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디지털 한글박물관
국립국어원에서 디지털 한글박물관으로 링크타고 갔다가
좋은 디지털 특별전이 있길래 여시언니들하고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왔어ㅎㅎ
사진 복사가 안돼서 하나하나 따느라 좀 오래걸렸다...ㅠㅠ
우리말 고전의 원본과 이본을 비교해놓은 재밌는 글이니까
길어도 한번 읽어봐~~~ ^^
심청전에 뺑덕어미가 없다고????
<이야기를 향한 '이본'들의 전쟁>
이본(異本)은 중심 내용은 같지만, 부분적인 내용이나 표현, 또는 제작 양상 등이 다른 책이다.
가령, 현전하는 수많은 <심청전>들은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심청이가 죽는다는 큰 줄거리는 같지만 뺑덕어미가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심 봉사도 근엄하거나 상스럽기도 하다.
또한 제작 양상도 필사, 목판 인쇄, 활자 인쇄 등 다양하며, 표기 문자도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군을 형성하는 비슷한 내용의 서로 다른 책들을 [이본]이라 한다.
<이본이 생기는 까닭>
고전 소설은 현대 소설과 달리 저작권을 가진 작가가 따로 없다.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면서 완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까닭은 다양하다.
먼저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이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토끼에게 버림받은 별주부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은 도사가 나타나 명약을 건네는 새로운 이본을 만들었다. 심청이는 부들부들 떨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독자들의 미의식, 가치관 등에 따라 새로운 이본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장면을 늘리거나 줄이기도 하고, 인기 있을 만한 새로운 사건을 집어넣으면서 새로운 이본이 탄생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장화홍련전>의 이본들을 보면, 후대에 만들어진 이본일수록 장화의 ‘외가’ 쪽 비중이 줄어들었다. 가부장제 사회의 영향이 끼친 것이다.
책을 만들 때 실수로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본을 베껴 쓰거나, 목판에 판각하면서 글자를 잘못 읽기도 하고 한 줄이나 한 쪽을 통째로 빼기도 한다.
이야기의 수용 환경이 바뀌면서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판소리를 소설로 바꾸는 경우, 판소리에 어울리는 장황한 표현들이 간략하게 줄고 이야기의 짜임새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작이 이루어진다.
이본의 생산은 이야기의 예술적 가치를 탐색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다. 춘향의 사랑에서 고귀함을 발견한 사람들은 춘향의 신분을 기생에서 서녀(庶女)로 높이거나, 춘향의 고통과 승리를 극대화한다. 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지닌 반체제성을 이야기로써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이본을 수집하고 정리함으로써 작품의 창작 시기나 소설사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다양한 이본들을 정리하면서 이본의 출현 시기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어떤 책이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왜 그러했는지 등을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본의 숫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그 작품이 지닌 예술적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본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가치관, 그리고 사회 제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본 작품>
1.
<홍길동전>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 평가된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여 병조 판서가 되고 나중에는 율도국 임금이 된다. ‘서자’라는 신분에 걸맞은 삶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사회 비판적이다. 이런 내용은 조선 시대에 많은 공감을 일으켜 다양한 이본을 낳았다.
원래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홍길동전>에는 허균이 죽은 다음의 일들이 삽입되어 있어 원작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본에는 판각본, 필사본, 활자본이 모두 있다. 판각본에는 서울에서 찍은 경판, 전주에서 찍은 완판, 안성에서 찍은 안성판이 있다.
한글본 <홍길동전>이 대다수이지만, <위도왕전(韋島王傳)>이라는 제목의 한문본 <홍길동전>도 있다.
<작품해제>
조선 광해군 때에 반역죄로 처형당한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 영웅 소설이다. 이식(李植, 1584~1647)의 『택당집』에서 “또한 허균은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연산군 때의 도둑인 홍길동을 모델로 하여 서자로 태어나 집안에서 천대를 받다 가출한 주인공이 활빈당 행수가 되고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뒤에는 조선을 떠나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되는 활약상을 그렸다.
<홍길동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가정 내의 적서 차별, 봉건 수탈에 대항하는 활빈당 활동 그리고 이상국 건설이 바로 그 내용들이다. 이 세 부분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바로 ‘자아실현’이다. 서자로 태어나 벼슬을 할 수 없는 한이 활빈당 행수로, 병조판서로 나아가게 했으며 결국 율도왕으로 이어진다.
