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햇사레복숭아
<KBS 역사저널 그날>
백두산정계비, 토문강의 위치는 어디인가
https://youtu.be/TVHpydGxcE4
백두산에 정계비가 세워진지 약 170여년 후. 두만강 이북에 간도 땅에 살던 조선 백성들은 놀라운 일을 당하게 된다.
청나라 정부에서 간도에 조선 백성들을 대상으로 포고문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두만강 이북 간도 땅에 사는 조선 백성들은 모두 철수하라는 쇄환령이었다.
당시 간도 땅에는 이미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정착하고 있었다. 이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며 간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있었다. 특히 1860년대 이후 대규모 간도 이주가 이루어져 곳곳에 마을을 이루고 자치기구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백두산정계비가 있었다. 정계비에 새겨진 동위 토문이 바로 인식의 근거였다.
조선 백성들은 토문강이 송화강 상류라고 믿고있었다.
토문강이 어디냐에 따라 조선의 영역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즉, 토문강이 두만강이라면 그 남쪽만이 조선 영역이 되는 반면, 토문강이 송화강 상류라면 드넓은 간도가 조선 땅이 되는 것이었다.
청의 주장은 달랐다. 토문과 도문은 같은 발음이며 도문은 두만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다.
용비어천가에 보면 토문은 두만강 북쪽에 있다고 적고있다. 토문과 두만을 다른 강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청나라보다 앞선 명나라 대의 만들어진 요동지. 중국도 토문과 두만은 다른 강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계비 이후 제작된 조선의 지도. 토문강은 두만강과 다른 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계비의 토문강이 송화강 상류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정계비를 세운 후 토문강의 발원지까지 돌무더기와 목책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이 만든 사진첩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석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계비 부근에 군데군데 쌓은 돌 무더기가 보인다.
물줄기를 명확하게하기 위해 쌓은 돌무더기와 흙무더기. 이들은 정계비에서 시작하여 토문강 상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1885년, 1887년 두 차례 국경회담을 열었으나 모두 결렬되었고 조선과 청 양국은 간도에서 치열한 행정권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간도에 진출한 일본이 1909년 불법적인 간도협약을 맺음으로써 간도는 청나라의 손에 넘어갔다.