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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그 많던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feat.트젠)

작성자두피산유국|작성시간21.06.02|조회수9,400 목록 댓글 4

 출처 : 여성시대 두피산유국

https://twitter.com/sappho_inseoul/status/1034274471526322176?s=19


"The Disappearing L"이라는 책은 레즈비언 역사가 어떻게 누락되고, 레즈비언 문화가 어떻게 소멸되고, 레즈비언 공간이 어떻게 파편화되고,심지어 왜 레즈비언조차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부르기를 꺼리게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 ‘퀴어’ 정글 속에서 레즈비언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시대의 LGBT 활동가들은 ‘여성’과 ‘레즈비언’이라는 구분을 거부하며 레즈비언 정체성을 보다 포괄적인 ‘퀴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고 레즈비언 문화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며 21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점차 소멸했다.

 ◆ 1970~90년대의 레즈비언들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와 강연, 출판물을 여성 전용 서점이나 여성 음악 페스티발 같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전용 공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파했다. (..) 레즈비언들이 거리 시위를 하고 여성 뮤지션 콘서트와 여성 페스티발이 열리고, 수녀와 여성 랍비들이 커밍아웃을 했다. (..) 이 시대의 레즈비언들은(그리고 저자는) Audre Lorde, Mary Daly, Lilian Faderman, Del Martin and Phyllis Lyon, Barbara Gittings, Mandy Carter, Billie Jean King과 함께 행진하고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 하지만 이 모든 레즈비언의 역사가 지워지고 있다. 현재의 LGBT 운동은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아닌 레즈비언 고유의 하위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명하지 않는다. 레즈비언만의 공간과 이벤트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여성 전용 공간의 적절성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고 학문적 관심이 여성의 역사에서 퀴어학으로 옮겨갔다. 이것은 레즈비언의 고유한 문화가 사라지고 평가절하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성학계는 남성과 트랜스젠더 교수 및 학생들을 유치하며 ‘여성’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 학부 이름을 젠더 스터디로 바꾸기 시작했고 2016년 기준, 학생들은 레즈비언 인권보다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있다. 과거 여성학 학부에 ‘레즈비언’ 딱지가 붙었다면 오늘날에는 레즈비언 역사를 탐색하려 한다는 이유로 TERF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 다이크 문화로 규정되는 1970-1990년대 레즈비언 분리주의자들의 플랫폼과 이벤트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활동가들과 단체는 비판과 멸시의 대상으로 주목받을 뿐이다. 노화, 노인 학대, 여성 노인의 경제적 취약성에서 발견되는 연령주의와 성차별주의의 교차성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만 노년의 레즈비언에 대한 연구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1970년대 디스코 시대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무수하지만 이 시대에 레즈비언들이 이룬 성취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70~90년대 레즈비언 문화가 활발히 발달한 가운데 주류 음악계에 레즈비언이 등장하고 레즈비언이 문학적인 성취를 거두고, 레즈비언 엄마와 교사를 지원하도록 법을 바꾸고, 영화와 티비에서는 레즈비언 역할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APA는 동성애를 정신병 분류에서 삭제했고 Martina Navratilova는 세계 최고의 여성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대에는 게이-이성애자 학생 동맹의 도움으로 여자 학생들이 다른 여학생을 프롬 파트너로 삼을 수 있었다. 여러 도시와 주에서 시민 결합과 여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아이슬랜드에서 레즈비언 총리가 탄생했고 미국 정부의 DADT 정책 폐지로 레즈비언 군인들이 차별 없이 군복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하지만 이러한 발전 뒤에 찾아온 것은 레즈비언 공간과 문화의 소멸이었다. 레즈비언들의 삶과 정체성, 정치적 성취는 역사와 진보 정치의 담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계와 미디어에서는 ‘퀴어’와 ‘게이’, ‘동성’이 ‘레즈비언’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전 세대의 레즈비언 문화 아이콘(Mary Daly, Therese Edell, Maxine Feldman, Kay Gardner, Barbara Grier, June Jordan, Audre Lorde, Pat Parker, Adrienne Rich)들이 하나둘씩 사망하는데 이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레즈비언 단체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 트랜스젠더(TIF)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경멸당했다. 2000년대에 이르자 여성으로 정체화된 모든 것은 성별 이분법에 복무하는 증거로 여겨졌다. 레즈비언은 비가시화되었다가 가시화되고, 또 다시 비가시화되었다.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LGBT에서 L은 왜 사라지고 있는 걸까? ‘게이’의 인권이 메인스트림으로 옮겨간 동안 레즈비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서점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음악 페스티발은? 레즈비언 바와 카페는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 조지타운 대학에서 2010년 LGBT센터의 환대식(welcome back party)을 했을 때, “I AM”포스터에는 게이 남성, 퀴어 여성, 바이섹슈얼, 앨라이라고 하는 표현들은 있었지만 “나는 레즈비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없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체게 인기있는 용어들은 젠더중립적이거나 남성포함적인 것이었다. 레즈비언은 여성 지향적인 유일한 단어였고, L 정체성은 1970,80년대의 레즈비언 분리운동에 개인적으로 친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분리주의자적 뉘앙스로 읽힌다. 다르게 말하면 L이 된다는 것은 남성을 무시하고 이것은 쉽게 남성을 혐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조지타운에 왔을 때 몇몇 친구들은 다나가 참여하게 될 여성학 프로그램이 “모두 1970년대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코스 리스트를 보면 글로벌, 트랜스네셔널 정치, 푸코, 21세기 여성의 보건에 대한 강조가 있으며 이것이 특별히 1970년대에 대한 강조라고 보여지기는 힘들다. 레즈비언에 대한 혐오감과 여성학에 대한 혐오는 연결되어 있다. 논쟁 끝에 조지타운의 여성학 프로그램은 여성과 젠더학으로 개명되었는데 이는 남성이거나 트랜스로 정체화하는 학생들과 전공들을 끌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는 여성 그 자체에 대한 집중이 더 이상 의의가 있다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연구 주제로서 여성이 덜 가시화 될수록 우리가 레즈비언에 대해 배울 확률은 적어진다.

