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단건우존나맛있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봤는데 흥미돋이라 쪄봄
1988년 10월 16일 인질극이 벌어짐
권총을 든 남자와 겁에 질린 여자가 있어
특이한 건 이 인질범이 경찰한테 비지스의 홀리데이 노래가 듣고 싶다고 요청함
아는 사람은 아는 지강헌 사건
같이 인질극을 벌인 범죄자들.
이 네명은 원래 호송버스에 타서 서울에서 대전,공주 교도소로 이감 중이었음.
근데 안성 톨게이트 부근 쯤, 어떤 재소자 한 명이 일어나더니
"교도관님, 저 소변 좀 보고싶습니다"라고 해
그래서 교도관이 소변통을 건네는 순간
지금이다!!!!!!!!!!!! 하고 일제히 일어나서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킨거야
그래서 그 버스는 죄수들이 점령해버리고,
죄수들이 옷을 교도관이랑 바꿔입은거야.
그리고는 다시 그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어.
25명중 13명은 안전한 감금, 즉 그냥 버스에 그대로 앉아서 교도소 들어가길 원했고
나머지 12명은 재소자 신분카드를 찢은 후에
권총 1자루와 실탄을 챙겨 탈주를 했어.
2명은 당일 바로 검거되고
또 다른 3명은 탈주하고 간 곳이 겨우 룸싸롱이었던거야;
그래서 룸싸롱에서 계산할 때, 술에취해서
주인한테 우리 탈주범이다~라고 자백을 한거야.
주인이 겁에 질려서 신고를 했어.
그래서 3명이 추가검거가 되고, 남은 사람은 7명
전국이 난리가 나고, 불시검문을 하고
경찰들이 암만 뒤지고 다녀도 탈주범들은 소식이 없었어.
그러다가 탈주3일째 되던 날,
경찰한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어.
"어젯밤에 탈주범들이 저희 집에서 머물다갔어요"
이 탈주범들은 가정집으로 침입해있던 거였어.
안암동의 한 가정집에 새벽에 대문이 열려있던 틈을 타 침입했어.
언론에 알려지고 서울이 발칵 뒤집혔어.
28시간이나 머물다 간게 세상에 알려지고..
서울에서는 일제히 다같은 마음으로 반상회를 각 동네마다 열었대.
근데 하필...
거기가 바로 행당동이었어.
근데 이게 우연의 일치인지..
탈주범들이 일제히 행당동으로 간거지.
가서 또 현금을 뺐고 달아나려했는데 가난한 집이 였던지라 4만원을 빼앗았대.
근데 하필 왜 가정집으로 숨었을까?
보통 경찰들은 기차역 터미널 숙박업소를 수사했겠지만
가정집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
그리고는 또 의외의 장소에서 탈주범들이 나타나.
장소는 어느 대학병원 주차장인데
한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 승용차에 타려는 순간
옆구리에 칼을 대고 우리 탈주범이다. 라고 말을 했대.
지금은 예순이 훨씬 넘으셨지만
그날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신다고 함.
녹취록을 들어보면,
"트렁크열고 이제 문을 닫고있는데 두세 명이 와서 칼을 딱 대는 거야"
"느껴지는 거지 아 탈주범이구나.."
"아저씨 집 어디요? 라고 물어봐서 문정동인데 그건 왜 묻나? 처음에는 그랬지 그러니까"
"아저씨 집으로 갑시다 그러는거야"
근데 또 마침 그 날이
아내와 6살,4살 두 아이가 처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였어.
심지어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약속을 한거야.
그때 그시절엔 핸드폰이 있어 뭐가 있어 .. 아무것도 없으니까 연락할 방도도 없고.
그래서 그 아저씨가 탈주범이랑 협상을 했대.
얼마나 머무를거냐? 2박3일이면 되겠냐? 해서 2박3일 지나면 나가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러기로 한거야.
아내랑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고 집에 도착해서 화내면서 문을 열었대.
근데 탈주범들이 있던거지...
그 와중에 제약회사 다니던 아저씨는 묘수를 생각해냈어.
자기 회사의 수면제를 타볼까..
그래서 물에 녹여서 맛을 한번 봤더니 아.. 너무 쓴 맛이 나서 안되겠던거야..
근데 지강헌이 그 집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결혼반지를 찾았고,
이걸로 전당포에 가서 팔아서 돈을 내놔라고 했어.
그래서 그 아저씨는 '아 그럼 나가는 김에 도움을 요청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강헌이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있어서 어떻게 하질 못했어.
그러다가 저녁이 되고 지강헌이랑 집주인이랑 술도 한잔하게 됐어.