최초의 한글 소설이며 적서 차별이나 농민 저항과 같은 당대의 민감한 문제로 소설화한 사회 소설로 이름이 높다. 방각본인 경판, 완판, 안성판에 모두 <홍길동전>이 있을 정도로 당시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다. 공시적으로는 <수호전>과 같은 ‘의적전승’을, 통시적으로는 ‘영웅의 일생’을 소설화한 영웅 소설이다. <전우치전>이나 야담의 군도담 등에 영향을 주었다.
<이본>
이 부분은 홍길동이 조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임금께 인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경판 24장본 <홍길동전>이나 완판 36장본 <홍길동전> 모두 홍길동이 하늘에서 내려와 특출한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과 홍길동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경판에서 홍길동은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벼슬길이 막혔음을 호소한다. 그러나 완판에서는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임금께 백성을 구할 쌀을 빌고 있을 뿐이다. 또한 완판에서 홍길동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 임금이 놀랄까 걱정하는 등 지극히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경판이 완판보다 먼저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만큼 <홍길동전>의 문제의식이 완판에서는 순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우치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글 소설이다.
조선 성종 및 중종 때의 실존 인물인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다양한 도술 행각을 묶은 작품이다.
전우치는 홍길동과 달리 그럴싸한 사회적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미운
사람을 골려주고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하지만 친구를 위해 과부를 납치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우치는 민중 영웅이지만 나중에 서화담에게 굴복하여 산으로
들어가고 만다.
<전우치전>의 이본은 다양하다. 필사본, 판각본, 활자본이 있고, 한문본과
한글본도 있다. 판각본에는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만 있다. 다른 작품과 달리
<전우치전>은 이본끼리 차이가 크다.
이본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는 선비 전우치가 조선에서 도술 행각을 벌이는 ‘일사본’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전우치가 중국에서 도술 행각을 벌이는 ‘나손본’ 계열이다.
<작품해제>
<전우치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글 소설이다. 조선 성종 및 중종 때의 실존 인물인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다양한 도술 행각을 묶은 작품이다. 현재 전해지는 <전우치전>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조선에서 선비 전우치가 도술 행각을 벌이다가 서화담에게 굴복한다는 유형과 관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전우치가 도술을 배워 중국에서 도술 행각을 벌이다가 임금이 된다는 유형이다. 모두 도술을 부려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점에서 민중 영웅 소설로 인정된다.
<전우치전>은 여러 모로 <홍길동전>과 대비된다. 둘 다 도술을 부려 지배 세력에 저항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인공의 정체나 도술 행각의 목적이 다르다.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난 아픔 때문에 반체제성을 띠게 되지만, 전우치에게는 그런 필연적인 사유가 없다. 오히려 전우치의 도술 행각에서는 유희적 성격이 강하다. 전우치는 얄미운 사람들을 골려주거나 심지어 친구를 위해 과부를 납치하기도 한다. 이런 면모는 전우치를 울분에 찬 주인공이 아니라 경쾌한 장난꾸러기로 만들었고, 이것이 <전우치전>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이었다.
<이본>
이 부분은 전우치가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창서관본 <전우치전>은 이른바 ‘일사본’ 계열로서 전우치가 조선에서 활약하고, 필사 39장본은 ‘나손본’ 계열로서 중국에서 활약한다. 두 이본은 주인공의 활동 공간뿐만 아니라 신분도 다르다. 영창서관본에서 전우치는 송경에 숨어사는 선비지만, 나손본에서는 나라에 공을 세운 관노 전중보가 어렵게 얻은 자식이다. 더구나 그 아들은 삼장법사를 모시던 ‘손오공’의 환생으로 그려져 있다. 나손본은 일사본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기하게 태어난 미천한 존재가 중국 천자를 상대로 도술 행각을 벌이다가 왕위에 오르는 내용에서 <서유기>와 <홍길동전>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전우치전 영창서관본 :
교정 전우치전
조선 초에 송경 숭인문 안에 한 선비가 있으니 성은 전이요 이름은 우치였다. 일찍이 훌륭한 스승을 따라 신선의 도를 배우되, 본래 재질이 뛰어나고 또한 정성이 지극하여 마침내 오묘한 이치를 깨닫고 신기한 재주를 얻었다. 그러나 명성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고 지내었기에 비록 가깝게 지내는 이도 알 사람이 없었다.