 ◆ 2010년 10월 저자는 뉴욕에서 레즈비언 역사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이는 1970년을 회고한 것이고, 저자는 스스로가 30년간 다양한 여성 음악 축제들에 참여하며 모은 자료의 개괄을 제공했다. 후에 방청객 중 한 예술가가 정치적 티셔츠 디자인으로 보는 여성사에 관한 기사에 공저자를 요청해서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새로운 동료가 퀴어 예술 저널에 공저한 글을 제출했을때, 투고가 거절되었다. 그 사유는 비록 그 동료가 미국 레즈비언사의 진정한 궤적을 다뤘다더라도 미시건 페스티벌 (현재 트랜스여성-배재적이라고 심하게 비판받는)에서 모은 정보를 언급하기 때문이었다.

 ◆ 1970년대에 부흥한 레즈비언 분리주의 문화영역인 ‘womyn’s music scene’은 1990년대 초에 접어들자 기존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예컨대 주류 연예산업이나 레즈비언 매체는 womyn’s music scene’가 시대에 뒤떨어졌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페미니즘적 색채가 짙다는 뜻)고 조롱했다. 또한 20대의 팬덤은 기존의 National Women’s Music Festival이나 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을 윗 세대의 레즈비언들이나 향유하는 문화일 뿐이라며, 자신들과 거리를 두고 기존 레즈비언 축제/공연/행사들의 분리주의적 입장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women-only’라는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기조가 젊은 세대의 레즈비언들로부터 지지를 잃었던 것에 기인한다. 기존 레즈비언 음악은 여성 전용 축제를 개최하며 주요 아티스트, 보조 공연자, 공연 스태프들을 모두 여성으로 고용했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레즈비언들은 남성들과 어울려 문화영역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가령 이들은 기존의 레즈비언 공연들이 출연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을 모두 여성들로만 고용했던 관행들을 거부하며 남성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트랜스젠더의 레즈비언 행사 참여를 허용하고자 했는데 여기에는 퀴어 운동가들이 개입되었다. 1995년을 기점으로 퀴어 운동가들이 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과 같은 여성 전용 공간 및 행사가 트랜스젠더(Transgender Identified Female)를 배제하므로 다양성을 위반하고 여성의 영역을 제한시킨다고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이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접어들자 레즈비언 분리주의 문화는 사장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여성 음악계는 여성 전용이라는 레즈비언 분리주의의 기조를 점차 적용하지 않았다. 해당 여성/레즈비언 뮤지션들이 남성 청중/뮤지션/공연 관리자들과 결부된 주류 음악 산업에서 성공하기에는 그동안 정치적 실천으로 행해지던 분리주의가 발목을 잡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레즈비언 뮤지션들은 이제 남성과 무대를 공유해야만 하는 압박에 직면했고, 여성 뮤지션만으로 이루어진 행사 역시 지속되기 어려웠다. 결국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남성 영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음악 산업과 관련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고자 시도된 분리주의적 실천은 또다시 남성 위주의 자본에 의해 위기를 맞았다.