술이라는 게 참 웃긴 게
먹다보면 속얘기를 많이 하게되니까 지강헌이 털어놓기 시작한거야
어렸을 때 부모 없는 집에서 자라서 홀대받고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게 된 이야기
어렵게 이발소 취직을 했는데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쫓겨나고
누가 그런 이야기를 안 들어줬으니까,
술을 한잔 함으로써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고
인질범들도 애환을 인질한테 이야기하기 시작한거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만 졸업을 했었는데
학교에 돈을 못 내고 그러니까 어렸을 때 상처를 많이 받고
그래서 도둑질하고 처벌받고 반복하면서 살았던거지.
지강헌도 꿈이라는 게 있었는데
시인이 꿈이었었대.
"나는 대한민국 최후의 시인이다"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낭만적인 염세주의자다"
이런 얘기들을 했대.
탈주범들이 탈주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비리는 파헤치고 죽겠다 이거였어.
우리 생각에 탈주범 주제에 뭔 비리를 파헤쳐 뭔소리야 싶을수도 있어.
"연희궁으로 가려다가 경비가 삼엄해서 실패했다"
이런말을 했는데, 연희궁에는 전두환 놈이 살고 있었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게 지강헌의 죄목이야
공범 2명과 7차례 정도 현금,승용차 등 556만원 정도를 절도했어
그래서 형량을 받았는데
보호감호는 보호관찰이랑 다른거야
관찰이 아니라 그냥 감옥같은 곳에서 10년 더 사는 거야.
합이 17년인 거지.
<보호감호제도>:재범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범죄자를 본형을 마친 후 별도로 감호소에 머물도록 하는 조치.
근데 이 보호감호와 연희궁이 무슨 상관이냐면
원래 없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때 생긴거야.
1980년 5월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했어.
그 중에 4만명이 삼청교육대에 수용,
가혹한 훈련으로 교육기간 중 54명이 사망했다고 해(1988 국방부 공식집계)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 청송에
보호감호소를 건립했어
상습범죄자를 장기 구금할 수 있는 <사회보호법>이 제정되었어.
말만 들어보면 나쁘지 않은 제도 같은데 말이야..
이렇게 자전거 1대 절도 시 13년 형을 받게되는 어이없는 제도였어..
이중처벌,과잉처벌 등을 이유로 비판받다가 2005년에 폐지됐어.
명목은 좋아.
선량한 국민들을 위해서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놈들한테
가중처벌을 주는 거니까.
근데 정작? 이걸 만든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형이 대통령이 되니까 막강한 권력을 얻었고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운영을 하게되었어.
근데 거기서 76억이나 횡령했단말이야?
재판에서 인정된 게 76억일뿐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근데 몇년을 받았을까?
고작 7년을 선고받은 거야.
그리고 재판결과가 흡족해서 손까지 흔들며 웃으면서 퇴정했다는 신문기사가 있어.
그렇다고 7년을 다 살고 나온 것도 아니야.
진짜 한숨만 나오는 현실이지...
단순비교할 대상은 아니라지만.
지강헌과 전경환을 비교하면 ,,,,
누가봐도 정상은 아닌 결과지?
지강헌은 이렇게 외쳤어.
그리고 이 말이 탄생한거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바로 그 말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이 말은 어디에서나 누구나 들어봤지만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나도 이 영상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어.
그 말을 한 사람이 지강헌이라는 탈주범인걸..
그리고 탈주 7일차 되던 날,
신촌 한복판에서 지강헌일당은 경찰에게 발각되었어.
유추하기론 연희궁을 진짜로 가려했던것 같다고 해.
그래서 1명은 즉시 검거 되었고, 1명은 도주를 했어
또 나머지 4명은 인파속으로 도주를 했어.(지강헌 일당)
그리고 네번째 집으로 지강헌 일당은 침입을 했어.
그 집에 살던 분의 녹취록이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도주중이다 자막이 TV에 흘러나가고 있었어요"
"저는 그거보면서 아 조심해야되겠구나 우리 동네니까 그러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두두두 소리가 나서 누가 이렇게 오지 해서"
"봤더니 방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탈주범들이 들이닥치고,
그때 일흔이 넘으셨던 아버지께서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탈주범들이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밥은 먹었냐?" 이러고
아내한테 빨리 밥부터 차려라 이렇게 하셨대.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정말 사시나무 떨듯이 가서"
"고추장찌개를 했던 거 같아요 제 기억에.."
"차려줬더니 너무 급히 맛있게 먹더라고요 다들"
"이러면서 조금 마음들이 풀렸던 거 같아요 그 사람들이.."
"그리고 나서 아버지가 신발좀 벗어라 그래도 사람사는덴데 신발은 벗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신발을 또 다 벗더라구요. 그리고 지강헌이 애들 시켜서 걸레로 닦게 하고.."
이제 저녁을 먹고 나니까 조금 안정이 됐던 것 같아.
좀전에 막 쫓기고 탈주극을 벌이고 도망가고 하다가
오래간만에 집밥먹고 그러니까 편안했을 거 아냐..