이때 남쪽 해안가 여러 고을이 여러 해적의 노략질을 입었는데 업친 데 덮쳐 무서운 흉년을 만나니 그곳 백성의 참혹한 모습은 붓으로 그리기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권세를 다투기에만 눈이 붉고 가슴이 탈 뿐이어서 백성의 고통은 모르는 듯이 버려두니 뜻있는 이의 팔을 걷어 부치고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은 이를 길이 없었다. 우치도 또한 참다 못하여 그윽히 뜻을 품고 집을 버리고 세간을 흩어 천하로써 집을 삼고 백성으로써 몸을 삼으려 하였다.
하루는 몸을 변하여 선관이 되어 머리에 쌍봉금관을 쓰고 몸에 붉은 도포를 입고 허리에 하얀 옥대를 띠고 손에 옥홀을 쥐고 청의동자 한 쌍을 데리고 구름을 타고 안개를 헤치고 바로 대궐 위에 이르러 공중에 머물렀다. 이때는 정월 초이튿날이어서, 임금이 문무백관의 새해 인사를 받으시더니 문득 오색 빛깔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코를 찌르더니 공중에서 말하였다.
“국왕은 옥황상제의 칙지를 받으라.”
전우치전 필사 39장본 :
이때 강원 감사가 호방을 불러 분부하되,
“관노인 전중보에게는 나라에서 특별히 벼슬을 내렸으니 저의 신역을 없애주리라.”
이렇게 장계하니 동래 백성과 왜성의 백성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첨사의 나이 사십이요 그 아내의 나이 사십오 세이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평생 한탄하였다. 이때는 춘삼월 보름이었다. 동원과 후원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일기는 화창하니 부인이 봄 경치를 구경하고자 하여 난간에 의지하였는데 졸음을 못 이기여 잠깐 눈을 감았다. 비몽사몽 간에 한 선동이 내려와 부인 앞에 와서 절하고 말하였다.
“소자는 신선 일광노의 제자였습니다. 삼장 법사를 모시고 서천 서역국에 가서 팔만 대장경을 뵈옵다가, 중간에 장난한 죄로 석가여래께서 옥황상제께 고하여 인간 세계로 내치시니 갈 바를 몰라 왔사오니, 부인은 불쌍히 여기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품 가운데로 들어오기에 부인이 놀라 깨달으니 한바탕 꿈이었다. …(중략)… 하루는 부인이 몸이 불편하여 침석에 의지하였다가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 아기를 낳았다. 첨사를 청하니, 첨사가 들어와 본즉 과연 사내아이였다. 크게 기뻐하여 그 아이의 거동을 보니 골격이 비범하고 이가 나 있는데 골고루 나지 않고 갈대 바구니를 두른 듯이 띄엄띄엄 나 있었다. 첨사가 기특하게 여겨 이름을 ‘우치’라 하고 자는 ‘뇌공’이라 하였다. 우치가 낳은 지 한 달 만에 걷기를 잘 하고, 오십 일 만에 말을 하니 점사가 보고 너무 영민하고 숙성함을 염려하였다.
3.
<장화홍련전>은 1656년 평안도 철산 지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비롯된
소설이다.
철산 부사 ‘전동흘’이 해결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국문 소설로 만들어지고 유행했다. 이 작품은 ‘계모형’ 가정 소설 특유의 갈등을 보인다. 후처로 들어온 계모가 전처 자식을 모해하여 죽이고, 원귀가 된 전처 자식이 원님에게 호소하여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장화홍련전>은 필사본, 판각본, 활자본이 모두 있다. 판각본은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만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전동흘의 후손이
1865년에 간행한 『가재공실록』에 실린 한문본 <장화홍련전>이다.
이본들은 장화와 홍련의 재생담이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뉘는데, 전자가 역사적 성격이 강하고 후자는 허구적 성격이 강하다.
