는 비슷하다. 다수의 여자가 그 일에 종사할 땐 임금도, 전문성도 얻지 못하다 남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다. 셰프가 대표적이고 최근엔 보험 설계사가 그렇다. 취업난으로 수가 늘어난 젊은 남자 보험 설계사들은 전문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중년 여성 설계사들을 빠르게 몰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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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것밖에 벌지 못할까?" "왜 여자 자산가는 찾아보기 힘들까?" 같은 구조적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하지만 내 가게를 운영하고 외식업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보이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에게 돈을 쓴 거지?" 이젠 어딜 가면 사장 관상을 본다고 말한다. 사장이 없으면 가게 이름에 '오빠'나 '총각'이 들어가진 않는지, 가게 앞에 "넌 먹을 때가 제일 이뻐" 같은 '얼평' 네온이 붙어 있진 않은지 본다. 관심 가는 공간이라면 공식 계정이나 사장의 SNS를 훑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미리미리 거를 수 있도록. 외국에도 비슷한 요구가 있는지, 2017년 3월부터 구글 지도 검색을 하면 여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는 'Women led' 마크가 뜬다.
비단 뭔가를 소비할 때만이 아니다. 요즘 나와 내 주변 여자들은 여자에게 일 몰아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은밀하고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행사에 여자 강사를 초빙하고, 여자 필자를 섭외하고, 여자 사진가를 부르고, 여자 보험설계사를 쓰고, 누가 소개해달라고 하면 "일을 잘해서요"라면서 여자를 추천하고, 어떻게 해서든 여자가 돈을 더 벌고, 일과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 주는 것. <히든 피겨스> 속 대사처럼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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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0대엔 내 욕망을 헷갈렸다. 불안을 결혼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언제나 남편이 아니라 아파트였다고. 이제라도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졌으니 해결책은 분명해진다. 필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적금이고 펀드고 재테크다. 세대주로서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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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난 뒤부터는 나는 아이디어를 낼 때 이 아이디어가 성차별적이진 않은지 의식적으로 검열했다. ...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여성혐오적 시선과 태도를 탑재한 채 전 국민에게 노출되는 콘텐츠를 다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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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물론 혼자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과정에 많은 이들의 협조와 공조가 있었다. 회의 시간에 누군가가 "남자 모델이 더 신뢰가 가니까" 같은 말을 해도 "그거 성차별 아냐?" 지적하거나 문제 제기하는 걸 회사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여성 혐오나 여성비하도 여자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나 내가 몸담은 광고회사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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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광고대행사 임원은 아예 제작 팀장들을 모아놓고 성평등 의식을 키우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여자 두 명을 제외한 10여 명의 남팀장들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배제하고, 고정된 성 역할을 반복해온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조율하라고 하면 반발하게 마련이다. 마치 천부권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하지만 여성이 소비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여성 소비자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건 기업의 작동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광고를 계속 만들고 싶고 물건을 계속 여자들에게 팔고 싶다면 남자 광고인들도 부지런히 변화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싫고 퇴행을 고집하고 싶다면 그만두는 방법이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할 여성 광고인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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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팅이 별로라서 또 지르고. 남자의 돈이 아닌 내 돈으로 사고 싶은 걸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배들이 쟁취하지 못했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잘 관리하는 나. 독립적이고 멋있는 나에게 어울리는 미스터 빅이 있을 거야. 비록 괜찮은 남자는 모두 결혼했거나 게이지만 어딘가는. 언젠가는. 이 헛되고 모순된 희망을 불과 얼마 전에야 폐기했단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후에도 '아름답고 유능하고 주체적인 썅년' 놀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니, '아름답고 유능하고 주체적인 썅년' '남자들이 욕망하는 페미니스트'야말로 더 진보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미용실, 피부과, 다이어트, 쇼핑, 유흥에 쏟아부은 비용은 푼돈이 아니었다. 남성 연대의 공고한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믿었던 나의 주체성은 기업과 시장이 장려한 소비자 주체성으로 판명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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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스노우볼 속에선 삶의 희로애락, 성공과 실패, 자기 자신조차도 남자와의 사적인 관계에서 찾게 된다. 여자들이 여기에 몰입할수록 저 밖에 존재하는 종교, 정치, 사법, 금융의 남근 연대는 더욱 강고해진다. 그 많은 로맨스 코미디, 멜로드라마, 짝짓기 예능의 주된 생산자가 누구인지, 그로인한 진짜 수혜자가 누구인지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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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을 두고 '스컬리 효과'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지적이고 독립적이고 일에 몰두하는 여성 캐릭터 한 명의 힘이 이 정도다. 