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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Chungking Express,1994) 해석

작성자커피와 담배|작성시간21.02.24|조회수23,411 목록 댓글 50

 출처 : 여성시대 커피와담배

모든 영화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

쓰는 김에 제대로 쓰자 싶어서 새로 글 올려요.
이전 글에 댓글로 감상 공유해 준 여시들 미안합니다.



1. 제목의 의미
1.1. 중경삼림 重慶森林

중경重慶과 삼림森林의 합성어.
여기서 중경重慶은 중국 본토의 충칭 직할시.
중경(충칭)은 지형의 76%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안개 자욱한 날씨로 유명하다고 해.

충칭의 전경(사진 출처:트립바이저)

중경의 기후적, 지형적 특성을 빌려와 안개 낀 듯 불투명한 반환 후 홍콩의 미래빽빽한 삼림처럼 답답한 홍콩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

(출처: 프리즘 오브 15호)


1.2. 영문 제목 Chungking Express

청킹맨션 (사진 출처: Time out)

첫 번째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인 Chungking Mansion과 두 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인 Midnight Express에서 한 단어씩 가져와 만든 합성어.


1.3. 패스트푸드점 Midnight Express

Midnight Express는 탈옥을 이르는 속어.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목격한 홍콩 사회는 공황상태에 빠져. 중국이 홍콩에 50년간의 자유를 약속했던 ‘일국양제’가 불투명해졌기 때문. 그 여파로 1990년대 초반 홍콩에는 대규모 이민 러시가 있었대. 언론들은 이를 두고 ‘홍콩판 엑소더스’라고 표현했을 정도였고.

두 번째 에피소드의 공간에 ‘탈옥’이라는 이름 붙임으로써
당시 홍콩의 사회 상황을 영화에 투영시키려는 의도였을 것.





2. 중경삼림과 홍콩 반환
2.1. Episode 1 : Chungking Mansion

레인코트를 입고 금발의 가발을 쓰고 다니는 여자는
동양의 핏줄에 영국의 문화를 가진 홍콩을 상징.

여자는 마약 유통을 위해 인도인을 여럿을 데리고 다니는데, 이들은 결국 여자를 배신해.

홍콩 할양의 근거 조약은 난징조약, 아편전쟁의 결과였고
이때 아편을 생산했던 게 인도.


홍콩이 처한 식민지 구도를 보여주는 설정이었을 거야.

마약밀매상과 거래를 하는 서양인이 상징하는 건 영국.
왜냐하면 서양인이 홍콩인 바텐더에게 키스하기 전에
가발을 씌우거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해
상대를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바꾸는 서양인.
영국과 홍콩의 관계를 연상시키지.

마약밀매상은 인도인들을 응징하고
마지막엔 서양인까지 쏴 죽이는데,
서양인을 영국으로 치환하면 영국을 향한 홍콩인의 배신감과 분노를 상징적으로 담은 거라는 해석도 가능해.

거사 후에 여자는 금발의 가발을 벗어던져.
본연의 검은 머리를 드러낸 채 자리를 뜨는 모습은
영국의 그늘을 벗어난 홍콩인을 암유하는 것 같아.

한편, 경찰223은 5월 1일 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에 집착해.

“캔의 유통기한이 말해준다.
내게 별로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서양인이 마약밀매상에게 남긴 캔의 유통기한도 이와 동일.
홍콩 반환일을 의식하며 사는 홍콩인을 담아낸 설정이었을 것. 공교롭게도 모두 1일이지.

마약밀매상과 경찰223이 어느 바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
남자는 여자에게 광둥어, 영어, 일본어, 북경어로 말을 걸지만 여자는 유일하게 북경어 질문에만 대답을 해.
다가올 시간은 중국의 시대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2.2. Episode 2 : Midnight Express

경찰663은 이별을 마주하길 거부하고 유예하는 남자야.

중국에의 반환을 앞둔 홍콩인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마음 한편으론 영국과의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

유독 중경삼림의 남자들이 상실에 대처하질 못하는데, 시대적 방황이 주로 남자 캐릭터들에 투영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

페이 배역을 맡은 왕페이는 실제 중국 본토 출신.
이 정보를 알고 영화를 보면 시선이 오묘해져.

어느 날 페이는 경찰663에게 편지를 한 통만을 남긴 채
떠나고, 시간이 흘러 편지에 적혀진 날짜에
둘은 재회해.

페이는 새로운 약속을 휴지에 적어 663에게 줘.
소중한 약속을 휴지 조각에 적는다..그 약속에서 페이가 또 한 번 자신을 만나러 올 거란 확신을 갖긴 어렵지 않을까?
페이는 일전에 663을 바람맞힌 전적도 있는걸.

휴지조각에 적힌 약속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 대한 불신을 담은 메타포 같아. 천안문 사태 이후 많은 홍콩인들이 중국의 약속을 회의했기에 서둘러 홍콩을 떠났을 거잖아.

어쨌든 페이는 약속한 날에 돌아와 663과 재회했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일도 엄밀히는 ‘재회’인 것처럼.