<작품해제>
전동흘의 문집인 『가재집(嘉齋集)』의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에 보면 ‘철산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이를 토대로 박인수가 <장화홍련전>을 창작한 사실이 실려 있어 이 작품은 실재 사건을 토대로 허구가 보태져 소설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보면 계모에게 박해를 당하여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는 전반부와 원귀가 나타나 원한을 푸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는 계모에게 핍박을 받는 ‘계모형 가정 소설’의 형태를, 후반부는 관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공안 소설’ 내지는 ‘송사 소설’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철산의 배 좌수 집안을 배경으로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를 통하여 가부장권 수호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딸의 살인을 묵인한 배 좌수는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계모 허 씨만 처형된다. 가문의 명예와 가부장권을 지키고자 딸을 희생시키고 나중에는 그 죄를 물어 계모까지 처형함으로써 그것이 온당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 원귀가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장면 때문에 공포 영화의 소재로 인기가 많아 무려 7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본>
이 부분은 낙태했다고 누명을 쓴 장화가 연못에 빠져 죽으려는 장면이다. 대창서원본 <장화홍련전>에서 장화는 장쇠에게서 자신이 죽게 된 곡절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다가 잠깐 말미를 달라고 한다. 즉 죽기 전에 외삼촌 댁에 가서 돌아가신 어머니 사당에 하직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필사본에서는 다시 아버지께 가서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장화홍련전>이 처음 지어졌을 때엔 죽은 어머니의 사당이 외삼촌 댁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으나 차차 시대가 바뀌어 그렇지 않게 되자, 소설에서도 그런 사회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대창서원본 <장화홍련전>은 이러한 변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장화혼련전 대창서원본 :
장화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울며 말하였다.
“네가 아무리 부모의 명령이라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아라. 우리가 배는 비록 다르나 천륜이 지극히 가까운 동기간이다. 전일에 우리가 우애하던 정분을 생각하면 설혹 부모의 명령이 지엄하더라도 ‘나를 물에 넣었다.’하고 부모가 마음을 돌려주시기를 말하는 것이 인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네가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살기를 도모할 바는 없거니와, 지금 아주 황천으로 돌아가는 인생으로 하여금 이다지 강박할 것이 무엇이냐? 다만 나의 소원은 죽지 않고자 함이 아니라, 잠깐 동안 말미를 주면, 외삼촌 댁에 가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당에 하직 인사나 하고, 외로운 홍련의 신세를 부탁하여 아무쪼록 나와 같은 슬픈 운명을 면하게 하는 것이지, 결단코 내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밝히려 한들 계모가 시기할 것이요, 살고자 한즉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함이니 이제 명령대로 하려니와, 아무쪼록 잠깐 말미를 주어 나의 죽은 영혼이라도 원한이 업게 해다오.”
장화홍련전 필사 19장본 :
장화가 오라비를 돌아 보며 말하기를, “이를 말씀이 있사오니 들으소서.”
그 오라비가 대답하되, “들을 말이면 들으련이와 듣지 아니할 말이면 못 듣겠다.”
장화가 말하기를,“나는 이미 죽을 사람이려니와, 목숨을 잠깐 살려 주옵소서.
목숨을 잠깐 지체하면 내 집으로 돌아가 아버님께 더러운 누명을 쓰고 애매하게 죽는 하소연을 하옵고 또 어린 동생 홍련의 얼굴이나 다시 보고 데려다가 외가에 두고 와 죽사오면, 외로운 혼백이라도 원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어진 오라비는 정을 생각하여 소원을 들게 하옵소서. 구천에 돌아가도 은혜를 갚사오리다. 빌건대 오라비는 열번 생각하여 잠깐 목숨을 살려주옵소서.”
4.
<숙영낭자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글 소설이다.
백선군이라는 선비가 꿈에서 본 숙영낭자를 실제로 만나 결혼하였으나, 과거 시험을 보러 간 사이에 숙영이 누명을 쓰고 자결하지만,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재생하여 잘살다가 승천한다는 내용이다. 천상계의 인물이 죄를 짓고 지상계로 내려와 고난을 겪다가 승천한다는 ‘적강화소’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판소리에 ‘숙영낭자가’가 있고, 내용이 비슷한 민요나 설화도 발견되었다.
<숙영낭자전>은 <수경낭자전>이라고도 하는데, 필사본과 판각본, 활자본이
모두 있다. 판각본은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만 있다.
이본들은 숙영이 자결한 이후의 내용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판소리 <숙영낭자가>는 창이 전해지지 않다가, 박송희, 박동진 등이 다시 불렀다. 소설에 비해 내용이 매우 간략하다.