 ◆ 관련 업계들은 여성전용 축제를 여는 레즈비언들을 상대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도리어 이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세대의 팬덤들은 MTV 문화와 더불어 ‘셀럽’을 선호했다. 하지만 기존 레즈비언 뮤지션들은 셀럽 위주로 재편된 연예산업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좇지 않았고, 새로 데뷔하거나 주류로 진출하고자 하는 레즈비언 뮤지션들은 점차 자신들이 레즈비언임을 드러내지 않거나 페미니즘적 입장을 거부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ex)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할 뿐이지, 나는 이성애 여성도 레즈비언도 아니다.”, “Girl Power, Not Feminism”, “Be Sexy, Not be out of date”

 ◆ 이에 따라 주요 매체는 여성 뮤지션들을 폄하하기 시작했고, 음악씬에서의 여성 뮤지션들의 소외는 심화되었다. 당시 Lilith Fair와 같이 남성들이 개입되지 않는, 그래서 남성들이 어떠한 지배력도 행사할 수 없는 여성 음악 축제가 존재했다. 그만큼 여성/레즈비언 뮤지션들의 영향력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음악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는“Girl Culture”, “Girl Power” 와 같이 페미니즘의 언어 같아 보이는 프레임들을 만들어내어 사실상 기존 산업에 진출해있던 여성들을 삭제시키고, 이 여성들의 저항성을 축소시키며, 음악계에 진출하는 여성들을 소위 “소녀”로 위치지음으로써 여성 뮤지션들을“미숙한 어린 여자들”, “착해진(위축된) 어린 여자들”, “이제는 (남성 대중에게) 섹시해보이고자 하는 여자들”로 제약시켰다. 이는 기존의 여성 뮤지션들에게든 새로이 등장할 여성 뮤지션들에게든 명백한 백래시였다.

 ◆ 마지막 섹션에서 저자는 미시건 여성 음악 페스티벌이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된 주 원인인 트랜스 이슈에 대해, 그리고 트랜스 이슈가 어떻게 레즈비언 인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백래시로 작용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시작은 1994년 여름, 축제 장소 바깥에서 몇 트랜스젠더들이 자기들도 축제에 입장하게 해달라고 캠프를 세운 것이었다. 트랜스 캠프라고 불리는 이 집단은 처음에는 매우 소규모여서 많은 축제 참가자들조차 그들이 존재했는지 몰랐을 정도였다. 당시 축제는 외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가족 가치"를 중시하던 우파는 이 축제가 청소년에 대한 위협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축제가 "바이혐오"라고 했다. 90년도에 들어서면서 이런 외부의 압박과 참가자들의 세대변화로 인해 축제는 계속 자기검열을 해 기존의 모습에서 탈바꿈 해나갔다. 초기 분리주의적 정책에 동참했던 레즈비언들은 양육자가 되어 아이들을 데려왔고, 포크송이 주를 이루던 밴드 참가 리스트는 펑크,락앤롤로 바뀌었고, 부치펨 퍼포먼스을 열거나 S&M 플레이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등 성자유주의적인 분위기로 변화했다.

