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Benjamin
비가 오는날의 연가 - 박영길
비가 오는 날에는
그대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오
회색빛 하늘의 구름 비 되어
그리움의 눈물이 되려 하니
비가 오는 날에는
그대
창가에 우두커니 있지 마오
잊히는 그리움이 빗방울 되어
눈물처럼 창가에 흐르니
비가 오는 날에는
그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사랑노래
빗소리에 담아 들려주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이 되어 - 이해인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 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 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 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 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우산속의 두사람 - 용혜원
비가 아무리 줄기차게
쏟아진다 하여도
우산 속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발목과 어깨를 축축이 적셔온다 하여도
비를 의식하기보다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르익어 간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빗소리보다 때로는 적게
빗소리보다 때로는 크게
서로의 목소리를 조절하며
웃을 수 있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산 속에서 서로 어색함이 없이
어깨와 어깨 사이가 좁혀지고
두 사람의 손이 우산을
함께 잡아도 좋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산 속의 두 사람은
사랑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 내리는 날이면 - 원태연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 곳에 내가 있습니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려고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곳에서
눈물 없이 울고 있습니다
비가 - 유하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 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먼 산처럼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젖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습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가오는 날이면 문득.... - 도지민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렇게 지루하게 비 내리는 날이면 문득
반가운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거저
발길 닿는 대로 오다 보니
바로 여기였노라고 하시며
그런 당신이 비옷을 접고
젖은 옷을 말리는 동안 나는
텃밭에 알맞게 자란 잔파를 쑥쑥 뽑아
매운 고추 너덧 개 송송 썰어
파전 한 장 바싹하게 굽고
시큼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로
냉면 한 사발 얼렁뚝딱 만들어
오늘만은 세상 시름 다 잊고
덤으로 마주 하는 단 둘만의 만찬
그런 눈물겨운 맛 한 번 보았으면
참 좋겠다.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읍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오늘밤 비 내리고 - 도종환
오늘 밤 비 내리고
몸 어디엔가 소리없이 아프다.
빗 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지고 세월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우산 - 도종환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