<작품해제>
국내를 배경으로 한 애정 소설로 공안적 요소가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안동의 선비 선군은 숙영과 금실이 좋은 부부인데 과거를 보러 가다가 아내가 보고 싶어 다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며느리의 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난 것을 의심한 시부모와 매월의 간계에 의해 숙영은 자살하기에 이른다. 금의환향하여 이를 본 선군은 사실을 밝히고 모해자(謀害者)를 처단하여 누명을 벗겨주었으며 숙영은 다시 살아나 못다한 인연을 다시 잇는다.
이 작품은 부부 사이의 애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히려 이 때문에 부모와도 갈등을 빚는다. 효는 유교 도덕에 바탕을 둔 봉건적·전통적 가치관이고 애정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긍정하는 새로운 가치관이기에 양자의 갈등은 시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더욱이 후자가 전자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사회에 실제로 있었던 가치관의 변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점에서 인간의 개성을 중시하는 근대 문학에 가까이 다가 선 작품으로 새롭게 주목된다.
<이본>
이 부분은 과거에 급제한 백선군이 돌아와 숙영낭자의 가슴에서 칼을 빼는 장면이다. 필사 48장본에서는 칼을 뺀 구멍에서 파랑새 세 마리가 나와 ‘하면목’, ‘유감심’, ‘소애자’라고 울고 날아간다. 이것은 숙영낭자의 영혼이 남편 백선군과 자식인 춘향 동춘 남매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 애달픈 마음을 남긴 말이다. 그러나 경판 16장본에서는 파랑새가 나와 “매월이다.”라고 세 번 외치고 날아간다. 자신을 죽게 한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다. 이처럼 <숙영낭자전>은 누명을 쓰고 죽은 숙영의 애틋한 마음을 강조한 이본과 원수 갚기를 강조한 이본으로 나뉜다.
숙영낭자전 필사 48장본 :
한림이 칼을 잡고 낯을 대고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낭자님, 낭자님, 일어나자 일어나자. 과거보러 갔던 백선군이 내려왔나니 일어나소, 일어나소.”
하며 칼을 잡아 빼니 칼을 뺀 구멍에서 파랑새 세 마리가 날아오르며 울었다. 한 마리는 한림의 어깨에 앉아 울며, ‘하면목 하면목’ 하고 울고, 또 한 마리는 춘양의 어깨에 앉아 울되, ‘유감심 유감심’ 하고 울고, 또 한 마리는 동춘의 어깨에 앉아 ‘소애자 소애자’ 하고 울다가 공중으로 날아 갔다. 한림이 그 새가 울고 가는 소리를 들으니 간장이 다 녹는 듯하였다.
그 새 우는 소리 ‘하면목 하면목’ 하는 소리는 ‘누명을 입고 무슨 면목으로 낭군을 다시 보리요’라고 하는 소리요, ‘유감심 유감심’ 하는 소리는 ‘춘양아, 부디 부디 동춘을 사랑하며 잘 있거라’라는 말이요, ‘소애자 소애자’ 하는 소리는 ‘동춘아 너를 두고 죽었으니 눈을 감지 못하겠구나’ 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 파랑새 세 마리는 낭자의 혼백이니 낭군을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것이었다.
숙영낭자전 경판 16장본 :
선군이 하늘에 빌어 말하기를,
“이 칼이 빠지면 원수를 갚아 원혼을 위로하리라.”
하고 칼을 빼니 문득 빠지며 그 구멍에서 파랑새 하나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제야 선군이 매월의 소행인 줄 알고 분노하여 급히 형구를 차리고 모든 노복들을 차례로 때리며 물었다. 마침내 매월을 때려 물으니 일백 대에 이르러서야 승복하여 매월이가 울며 말하였다.
“상공께서 여차여차 하시기에 제가 원통한 마음이 있던 차에 때를 노려 감히 간악한 계교를 꾸며내니 함께 모의한 놈은 돌이로소이다.”
5.
<춘향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고전 소설이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비롯되었기에 판소리계 소설로 불린다. 미천한 신분의 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 도령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내용인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사회 비판적 성격을 띤다. 또한 다양한 풍속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일종의 문화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춘향전>은 판소리에서 비롯되었다. 판소리 <춘향가>가 인기를 끌면서 소설, 시조, 민화 등으로 재창작되었다. 소설 제목도 <춘향전>, <별춘향전>, <옥중
화>, <광한루기> 등 다양하다. 판각본 중에서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은 서울에서 유행한 삽입가요의 영향을 받았다면, 전주에서 찍은 완판본은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가장 오래된 <춘향전>은 영조 때의 선비 유진한이 1754년에 지은 한시로서 보통 <만화본 춘향가>라 부른다. 판각본, 필사본, 활자본 그리고 한글본과 한문본은 춘향의 신분이나 세부적인 사건 등에서 차이가 있다.