그리고 여대생인 그분한테 농담처럼 이렇게 물었대.
"두 분이 방에서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아가씨, 어떻게 죽는게 제일 멋있어 보이냐'고..."
"제가 너무 놀라서 무슨 소리냐고 그랬더니"
"높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게 멋있어요, 총에 맞아 죽는 게 멋있어요?"
"어떤게 멋있어 보이냐고 물어보길래 그런 얘기 하지 마시라고 제가 무서워서.."
"나는 모른다고 그렇게 얘기했었죠"
이 여대생분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셨대.
그래서 이런저런 구절을 탈주범한테 읽어주기 시작한거야.
음에는 관심이 없던 지강헌이 말을 걸어온거야.
"지강헌 씨가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해줄 수 있겠냐' 그러더라고요"
"저도 너무 놀라서 '뭐라고 기도해 드릴까요' 그랬더니"
"'내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마음이 되게 해달라' 그러더라고요"
"막 콧물이 땅에 떨어질 정도로 울고 그래서"
"저도 울고 그분도 울고..."
그렇게 의미심장한 1박2일을 보내고
드디어 그 마지막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흐르던 북가좌동으로 이동을 해.
근데 마지막 집에선 빠져나가지 못하지.
그집 아버지가 새벽에 몰래 나와서
그래서 오만 경찰들이 다 집합해서 쫙 깔렸지
테러특공대 경찰 천명이 집을 둘러쌌어.
8박 9일동안 경찰은 얼마나 안달이 났겠어
제발 나타나라 했는데 드디어 나타났으니까
경찰이 밀고 들어오면 인질을 해치겠다고 위협을 해.
그리고 온 전국에 뉴스가 떠들썩하니까 인질범들의 가족들도 와서 말렸어.
지강헌 일당은 무시무시한 인질범이었지만
담 밖의 모습하고는 너무 달랐대.
총을 겨누면서도 귓속말로는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없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 라고 했대..
경찰이 자극 할수록 지강헌은 유리창을 깨고 흥분을 해.
그리고 지강헌은 승합차를 요구했어.
"승합차 보내주면 인질 풀어주고 조용한 곳에 가서 우리 운명을 결정을 짓겠다"
일당 4명중 제일 어렸던 21살 강씨가 승합차를 확인하러 나왔는데.
차가 준비 안되있던 거야.
그래서 '아, 속았네'하고 들어오려는 순간
"강ㅇㅇ아, 내가 너 살린다"
"내 의견 받아들여라 알겠지?"
'이 인질극의 현장에서 벗어나라'
'넌 나갔으니까 나간김에 살아라'
지강헌이 35살이고 강씨가 21살이었기 때문에
아직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지, 지강헌 입장에선
그리고 잠시 후에
지강헌의 총을 빼앗아서 나머지 두명이 자살을 한
지강헌이 유리조각을 들고 자살시도를 하려는 순간,
경찰특공대가 집에 들이닥쳐서 지강헌한테 총을 두 발 쏴.
지강헌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면 4시간 만에 사망했어.
그리고 이 사태의 유일한 생존자 강씨.
선고를 받게 되는데,
보통 징역 15년 구형 받으면 10년이나 12년을 선고 받는게 대부분인데,
어떻게 감형이 된걸까?
가정집 몇 곳에 들렀었잖아.
5곳중 3곳의 집에서 탄원서를 제출 해줬던거야..
아래는 탄원서 내용이야.
"TV와 라디오를 통해 알고 있는 교도소 탈주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겁을 먹었지만 이들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식사도 커피도 먹고 마시게 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가져오게 한 이들 모두는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들에게서 나쁜 범죄자의 냄새가 아닌
인간다운 눈빛을 읽었고 후회의 마음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통풍이 안되는 집안에서 담배 연기와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이들은 '잘먹었습니다 아주머니 신세 많이 지고 간다'는 말들을 남겼습니다
맨 나중에 남은 지강헌과 강 씨 두사람은 우리 식구에게
자기들이 떠나면 곧 신고를 하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들이 가고 난 후 솔직히 우리 네 식구 모두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는 미웠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디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셔서
희망의 빛을 벗삼아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번 정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고
아무도 안 들어줬으니까 ..
근데 이렇게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고 따뜻한 밥을 해주니까
또 인질들은 이 사람들의 인생이 가련하기도 하고
최후를 알기 때문에..
그런거에서 서로 감정의 동화 작용들이 일어나지 않았나..
그렇게 다섯집이나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나는 이 사건의 주인공들이 영웅이 되거나 이런건 원치않아
잘한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송은이
밑에는 영상의 베댓인데 공감가서 퍼옴!
세줄요약
그들이 잘했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했던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맥락없는 혐오댓글 달지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