3. 페이의 청소

페이가 663의 빈집에 무단 침입해 여러 번 청소를 하는데,
소름 끼친다는 평이 많아.
이 시퀀스는 경찰663 마음에 남은 옛사랑의 흔적을 지워내고 페이가 서서히 자리 잡는 걸 은유해.

클릭 시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재생

페이가 마지막 청소 후 줄행랑을 칠 때 화면에 흐르는 노래는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이 곡은 경찰663이 옛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처음
등장했어.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가지는 의미는 사랑.

663은 그길로 집에 돌아가 청소를 해.

“난 대청소를 했다. 다음 비행기를 위해 길을 닦듯이.”


실연을 회피하던 663이 마침내 손수 마음을 정리하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야.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홍콩에 남은 영국의 흔적도 언젠가는 희미해질 거란 것. 그리고 중국과의 화합에 대한 기대가 표현된 장면일 거야.

두 번째 에피소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해.

“그날 오후 꿈을 꾸었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난 깨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꿈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

클릭 시 <몽중인夢中人> 재생

청소 장면에 사운드트랙 몽중인夢中人 흐른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시퀀스를 꿈속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충분해 보여.
California Dreamin'이 더 많이 삽입되지만 이 노래 역시 꿈을 꾸는 내용.




4. 사운드 트랙
4.1. California Dreamin'
두 개의 에피소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곡.

클릭 시 <California Dreamin'> 재생

“캘리포니아가 좋아요?”
“여기와는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이민을 희망했던 홍콩인들은 캘리포니아를 이상적인 이민지 중 하나로 꼽았대.
아주 추운 겨울날 따스한 캘리포니아를 꿈꾼다는 노래 가사도 절묘해.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애타게 그리는 곡이라서.

4.2. Things In Life

클릭 시 <Things In Life> 재생

마약밀매상의 첫 등장과 함께 흐르는 곡 Things In Life는 그녀의 서사를 암시하는 복선이자 그녀에게 건네는 위로와 같은 노래.




5. 223의 역할
왕가위 감독의 영화답게 시간 정보가 자주 등장해.
중경삼림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연도와 월일.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94년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생겨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어.
그런데 실제 1994년 4월 28일은 목요일이야.
4월의 28일이 금요일인 건 1995년.

이 시계 달력은 한때 내게 큰 시련을 줬었어..
여러번 나와서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없었고..

내 생각엔 관객이 보고 있는 건 1994년의 어느 날들이지만,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1995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반추하고 있는 것 같아.


왜 시각과 청각 사이에 1년이라는 시차를 둔 걸까?


난 그 이유가 경찰223, 하지무의 역할에 있다고 생각해.

경찰223은
중경삼림의 옴니버스 두 편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사실상 중경삼림의 세 번째 옴니버스인 영화 타락천사로 들어가는 입구야.

1995년은 영화 타락천사의 시간적 배경이거든.

따라서 첫번째 에피소드의 목소리는 1994년 경찰223의 나레이션이 아니라 1995년 죄수번호223의 나레이션일 거라는 게 내 추측.

나는 타락천사까지 봐야만 비로소 중경삼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야.

두 번째 에피소드는 1994년으로부터 1년이 지난 1995년 시점에서 엔딩을 맞아. 반면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저 시계 달력이 없다면 모든 시점이 1994년이지.

중경삼림의 하지무가 다시금 사랑에 빠진 건 메이와의 이별로부터 딱 30일 이후.
타락천사의 하지무가 첫사랑을 만나는 건 중경삼림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시계로부터 30일 이후인 1995년 5월 30일.

하지무, 넘버 223, 30일 그리고 시계 달력까지.
타락천사의 밤이 중경삼림의 밤보다 훨씬 어둡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경찰에서 수감자로 설정이 완전 전복되었다는 사실도 이 해석에 있어 큰 방해 요소는 아닐 것 같아.

중경삼림에는 또 한 번의 시점 교란이 나타나.
언뜻 청킹맨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약 밀매상과 페이가 스쳐가는 장면으로 인해 에피소드 간 선후 구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아비정전> 이후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그 당시의 홍콩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1997년이 되면
그 이후로 볼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곳을요.”
- 왕가위 감독 -

(출처: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 감독이 밝힌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제작 의도.
왕감독은 ‘아비정전’과 ‘1997년’이라고 말했지만
행간에 숨겨진 의미는 ‘천안문 사태’ 그리고 ‘홍콩 반환’이지.

관객들이 그저 매 순간을 충실히 느끼며 홍콩의 낮과 밤을 온전히 기억했으면 하는 의도였지 않을까 짐작해볼 뿐이야.




6. 이름

중경삼림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인물끼리 서로 통성명도 안 하고, 동명이인(메이)이 등장하고, 마약밀매상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양조위는 숫자로 불리는데 그마저도 내내 틀리게 불리지.

이름은 초상과 함께 그 사람을 식별하는 특징적 요소야.
이 두 가지를 ‘인격 표지’라고도 하잖아.

“내 이름은 하지무. 경찰 넘버 223이다.”