<작품해제>
기생 신분 춘향과 양반의 자제인 이몽룡의 파란만장한 사랑을 그린 최고의 애정 소설이며 판소리계 소설이다.
광한루에서 만나 이몽룡과 춘향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그날 밤 둘은 백년가약을 맺기에 이른다. 하지만 신임 부사로 내려온 변학도에게 수청을 강요당하나 춘향은 이를 매몰차게 거절하여 관장에게 포악한 죄로 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린다. 암행어사로 내려온 이몽룡은 변학도를 봉고파직하고 춘향을 구출해 정실로 삼아 백년해로한다.
고전 애정 소설에서 특히 애정의 수난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기생 신분으로
인한 처지가 문제가 된다. 그러기에 춘향의 수청 거부는 양반의 노리개를 거부하고 주체적 여성으로서 살아가겠다는 것인 바, 여기서 신분 해방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18, 19세기엔 판소리 <춘향가>로 12마당 중 가장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고전 소설로 무려 200종이 넘는 이본을 파생시켰고 창극으로도 공연돼 인기를 얻었으며 1923년 처음으로 영화화된 후 무려 24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근대 문학 시기에도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가 바로 <춘향전>이었다. 그러기에 이해조의 <옥중화>에서 파생된 무수한 아류작과 <약산동대>, <옥단춘전> 등의 모방작을 비롯하여 이광수의 <무정>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이본>
이 부분은 <춘향전>의 첫 장면이다. 요새 널리 알려진 <춘향전>은 완판 84장본으로서, 처음에 퇴기 월매가 양반의 첩이 되어 늦게까지 자식이 없다가 명산대천에 빌고 신비한 태몽을 꾸어 난 딸이 춘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와 달리 경판 16장본에서는 춘향이가 아니라 이도령부터 소개한다. 이름도 우리에겐 낯선 ‘이령’이다. 더구나 춘향이는 아예 신분이 ‘기생’으로 되어 있다. 완판에서는 정절을 지킨 춘향의 고귀함에 걸맞게 신분도 서녀로 높이고 출생담도 신비하게 꾸몄지만, 경판에서는 비천한 신분을 그대로 내세우는 것이다.
열녀춘향수절가 완판 84장본 :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넓으시어 성자와 성손께서 대대로 왕위를 이으셨으니 시절은 태평성대요, …(중략)… 백성들은 격양가를 불렀다.
이 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에서 소문난 명기로서 일찍 퇴기하여 성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자식이 없어 이것으로 한이 되어 긴 탄식과 근심에 병이 되었다.
하루는 크게 깨달아 옛사람을 생각하고 낭군을 청하여 공손히 말하였다.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를 지었던지 이생에 부부되어 창기의 행실 다 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부녀자의 할 일도 힘쓰건만 무슨 죄가 무겁기로 자식이 없으니, 혈육 없는 우리 신세 조상 제사는 누가 드리고, 죽은 후 장례는 어이하리. 명산대찰에 정성을 드려 자식을 낳으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낭군의 뜻이 어떠하오?”
…(중략)…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낭군과 꿈을 이야기하고, 다행이 남자를 낳을까 기다리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이 찼다. 하루는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채색 구름이 영롱하더니, 어지러운 중에 한 아이를 낳았다. 월매가 오랜 세월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은, 남자는 못 낳았으되 조금 풀리었다. 그 사랑함은 어찌 다 형언하리요. 이름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손 안의 보물같이 길러내었다.
춘향전 경판 16장본 :
화설, 우리나라 인조 때에 전라도 남원부사 이등이 한 아들을 두었으니 이름은 령이고, 나이는 열여섯에 관옥 같은 기상과 두목지의 풍채와 이백의 문장을 겸하였으니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책방에 있어 아침저녁으로 학문에 힘을 쓰더니, 이때는 꽃피는 봄날이라 온갖 만물이 생기가 넘쳐서 너구리는 손자를 보고 두껍이는 알을 낳고 먼 산의 불 탄 잔디는 밤비에 속잎이 나고 뒷동산 녹음 중에 꾀꼬리는 지저귀고 광풍에 놀란 벌과 나비는 꽃무더기 속에서 요동을 치고, 여자도 봄철 인지라 어린 과부는 새벽달을 보며 봇짐을 싸는 때였다.