우리에겐 더 많은 스컬리가 필요하다. 여성 서사를 소비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지만 그나마 가진 소비자 권력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용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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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처럼 선택되기를 선택한 또래 여자들 옆에 살면서 그들이 가진 생생한 아름다움과 트로피에 자극받다 보니 어느새 동경심 내지 경쟁심 마저 들었다. 논현동에선 '초이스'받는 것이 권력, 남자에게 얼마나 욕망당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이것이 이 동네만의 작동 원리일까? 남자는 직업적으로 성공하면 존재하지 않던 성적 매력까지 획득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잘나도 남자를 잘못 만나면 소용없단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직업인으로서의 성공과 여자로서의 성공이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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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심히만 하면 기회가 주어질 거야!' 이것은 페미니즘이라기보다 페어리테일에 가깝다. 남성 중심의 구조 안에서 여성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벽에 부딪히고 만다. 어느 시점에 막히는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동화 같은 약속을 믿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봤지만 결과는 기업인 청와대 만찬, 카카오뱅크 출범식(전원 남성) 같은 것이 현실이다.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성인 여성이라면 '두려움 없는 소녀'를 흐뭇하게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먼 임파워링'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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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고작 내가 되겠지"를 읊조리기보다 힘을 모아 정치인을, 국가를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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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수증> 제작 발표회에서 방송은 왜 안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은이는 이렇게 답했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 일을 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기회는 사람이 주는 것이다. 나를 인정하고 도와주고 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자인 상황. '보이즈클럽'의 문을 어떤 식으로 두드릴 것인지 젊고 야심 있는 여성은 자기 성향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가부장적 스테레오 타입 몇 가지를 예로 들면, 퇴근 후 술자리, 각종 사내 모임, 근무 중 흡연 타입에 빠짐없이 동참하며 남자들과 전면적으로 어울리는 털털한 '남동생' 전략, 별일 없어도 팀장이나 본부장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면담을 신청하거나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청하는 '여동생' 전략, 항시 부드러운 미소로 사내 대소사나 남자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일 등을 나서서 챙겨주는 '엄마' 전략 등이 있다.(하지만 여성이 실제 출산을 하고 오면 그냥 '애엄마'가 된다.) 이것 외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내 성격, 페이스대로 오직 일에 올인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소위 '미친년' 전략도 종종 구사된다.
경험상 이중 어떤 전략이든 효과를 볼 수 있다. 실력과 운이 좋고, 사생활도 없이 회사에 전념한다는 전제하에 팀장급 정도까지는. 그사이 결혼, 출산을 거치거나 부조리, 부당함 등을 보아 넘기는 비위가 약한 여성들은 알아서 조직에서 퇴장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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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즈클럽'은 중요한 승진, 자리 기용처럼 그들의 이익과 직결된 순간에 실체를 드러낸다. 일 외적으로 어떻게든 비슷한 점을 찾아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는 남성 연대의 특성을 헤르미니아 이바라 인시아드 경영 대학원 교수는 "자기도취적이고 게으르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승진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결정권자는 그 여성의 자질과 능력을 주위 남자들의 말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한다. 유능하지만 곁에 두기 불편한 여성보다 좀 부족한 듯해도 '아는 동생'에게 기회가 가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론은 여성이 아무리 전략적으로 인맥을 쌓으려 해도 '보이즈클럽'의 공고한 자기애와 게으름의 벽을 깨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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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안정된 조직 안에서 팀원들과 함께 협업하며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일반적 여성 리더의 수를 늘릴 것인가? 초점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여성이 투표권을 웃으며 얻지 않았듯 이 과정 역시 자율과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 (기업 내 여성 임원 할당제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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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강자인 남자의 자리에 대입하는 것은 일시적 통쾌함을 주었지만 변수는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 힘을 발휘할 약하고 예쁜 존재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존재에게마저 욕망당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권력을 넘겨주었다. 뼈에 새겨지다시피 한 성적 대상화,ㅡ 남성 숭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성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좋아서 하는 다이어트? 좋아서 하는 덕질? 나의 선택,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 과정 없이 가부장제에서의 독립은 성공할 수 없다. 설사 경제력이 있다 해도 말이다. 이것이 실패로 끝난 미러링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이다.