 ◆ 트랜스젠더(Transgender Identified Female, TIF, 여자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도 받으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축제의 책임총괄자인 Lisa Vogel은 몇번이나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들만은 위한 공간은 트랜스혐오가 아니라고 온건하게 주장하는 성명문을 몇번이나 발표했다. 그러나 트랜스캠프는 공연장 벽에 스프레이러 “REAL WOMEN HAVE DICKS”(좆달린 여자야 말로 진짜 여자다)라고 뿌리고, 여성/레즈비언의 공연 도중 남자가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축제 음식을 훔치고 기물들을 파괴하는 등 공격성과 반달리즘을 나날히 확대시켜갔다. 심지어는 공연장을 불태워 없애 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여러번 보내기도 했다. 축제에 대한 비난은 트랜스 캠프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 미디어와 평론가들에서도 받았으며 많은 이들이 분리주의는 구시대적 요소라고 조롱했다. 미시건 축제의 크루들과 참가자들이 온라인 상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축제에 대한 악랄한 비난과 유언비어에 대항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고 하나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얼마 뒤, 미시건 축제는 KKK와도 같은 혐오 집단이라고 비유되는 TERF들의 애처롭고 한심한 도피처라는 조롱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는 많은 레즈비언 커뮤니티, 블로거, 저널리스트들조차 축제를 혐오적이고, 가치없고, 병적이고, 추하고 삶을 파괴하는 기독교 우파들의 남성성기 선망적인 모임이라고 조롱했다. (당시 축제를 신나게 깠고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대형 언론사들: Salon, the Advocate, Huffington Post, Jezebel) 결정적으로 많은 축제에 참가했던 레즈비언 아티스트들이 퀴어 커뮤니티에게 탄압을 받고 축제를 보이콧 할것을 강요당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가장 유명했던 다이크, Alix Dobkin이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을 변호하자 더이상 퀴어 퍼레이드의 초청을 받지않게 되었고 다른 유명한 몇 그룹도 더이상 축제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하에서 1967년에 개최된 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은 201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다.

 ◆ "Disappearing L"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레즈비어니즘 문화가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고, 레즈비언 조직이 파편화되면서 레즈비언 정체성 역시 탈정치화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희는 미시간 축제에 참가했던 일본 레즈비언의 블로그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Most visual arts were about spirituality. I like women's spiritual arts, but I wanted political ones also. But I couldn't see any buttons or T-shirts with political messages.
I had visited the USA 2 times previously. When I joined the Stonewall 25th March in New York in 1994, I got many political buttons and T-shirts, and postcards of activist portraits. But the next time when I visited San Francisco in 1997, I couldn't find such staff anymore.
I wonder if it is old-fashioned to show political messages among Lesbian or Women's communit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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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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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누가치킨운전하냐 | 작성시간 21.06.02 다읽진못했는데 글 가져와줘서 고마워 생각해볼 지점인거같아 아주아주 단편적인 예시지만 성중립화장실도 남성화장실은 놔두고 여성화장실없애고 설치하는거..그리고 여성유투버에게 모든걸 검열해서 결국 여성유투버는 사라지고 남성유투버만 남는 이상황이랑 비슷해보이네...내가 여자라그런가 여자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위협이 느껴져..
  • 작성자쁘삐뿌삐 | 작성시간 21.06.02 잘읽었어!!!
  • 작성자길막이사랑해 | 작성시간 21.06.03 이 부분 참 유심히 보게됨

    여자들이 뭐 좀 하려고하면 귀신같이 알고 방해하는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루이틀이 아니지 성차별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닌데 분리주의가 왜 나쁜걸까 이해를 못하겠네 여성들만의 공간이 사라지고 레즈비언의 역사가 사라지는게 정말 씁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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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길막이사랑해 | 작성시간 21.06.03 이 부분도!
    girl power 프레임을 만들어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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