춘흥을 못 이기어 봄놀이를 가려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네 고을 경치 좋은 곳이 어디어디이냐?” …(중략)…
이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가 그네를 뛰려고 의복 단장을 차려 입는데……
6.
<심청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글 소설이다.
눈 먼 아버지를 위해 심청은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려고 뱃사람들에게 팔려가 인당수에 빠지지만 다시 환생하여 황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심청의 행위를 통해 ‘효’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동시에 심 봉사와 뺑덕어미의 행위로써 인간 본성을 통찰한 작품이다.
<심청전>은 판소리에서 유래한 이본과 그렇지 않은 이본으로 나뉜다. 서울에서 찍은 경판 24장본은 설화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소설로 평가된다. 심봉사는 사대부다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비장미가 강하다. 이와 달리 나머지 경판 및 완판, 필사본 등은 모두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뺑덕어미’가 등장하여 골계미를 유발하고, 다양한 사설들이 삽입되어 내용이 길다. 한글본이 대다수이고, 여규형(1848~1921)이 개작한 한문본도 있다. 1972년 독일에서 윤이상(1917~1995)은 <심청전>을 오페라로 개작하여 초연했다.
<이본>
이 부분은 왕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맹인 잔치를 열자 심 봉사가 참가하는 장면이다. 경판 24장본에서는 심청의 효심이 강조되어, 맹인 잔치의 준비 과정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완판에서는 파격적으로 경판에 없던 ‘뺑덕어미’를 등장시킨다. 음란한 뺑덕어미는 맹인 잔치에 가는 길에 황봉사와 눈이 맞아 도망간다. 이런 줄도 모르고 심봉사는 아침에 음탕한 마음을 품었다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야 만다. 경판에서 근엄하고 진지했던 인물들이 완판에서는 해학적이다 못해 음란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른 것이다.
심청전 경판 24장본 :
다음 날 분부를 내렸다.
“왕비께서 세상의 맹인들이 앞을 보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 온 나라의 맹인들을 모아 좋은 음식을 대접하여 그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니, 이는 드물고도 귀한 음덕이도다. 이를 온 나라에 알려 모든 맹인을 불러 서울로 보낼 것이며, 만일 가난해서 여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든 관청에서 여비를 마련하여 올라가게 하라. 만일 하나라도 빠비는 경우가 있으면 지방관을 파면하리라.”
각 도에서 왕의 분부를 받들어 한꺼번에 맹인을 모조리 찾아 올리니 그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지방관들이 맹인의 이름과 숫자를 헤아려 조정에 올리니, 심현도 또한 그 가운데 들어 있었다.
심청전 완판 71장본 :
뺑덕어미도 생각한즉 ‘내가 따라가더래도 잔치에 참가할 길이 없고 돌아온들 재산도 전만 못하고 살 길이 전혀 없으니 차라리 황 봉사를 따라가면 말년 신세는 편하겠구나.’ 하고 약속을 단단히 정하였다. ‘심봉사가 잠들기를 기다려 내빼리라.’ 하고 일부러 자는 체하고 누웠더니 심봉사가 잠을 깊이 들었기에 두말없이 도망하여 달아나버렸다.
심봉사는 잠을 깨어 음흉한 생각이 있어 옆을 만져보니 뺑덕어미가 없으니 손길을 내밀어 보며,
“여보소 뺑덕이네, 어디 갔는가?”
끝내 기척이 없고 웃묵 구석에 고추 섬이 있어 쥐란 놈이 바시락 바시락 하니 뺑덕어미가 장난하는 줄만 알고 심봉사가 두 손을 떡 벌리고 일어서며, “날더러 기어 오란가?”
하며 더듬더듬 더듬으니 쥐란 놈이 놀라 달아났다. 심봉사가 ‘허허’ 웃으면서 “이것, 요리 간다.”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두루 좇아 다니다가 쥐가 영영 달아나고 없어졌다. 심봉사가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허튼 마음 가엾게도 속은 줄을 알았다. 벌써 털 속 좋은 황봉사에게 가서 궁둥이 세움을 하는데, 있을 리가 있겠는가
7.