이름의 기능을 고의적으로 탈각 시켜둔 와중에 스스로 자기 이름을 밝히는 인물이 있다면 그 의도는?

나는 정황상 왕가위 감독이 하지무를 통해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연결하려고 영화 시작부터 스스로 이름과 넘버를 분명히 밝히게 한 거라고 생각해.

때문에 비록 중경삼림의 하지무와 타락천사의 하지무 사이에 충돌하는 설정이 존재할지라도 이 인물을 작품의 연결 교량으로 해석한 거였어.




7. 중경삼림의 주제
난 중경삼림이 고독소통의 단절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해.

마약밀매상과 경찰223은 함께 밤을 보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술과 밤, 여자와 남자. 조건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고독을 끌어안은 채로 끝내 섞이지 못하지.

마약밀매상은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 감정의 통로를 닫아버린 그녀의 진심을 읽기란 쉽지 않을 거야.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친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 밖에 안 되었다.
난 그녀를 모른다.

페이와 처음 마주쳤을 때 경찰223의 내레이션.
중경삼림 속 사람들은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바투 다가섰음에도 종국엔 남인 채로 남게 돼.

서로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로도 노래를 시끄럽게 트는 행동과 페이와 경찰663이 약속을 정하는 방식을 보면
이쪽도 소통이 잘 되는 편은 아니고.

이들이 처음부터 고독했던 건지, 소통의 단절로 인해
고독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중경삼림 속 사람들은 고독해.




8.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나는 ‘고독’과 ‘단절’이라는 주제의식이 타락천사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교량이라고 생각해.


“우린 서로가 매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223의 나레이션 -


중경삼림의 인물들은 고독할지언정 일말의 희망이 비치긴 해.
마약 밀매상이 경찰223에게 생일 축하 메세지를 남겼던 일처럼. 정해진 날에 재회하는 경찰 663과 페이처럼 말이지.

타락천사(1995)

똑같은 나레이션이 타락천사에서도 반복돼.
재밌는 점은 중경삼림으로부터 전승된 정서가 매우 심화되는 바람에 마치 반어법처럼 들린다는 거야.

타락천사의 인물들은 한없이 고독하고 타자화되거든.

왜 타락천사에서 모든 양상이 심화되는 걸까?
답은 인물과 시간에 있는 것 같아.

타락천사(1995)

난 등장인물들이 홍콩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네 명의 인물들 모두가 ‘타락천사’잖아.
날개가 꺾여 오도 가도 못하는,
고향 아닌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천사들.

게다가 타락천사의 시간은 홍콩 반환에 보다 가깝지.

타락천사의 정서는
지척에 다가온 홍콩 반환으로 인한 불안과 홍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

타락천사(1995)

타락천사는 시각적 왜곡이 심하고 앵글도 불안정한데,
주제의식이 형식으로 구현된 결과라고 해.


게다가 타락천사를 제작할 무렵에는 중경삼림의 대흥행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수많은 카피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었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간 흔한 모작 중 하나가 되어버릴 위기였던 거지.
따라서 타락천사의 연출 기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왕가위식 병법이자 도전정신의 발휘였을 거야.

사견 하나를 덧붙이자면,
내게 있어 타락천사는 모든 측면에서 중경삼림을 의식하고 있는 영화. 그리고 난 이 두 영화에 사이에 분명한 순서가 있다고 생각해. 중경삼림 후에 타락천사를 보는 게 맞아.




9. 중경삼림은
홍콩 반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말미암은 시대적 불안을 실존적 고독으로 풀어낸 영화.

알 수 없는 대사와 행동들, 어딘가 위태롭고 몽환적인 분위기.
환각처럼 남는 잔상과 감각적인 사운드 트랙까지.
중경삼림이 누구에게나 좋은 영화로 남진 않겠지만,
분명 중경삼림만이 줄 수 있는 황홀한 경험이 있어.
이해를 못 한 채로도 정말 좋은 영화니까 누구나 살면서 꼭 한 번쯤은 봤으면 싶은 영화야.


내 해석은 여기까지.
문제 시 수정.


重慶森林:Chungking Express(1994)
dir. wong Kar-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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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노래시작했다노래끝났다 | 작성시간 22.08.02 여시 이거 유튭에 올려서 수익화 하자! 진짜 내가 중경삼림보고 넘 답답해서 해석 찾아봤는데 다 줄거리 설명만 있고 해석 궁금해서 미치는줄 알았거든. 여시 이거 무조건 대박이다.. 통찰력에 감탄했어 최고야
  • 작성자알멩이 | 작성시간 23.04.15 중경삼림 오늘 처음 보고 연어하다가 왔는데 여시의 해석 읽고 한번 더 보면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어! 좋은 글 고마워!
  • 작성자행운과 행복이 함께할 나 | 작성시간 24.01.30 드디어 영화 보고 연어왔는데 여시 해석 덕분에 더 자세히 알아간다!!! 홍콩영화 너무 매력적이다..
  • 작성자반짝반짝인생 | 작성시간 24.05.05 와 천재다 여샤..
  • 작성자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 작성시간 26.01.09 잘 봤어 고마워 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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