화장품 광고, 차음료 광고, 쇼핑몰 광고, 속옷 광고에서 '지금 당장 이 제품으로 이 배우만큼 아름다워져라! 저 모델만큼 날씬해져라!' 때론 사탕발림하고 때론 불안을 팔지 않았던가. 같은 방식으로 나 역시 패션 잡지에 영화에 드라마에 예능 프로에 360도 포위, 설득당했다. 그렇게 주체적 꾸밈에 한껏 취해 졸라맨 건 나만의 코르셋이 아니었다. 나의 그것을 전시함으로써 주위 동료와 후배들, 거리며 지하철에서 마주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 온라인 친구들의 코르셋까지 함께 옥죄었던 셈이다. 서로가 서로의 채찍이 되어 어린 세대에게서 '꾸미지 않을 자유'를 빼앗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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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부, 나의 꾸밈, 그것은 결코 나의 권력이 아니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외모는 중요한 승진에서 기혼남에게 밀렸을 때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날씬하고 보기 좋다고 일 하나 더 받지 않았다.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옆자리는 내어줘도 돈이 되는 기회는 내어주지 않았다. 외모권력이라는 말은 그래서 모순된다. 권력은 초이스를 하는 쪽에 있지 초이스를 받는 쪽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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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우리는 다른 욕망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탈코르셋'은 그저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닫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성적 대상화에 몰두했던 사람일수록 이 의미를 잘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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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1020 여성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빡센 메이크업과 킬힐로 다 죽이는 비치? 섹시한 비키니를 입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 어떤 스타일, 어떤 체형이든 이 '꾸밈의 굿판' 안에서 아무리 싸워봐야 여자는 승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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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 사회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이 비밀을 알아채버린 여자, 그리하여 쉽게 통제 가능한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여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뷰티 산업 강국 한국에서 지금 '탈코르셋'이 운동이자 저항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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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살집 있는 여자, 더 주름 많은 여자, 더 똑똑한 여자, 더 근육질의 여자, 더 권력 있는 여자...... 아직까지 광고에서 보지 못한 여자들이 더 많다. 지금 각성한 야망 있는 20대가 결정권자의 자리에 올라 여성의 관점에서 만족스러운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승인하는 날이 올 때까지 좀 더 두고 봐도 늦지 않다. 우리에겐 보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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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자는 자기가 만들고 싶다고 인맥, 라인을 의도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조직 안팎의 힘 있는 사람, 임원급, 팀장급을 비롯 같은 팀 내 사수까지 대부분이 남자고 이들을 상대로 여자 직원인 내가 사교적인 행동을 했을 때 이것은 다른 시그널, 즉 '그린 라이트'로 오해받을 확률이 높다. 회식 자리에만 열심히 참석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권력을 가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식으로 위계가 작동하는지 굳이 안태근 전 검사장의 후배 검사 성추행, 안희정 전 도지사의 비서관 성폭행 사건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여자들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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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할당된 윗자리가 몇 개 안 되는 상황에선 견제의 분위기가 은은했다. 딱히 끌어줄 만한 영향력 있는 여자 임원도 없었다. 경쟁 PT와 야근의 나날이 이어지는 동안 임신, 출산, 육아와 씨름하던 여자 동료들은 하나씩 떠나갔다. 자리를 지키던 여자 선배들은 만혼, 건강 이상, 명예퇴직 셋 중 하나의 이유로 사라졌다. 취직은 그렇게나 어렵더니 관두는 건 시시할 만큼 쉬웠다. 마흔 이후에도 살아남은 진정한 슈퍼우먼들은 애석하게도 여자 팀원보다 남자 팀원을 더 예뻐하고 챙겨주곤 했다. 괴물과 싸우고 괴물이 되듯. 남성 중심 조직에서 싸우다 보면 명예남성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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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에게도 형님을 향한 필살기 한두 개쯤은 숨어 있었다. 여자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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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정말 인정하고 정말 사랑하는 건 남자로구나!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그들만의 무리지어 놀기, 인맥 '관리'의 차원이 아닌 공적 관계를 사적 교류로 전유하기, 이것이 남성 연대의 핵심이었다. 골프장에서, 등산로에서, 3차로 간 술집에서, 사우나에서, 룸살롱에서...... 중요한 회사의 결정은 정작 회사 밖에서, 업무 시간 외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합리적 기업'은 이런 결정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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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여자를 끼워주지 않는다기보다 대등한 경쟁 상대라는 인식조차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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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안정적인 일감과 비용 지급을 위해 공공기관, 공기업 등과 실력 있는 여성 프리랜서들이 직접 매칭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얼마나 더 좋을까? 