<토끼전>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글 소설이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별주부가 데려온 토끼가 간이 없다고 수궁 사람들을 속이고 도망친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인도, 중국 등에서도 발견되고, 삼국사기에는 ‘구토지설(龜兎之說)’이 전한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토끼전>은 약자인 토끼의 간을 빼앗아도 되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맹목적인 별주부와 이기적인 토끼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토끼전>의 이본은 다양하다. <수궁가>로 불리는 판소리 창본을 비롯하여 필사본, 판각본, 활자본이 있는데, 모두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판각본에는 서울에서 찍은 경판본과 전주에서 찍은 완판본이 있다. 한글본뿐만 아니라 한문본도 많이 있다.
이본들은 결말 부분에서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용왕이 명예롭게 죽거나, 토끼가 토끼똥을 주거나 도사가 나타나 별주부에게 명약을 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별주부가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해제>
『삼국사기』에 실린 <구토지설>의 이야기를 발전시켜 조선 후기 봉건 체제의 모순을 풍자한 작품으로 만든 최고의 우화 소설이다.
토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병든 용왕을 살리기 위해 자라가 육지에 나가 토끼를 데려오지만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간을 꺼내 놓고 왔다하여 사지에서 벗어난다. 다시 육지로 나간 자라는 토끼에게 속아 그 자리에서 자결하거나 소상강으로 망명하기도 하지만 토끼 똥이나 선약을 받아 가서 용왕을 살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동물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풍자한 우화 소설이다. 그러기에 봉건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는데 용궁 어전 회의 장면에서는 중앙 통치 체제를, 산중 모족 회의 장면에서는 지방 통치 체제를 문제 삼고 있다. 게다가 향유층인 민중들이 지닌 봉건 국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다르기에 결말이 이본마다 다른 것이 특징이다.
봉건 체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자라가 충성을 드러내고자 자결하며,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자라가 소상강으로 망명한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고자 토끼가 똥을 주어 용왕을 살리기도 하며 자라의 충성을 높이고자 화타나 신선이 나타나 선약을 주어 용왕을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라와 토끼의 대결에서 토끼가 무사히 살아나는 것을 보면 역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이본>
이 부분은 육지에 올라온 토끼가 도망을 가고 이야기가 끝나는 장면이다. <토끼전>처럼 결말이 다양한 작품도 없다. 완판 21장본 <퇴별가>에서는 토끼가 준 똥을 먹고 용왕은 병이 낫고, 별주부는 충신이 된다. 그러나 필사 43본 <별주부전>에서는 토끼가 도망가자 별주부는 소상강으로 망명을 하고, 토끼와 정을 나누었던 별주부 부인은 토끼를 그리워하다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별주부도 자결을 하고 마는데, 용왕뿐만 아니라 토끼나 별주부 심지어 별주부 부인까지도 모두 웃음거리가 된다. 이기적인 인간들에 대한 풍자가 날카롭기만 하다.
퇴별가 완판 21장본 :
이 때에 별주부는 수궁에 들어가서 용왕이 토끼 똥을 먹고 병이 나아 충신이 되고, 토끼는 신선을 따라 달나라로 올라가서 이때까지 약을 찧으니, 자라와 토끼란 것이 모두 미물로서 훌륭한 충성심과 깊은 생각은 사람하고 같기에, 이야기를 만들어서 세상에 전하니, 사람이라 이름을 달고 토끼나 자라만 못하면 그 아니 부끄러운가. 부디부디 조심하오. 토별가 끝이라. 무술년 가을 전주에서 새로 낸 책.
별주부전 필사 43장본 :
동정호로 유배를 왔다가 마침 별주부를 만나 그 소식을 전하니 별주부가 통곡하고 그 길로 돌아와 하늘에 하소연을 하고 즉시 자결하였다. 선관들이 그 원통함을 알고 별주부가 죄 없음을 옥황상제께 아뢰니 옥황상제 또한 용궁에 분부하여 별주부의 충성을 표창하였다. 용왕이 또한 붕하시니 세자가 즉위하여 국정을 다스리니 태평성대에 강구연월이었다. 그 뒤에야 누가 알리요 더지더지 둥덩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