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흥미돋]90%의 사극에서 거의 고증하지 않고 있는22 진짜 조선시대 및 이전시대 한복 장신구 (feat. 주렁주렁의 민족)
작성자정글은 언제나작성시간21.03.21조회수11,977 목록 댓글 6귀고리 (귀걸이)
조선시대 남자들 유교 선비라고 안꾸밀 것 같지? 그거 편견임
오히려 너무 꾸며대서 이웃나라까지 소문남 특히 귀걸이
아예 임진왜란때도 조선인과 왜놈을 구분하는 기준 : 귀에 귀걸이 구멍이 있었느냐 ㅇㅇ
귀에 구멍 없으면 왜적 있으면 조선인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한 역관이 중국에서 겪은 실화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대단히 콧대가 높아 조선인을 상대하지 않는 기생'에게 중국인이라 속이고 접근했는데, 그가 워낙 중국어를 중국인처럼 잘해 처음에는 속았던 그 기생이 그의 귀를 보고는 귀고리 자국이 있으니 당신은 조선인이라고 알아차렸고, 그 역관은 부랴부랴 "내가 외아들이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장을 시키면서 귀고리를 달았던 자국이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이다.
https://namu.wiki/w/%EA%B7%80%EA%B3%A0%EB%A6%AC
귀고리 자국 있는 남자는 조선남자임 ㅇㅇ
배경이 조선 중기였으므로 고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당대 남자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를 착용한 채 도폿자락을 휘날리며 도성의 거리를 활보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1513) 1월7일자에서는 '양평군의 나이 9세 때 큰 진주 귀고리를 달았으니…'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바로 '양평군 사칭 사건'이다. 당시 판의금부사 이손이 양평군을 사칭하고 다니는 만손을 탄핵했다. 이때 진짜 양평군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 큰 진주귀고리를 단 귓불의 구멍이었다. 양평군은 9세 때부터 큰 진주귀고리를 달고 다녀 귓불에 난 구멍이 넓고 컸는데 가짜 양평군은 아예 구멍조차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귀고리가 고귀한 왕자들도 애용했고, 그 크기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대변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10215_0007427948
우리들 피어싱해서 귀구멍 커지는마냥 저때도 그게 다 구분이 됐었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귀고리했는데 신분이 높을수록 크고 주렁주렁한 귀고리를 했다함
결국 선조가 명도 내림 니네 왜이렇게 남자주제에 귀걸이 하냐고
중국에까지 조선 남자들 귀걸이 주렁주렁 한다고 소문났다 이제 하지마라 하고 명내림
뭐 바로 없어진건 아니고 차츰차츰 안보였다고.....
물론 이후에도 귀는 못뚫을지언정 주렁주렁 본능을 가진 조선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다님
뚫진 못해도 어떻게든 주렁주렁 하겠다 해서 귀에 거는 형태
저정도로 귀걸이에 진심인 민족이었으니 선조 전까진 여성이든 남성이든 귀걸이 주렁주렁 해야 고증에 맞음
귀고리+팔찌+목걸이+노리개 주렁주렁 존나 달랑달랑 이게 찐 고증
단아하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이게 한복이란 편견 제발 버려 주렁주렁 화려한것도 한복 ㅇㅇ
조선시대만 했던건 아니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등등 민족 특성 수준일 정도로
귀걸이가 엄청 출토됐어 귀걸이 방식으로 우리나라 민족의 역사임을 증빙하기도 함
당연히 성별 구분 ㄴㄴ 키링의 민족의 원조는 귀에 주구장창 걸었던 귀걸이의 민족이었던 거임
조선시대 지위고하 막론하고 너나할 것 없이 했던거치곤 사극에 거의 안나와서 아쉬운
대부분 인물이 주렁주렁 제대로 보여줬던건 이 영화 순수의 시대
조선초기 고증 꽤나 잘해서 고증만으로도 볼만함
이외에도 몇몇 남캐들이 귀고리를 하는 정도의 고증을 보여준 사극은 있지만
실제 이웃나라까지 소문날정도로 여자도 남자도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것에 비하면 약하다고 봄..
특히 조선은 여캐들도 귀걸이 고증이 거의 없어서 아쉬워...이해 안가는게 조선시대 여캐들은 귀걸이 하면 안된다는 방송법이라도 있는지 실제 많이 했는데도 고증을 안하드라고
그래도 조선 이전 시대는 좀 고증을 하긴 하더라
궁예도 귀걸이 함 ㅇㅇ
키링 주렁주렁 본능은 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