성차별, 성폭력 없는 여성 노동 안정 정책으로서 가능성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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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여성을 찾고 여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아이언 펜스로 둘러쳐진 보이즈클럽에 맞서는 데 우먼소셜클럽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조직 안에서든 조직 밖에서든 마찬가지다. 여성의 취약점이 네트워킹이란 말은 이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프레임일 뿐이다. 우리는 모이지 못하도록 너무 오랫동안 방해받아왔고 지금도 방해받고 있다. 2018년 지난해 남자 대학생들이 민주주의 절차인 투표를 빌려 총여학생회 폐지를 결정하는 걸 보라. 하지만 해체와 분산의 요구가 노골적일수록 연대 의지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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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대를 이루는 것은 여성 서사를 소비하는 것만큼이나 훈련과 실전이 필요한 일이며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오늘의 과제다. 새로운 일, 큰일, 돈 되는 일을 위해, 해방, 공존, 존엄을 위해 우린 반드시 '코넥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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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말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 송은이 라인을, 그와 함께 기회를 만드는 여성 코미디언들을 떠올려보자. 사회성, 사교성이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특히 모두와 절친이 되려는 건 최악의 방법이다. '나는 너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가끔 보내는 선에서 거리감을 유지해도 의외로 관계는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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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을 넘겨서는 안 되지만 웬만한 다름은 봐 넘기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나를 포함한 여성의 파이를 지킨다는 공동의 목표만 공유한다면 같은 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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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자기 라인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의제에 '남자가 되려는 것인가 실망이다' 식의 반응을 보았다. 낯설지 않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여성성,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기 위해 숏컷을 하고 편한 옷을 입는 여자들도 같은 반발에 부딪힌다. 이건 남자가 되려는 게 아니다. 남성에게 과도하게 쏠린 힘의 균형을 바로잡는 운동, 무브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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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터져 나오고 있는 웹하드 카르텔, 강간 약물 카르텔 등은 부패한 남성 권력의 찌꺼기들이다. 여성 의원을 지지하고 여성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듯 여성 스스로가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견제 세력이 되어야 한다. 라인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자. 나부터 끌어주는 선배, 받쳐주는 후배가 되자. 여성 노조를 만들자. 우리는 서로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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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늑대다!
이 말 많이 들어왔지? 남자들에게 빼앗긴 늑대를 빼앗아 온 최초 여성의 이름은 '에바Eva였고 그 이름은 '늑대Vae, Woe'에서 파생됐대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152p 참고)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희생정신이 강하다. 천성적으로 남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이 있다. 또 매우 직관적이고 제 무리를 끔찍이도 아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뿐 아니라 매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늑대는 이리저리 내몰리기 일쑤였고 항상 학살당할 위험에 노출되었다. 오해도 많았다.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지나치게 호전적인 데다가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는 낙인이 찍혔다. 늑대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온 것처럼, 여성 또한 그들의 본능을 말살하며 정신 속의 황무지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늑대와 여성은 자기들을 오해하는 이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다.
ㅡ《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Women Who Run With the Wolves》에서
늑대는 여자다!
이어지는 내용은 김진아 -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서…….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강죠지 작성시간 21.02.01 이 책 내용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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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흔들리는 꽃들 작성시간 21.02.01 와...정독했어
이 책 사서 읽어야겠다 -
작성자동상동몽 작성시간 21.02.01 고마워 여시야 정독했어! 책 잀다 말았는데 다시 일겅야겠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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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알 수 없는 나의 별 작성시간 21.02.01 나 이거 정말 재밌게 읽었어
완독한 책은 재탕 안하는데 이건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옹 띵문의 연속! 추천추천~~ -
작성자구름이가 나가신다 작성시간 21.02.02 나 이 책 읽고 메세지가 너무 좋아서 작가님 북토크도 갔었어! 특히 작가님이 카피라이터 출신이시니까 자기가 참여한 광고들의 변천사를 보여주셨는데 그 과정이 여성연대의식이 담긴 광고들로 변화한게 너무 멋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